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한지원의 A to Z: 스톤헨지, 아시아나항공 협업부터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까지

한지원 애니메이션 감독

‘한지원’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건 2022년, 팬데믹의 끝자락이었다. 1분 남짓한 애니메이션 광고가 여행과 일상에 대한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툭 하고 건드리는 그의 작품들, 어떤 태도와 고민 끝에 탄생한 걸까?

[Creator+] 한지원의 A to Z: 스톤헨지, 아시아나항공 협업부터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까지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부터 한지원 감독의 주제의식이 강하게 드러난 단편, 그리고 배우 김태리와 홍경이 목소리로 참여한 넷플릭스 최초의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이 별에 필요한〉까지. 한지원 감독의 작업 세계와 그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을 키워드로 소개합니다.

프로젝트 A to Z

Ambivalence
A

한지원 감독은 이야기를 구성할 때 주제가 지닌 ‘양면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랑이나 꿈처럼 선명하고 보편적인 주제를 선택하더라도, 그 밝은 면만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내재한 불안과 혼란까지 함께 포착함으로써,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선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는 이처럼 다층적인 감정이 질문의 형태로 남아 관객의 삶 속에서 다시 떠오르기를 바란다.

Be Hopeful
B

〈Be Hopeful〉은 아시아나항공과 수제 맥주 브랜드 코리아 브루어스 콜렉티브의 협업으로 탄생한 ‘아시아나 호피 라거’ 광고 애니메이션이다. 한지원 감독은 네 캐릭터가 각자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그리워하는 장면을 통해, 여행이라는 행위가 지닌 보편성과 개별성을 함께 표현했다. 아시아나의 구버전 CI를 활용한 패키지 디자인과 연계해 캐릭터마다 고유의 컬러와 스타일을 부여한 점도 특징이다. 1980~90년대 시티팝 무드를 떠올리게 하는 배경 역시 인상적이다. 팬데믹 이후, 여행이라는 키워드는 단순한 이동을 넘어 그리움과 회복의 정서로 확장되었다. 〈Be Hopeful〉은 그런 정서를 레트로 감성이 주는 향수와 함께 풀어내며, 다시 일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따뜻하게 감싼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접근은 업계에서도 주목을 받아, 2022년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온라인 영상 부문과 크래프트 부문 동상을 수상했다.

Film
F

한지원 감독은 자신의 작업 세계에 영향을 준 요소로 애니메이션을 중심에 두되, 영화나 게임, 여행 같은 외부 매체 역시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캐주얼한 상업 영화부터 예술영화까지 폭넓게 접해온 경험이 지금의 감각을 형성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고 본다. 〈이 별에 필요한〉을 작업할 당시에는 영화 〈Her〉로부터 영감을 받기도 했다. 평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밝힌 그는, 그중에서도 〈아무도 모른다〉를 특히 인상 깊게 본 작품으로 꼽는다.

Game
G

한지원 감독에게 게임은 단순한 여가를 넘어, 창작의 감각과 사고를 자극하는 매체다. 그는 서사가 중심이 되는 오픈 월드 게임에 특히 깊이 끌린다고 말한다. 자율도가 높은 설정 안에서 사용자가 선택을 통해 이야기를 확장해 나가는 구조는 감정과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지원 감독이 언급한 대표적인 작품은 ‘발더스 게이트’, 그리고 코지마 히데오 감독의 ‘메탈기어 솔리드’와 ‘데스 스트랜딩’이다.

“진짜 좋은 게임은 여행만큼 값진 인풋이 돼요. 게임 업계는 자본과 관심이 몰리는 분야인 만큼, 콘텐츠의 스펙트럼도 정말 넓고요. 서사가 풍부한 작품일수록 미술적 완성도는 물론, 작가주의적인 이야기 구조에서도 높은 수준을 보여줘요. 저는 코지마 히데오 감독을 가장 좋아하는데, 요즘엔 곧 나올 신작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Inspiration
I

“평소에 흘려보낸 시간 속 무의식, 삶을 살아가며 스쳐 간 화두 같은 것들이 제 안 어딘가를 맴돌다가, 어느 순간 낚싯바늘처럼 어떤 계기를 만나면 탁 하고 건져 올려지는 것 같아요.” 영감은 억지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한지원 감독은 외부 자극과 내면의 감정이 만나는 순간을 ‘낚시’에 비유한다. 이러한 방식은 브랜드 협업에서도 유사하게 작동한다. 결국 협업 역시 자기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 눈을 감고 백지 위에 아무 단어나 적어 보며 무의식의 조각을 건져 올리는 습관도 그의 창작 방식 중 하나다. 최근에는 장편 작업과는 별개로,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단편 애니메이션을 기획 중이다. “그 소설을 읽고 정말 펑펑 울었어요. ‘나에게 이렇게 강한 감정을 주는 작품은 내가 만들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연히 마주한 인상 깊은 경험이 그렇게 그의 다음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Lost in Starlight
L

