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해결로서의 디자인, 틴에이지 엔지니어링

너무 무겁고 복잡한 신시사이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틴에이지 엔지니어링은, 보다 감각적이고 새로운 방식의 신시사이저를 만들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이들은 다양한 사운드 제품들이 가진 불편함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 해결로서의 디자인, 틴에이지 엔지니어링

최근 애플과 디자인을 견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스웨덴의 음향 기기 브랜드 틴에이지 엔지니어링Teenage Engineering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디자인은 첫눈에도 직관적이다. 작고 가볍고, 조작 방식도 단순하다. 한 손에 쥐기 좋은 사이즈, 도트 매트릭스로 구현된 디스플레이, 색색의 버튼. 왠지 갖고 싶고, 잘은 모르겠지만 나도 한 번쯤 연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사실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은 철저히 의도된 덕분이다.

틴에이지 엔지니어링은 2005년, 아크네 스튜디오 출신인 제스퍼 쿠토프드Jesper Kouthoofd가 설립했다. 록 음악 마니아이자 악기 제작에도 능했던 그는 기존 신시사이저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크다는 데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이에 직접 제작한 제품이 OP-1이다. OP-1은 ‘작지만 창작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신시사이저를 목표로 했다. 알루미늄 보디에 컬러 노브 4개, OLED 디스플레이, 2옥타브 미니 키보드로 구성된 이 장치는 겉보기엔 장난감 같지만, 13가지 신시사이저 엔진, 테이프 기반 4트랙 리코더, 샘플러, 시퀀서, FM 라디오 등 강력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USB 충전과 MIDI 연결도 가능해 어디서든 가볍게 영감을 기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다. 시각적 정보와 물리적 조작감을 정교하게 결합해 ‘소리를 손으로 조형하는 듯한’ 창작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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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에이지 엔지니어링의 첫 작품, OP-1.

OP-1은 복잡했던 음악 제작을 재밌고 감각적인 일로 바꿔놓았다. 전에 없던 신시사이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제스퍼 쿠토프드는 여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OP-1조차 초보자가 즐기기엔 제약이 크다고 생각한 것이다. 높은 가격대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이번엔 ‘포켓 오퍼레이터’를 만들었다. 포켓 오퍼레이터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신시사이저다. 계산기처럼 생겼지만 그 안에는 드럼 머신, 베이스 신스, 멜로디 생성기, 샘플러 등이 각각 다른 모델로 담겨 있다. AAA 배터리 2개로 작동하며 기판이 그대로 노출된 형태에서조차 틴에이지 엔지니어링 특유의 위트가 느껴진다. 복잡한 기능은 걷어내고, 누구나 직관적으로 만질 수 있는 구조로 디자인했다. 음악을 잘 몰라도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누구나 비트를 만들 수 있다. 가격도 99달러(약 13만 원)로 신시사이저치곤 저렴한 편이었다. 그래서 사용법을 잘 몰라도 패션 아이템처럼 지니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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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쉽고 가볍게 연주할 수 있는 포켓 오퍼레이터.

이렇듯 틴에이지 엔지니어링은 기존 신시사이저의 문제점에서 출발해 개선을 거듭하며 또 하나의 상징적인 디자인과 아이콘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문제 해결형 디자인이 통한다는 확신을 얻자 녹음기, 스피커, 마이크, 가방, 책상, 심지어 자동차 모양 장난감까지 제품군을 점차 확장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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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라는 인터페이스로 주목을 받은 플레이데이트.

한편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낯선 영역에 적용하며 존재감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휴대용 게임기 플레이데이트Playdate에서는 손잡이 크랭크라는 아날로그적 인터페이스를 중심에 두고 디지털 기기에 감각적인 물성을 불어넣었다. 선명한 노란색 몸체와 단순한 UI는 틴에이지 엔지니어링 특유의 미감과 직관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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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 다이얼로 화제를 모았던 AI 비서 기기 래빗 R1.

AI 비서 기기 래빗Rabbit R1에서는 조그 다이얼, 회전 카메라, 커다란 버튼 등 장난감 같은 요소를 대담하게 조합해 낯설지만 손에 착 감기는 새로움을 만들어냈다. 너무 무겁고 복잡한 신시사이저, 비슷비슷한 음향 기기, 감각 없는 전자 제품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틴에이지 엔지니어링에게 디자인은 ‘멋’이 아니라 ‘답’이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6호(2025.08)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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