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는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할까?

미래의 얼굴이 될 새로운 소통 수단

우리는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해 민감한 시대를 살고 있다. 기기가 나의 얼굴을 인식한다는 것부터 그다지 반갑지 않은데, 더 나아가 감정까지 해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는 사실은 거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얼굴 정보 없이 효과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미래에는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할까?

사람에게 있어 ‘얼굴’은 신체의 다른 부분보다도 더 큰 중요성을 가진다. 얼굴이 일종의 ‘인증서’ 또는 ‘신분증’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아는 인물을 인식할 때, 무엇보다 얼굴을 보게 된다. 개개인을 식별하는 데 있어 이만큼 직관적이고 강력한 수단이 없는 것이다. 또한 얼굴은 감정을 드러내는 무대로서 역할을 한다. 눈동자의 흔들림, 눈썹의 움직임, 입꼬리의 각도, 이마에 생기는 주름 모두가 감정의 언어로 표현된다. 말없이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인물이 어떤 감정에 휩싸여 있는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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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Needpix

미디어나 대중에 신원의 노출의 위험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얼굴을 가리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 통해 얼굴이 강력한 인식 도구일 뿐만 아니라 사생활과 정체성 보호의 최전선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마스크, 선글라스, 모자 등은 위장 도구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회적 거리 두기, 자기방어, 감정 은폐의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처럼 얼굴은 중요도가 무척 높은 부분으로 인식되어왔기에 사람들은 얼굴을 꾸미고, 보호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AI를 비롯한 스마트 기기, 웨어러블 기술의 발전과 클라우드 기반 기술의 도입 등으로 기기가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런 기술들은 제스처, 음성의 억양, 심박수, 피부 온도 등 인간의 신체 전반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변화를 포착해 감정 상태를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얼굴 역시 사람의 기분과 심리를 읽는 주요한 정보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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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Stockcake

하지만 이미 우리는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해 민감한 시대를 살고 있다. 기기가 나의 얼굴을 인식한다는 것부터 그다지 반갑지 않은데, 더 나아가 감정까지 해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는 사실은 거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얼굴 정보 없이 효과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는 인간의 사적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정서적인 연결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런 질문을 미리 예상한 듯, 얼굴을 대체할 수 있는 소통 수단이 하나둘씩 선보이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드라마에서 먼저 선보인 소통의 기술

얼굴을 가리면서도 소통이 가능한 아이디어는 이미 2019년 BBC 드라마를 통해 선보인 바 있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수많은 마니아층을 만들었던 드라마 ‘닥터 후(Doctor Who)’의 메인 작가인 러셀 T. 데이비스(Russell T Davies)가 각본을 맡았던 ‘이어스 앤 이어스(Years and Years)’가 그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미국의 HBO와 영국의 BBC가 공동 제작했으며,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을 디스토피아적이면서도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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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BBC 이어스 앤 이어스 홈페이지

드라마에서는 2019년부터 2034년까지 한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브렉시트, 기술 발전, 기후 변화, 불안한 국제 정세 등 다양한 이슈로 인해 생겨나는 에피소드들을 다룬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가까운 미래가 어쩌면 이미 우리 주변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극 중 다양한 인물들 중에서 주목을 받았던 캐릭터 중 하나는 배우 리디아 웨스트(Lydia West)가 연기한 ‘베서니 라이언즈(Bethany Bisme-Lyons)’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베서니는 첨단 기술에 강한 집착을 보이며, 육체 없이 디지털 데이/터로 존재하는 ‘트랜스휴먼’을 꿈꾸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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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BBC 유튜브 채널

​사람과의 대화를 어려워하던 어린 시절의 베서니는 얼굴에 ‘이모티콘 필터’를 쓰지 않고서는 대화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모티콘을 얼굴 위에 실시간으로 띄우는 패널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하는 모습은 사춘기에 들어서자마자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현재의 아이들과 겹쳐 보인다. 필터 기기에 왠지 모를 친숙함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아이디어가 현실화된다면, 미래에는 베서니처럼 얼굴을 가린 채 소통하는 아이들이 흔하게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의 발전이 과연 우리에게 긍정적인 방향인지 고민하게 만들지만,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만큼은 분명 획기적인 아이디어임에 틀림없다.

