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설록이 제주에 만든 ‘숨은 보석’ 같은 공간
티스톤 셀러의 리뉴얼 스토리
제주의 땅 위에 세워진 오설록은 전통 차 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며, 티뮤지엄과 티스톤 셀러 등 공간을 통해 차의 시간과 공예를 체험하게 한다. 새롭게 문을 연 티스톤 셀러는 벼루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으로, 차의 숙성과 기다림의 미학을 담아낸다.

한국의 차 문화는 오랜 시간 불교와 함께 명상과 기다림의 예술로 이어져 왔다. 제주는 바람과 안개, 화산토가 만들어낸 독특한 환경(테루아) 덕분에 차나무가 자라기에 최적의 땅이다. 오설록은 이 땅에서 한국 차 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며 제주 서광 차밭부터 국내 최초의 티뮤지엄까지 차 문화를 ‘공간’으로 확장해 왔다. 지난 5월 말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 내에 새롭게 문을 연 티스톤 셀러는 검고 단단한 벼루의 서사를 품고, 지하 동굴 같은 공간 안에 차의 인고와 시간을 담는다. 차를 빚고 숙성시키는 손길과 공예적 디테일까지 더해진 이곳에서는 차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Interview
오설록 크리에이티브팀,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 뷰로 드 끌로디아, MYKC
벼루와 차가 되는 동굴
티스톤 셀러는 ‘벼루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서사를 품었다. 오설록 크리에이티브팀은 상품 개발과 매장 운영을 담당하는 내부 팀과 협력해 공간의 브랜딩과 사용성을 중심으로 기획하며, 공간마다 뚜렷한 콘셉트와 차별화된 스토리를 부여하고자 한다.

오설록 티스톤의 지하층, 삼다연 숙성고를 리뉴얼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오설록 크리에이티브팀(이하 ‘크리에이티브팀’)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 내 2013년 준공된 티스톤은 차와 자연, 사람이 어우러지는 복합 차 문화 체험 공간으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담아왔습니다. 선조들이 먹과 벼루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표현한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 차 문화를 현대적으로 전하는 것이 티스톤의 역할이었죠. 2023년 상반기 티뮤지엄 리뉴얼 이후 고객 경험 콘텐츠를 확대해 오면서 기존 지하 숙성고도 오직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고품질 숙성차와 숙성 공간으로 새롭게 선보이자는 목표로 리뉴얼을 진행했습니다.
매스스터디스가 완성한 검고 단단한 외관이 인상적인 공간입니다. 건물이 가진 상징성과 이번 리뉴얼 콘셉트의 연결점은 무엇이었나요?
크리에이티브팀 티스톤은 매스스터디스 조민석 건축가의 작품으로, 벼루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되었습니다. 이번 리뉴얼에서도 이 콘셉트를 이어 상층이 ‘완성된 벼루’라면 지하는 ‘벼루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스핀오프 스토리를 담았어요. 깎여가는 돌을 연상시키는 동굴 같은 공간에서 고객은 숙성차가 보관된 숙성함을 직접 둘러보고, 공간에 퍼지는 나무의 향과 찻잎에 입혀진 개성 있는 향을 시향하며 차 문화를 깊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티스톤 셀러에서 만날 수 있는 숙성차와 숙성 공간은 어떤 구조로 구성되어 있나요?
크리에이티브팀 티스톤 셀러의 오픈과 함께 새롭게 선보이는 숙성차는 오설록만의 숙성에 대한 오랜 고민과 연구 끝에, 향미 발현에 최적화된 환경과 원료를 탐색해 탄생했습니다. 오설록의 제품 개발자들은 제주산 녹나무와 삼나무, 향이 좋은 고급 오크배럴 같은 소재에 오설록의 독자적인 발효 및 숙성 기술을 더해 별도의 부원료 없이 특별한 풍미와 향을 구현해냈어요.
지하로 이어지는 티스톤 셀러는 제주 삼나무 숙성실, 제주 녹나무 숙성실, 오크배럴 숙성실로 나뉘어 있습니다. 세 가지 숙성 공간에서 나무별로 다른 향과 숙성 방식을 직접 둘러보고 시음하며 차를 탐구할 수 있어요. 상품 존에서는 티스톤 셀러 전용 숙성차를 잎차와 피라미드 티백 형태로 선보이며, 특히 삼나무 장기 숙성차는 잎차로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티스톤 셀러를 완성한 손길들
오설록 크리에이티브팀을 중심으로 티스톤 셀러 리뉴얼에는 공예적 미감이 돋보이는 여러 디자인 스튜디오가 참여했다. 인테리어 설계는 2023년 티뮤지엄 리뉴얼 당시 로스터리존을 맡아 프로젝트를 깊이 이해하고 있던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의 임태희 소장이 담당했다. 설계 과정에서는 매스스터디스 조민석 소장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건축과 인테리어의 균형을 더했다. 공간의 VMD 기물은 뷰로 드 끌로디아가 먹과 벼루를 모티브로 한 문방사우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완성했고, 숙성차 전용 패키지는 MYKC가 숙성차 고유의 시간성과 브랜드 결을 시각 언어로 풀어냈다. 각 스튜디오와의 협업은 콘셉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간의 목적과 브랜드 철학이 일관되게 전달되도록 진행됐다.

