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하지 않는 디자이너, 유진 황

에어팟 맥스를 디자인한 장본인이 한국인이라는 걸 아는가? 고작 16명의 디자이너로 구성된 애플 디자인팀을 20여 년간 지킨 이 디자이너의 이름은 유진 황이다. 이제 막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첫발을 뗀 그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안주하지 않는 디자이너, 유진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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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황 @eugandeug 캐나다 밴쿠버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애플 디자인팀에 합류해 20여 년간 근무했다. 아이팟, 에어팟 맥스 디자인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후 조너선 아이브가 설립한 러브프롬에서 일하다가 최근에 독립했다. 음반사 겸 크리에이티브 플랫폼 ‘퍼블릭 릴리즈 레코딩스’ 설립자이자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디제이이기도 하다. 사진 Yoko Takahashi
독립을 축하한다. 그런데 음악 레이블 ‘퍼블릭 릴리즈Public Release’는 오래전부터 운영해왔다고.

아주 어릴 때부터 클래식 바이올린을 배웠다. 고등학생 때는 디제잉과 디자인을 동시에 공부하기도 했고. 나에게 음악과 디자인은 곧 음과 양이다. 경중을 두기 어려울 만큼 동등한 비중으로 내 삶 속에 존재해왔다. 산업 디자이너, 음악 레이블 대표, 디제이 모두 지극히 자연스러운 정체성이다.

레이블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직함으로 따지면 아트 디렉터에 가깝다. 디자인이나 음악에 직접 손을 대는 것은 아니고 프로젝트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다. 산업 디자이너 직무와 정반대 일을 하는 셈이다. 제품 디자인이 치밀하고 점진적이라면 음악은 자유롭고 즉흥적이다. 그래서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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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에어팟 맥스’. 사진 ©애플
애플에서 마지막으로 디자인한 작업이 ‘에어팟 맥스’였다고 들었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만큼 디자인할 때 마음가짐에도 차이가 있었을 것 같은데.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플의 모든 제품은 대중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에어팟 맥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게 중요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애플 디자인의 핵심이다.

애플 디자인팀은 어떻게 일하나?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 보통 15명에서 17명쯤 되고 전 팀원이 생각을 공유하고 협업하는 구조다. 모두가 한 몸처럼 움직이고 프로젝트마다 리드 디자이너가 있다. 리드 디자이너는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취합해 양산품으로 구현하는 역할을 하는데, 에어팟 맥스를 디자인할 때 내가 그 임무를 맡았다. 엔지니어와 머리를 맞대고 제품의 표면부터 구조, 디테일까지 빠짐없이 손봤다. 장장 5년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헤드밴드, 이어 쿠션, 케이스 등 새로 개발한 부품만 700개가 넘었다. 애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할 프로젝트였다.

애플에 20년 넘게 몸담았다. 스티브 잡스, 조너선 아이브 등 이제는 전설이 된 이들과 함께 일해본 경험은 어땠나?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의 관계는 실로 특별했다. 동료이기에 앞서 둘도 없는 친구였다. 스티브 잡스는 아무리 작은 디테일이라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제품의 모서리를 각지게 꺾을지 둥글게 처리할지 하나하나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CEO는 정말 드물다. 조너선 아이브는 디자인팀 감독인 동시에 플레이어였다. 여느 팀원과 다를 바 없이 디자인 과정에 참여했다. 처음 입사한 날이 떠오른다. 대학을 갓 졸업한 상태였는데, 애플이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신입 디자이너를 채용한 건 내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조너선 아이브는 처음부터 나를 다른 팀원들과 동등하게 대했다. 물론 피드백도 마찬가지였다. 가끔은 잔인할 정도로 솔직했다.(웃음) 그럼에도 모든 팀원을 차별 없이 대우했기에 그 같은 피드백을 개인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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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 PR DJ 백’. 패션 브랜드 디스이즈네버댓과의 협업으로 개발했다. 사진 ©디스이즈네버댓
진부한 질문이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애플에 입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입사할 때만 해도 소셜 미디어라는 게 없던 시절이었다. 학교 밖의 디자이너를 찾아가 멘토링을 받는 게 졸업 조건 중 하나였는데, 책자에 실린 디자이너 중에서 제일 인상이 좋아 보이는 사람에게 무작정 연락했다. 다행히 그가 나의 멘토가 되어주었고 졸업할 즈음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신입 디자이너를 뽑을지도 모른다고 귀띔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면접을 보러 갔고, 말도 안 되게 긴 면접을 거친 끝에 애플에 입사했다. 실력보다 중요한 건 의지다. DM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의지를 가지고 용기 있게 다가가야 한다.

애플을 나온 뒤 디자인 에이전시 러브프롬LoveFrom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인하우스와 에이전시를 두루 거치며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꼈나?

애플에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한 것은 맞지만 그곳의 작업 방식이 여느 기업과 다르다는 것은 앞서 충분히 이야기했다. 러브프롬 역시 애플 출신 디자이너가 많은 곳이라 큰 차이는 없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는데, 무엇보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스스로 조절해가며 쓸 수 있다는 게 좋다. 디자인을 넘어 음악, 패션 등 문화 전반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다만 예전처럼 매우 높은 수준의 디테일까지 투자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조너선 아이브와 함께 일할 때는 어떤 클라이언트와 일하든 디자이너로서 끝을 봤는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매우 드문 기회였다.

이제는 오롯한 자유인이다.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

하나의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지어보고 싶다. 나이트클럽이나 호텔 같은 게 좋겠다. 건축, 인테리어, 오디오, 조명, 심지어 컵 받침까지 손수 디자인하는 거다. 모든 요소를 통합한 총체적 경험을 디자인해보는 게 나의 꿈이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6호(2025.08)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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