[Creator+] 애니메이션 감독 한지원: 딜레마와 감정의 궤도를 따라 이야기를 그리다

한지원 애니메이션 감독

지난 5월 말 공개된 〈이 별에 필요한〉은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선보인 첫 애니메이션 영화다. 근미래의 우주와 서울을 배경으로, 두 연인의 사랑과 꿈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는 애니메이션 감독 한지원이다. 그는 독립 애니메이션과 상업 애니메이션, 브랜드 협업을 넘나들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가장 흥미롭게 보여주는 창작자다.

[Creator+] 애니메이션 감독 한지원: 딜레마와 감정의 궤도를 따라 이야기를 그리다

editor’s note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출품한 단편 〈코피루왁〉(2010)으로 서울인디애니페스트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한지원 감독은, 이후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 왔습니다.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2022)는 선댄스영화제와 팜스프링스 국제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며 그의 이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죠. 브랜드와의 협업에서도 인상적인 결과물을 선보였는데요. 스톤헨지의 브랜드 필름 〈뭐든 될 수 있을 거야〉(2018), 아시아나항공의 ‘아시아나 호피 라거’ 캠페인 영상 〈Be Hopeful〉(2022) 등에서 한지원 감독 특유의 서정성과 섬세한 감정 연출이 빛을 발했어요. 최근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장편 〈이 별에 필요한〉(2025)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비로소 완성된 넷플릭스 코리아 최초의 애니메이션 영화이기 때문이죠.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 이 작품은 사랑과 이별, 성장과 회복의 서사를 담은 SF 애니메이션입니다. 〈이 별에 필요한〉이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영화가 준 설렘을 안고 한지원 감독을 만났습니다. 딜레마를 껴안고, 장면으로 감정을 전달하며, 지금 이 별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만들어온 한지원 감독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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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원 감독

PLUS 1. 넷플릭스 최초 한국 애니메이션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클라이맥스 스튜디오가 스톤헨지의 브랜드 필름인 〈뭐든 될 수 있을 거야〉를 보고 연락을 준 것이 〈이 별에 필요한〉의 출발점이었어요.

처음부터 장편을 만들자는 제안은 아니었죠. 일단 드라마 〈아만자〉의 애니메이션 파트를 함께해보자는 제안이었어요.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기대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 프로젝트가 기획 단계에서 실제 완성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그렇게 〈아만자〉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장편을 함께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때부터 기획을 시작했어요. 약 1년 반 동안 느린 페이스로 시나리오를 준비했고, 투자 확정 후 2년간 집중적으로 작업해 완성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처음 선보이는 한국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 공개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어요. 작업실에 넷플릭스 영문 계약서를 붙여뒀다고 들었는데요. (웃음)

시작 단계부터 극장보다는 OTT 플랫폼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당시 넷플릭스에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단 한 편도 없었고, 지금도 저희 작품이 유일해요. 그래서 ‘너무 기대하진 말자. 그렇지만 정말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죠. 피칭부터 제작 확정까지 거의 2년이 걸렸는데, 막상 성사가 되고 나니 실감이 잘 나지 않더군요. 너무 오랫동안 ‘기대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버텨왔으니까요. 그래서 계약서를 붙여둔 거예요. 눈으로 보면서 ‘이제 진짜 완성해야 해. 이건 정말 본 게임이야’라고 스스로 다잡고 싶었던 것 같아요.

〈뭐든 될 수 있을 거야〉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장편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뭐든 될 수 있을 거야〉와 〈이 별에 필요한〉은 모두 여성 주인공과 우주인 인형이 등장하고, 부모의 꿈을 이어간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가장 큰 차이는 로맨스가 추가되었다는 점인데요. 이 방향은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대표님의 제안에서 출발했어요. 〈뭐든 될 수 있을 거야〉에서 음악이 핵심 축을 이뤘던 만큼, ‘로맨스 대상이 음악을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갔죠. 로맨스의 비중이 커지면서 여성 우주인의 꿈을 중심으로 한 서사에서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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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 필요한〉스틸 이미지
2051년 서울과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궤도를 찾아가는 두 남녀의 사랑과 성장 이야기로 다가왔어요.

