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이 한국에서 열린 이유는?

K-미식의 새로운 물결

미쉐린 가이드에 이어 세계 2대 미식 행사로 불리는 '아시아 50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이 지난 3월 말 한국에서 개최됐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1위에 선정된 곳은 영국인 셰프가 이끄는 프렌치 레스토랑 '세잔'. 국내에서는 총 4곳의 레스토랑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이 한국에서 열린 이유는?

K-POP만 자랑거리는 아니다. 이제 K-미식을 주목해야 한다. 지난 3월 26일 서울에서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이 열렸다. 아시아 최고의 셰프들이 방한해 미식가를 위한 다채로운 파티와 행사를 가진 시상식 현장을 소개한다.

서울에서 열린 세계 2대 미식 행사

‘미쉐린 가이드(Michelin Guide)’와 함께 세계 2대 미식 행사로 불리는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이 시상식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K-미식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은 올림픽, 월드컵, 엑스포, 비엔날레와 같은 국가 브랜딩과 경제 효과를 창출한다는 것이 여러 리포트를 통해 입증되었다. 이에 이번 행사에는 서울시,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공동 주관에 나섰다. 단순히 순위를 다투는 시상이 아니라 아시아 최고의 세프들이 모여 협업하고 소통하는 행사인 만큼 국제적 미식의 흐름을 살펴보기에도 제격이다. 특히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 선정된 레스토랑은 국제적 주목을 받으며 엄청난 경제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에 앞으로의 영향이 더욱 기대되고 있다.

시상식이 열린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은 축제의 장이었다. 프리즈 서울이나 아카데미 영화제 프리뷰 파티의 흥을 연상시킬 정도로 분위기가 뜨거웠다. 드레스코드가 정장이었기에, 자국의 민속 의상을 차려 입은 VIP와 관계자들이 칵테일을 마시며 홀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의 젊은 셰프와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셰프들이 간이 부스를 만들어 VIP와 기자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산펠레그리노와 아쿠아파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스카치 위스키 벤리악(Benriach), 캐비어 카비아리(Kaviari), 사케 닷사이(Dassai), 농심 등 행사의 공식 파트너 회사들도 부스를 차렸고, 음식과 디저트, 음료와 칵테일을 서브했다. 시상식 전후로는 국내 셰프와 해외 스타 셰프가 협업한 ‘시그니처 세션’도 5일간 열려 눈길을 끌었다.

2024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영예의 1위는 ‘세잔(Sézanne’)이다. ‘세잔’은 젊은 영국인 셰프가 도쿄에 문을 연 프렌치 레스토랑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국경을 넘나드는 미식 문화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표본이다. 한국은 ‘밍글스’(13위), ‘세븐스 도어’(18위), ‘온지음’(21위), ‘모수’(41위) 등 4개의 레스토랑이 50위 안에 들었다. 이외에 ‘이타닉 가든’(62위), ‘본 앤 브레드’(64위), ‘솔밤’(65위), ‘권숙수’(89위), ‘알라 프리마’(91위)가 100위 안에 올라 개최국의 자존심을 지켰다. 국내에서 시상식이 열린 것은 처음이며, 이는 분명 K-미식이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는 반증이다.

미식은 국가 경제력에 비례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가장 많은 레스토랑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 진입시킨 도시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No.10에 오른 ‘오데트(Odette)’를 중심으로 9개 레스토랑을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컨템포러리 프렌치 파인 다이닝을 선보이고 있는 셰프 줄리안 로이어(Julien Royer)의 ‘오데트’는 2017년부터 꾸준히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10위권에 이름을 올려왔다. 작년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Asia’s Best Female Chef)’ 수상자인 조앤 시(Johanne Siy) 셰프가 이끄는 레스토랑 ‘롤라(Lolla)’가 No.43을 차지하며 50 리스트 데뷔를 알렸다.

방콕은 총 8개의 레스토랑이 50위 안에 선정됐다. 레스토랑 ‘가간 아난드(Gaggan Anand)’는 No.3을 기록하며 선두를 차지했다. 홍콩은 No.4를 기록한 ‘더 체어맨(The Chairman)’을 중심으로 총 6곳의 레스토랑을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더 체어맨’의 오너 셰프 오너 대니 잎(Danny Yip)은 올해의 ‘아이콘 어워드(Icon Award)’ 수상자이기도 하다.

도쿄는 서울과 같이 4곳의 레스토랑이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 중 두 곳이 1위, 2위를 차지하면서 기세 등등하다. 또한 도쿄뿐 아니라 오사카, 와카야마, 후쿠오카, 교토의 레스토랑이 각 1곳씩 선정되면서, 일본은 총 8곳의 레스토랑을 순위에 포함시켰다.

가와테 히로야스(Hiroyasu Kawate) 셰프의 프렌치-재패니즈 레스토랑 ‘플로릴레지(Florilège)가 No.2를 차지했으며, ‘덴(Den)’은 No.8, ‘나리사와(Narisawa)’는 No.14, ‘사젠카(Sazenka)’는 No.39다. 오사카의 ‘라 시메(La Cime)’가 No.9, 와카야마의 ‘빌라 아이다(Villa Aida)’가 No.35이다. 후쿠오카의 ‘고(Goh)’는 No.45, 교토의 ‘첸치(Cenci)’는 No.47다.