리뉴얼된 티스톤 셀러는 균일하지 않은 벽돌 벽면과 오크통 등이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요. 공간 디자인에서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 공간 디자인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한 놀라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오설록 티뮤지엄은 이미 많은 분들이 찾는 차 중심의 복합 문화 공간이었기에, 새롭게 선보이는 티스톤 셀러는 숙성차를 보다 깊이 있게 설명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고요. 숙성차는 오랜 시간 정교한 환경에서 보관되어야 하므로, ‘동굴’을 떠올렸습니다. 일정한 온도와 섬세한 조건을 유지해야 하는 차의 특성을 공간으로 보여주고자 했어요.
좁은 공간 안에서 동굴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구현하려면 인위적이지 않은 재료 표현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벽돌을 깨뜨려 비균질적으로 쌓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바닥과 벽, 천장까지 벽돌로 마감하면서도 답답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데 신경 썼습니다. 총 세 가지 종류의 서로 다른 벽돌을 사용했고, 벽돌을 깨서 쌓은 뒤에도 다시 조각하듯 다듬으며 전체적인 색감을 조율했어요. 이런 섬세한 작업을 통해 숙성차가 지닌 시간의 깊이와 정성을 공간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지하 공간에서의 작업이라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 지하 공간은 본래 여러 제약이 따르는데, 특히 공간이 좁고 층고가 낮아 시각적으로 답답하지 않도록 구성하는 데 집중했어요. 세 개의 숙성실 천장에는 반사 소재를 적용해 공간감을 확장했고, 반면 벽면에는 반사율이 낮은 소재를 사용해 과도한 연출을 피하면서 균형을 맞췄습니다.
기존 건물과의 조화도 중요했습니다. 외관이 검은 벼루처럼 단단하고 묵직한 인상을 주는 만큼, 내부 역시 가공되지 않은 돌의 질감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어려움은, 위층 공조 설비가 지하층 천장에 배치된 구조라 두 개 층의 공조 시스템을 모두 고려해 설계해야 했어요. 이런 복합적인 조건 속에서도 공간의 목적과 분위기가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접근했습니다.


나뭇결이 살아 있는 숙성차 보관함도 인상적입니다. 일반적인 상자와는 다른 형태인데, 어떤 의도와 과정에서 탄생한 디자인인가요?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 세 개의 숙성실에서는 각각 ‘제주 녹나무 숙성차’, ‘제주 삼나무 숙성차’, ‘오크배럴 숙성차’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숙성차들은 실제로 나무함에 담겨 일정 기간 숙성되며, 그 함 자체가 숙성 과정의 일부이자 공간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단순한 보관함이 아니라 숙성차의 특성과 조건을 이해하고 반영한 형태로 제작해야 했습니다.
보관함의 크기는 사람이 직접 옮길 수 있을 정도로 설정했고, 관리 효율성을 위해 녹나무함과 삼나무함은 동일한 용량의 차를 담을 수 있도록 맞췄습니다. 나무마다 향의 강도와 숙성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오설록 연구팀과 함께 오랜 시간 실험과 논의를 거쳐 각 재료에 맞는 구조를 결정했습니다. 또 숙성 기간 동안 차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봉인 방식도 종류에 따라 달리 제작했고, 제조 날짜 등 관리 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네임택도 함께 디자인했습니다.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보관함의 외형은 기능적인 역할뿐 아니라 숙성차에 담긴 시간과 정성을 보여주고자 한 요소입니다.

티스톤 셀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건 곳곳에 숨은 공예적 디테일이에요. 이번 리뉴얼에서 공예가들과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뷰로 드 끌로디아 작지만 밀도 있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나무·도자·금속·유리 등 각 재료의 물성이 서로를 촘촘하게 지탱하는 기물을 구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각 분야에서 재료를 깊이 다루는 공예가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숙성함에 사용된 삼나무로 제작한 ‘티마스터의 캐비닛’과 녹나무의 다양한 표정을 담은 ‘관찰하는 이의 실험실’이라는 내밀한 콘셉트를 담아, 차의 향을 담는 시향목함, 차도구와 트레이는 목공예가 임형묵의 작업이고, 잎의 형태와 수색을 관찰하는 실험도구 형태의 컨테이너는 유리공예가 박형진이 제작했습니다.


문방사우에서 모티브를 얻은 붓걸이 형태의 POP 거치대와 다하(차도구)는 금속공예가 안대훈이 함께했고, 흑자 찻잎 보관함과 시향합은 도자공예가 김진완의 작품입니다. 이처럼 각기 다른 재료와 감각을 지닌 공예가들과의 협업으로 공간 곳곳에 섬세한 손길을 더했습니다. 단순한 숙성차 판매 공간을 넘어 차의 경험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티스톤 셀러 전용 제품 패키지 디자인은 어떤 메시지를 담았나요?
MYKC 세 가지 숙성차는 각각 다른 나무통에서 숙성되지만, 모두 한자 ‘나무 목(木)’을 형성자로 공유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거친 붓 터치가 느껴지는 한자 그래픽과 원료의 수색을 반영한 키 컬러를 적용해 각 원료와 숙성함의 정보를 시각적으로 풀어냈습니다. 진열된 제품에는 ‘木’의 세로선이 확장되듯 이어지는 형태를 통해, 한국 차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오설록의 의지와 집념을 상징적으로 담았습니다.
패키지를 여는 경험도 중요하게 고려했습니다. 숙성함을 들여다보는 듯한 구조 안에 한지의 질감을 살린 라벨 파우치를 더해 티스톤 셀러 공간에서의 경험이 제품을 맛보는 순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어요. 단순한 패키지를 넘어 공간과 브랜드 철학을 연결하는 하나의 기억 장치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세심한 디테일들로 완성된 공간이에요. 방문객들에게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시나요?
크리에이티브팀 먹과 벼루에서 영감을 받은 VMD 장치, 시향 도구, 패키지 디자인은 한국 문화를 현대적인 감성으로 풀어내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작지만 찾아오는 재미와 발견의 기쁨이 있는 ‘히든 젬Hidden Gem’ 같은 공간으로, 내외국인 모두에게 오래 사랑받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