작업의 출발점은 “이별에 필요한 건 무엇일까”라는 질문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엔 제가 ‘우리 삶에 필요한 건 사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요. 그래서 이 작품에선 사랑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담고 싶었어요. 그 혼란을 통과하며 결국 성장하게 되는 두 청년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죠. 사랑은 때때로 사람을 복잡하게 만들지만, 결국 다시 꿈꾸게 하고, 세상이 남긴 상처를 회복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요. 이를 위해 캐릭터 간 구도도 많이 고민했어요. 두 서사 간의 균형도 중요했고요. 로맨스 서사가 전개되는 과정에는 공동 각본으로 함께한 강현주 작가님의 도움이 컸는데요. 난영의 개인적인 성취 서사는 아주 자세히 설명되진 않지만 이야기 곳곳에 녹아 있고, 제이 역시 한때 포기했던 꿈에 다시 도전하는 여정을 따라 가죠. 서로가 서로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건 아니지만, ‘너로 인해 내가 나아갈 힘을 얻는다’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전해지길 바랐어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별에 필요한〉은 음악 영화처럼 느껴질 만큼 음악의 비중이 큰데요. 감독님은 음악 작업에 어떤 방식으로 함께하셨나요?

저는 작업할 때 음악을 자주 들어요. 연출 과정에서 떠오른 곡이나, 특정 장면에 어울릴 것 같은 음악을 ‘이런 정서를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로 박성준 음악감독님께 공유했죠. 감독님은 그걸 바탕으로, 본인의 해석을 더해 새롭게 만들어 주셨어요. 아날로그부터 신스팝, 일렉트로닉까지 다양한 장르를 즐겨 듣는 제 플레이리스트의 분위기가 이번 작업에도 많이 녹아든 것 같아요. 박성준 감독님도 영화 음악은 물론, 가창곡이나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들을 법한 트렌디한 음악가지 폭넓게 작업하시는 분이라, 음악적으로 동시대성을 담고 싶었던 제 의도와도 잘 맞았고요. 그런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시너지가 난 것 같아요.

주인공 난영과 제이의 목소리를 각각 김태리 배우와 홍경 배우가 연기했어요. 캐스팅에 얽힌 비하인드가 궁금합니다.

배우 캐스팅은 비교적 초기에 김태리 배우님과 홍경 배우님으로 마음을 정했어요. 태리 배우님은 리얼한 연기도 잘하시지만, 연기 톤이나 발성에서 만화적인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어요. 경 배우님은 굉장히 독창적이고 새로운 시도에 열려 있는 분이라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과 잘 맞을 것 같았고요. 두 분 모두 애니메이션 작업은 익숙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여러 자료를 준비해 제안했어요.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태리 배우님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연한 장면의 음성을 다운받아 그 위에 애니메이팅을 입혀 보여드리기도 했고, 로빈 윌리엄스가 〈알라딘〉의 지니 캐릭터를 연기하며 애니메이터들에게 영감을 줬던 시퀀스도 함께 보여드렸고요. 단순히 녹음만 하고 가는 작업이 아니라 연출에도 영향을 주고받는 프로젝트라는 점을 열심히 설명했죠. (웃음)

실사 촬영을 병행했기 때문에 배우들의 실제 움직임과 감정선이 담긴 연기가 반영됐다고 들었어요.

특히 로맨스 장면에서 두 배우분의 연기가 중심을 잡아줬어요. 제 머릿속 난영과 제이는 사실 굉장히 뚝딱거리는 인물들이었거든요. (웃음) 그런데 두 분이 마주 앉아 연기를 시작하자 완전히 달라졌어요. 케미가 살아나면서 장면의 리듬과 톤이 자연스럽게 형성됐죠. 예를 들면 칼국수를 먹는 장면에서 말을 놓으려는 제이의 타이밍이나 난영에게 “연락을 해요”라고 말하는 대사 같은 경우예요. 원래 대본은 좀 더 딱딱하게 쓰여 있었는데, 그런 말은 그 상황에 깊이 몰입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거든요. 문법적으로는 어색한 표현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진짜 같았어요. 그게 배우분들의 기지인 거죠. 싸우는 장면도 비슷했어요. 난영은 차갑고 정적인 캐릭터고, 제이는 따뜻하고 배려심 넘치는 인물이라 두 사람이 어떻게 충돌할지 쉽게 상상되지 않았거든요. ‘〈결혼 이야기〉의 싸움 신처럼 해볼까?’ 하면서 배우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 방식으로 시도하면서 구체화해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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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 필요한〉스틸 이미지
근미래 서울을 그린 배경이 특히 사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어떤 방식으로 상상하고 구체화하신 건가요?