“잊지 마, 우주 어딘가에 항상 너를 응원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는 거.” 한지원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은 넷플릭스가 공개한 최초의 한국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다. 2051년 서울을 배경으로, 화성을 꿈꾸는 우주인 난영과 뮤지션의 꿈을 잠시 내려놓은 제이가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한지원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SF적 상상력과 감정 중심의 서사를 조화시킨다. 디스토피아로 치닫지 않는 미래상, 우주와 일상, 기술과 감성의 교차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품을 수 있는 다면성을 차분히 펼쳐 보인다. 배우 김태리와 홍경은 목소리 연기를 넘어, 실사 촬영을 통해 주인공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씨피카(CIFIKA), 김다니엘(wave to earth), 존박 등이 참여한 OST는 작품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다.

Recipe for My Daughter
R

〈딸에게 주는 레시피〉는 한지원 감독이 2017년 ‘SBA 서울애니메이션센터×네이버 그라폴리오×밀리의 서재’가 공동 주관한 웹애니메이션 공모전에 당선되며 시작한 작품이다. 공지영 작가의 동명 에세이를 재해석해, 엄마의 레시피를 따라가는 딸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현재 한지원 감독의 유튜브 채널에서 총 10화 전편을 감상할 수 있다.

“〈딸에게 주는 레시피〉는 오랜 시간 방황하며 애니메이션을 포기할 뻔했던 시기에, 저에게 다시 용기를 줬던 작업입니다. 그때 시작한 연출 실험과 표현 기법은 이후 제 작업의 기반이 되었고, 〈이 별에 필요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공지영 작가님의 동명 에세이를 원작으로 했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저만의 해석과 시각적 변환이 많이 들어갔어요. 원작과 완전히 동일하진 않지만, 그 책을 읽으며 제가 받았던 깊은 위안을 보는 분들에게도 전하고 싶었죠. 지금 〈이 별에 필요한〉이 공개된 시점에 함께 되돌아보기 좋은 작품입니다.”

Sea on the Day When the Magic Returns
S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는 한지원 감독이 2022년에 발표한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과거 연인 캐릭터의 눈을 ‘점’으로 처리해 감정 이입을 차단하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2022년 서울인디애니페스트 대상 수상을 비롯해 선댄스영화제, 팜스프링스 국제단편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며, 국제 무대에서도 한지원 감독의 이름을 알렸다. 일반 공개는 제한되어 있어 주요 영화제나 특별 상영을 통해서만 감상할 수 있다.

“〈이 별에 필요한〉 직전에 만든 단편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는 제 연출 방식과 서사에 대한 접근이 보다 진하게 담긴 작품입니다. 사랑과 꿈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별에 필요한〉과 맞닿아 있지만, 전자가 희망을 이야기한다면 이 작품은 절망 편에 가깝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혼란을 받아들이고 마주할 용기’라는 키워드도 이 작품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요. 예산이 적어 시각적으로는 훨씬 미니멀하고, 배경 표현 역시 유려하진 않지만, 오히려 많은 요소가 걷힌 상태에서 제 작업의 코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Technique
T

2D 애니메이션을 고집하되, 3D와 실사 등 다양한 기법을 유연하게 결합하며 표현의 가능성을 넓혀간다. 형식은 수단일 뿐, 장면에 필요한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다. 〈이 별에 필요한〉은 캐릭터를 클래식한 2D 셀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고, 배경과 우주선, 카메라 무빙 등은 3D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공간을 유영하는 형태의 카메라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프리비즈 단계에서는 3D로 전체 신을 구상했고, 이후 일부 장면은 끝까지 3D로 완성했다. 3D에서 라인을 추출해 페인팅을 얹거나, 복잡한 무빙 장면은 3D와 2D를 오가며 완성하는 등 공정 전반에 걸쳐 두 기법을 넘나들었다. 한지원 감독은 “다양한 기법을 섞는 건 항상 열려 있었던 영역”이라고 말한다.

You Can Be Anything You Want
Y

〈뭐든 될 수 있을 거야〉는 주얼리 브랜드 스톤헨지의 2018년 연말 캠페인 브랜드 필름으로, 한지원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우주라는 환상적 배경 속에서 ‘꿈을 이루는 데 가장 필요한 건 용기’라는 메시지를 1분 30초 분량의 짧은 영상에 담아냈다. 어린 시절 우주인을 꿈꾸던 소녀와 같은 꿈을 간직했던 할머니의 서사가 교차하며, 세대 간의 꿈과 기억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싱어송라이터 정우의 음악은 정서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 한지원 감독의 감성적 스토리텔링과 브랜드 협업 역량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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