이러한 순위는 셰프, 음식 비평가, 레스토랑 경영인 등으로 구성된 318명의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아카데미(Asia’s 50 Best Restaurants Academy) 회원들의 투표로 매년 선정된다. 올해 1-50위 리스트에는 아시아 19개 도시가 포함되었으며, 8개의 레스토랑이 새롭게 순위에 진입했다.

내년 개최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서울에서 개최되기를 기대해 본다. 시상식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셰프, 미식가, 기자들이 한국의 파인 다이닝과 스트리트 푸드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서울에 해외 전문가들이 대거 방한한다면 K-미식의 기세를 몰아갈 수 있지 않을까.

Interview

최정윤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한국·중국 부의장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The World 50 Best Restaurents)’의 한국·중국 부의장(Academy Vice Chair) 최정윤 셰프에게 이번 시상식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26년 경력의 셰프, 미식 인플루언서, 아마존 베스트셀러 요리책 <한식The Korean Cook Book>(PHAIDON)의 저자 등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이 서울에서 열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2013년에 시작된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은 미래 미식의 방향을 고민하는 행사다. 그래서 앞으로 아시아 미식의 미래를 이끌 데스티네이션을 기준으로 시상식이 열리는 도시를 선정한다. 서울에 좋은 레스토랑과 훌륭한 셰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시상식이 열리는 도시에 관광객과 미식가가 대거 모여든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올해의 시상이 한국과 세계의 미식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는지?

한국에서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미식의 새로운 문이 열렸다. 한식과 국내의 컨템포러리 음식이 알려지려면 교류가 필요하다. 이번 시상식은 바로 그 교류의 장을 만든 셈이다. 국내의 셰프들이 해외에서 온 셰프와 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아시아와 세계 미식의 흐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미식 기자와 셰프들 중에서는 이번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는 이들이 많았는데, 다들 놀라워했다. 서울이 이렇게 크고, 파인 다이닝에서 로컬 푸드까지 고루 발전한 나라인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행사는 성공적이었고, 한국 미식계의 사랑과 열정을 보여줄 수 있어서 보람 있었다.

​또한 행사를 통해 한국인 특유의 정과 흥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Korea)’과 ‘환대(Hospitality)’를 결합시킨 ‘코스피탈리티(Kospitality)’라는 신조어도 재밌었다. ‘정식당’ 임정식 셰프와 ‘밍글스’ 강민구 셰프 등은 영혼을 갈아 넣어 협업과 친목을 준비했고, 심지어 뒤풀이에서도 에너지를 모조리 끌어 써서 다들 몸살이 났을 정도다. 벌써부터 순위에 등극한 국내 레스토랑 예약이 빗발치고 있다고 하니 뿌듯하다. 작년에 1위를 차지했던 레스토랑은 그날 하루에만 예약 메일 1,000통이 쏟아졌다고 하니, 올해의 1위 ‘세잔’의 예약 문의도 못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1위 ‘세잔’의 셰프가 영국인이고, 프렌치 레스토랑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그는 영국인이지만 홍콩에 오래 있었기에 아시아에 대한 이해가 높다. 프렌치 요리를 중심으로 하지만 중국 전통 조리법과 일본 식재료, 프렌치 요리 테크닉을 사용하는 셰프다. 새우 솥밥, 베이징덕 등을 그의 레스토랑에서 맛 볼 수 있다.

올해의 순위 리스트를 통해 어떤 새로운 미식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까?

2013년에 시작해 올해 12회를 맞은 행사다. 초반에는 싱가포르, 방콕, 도쿄의 레스토랑 위주였다. 올해는 상하이, 베이징, 베트남, 인도, 필리핀 등 전체적으로 고른 성장 분포를 보였다. 아시아의 파인 다이닝 수준이 높아지며 상향 평준화가 되었다는 의미다.

또한 돋보이는 점은 전통 요리에 대한 존중이다. 5위를 차지한 홍콩의 레스토랑 ‘윙(Wing)’의 젊은 셰프는 캐나다에서 공부한 프렌치 레스토랑 셰프 출신이다. 하지만 그가 이제 영감을 얻는 것은 전통이다. 아시아는 과거로부터 식민 지배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대부분이다. 서구 선진국은 파인 다이닝이 많고 발전했지만, 아시아는 그렇지 못했다. 아시아의 X세대 셰프는 자국 음식이 아니라 프렌치 요리에서부터 교육 받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경력이 쌓이면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서 전통 요리를 연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요즘 젊은 셰프들이 전통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으니 미래가 밝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 순위에 오른 레스토랑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행사가 열리기 전부터 당신을 포함한 한국 셰프들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해외 셰프들과 매일 로컬 푸드를 먹으러 갔고, 야식도 먹었다. 순대와 평양냉면, 치킨은 기본이었다. 역시 셰프들의 입맛은 특별하다. 떡볶이와 해장국도 다들 좋아했다. 이번 행사를 앞두고 한식을 알리기 위해 한국 셰프들이 모여서 힘을 합치기로 다짐했고, 서울시와 농림축산식품부도 최선을 다해주었다. 모두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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