많은 SF 레퍼런스가 그리는 미래의 지구는 마치 우주선 같아요. 모듈화된 구조물, 공기 없는 공간, 기계적인 요소들이 자주 등장하죠. 아무래도 우주라는 환경을 전제로 하다 보니, 자원을 자유롭게 공급할 수 없다는 조건에서 그런 설정들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실제 미래의 지구가 꼭 그렇게 보이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망원동 골목만 봐도 50~60년 된 빨간 벽돌집 1층에 트렌디한 가게가 붙어 있잖아요. 을지로도 그렇고요. 그런 모습이 오히려 미래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SF 컨셉아트보다 우리의 거리 풍경을 더 깊이 들여다봤죠. 서울의 거리 사진 위에 라인 드로잉으로 미래적인 구조물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물론 미래적인 요소가 필요한 장면에선 스페이스 에이지 시대의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건축 잡지,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의 소품들을 참고했고요. 그런 식으로 조금 더 ‘땅에 발붙인 미래’를 그리고 싶었어요.

배경 작업은 저희와 협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레드독컬처하우스의 김성민 미술감독님과 팀의 공이 정말 커요. 세계적인 수준의 페인팅 실력과 감성적인 이해도를 갖춘 팀이에요.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긴밀히 소통하며 스타일을 함께 만들어갔어요. 컬러 스크립트도 2D 애니메이션에서는 드물게 아주 디테일하게 진행했고요. 각 장면의 분위기를 러프한 페인팅으로 먼저 그려보는 작업인데요. 실사 배경 위에 미래적 디자인을 얹은 기본 베이스와 컬러 스크립트를 통해 설계된 색감이 하나로 합쳐지는 거죠. 키비지(Key Visual Image) 단계에선 성민 감독님과 샘플을 주고 받으며 스타일을 조율했어요. 서로의 감각과 성민 감독님이 가진 장인정신이나 배경 표현의 밀도가 잘 맞아떨어지면서 지금의 배경이 완성됐다고 생각해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만큼, 해외 시청자들도 미래의 서울에서 익숙한 장소를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해외 반응 중에 인상 깊었던 표현이 있었는데요. “애니메이티드 K드라마”라는 말이었어요. 한국 드라마의 위상을 등에 업을 수 있어서 좋다. (웃음) 로맨스 서사 안에 한국 드라마적인 부분이 일부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저는 그냥 제 방식대로 작업을 했을 뿐인데, 그 결과물이 ‘K’라는 맥락 안에서 읽히는 게 흥미로워요.

감독님이 2022년 작업한 아시아나항공의 〈Be Hopeful〉에서는 레드, 옐로우, 블루, 웜그레이라는 네 가지 컬러로 캐릭터를 구축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번 작품의 주인공 난영과 제이에게도 각각 테마 컬러가 있나요?

난영은 화성 탐사를 꿈꾸는 인물이잖아요. 화성이 떠오르는 빨간색이나 주황, 핑크 같은 난색 계열을 중심으로 캐릭터를 구성했어요. 그런데 얼굴은 쿨톤으로, 냉정한 느낌도 있죠. (웃음) 그래서 난영의 방을 보면 바닥은 새빨갛지만, 가구는 차가운 금속성 소재로 구성돼 있어요. 이런 시각적 대비는 난영의 열정과 쓸쓸함, 혼란을 동시에 표현하기도 해요. 반면 제이는 초록을 중심으로 따뜻하고 아날로그한 정서를 담았어요. 공간은 그린과 우드 톤으로 채워져 있고요. 이런 컬러들도 인물의 내면과 자연스럽게 연결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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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 필요한〉스틸 이미지
김태리, 홍경 배우의 연기부터 익숙하면서도 낯선 미래의 서울 풍경, 음악까지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인데요. 이 외에 또 눈여겨봤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패션과 우주의 표현에 주목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패션 유행 주기가 보통 20년 단위잖아요. 그래서 2051년이라는 시점에 지금의 20~30대가 입는 스타일을 반영해봤어요. 우리가 아는 청년들의 모습이 어떻게 그 시대에 남아 있을까, 그런 상상이 흥미롭게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인 만큼, 우주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도 재미있는 포인트예요. 일반적으로 우주는 까맣고 광활한 배경에 하얀 점 같은 별들이 떠 있는 식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저희는 그것보다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정서적 장치로 우주를 활용했어요. 추상적이고 미술적인 해석이 더해진 우주가 하이라이트 장면에 등장하는데요. 그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우주 장면 안에 이번 작품에서 가장 보여드리고 싶은 요소들이 많이 담겨 있어요.