LED로 구현한 소통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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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션 허진스 유튜브 채널

최근 드라마 속 이모티콘 필터와 유사한 아이디어가 현실화되어 화제를 모았다. 멀티미디어 작가 션 허진스(Sean Hodgins)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그런 그가 만든 마스크는 자그마치 3천여개의 LED가 들어가 있으며, 이를 통해 원하는 시각적 효과를 마음대로 얼굴에 표현할 수 있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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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션 허진스 유튜브 채널

‘마스크로 감정 및 다양한 콘텐츠를 표현한다’ – 단순해 보이는 아이디어지만 이를 실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작가가 처음 생각한 아이디어는 프로젝터를 활용하여 마스크에 이미지를 투사하는 방식이었다. 획기적인 방법으로 여겨졌지만, 곧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거리에 따라 마스크에 이미지의 크기가 변화하기 때문이었다. 아이디어의 한계를 발견한 작가는 잠시 프로젝트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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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션 허진스 유튜브 채널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작가는 마침내 새로운 해결책을 찾게 되었다. 바로 LED를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프로젝터보다 훨씬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지만, 보다 실현 가능한 대안이었다. 수차례 진행된 모델링 작업부터 진이 빠지기 충분했지만 작가는 묵묵히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이어 3D 프린트기를 이용해 마스크를 구성할 패널을 제작하고 이를 정밀하게 조립했다. 마스크에 전력 공급과 데이터 전송을 가능하게 하는 정교한 배선 작업을 거치면서 그의 아이디어가 점차 현실로 구현되어 갔다. 그렇게 완성된 LED 마스크는 마치 SF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할 만큼 환상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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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션 허진스 유튜브 채널

이 마스크는 어두운 환경에서 생생한 시각 효과를 연출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어 작가는 결과물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마스크를 직접 만들고 싶은 이들을 위 하여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과 도면, 작업 가이드 및 노하우를 함께 공개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이 마스크는 LED 컨트롤러인 픽셀블레이즈(PixelBlaze) 또는 초소형 싱글보드 컴퓨터 라즈베리 파이(Raspberry Pi)로 구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마스크를 제작하려면 특수한 전문 기기가 필요하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작가가 하는 대로 따라만 한다면 독특한 마스크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누구나 마스크를 구현할 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아낌없이 공유한 작가의 태도에서 기술을 통한 새로운 방식의 소통이 널리 퍼지길 바라는 진심 어린 의도가 느껴진다.

장난스러운 친근함으로 색다른 소통 방식을 소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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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쿠디 마스크 페이스북

션 허진스가 만든 마스크와 유사한 마스크가 또 있다. 바로 ‘쿠디 마스크(Qudi Mask)’다. 2022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첫 선을 보였던 이 마스크는 작년에 두 번째 버전인 ‘쿠디 마스크2’가 선보이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스마트 LED 픽셀 199개가 내장된 마스크는 다양한 표정을 연출할 수 있어 사생활 보호를 원하면서도 사회 활동을 원하는 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회사 측은 눈과 입모양을 표현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LED 안면 마스크’라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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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쿠디 마스크 유튜브 채널

이 마스크의 가장 큰 특징은 눈, 눈썹, 입과 같이 얼굴의 표정을 드러낼 수 있는 주요 요소를 LED로 구현할 수 있으며 착용자의 말투와 제스처에 따라 표현되는 이미지가 변한다는 것이다. 착용자가 말할 때는 LED로 표현된 입이 함께 움직이고, 고개를 끄덕이면 입 부분에 ‘예(YES)’, 좌우로 저으면 ‘아니오(NO)’가 표시되는 것도 눈길을 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의도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 덕분에 인기를 얻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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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쿠디 마스크 페이스북

전용 앱을 활용하면 더욱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음악에 맞춰 빛나는 이퀄라이저 모드, 프로그래밍된 애니메이션이 반복 재생되는 데모 모드와 더불어 자신만의 표정을 설정할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기능도 제공된다. 감정 표현은 물론이고 개성까지 드러낼 수 있는 이 마스크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도 큰 호응을 얻으며 목표 금액을 조기에 달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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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쿠디 마스크 유튜브 채널

첫 번째 버전은 6가지 기본 표정을 탑재했으며, 두 번째 버전은 자그마치 30가지 이상의 표정을 표현하도록 업그레이드 되었다. 쿠디 마스크2는 귀여운, 로봇, XX’s 세 가지 버전으로 출시되었으며 만화에서 볼 수 있는 추상적인 표현도 가능하다. 또한 장시간 착용을 고려해 김서림 방지 렌즈가 적용되었고, 작은 크기의 안경을 착용한 상태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1회 충전으로 약 3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으며 파티, 코스프레, SNS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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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쿠디 마스크 홈페이지

아직 LED 마스크라는 개념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기에 단순한 이벤트용 소품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후기를 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마스크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쿠디 마스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폴리나 라크소(Polina Larkso)가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 과정을 더욱 밝고 쉽게 만들고, 감정과 자신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 디자인되었습니다.”라고 설명한 대로, 마스크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느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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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쿠디 마스크 유튜브 채널

그저 이야기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이디어가 현실화되는 사례들을 통해 기술이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얼굴을 가린다는 제약은 역설적으로 더 풍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더 이상 ‘하나의 얼굴’만을 표현해야 하는 시대가 아닌, 감정과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얼굴’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창의적이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성적인 기술이 앞으로 일상 속에 어떻게 자리 잡게 될지, 혹은 여전히 특수한 사례로 남게 될지, 그 흐름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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