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빛을 탐구하는 여정, 뮤지엄 산의 새 공간 GROUND
안도 타다오 X 안토니 곰리의 예술적인 컬래버레이션
현대 조각의 지형을 새롭게 그려온 안토니 곰리가 뮤지엄 산(SAN)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개인전 <DRAWING ON SPACE>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안도 타다오와 협업으로 탄생한 신설 공간 ‘GROUND’의 개관을 알려 더욱 특별하다. 안토니 곰리의 조각적 상상력을 감상하며 새로운 공간에서 어떤 밀도를 갖게 되는지 마주해보길.

건축과 조각, 자연이 통합된 예술의 성소 GROUND
“삶과 예술의 관계를 조망할 수 있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뮤지엄 산(SAN)의 새 공간 GROUND를 오픈하며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가 건낸 말이다. 상설 전시관 GROUND는 공간의 이름에서 눈치챘듯 ‘대지’의 의미와 동시에 ‘현재에 몰입하다’의 뜻이 함축되어 있다. 이곳은 현대 조각의 거장 안토니 곰리의 조각 작품과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Ando Tadao)의 설계 공간이 어우러져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탄생했다. 각자의 영역에서 인간과 자연의 상호 관계를 지속적으로 성찰해 온 두 거장의 작업이 하나의 비전으로 어우러지는 뜻깊은 작업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이 곳으로 향하는 여정의 경험,
안도 타다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식하게 되는 무형의 가치관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다.

GOUND는 마치 플라톤의 동굴을 떠올리게 한다. 원형 천창을 갖춘 돔 형태로 이탈리아의 로마 판테온의 약 4분의 3 규모로 웅장함을 자랑한다. 새 공간의 오픈과 함께 개최한 안토니 곰리의 전시 <DRAWING ON SPACE>도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데, 여기서 ‘Block Works’ 7점을 만날 수 있다. 조각은 사람 형태로 서 있거나, 누워있거나, 웅크린 다양한 자세로 놓여 있다. 관람객은 조각 사이사이를 거닐며 또는 머물면서 사유하고 명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조각을 통해 제각각의 감정, 기억,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이들 사이로 움직이는 타 관객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 즉 타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현존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안토니 곰리의 의도. 여기에 7.2m 높이의 압도적인 건축 스케일이 몰입감을 더한다. 전시 공간은 마지막 조각이 있는 야외 정원으로 이어진다. 관람객은 조각을 따라 자연스럽게 산과 계곡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는데, 현재의 순간을 오로지 자연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이로써 공간, 예술, 자연을 하나의 예술 경험으로 결합한 GROUND는 뮤지엄 산의 창립 비전인 ‘소통을 위한 단절’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한다.
여기에는 이해해야 할 것도, 해야할 것도 없다.
안토니 곰리
다만 존재할 수 있는 공간 만이 있을 뿐이다.

안토니 곰리가 알려준, GROUND에서 작품을 향유하는 방법
① 공간에서 울리는 소리, 공명의 생동감 느끼기
GROUND는 거대한 원형 돔으로 공간 안에서 소리가 증폭된다. 관람객의 발걸음도 핸드폰으로 사진 촬영하는 소리도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어쩌면 ‘고요한 명상에 방해되는 요소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게 하는데 안토니 곰리는 이를 ‘생동감’이라 표현했다. 소리가 있으므로 공간이 생동감을 얻고 이로써 관람객에게는 자신의 존재와 살아있음, 감각의 울림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게 한다.

② 옵저베이션 룸에서 메인 공간을 관조하기
GROUND의 메인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곡선형의 복도를 지나야 한다. 이때 메인 공간이 바라보이는 옵저베이션(observation) 룸이 있는데 이곳에 큰 유리창이 놓여 있다. 안토니 곰리는 여기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창밖을 관조하길 추천했다. 산과 나무, 들어오는 빛을 관찰하면서 타 관람객을 바라보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곳곳에 놓인 7점의 조각은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정적으로 멈추어 있기에 색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서 메인 공간으로 이동하면 마치 작품이 나를 초대한 것과 같은 특별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③ 나와 다른 존재, 조각 작품과 교감하기
안토니 곰리는 “조각은 세상이라는 바탕에 직접 작업을 하며, 세상을 변화하게 하는 장르”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다른 존재 또는 몸과 교류하면서 반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조각’, 즉 예술이 매개체가 된다고 한다. 조각을 직접 만지고 감정을 공유하면서 우리 자신의 존재를 깊이 자각하고 성찰하며 삶의 건강한 균형을 되찾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안토니 곰리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DRAWING ON SPACE>
전시 <DRAWING ON SPACE>는 GROUND뿐만 아니라 뮤지엄 산 청조갤러리 전관(1, 2, 3관)에서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는 조각 7점, 드로잉과 판화 40점, 설치 작품 1점으로 총 48점을 선보인다. 전시의 작품을 통해 안토니 곰리가 오랜 시간 천착한 조각과 공간, 신체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공간을 점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자가 자신의 몸과 감각을 통해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이끈다.


전시가 시작하는 청조갤러리 1관에는 안토니 곰리의 연작 ‘Liminal Field’를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구체적인 인체의 형상을 기포의 형태로 전환했다. 철사로 만들어진 조각들은 전시장에서 새로운 인체의 공간을 생성한다. 공간을 관통하면서 이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 전시장 사이의 공간이 공백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 맺고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청조갤러리 2관에는 지난 30여 년간 인체, 공간, 자연의 상호 관계를 지속적으로 추적한 안토니 곰리의 드로잉과 판화 연작이 소개된다. ‘Body and Soul’은 ‘몸 안의 암흑’이라 표현한 인간 내면의 감각과 의식 구조를 보여 주며, ‘Lux’는 빛과 어둠 사이에서 인간이 주변 환경과 맺는 관계를 탐색한다. 안토니 곰리는 드로잉을 조각의 준비 단계가 아닌 공간적 사고를 시각화하는 첫 번째 단계로 인식하는데 이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청조갤러리 3관에는 ‘궤도의 영역’을 의미하는 ‘Orbit Field II’ 작품을 마주한다. 이는 수십개의 스틸 원형 구조물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으로 안토니 곰리 조각의 핵심 개념을 집약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은 우주 천체가 중력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운동을 형상화한 것으로 거시적 세계의 질서를 보여준다. 벽과 벽, 천정과 바닥 사이 모든 공간을 아우르는 이 작품은 관람객의 움직임을 통해 완성된다. 허리를 숙이고 몸을 기울이며 작품 사이를 지나가는 행위는 관람객의 신체를 조각의 일부로 끌어들여 공간에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결국 관람객이 작품 일부가 되는 셈이다.
Information
전시 <DRAWING ON SPACE>
기간 2025.06.20 – 11.30
시간 10:00 – 18:00(입장 마감 17:00),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뮤지엄 SAN 청조갤러리 1~3관, GROUND(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 2길 260)
주최 한솔문화재단, 뮤지엄 SAN
웹사이트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