‘이 별에 필요한’이라는 제목처럼, 지금 이 별에 있는 감독님께 꼭 필요한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지금 저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에요. (웃음) 그리고 여전히 사랑이요. 사랑이라는 건 꼭 연애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정말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최근 주변에서 너무 많은 응원과 격려를 받고 있어서 ‘아, 내 곁에도 이렇게 많은 사랑이 있었구나’를 새삼 느껴요. 이 별에 사는 우리 모두가 서로의 다름을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별에 필요한〉을 보시는 분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그런 사랑을 떠올려 보셨으면 해요.

PLUS 2. 감성과 감각, 이야기의 시작

할머니의 만화방에서 자연스럽게 만화를 접하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를 보고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꿨다고 들었어요. 〈원령공주〉의 어떤 점이 특히 마음을 움직였나요?

〈원령공주〉는 제가 처음 본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이었던 것 같아요. 뭔가 멋지고 독특했고, 주제가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어릴 땐 그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몰랐지만, 굉장한 전율을 느꼈던 기억은 또렷해요. 영화 한 편을 봤을 뿐인데, 세상의 단면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이건 누가 만들었지?’, ‘왜 이렇게 다르지?’ 같은 궁금증이 생겼고, 감독에 따라 작품이 달라진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래서 ‘나도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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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원 감독
〈룩백〉의 주인공처럼 4컷 만화를 그리며 어린 시절을 보내셨겠군요. 어른이 된 모습도 비슷할 것 같고요.

그렇죠. 저도 학교 교내 신문에 만화를 연재했어요. 〈룩백〉을 보면서 언니(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티스트 람한과 쌍둥이 자매)랑 “우리 어릴 때랑 똑같다”는 얘기를 나눴어요. 애들끼리 은근히 견제하는 감정이나 분위기가 정말 비슷하게 담겨 있더라고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시간이 흐르는 장면들을 좋아하시잖아요. 저도 그 부분이 좋았는데, 오랫동안 딱히 웃지도 울지도 않고 계속 그림만 그리는… 지금의 저도 딱 그런 모습이죠.

감독님 작품에는 빛이나 계절, 시간대처럼 감각적인 요소들이 섬세하게 표현되잖아요. 이런 미묘한 감각은 무의식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은데요. 지금 감독님을 만든, 어떤 원류 같은 순간이 있었을까요?

글쎄요… 제가 아주 잠깐 미국에 살았던 적이 있어요. 아홉 살에서 열 살로 넘어가는 시기였는데, 한 9개월 정도였죠.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비행기를 타고 온 것뿐인데, 왜 모든 게 이렇게 다를까?’ 자연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모든 색이 다르게 보였어요. 그러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는데, 또 완전히 다른 거예요. 당시 한국은 회색 같았고요. 그 기억이 꽤 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리고 아빠가 해외에서 오래 일하신 분이고 여행을 무척 좋아하셔서, 틈만 나면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녔어요. 나라에 따라 풍경과 생활 환경, 문화가 다르고, 그런 요소들이 제 안에 쌓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색에 대한 예민함은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어머니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시라 “이 색은 너무 잘 나왔다”, “이 색은 좀 촌스럽다” 같은 말을 항상 하셨어요. (웃음) 어떤 색이 예쁘고, 어떤 색이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감각을 자연스럽게 들으며 자랐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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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주는 레시피〉(2017-2019)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결을 포착하고 표현할 때는 어떤 기준이나 감각을 따르세요? 〈딸에게 주는 레시피〉에서 ‘라떼’의 죽음을 접하는 장면이나 〈이 별에 필요한〉의 천문대 장면에서 난영의 내면에 어린 난영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순간이 인상 깊었어요.

제 연출의 바탕은 아무래도 독립 애니메이션에 가까워요. 독립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런 시도가 일상이죠. 어떻게 보면 시 같고 은유적인 동시에 굉장히 직설적인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거든요. 저도 그런 철학적인 연출 방식을 지향했던 것 같아요. 상업 애니메이션의 비주얼에 독립 애니메이션의 연출 방식, 둘의 영향을 섞어보고 싶은 거죠. 〈딸에게 주는 레시피〉가 그런 시도를 처음 본격적으로 해본 작품이에요.

