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경×정준원 2인전, 〈Round 2〉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공유해온 두 작가, 신자경과 정준원이 만났다. 8월 6일부터 29일까지 갤러리 지우헌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제2막’을 맞이한 두 작가의 창작 세계를 조망하며 사물과 재료가 지닌 사유의 힘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다.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공유해온 두 작가, 신자경과 정준원이 만났다. 금속이라는 익숙한 재료를 새로운 시선으로 풀어내며 공예의 본질을 다시금 묻는다. 8월 6일부터 29일까지 갤러리 지우헌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제2막’을 맞이한 두 작가의 창작 세계를 조망하며 사물과 재료가 지닌 사유의 힘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다.

정준원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독일 뮌헨 예술 아카데미에서 디플롬 과정을 마쳤다. 프리드리히 베커 상, 허버트 호프만 상, 바이에른주 정부 상 등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며 유럽 공예계에 이름을 알렸다. 현재 독일 뮌헨에 거주하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 제목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신자경 나의 삶과 작업 모두에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20년 가까이 독일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일상에 큰 물결이 일었다. 사람도 환경도 달라진 낯선 고향에 적응해야 했고, 대학에 몸담으면서 직업인으로서 역할과 정체성도 달라졌다. 작업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사물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질문을 서사적으로 푸는 데 집중했다면 요즘은 그것을 조형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 AI, 첨단, 융합 같은 동시대 담론 속에서 금속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의 가치를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데, 이 같은 고민이 자연스럽게 작업의 다음 단계를 내다보게 하는 것 같다.
정준원 작업실을 벗어나 전시장이라는 무대에 오르는 순간이 떠올랐다. 나에게 작업실은 명상실인 동시에 훈련장이다. 또 절망과 환희가 교차하는 격렬한 전장이 될 때도 있다. 그곳에서는 오직 작가 자신만이 심판이자 경쟁자이고, 작품은 유일한 증인이 된다. 반면 전시장은 혼자만의 장소가 아니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수많은 시선을 마주하고 의미를 확장해나간다. 관객과 함께 새로운 라운드를 시작하는 셈이다. ‘Round 2’라는 제목을 보니 그 감각이 되살아났다.
두 사람 사이에 접점이 많다.
신자경 우선 연배가 비슷하다.(웃음) 한국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뮌헨으로 건너갔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늘 서로의 작업을 지켜보며 접근 방식이 비슷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함께 전시를 할 기회는 없었다. 작년에 정준원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각자의 작업을 정리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는 데 뜻을 모았고,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전시로 이어졌다. 이번 기회를 통해 각자 작업의 흐름을 되짚으며 ‘제2막’의 시작을 함께 모색해보려 한다.


(오른쪽) 정준원, ‘Untitled’, 2025
정준원 작가는 자신을 ‘장신구 작가’라고 소개한다. 장신구의 매력을 꼽자면?
정준원 현대 장신구를 처음 접한 사람은 대부분 비슷한 질문을 한다. ‘이것도 장신구가 될 수 있나?’ 나 역시 그랬다. 전통적인 장신구는 부와 신분의 상징,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도구, 특정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드러내는 장치였고 어디까지나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현대 장신구는 이 같은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작가의 개념을 담는 그릇으로, 착용자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거듭나고 있다. 장신구를 소통과 탐구의 매개체로 볼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매우 신나는 순간이었다.
어떠한 보석이나 부재료 없이 금속만으로 주얼리를 만든다고 들었다.
정준원 금속은 여전히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재료로 여겨진다. 금속으로 기물을 만드는 과정은, 쉬이 변하지 않는 익숙한 바탕 위에 나의 생각을 풀어가는 여정이다. 익숙함이라는 뿌리 위에 피어난 변이의 결실이 바로 새로움 아닌가.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새로운 재료를 사용할 의향도 있다. 얼마든지 열려 있는 입장이다.(웃음)