〈딸에게 주는 레시피〉는 공지영 작가의 동명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었죠. 소설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감독님만의 원칙이나 접근 방식이 있을까요?

가급적이면 원작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해요. 제가 중심에 서서 제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는,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을 담아내는 거예요. 마음에 울림을 줬던 문장에는 하이라이트 표시를 하고, 그 감정을 왜 느꼈는지 하나하나 분석하죠. 그것을 훼손하지 않는 게 목적이에요. 그리고 소설은 텍스트라는 형식 안에서 완결성을 지닌 작품이잖아요.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기는 순간, 그 감동이 오히려 옅어질 수 있거든요. ‘내가 느꼈던 감정을 더 또렷하게 전하려면 어떤 장면과 구성이 필요할까?’ 거기에서부터 제 아이디어가 시작돼요. 제가 느꼈던 감정을 마치 등대의 불빛 삼아 따라가는 것 같아요.

작품을 만들 때 감독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애니메이션은 기술적으로도 신경 써야 할 요소가 많지만, 저는 언제나 ‘이야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요. 〈이 별에 필요한〉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사랑이나 꿈처럼 익숙한 주제를 다룰 때도, 저는 밝은 면만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사랑의 기쁨뿐 아니라 외로움과 상실감, 꿈을 꾸는 설렘과 동시에 따라오는 불안과 고통까지도 함께 표현하고 싶었죠. 그런 양면성이 함께 담겨야 보는 분들도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자기 삶과 겹쳐 보며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감독님께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예전에 “왜 여러 매체 중 애니메이션으로 본인을 표현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애니메이션이 모국어라서 그렇다”고 답했는데요. 비슷한 맥락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건 저에게 굉장히 지난하고 반복적인 과정을 견디는 일인 동시에, 명상처럼 집중하는 시간이기도 해요. 같은 장면처럼 보여도 조금씩 다른 선택을 계속해야 하고, 한 프레임, 한 표정을 완성하는 데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요. 그만큼 계속 생각하게 돼요. ‘얘는 왜 눈을 이만큼만 뜨고 있지?’, ‘왜 떨고 있을까?’ 같은 아주 작은 부분에 집중하며, 평소에 하지 않는 방식의 사유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거죠. 그렇게 쌓인 생각들이 결국 제 삶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건, 저에겐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에요. 아주 좋은 방식이죠.

PLUS 3. 브랜드를 그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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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의 〈뭐든 될 수 있을 거야〉(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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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B STUDIO x YONEX(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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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의 〈Be Hopeful〉(2022)
브랜드 필름 작업을 통해 감독님을 처음 접한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아시아나항공, 스톤헨지, IAB 스튜디오 등과의 협업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나요?

대부분은 제가 이전에 만든 단편들을 보고 먼저 연락을 주세요. 스톤헨지는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보시고 연락을 주셨고, 이후 그 작업을 보신 다른 브랜드들로부터 또 제안이 이어졌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다양한 제안을 받았지만, 실제로 작업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보통 제 연출이나 아트디렉션까지 포함해서 요청해주시는 프로젝트예요. 저는 광고가 본업은 아니다 보니, 수락할 수 있는 작업의 수가 제한적인데요. 애니메이션 작업 특성상 이미 기획이 완료된 상태에서 “애니메이팅만 해주세요”라는 방식의 제안은 조금 어려워요. 반면 앞서 언급한 브랜드들은 “감독님 스타일대로, 이야기 구성도 자유롭게 해주세요”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 같아요.

그럼 브랜드 측에서는 아이템이나 키워드만 간단히 전달하는 방식인가요?

맞아요. 아시아나항공의 〈Be Hopeful〉의 경우, 새롭게 출시하는 ‘아시아나 호피 라거’를 알리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어요. 당시가 팬데믹이 막 끝나가던 시기였는데, 아직 완전히 정상화되진 않았지만 맥주 출시를 계기로 곧 여행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아시아나를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는 정서가 담겨 있었죠. 스톤헨지의 경우엔 ‘연말’과 ‘선물’이라는 두 키워드를 전달해 주셨어요. 제 기존 작품 속 여성 서사를 눈여겨봐 주셨던 부분도 있어서 이 세 가지를 엮어 〈뭐든 될 수 있을 거야〉라는 이야기를 만들게 됐어요. IAB 스튜디오와 요넥스 협업은 협업 제품 이미지를 먼저 보여주셨는데, 굉장히 레트로한 느낌이 강했어요. 그걸 보고 어릴 적 아파트 앞에서 배드민턴 치던 장면이 떠올라서, 배경을 아파트로 설정하는 방향으로 제가 기획을 제안드렸죠.

브랜드와 협업을 한다는 건 자기만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하다는 증명이기도 해요.

2D 애니메이션이 주는 1990~2000년대 초반 특유의 정서가 있고, 그 시절의 향수에 강하게 반응하는 세대가 지금은 콘텐츠 디렉터나 아트 디렉터, 기획자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광고계에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니즈가 높아진 시기가 펜데믹과 맞물리기도 했지만, 저는 그런 디렉터들의 취향이 반영된 흐름이라고 느꼈어요. 또 제 그림체가 브랜드들이 지향하는 스타일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신 게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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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원 감독
감독님이 즐겨 사용하는 몽타주 연출은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인상을 주는 광고 형식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실제로 〈Be Hopeful〉은 ‘2022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온라인영상 부문과 크래프트 부문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저도 잘 몰랐는데, 제가 광고를 제법 잘하더라고요. (웃음)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해내는 것 같아요. 사실 광고는 제 본업이 아니라 사이드로만 틈틈이 작업해온 일이었는데요. 광고 작업을 해보면서 브랜드에 맞는 기획이나 이야기 구조를 충분히 고민하는 동시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까지 함께 녹여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브랜드 협업을 진행할 때 음악에도 직접 관여하세요?

거의 대부분 제가 제안한 음악으로 진행해요. IAB 스튜디오 x 요넥스 프로젝트 때는 제가 음악 라이브러리에서 다운받은 두 곡을 조합해 만든 음악을 사용했어요. 스톤헨지 브랜드 필름에 쓰인 정우 님의 ‘뭐든 될 수 있을 거야’는 조금 특별한데요. 당시엔 정우 님이 데뷔 전이었는데, 우연히 다른 분의 음악감상회에 갔다가 게스트로 나온 정우 님의 노래를 듣고 ‘이 곡을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바로 연락을 드렸더니 녹음된 음원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곡을 녹음 하시게 됐고, 결과적으로 저와의 작업이 정우 님이 첫 싱글 발매로 이어졌어요. (웃음)

감독님도 〈이 별에 필요한〉의 난영처럼 디깅을 좋아하셨군요. (웃음) 나이트오프의 ‘예쁘게 시들어 가고 싶어 너와’처럼 뮤직비디오 작업도 하셨잖아요.

뮤직비디오 작업, 좋아해요. 사실 광고도 뮤직비디오처럼 연출한 경우가 많았고요. 그래서 광고이면서 동시에 뮤직비디오처럼 보이는 결과물이 꽤 있었죠. 그런데 실제로 뮤직비디오를 작업한 횟수는 많지 않아요. 러닝타임은 긴데 예산이나 일정이 상대적으로 타이트하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별에 필요한〉에서는 IAB 스튜디오, 젠틀몬스터와 협업했어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지 들려주세요.

IAB 스튜디오는 이전에도 함께한 인연이 있어서 먼저 제안을 드렸고, IAB 스튜디오 측에서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어요. 덕분에 실제로 제품 출시까지 이어졌고요. 젠틀몬스터는 극 중 캐릭터가 제품을 착용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협업이 이루어졌어요. 홍보 차원에서 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브랜드들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것이 연출적으로도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감독으로서 그런 부분이 더 재미있게 다가왔죠.

브랜드와의 협업도 즐기시는 편인가요?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브랜드가 있다면 어디일까요?

할 수 있다면 너무 좋죠. 재미있는 브랜드와 함께 필름을 만드는 건, 저에게 비주얼적인 실험과 새로운 경험을 하는 기회이기도 하거든요. 협업해보고 싶은 브랜드라면… 저는 이케아요. 이케아에 가는 걸 정말 좋아해요. 별일이 없어도 그냥 자주 가는 편이에요. (웃음) 이케아에 오는 분들은 보통 설렘을 안고 오시잖아요. 그런 분위기에 있는 것도 좋고, 제품도 좋아해요. 어떤 게 신제품인지, 언제 출시됐는지까지 다 꿰고 있을 정도예요. 이케아와 작업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PLUS 4. 동시대성을 지닌 애니메이션 감독

작업하지 않는 시간에는 보통 어떻게 보내세요?