(오른쪽) 정준원, ‘Pearl’, 2016
신자경 작가는 사물의 역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사물의 본질과 역할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건 언제인가?
신자경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에 익숙했는데, 독일에 가자마자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게 ‘과제 없는 교육 환경’이었다. 애초에 은기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유학길에 올랐던 터라 막연히 은으로 된 컵을 만들기로 했다. 귀금속을 함부로 낭비할 수 없기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했는데, 설계를 하다 보니 내가 컵의 생김새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입구의 지름이 달라지거나 비례가 조금만 틀어져도 컵으로 보이지 않았다. 매일 컵을 사용하면서도 막상 그것의 형태와 쓰임에 대해 질문해본 적이 없었던 거다. 그 생경하고 낯선 감각이 사물의 본질을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여러 소재 가운데 금속의 매력은 무엇인가?
신자경 정교함, 날렵함, 예민함이다. 금속을 정확한 형태로 잘라 모든 면이 딱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이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금속 제품 특유의 촉각적 만족감이 있다. 사실 금속 작업은 유독 많은 기술과 도구가 필요할뿐더러 시간과 품도 많이 든다. 그래서 수작업으로 완성하기 어려운 기물을 만들 때는 3D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복잡한 구조의 기물을 만드는 데 3D 모래 주형 기술을 활용해봤다. 왁스 모델링, 주형 제작 등 여러 단계가 생략되어 시간이 크게 단축되었다. 이렇듯 금속의 종류나 기물의 형태에 맞는 기술과 도구를 고민하는 것도 금속 작업을 하며 누리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작품이 있나?
정준원 나, 작품, 세계 간의 상호작용을 구조적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장신구를 몸에 걸칠 때 사물과 착용자 사이에서 능동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데, 이번 신작을 통해 그 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했다.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한 브로치와 귀걸이 모두 주체와 공간, 장신구 사이의 유의미한 연결 고리를 모색하는 매개체다.
신자경 지금까진 주로 완결된 형태의 기물을 선보였는데 이번에는 숟가락의 볼과 손잡이를 관람객이 직접 조합해 완성하는 참여형 작품을 만들어봤다. 숟가락이라는 기물이 지닌 조형적 가능성과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확장해보는 게 목표다.
지우헌의 공간적 특성이 작품에 영향을 준 지점이 있나?
신자경 공간을 나누는 2개의 가벽이 동선을 다양하게 연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한옥 특유의 분위기도 작품에 독특한 힘을 더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우헌의 공간적 특성을 살려 한국 고가구를 활용해봤다. 고가구와 작품이 함께 놓였을 때 생기는 대비와 조화가 시공간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광경을 연출한다.

쓸모와 실용의 가치에서 벗어나 전시장으로 무대를 옮긴 공예품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준원 나는 장신구를 전시 작품으로 인식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몸을 치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개념과 철학을 담은 예술 매체라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다.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다. 관람객이 독립된 오브제로서 장신구의 본질을 충분히 탐색한 뒤에 비로소 그것을 착용해보도록 했다. 장신구를 걸치기 전 충분한 사유의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신자경 작품을 만들 때 의도적으로 실용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내가 만든 기물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면 기꺼이 권하는 입장이다. 다만 사용성과 실험성이 충돌할 경우에는 언제나 후자를 우선시한다. 그것은 내가 여러 소재 중에서도 금속을 사용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금속으로 기물을 만든다는 건 대량 생산이 아닌 일품 생산 방식을 택했다는 뜻이고, 그것의 가장 큰 장점은 창작자로서 제약 없이 실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시도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는 시간이 지나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여러 박물관에서 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실험을 지속할 원동력이 된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이 무엇을 경험하기를 바라나?
정준원 빈 공간에 놓인 장신구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기를 바란다. 관람객이 장신구를 독립적인 오브제로 바라봤으면 한다. 동시에 작품을 착용했을 때 느껴지는 감각을 자유롭게 상상해보는 것도 전시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신자경 정준원 작가와 나 모두 사물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해 지금의 작업 단계에 이르렀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우리의 발견이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더 나아가 사물에 대한 관심과 그에 수반되는 가치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결과물로서 감상하는 작품을 넘어 사물과 재료를 새롭게 인식하는 경험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