요즘은 사실 제가 작업 외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요. (웃음) 그래서 지금은 일종의 ‘재활 기간’ 같아요. 일부러 여행도 더 다니고, 글도 더 써보려 하고 있어요.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했던 감정들이 많은데, 소화되지 못한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서 글로 써보려고 해요. 예전의 저를 다시 찾아가는 시간 같아요.

지금의 한지원을 하나의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사전 질문지를 받고 꽤 고민했는데, 막상 잘 떠오르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동시대성’인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갖고 싶은 키워드이기도 하고요. 애니메이션은 많은 사람들과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드는 작업이라, 동시대성을 담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그 한계를 넘고 싶은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단편 작업이든 〈이 별에 필요한〉이든, 늘 더 요즘 사람들의 모습과 감정을 다루고자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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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 필요한〉 영문 브로셔
오랫동안 달려온 프로젝트를 마친 지금,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이 별에 필요한〉은 제게 처음으로 상업적 규모로 제작되어, 글로벌 관객에게 동시에 공개된 프로젝트였어요. 이 작품이 마지막이 아니라 다음으로 잘 이어질 수 있도록 지금도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단편이나 〈이 별에 필요한〉을 만들며 중요하게 여겨온 지점을 앞으로도 계속 지켜가고 싶어요. 그 예민한 감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해요. 지금은 기술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잖아요. AI든 3D든, 새로운 기술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한편으로는 혼란스럽기도 해요. 그런 변화 속에서 2D 애니메이션을 고집하는 창작자로서, 이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성장해 나갈지가 지금 제가 가장 큰 고민이자 화두예요. 그래서 올해는 밀려 있던 작품들도 많이 보고, 짧은 작업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하며 인풋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자 해요. 그런 시간들이 나중에 또 다른 장편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차기작은 이미 구상 중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현재 조금씩 진행 중이에요. 〈이 별에 필요한〉을 함께한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와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동시에 SF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단편도 기획하고 있고요. 〈이 별에 필요한〉을 만들며 특히 마음에 남았던 지점들이 있었어요. 그중에는 ‘이 부분은 좀 더 세게 밀어붙여도 좋았겠다’ 싶은 장면들도 있었고요. 다음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들을 더 분명하고 선명하게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PLUS LIST

한지원 감독의 일상을 채우는 음악 3

  • 정우 ‘뭐든 될 수 있을 거야’
  • CIFIKA ‘Melody’
  • Hindia ‘Membasuh(feat. Rara Sekar)’

“먼저 정우 님의 ‘뭐든 될 수 있을 거야’를 추천하고 싶어요. 스톤헨지 브랜드 필름을 위해 타이틀을 빌려주시고 개사까지 해주셨는데요. 사실 원곡의 가사가 정말 충격적으로 좋아요. (웃음) 꼭 원곡을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평소 씨피카(CIFIKA) 님의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요. 〈이 별에 필요한〉 OST ‘Heart to Heart’로 함께해주시기도 했고, 씨피카 님의 ‘Melody’를 들으며 〈이 별에 필요한〉의 클라이맥스 장면을 연출했어요. 저에게는 너무 중요한 곡이기도 하고, 또 그 자체로도 정말 좋아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힌디아(Hindia)의 ‘Membasuh’는 최근 발리 여행 중 알게 된 곡이에요. 가는 곳마다 팝 음악만 흘러나와서 ‘인도네시아에는 어떤 인디 가수가 있을까’하고 찾아보다가 발견했죠. ‘Membasuh’는 인도네시아어로 ‘정화하다’라는 뜻인데, 마침 저도 정화가 필요한 시점이었거든요. (웃음) 정화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곡으로, 정말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너무 좋아서 한동안 이 노래만 들었어요.”

TIPPING POINT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내면 되는 것 같아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속 용감한 소년소녀를 보며 자란 아이는, 커서 두려움과 혼란을 피하지 않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었다. 삶의 큰 풍랑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작업을 시작한 용기, 제약과 한계 속에서도 동시대적인 작품을 만들겠다는 용기, 그리고 사랑에서 벗어날 용기를 그린 단편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에서 사랑을 받아들이는 용기로 나아간 장편 〈이 별에 필요한〉까지. 한지원 감독 안에는 언제나 단단한 용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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