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담긴 건축의 낙관주의

〈후지모토 소우의 건축:원초적 미래의 숲〉전

건축 개념과 전시 개념이 ‘숲’이라는 언어로 합일한 전시의 메시지는 복잡하지 않다. 그렇기에 관객은 이 전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전시에 담긴 낙관주의는 건축이 미래를 위해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제시할 수 있다는 건축가의 믿음을 보여준다.

숲에 담긴 건축의 낙관주의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는 올해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먼저 그는 지난 4월 중순에 개막한 2025 오사카 엑스포 총괄 디자인 프로듀서이자 중심 시설인 ‘그랜드 링Grand Ring’의 설계자로 이름을 내세웠다. 그리고 7월 2일에 개막한 모리 미술관의 〈후지모토 소우의 건축: 원초적 미래의 숲(The Architecture of Sou Fujimoto: Primordial Future Forest)〉에서 지난 25년간의 건축 작업을 조명하는 대규모 서베이 전시를 열었다. 11월 9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오사카 엑스포 기간과 겹쳐 도쿄와 오사카를 오가는 후지모토 소우 투어리즘을 만들어내고 있다. 향후 이 전시는 해외를 순회할 예정으로, 현재 도쿄와 파리, 중국 선전에 사무실을 두고 작업 중인 그의 야심 찬 여정에 힘을 보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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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서 있는 후지모토 소우. 사진 Tayama Tatsuyuki

1971년생인 후지모토 소우는 이토 도요-SANNA로 이어지는 일본 건축계의 주요 계보를 잇는 건축가다. 2000년에 독립 사무실을 열고 활동해왔으며 2010년대부터 해외에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최연소 건축가로 선정되고 유럽 내 주요 국제 공모에 당선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일본 내 주택, 공공 화장실처럼 작은 건축물 설계로 출발한 후지모토 소우는 이후 유럽의 복합 주거 단지, 대규모 예술 센터 등을 진행하며 작업의 지리적·공간적 경계를 빠르게 확장했다. 그가 사무실 운영 초기부터 견지해온 건축 개념 ‘숲’은 이러한 크고 작은 후지모토 소우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어다. 자연의 형식이자 인공물의 형식이기도 숲은 경계를 만들고 혹은 경계에 포위되기도 하는 유기적 구성체다. 홋카이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현재 도쿄에 거주하는 후지모토 소우는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오랫동안 생각했고, 이를 어떻게 매개할지 고민해왔다. 그는 홋카이도의 시골길과 도쿄의 골목길은 서로 다른 풍경이지만 ‘숲’이라는 부분과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연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탐구의 결과가 바로 후지모토 소우의 건축이 지향하는 목표이자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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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시작인 ‘생각의 숲’. 주요 프로젝트와 관련된 300여 개의 스터디 모형과 오브제를 후지모토 소우 사무소가 고안한 특별한 좌대와 천장에 설치했다.

이처럼 그는 다양한 수종이 숲에 공존하는 것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건축의 모델이 숲이라고 강조했다. 〈후지모토 소우의 건축: 원초적 미래의 숲〉 전시에도 이러한 건축가의 생각이 잘 반영되어 있다. ‘숲’은 건축의 개념이자 전시 형식의 개념이다. 초기 작업부터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의 모형, 드로잉 등 건축의 파편들이 전시의 시작인 ‘생각의 숲’부터 마지막 섹션인 ‘미래의 숲’까지 8개의 섹션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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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원’. 원형의 형태가 지닌 상징성과 공간적 가능성을 탐색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전시장을 압도하는 것은 단연 모형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생각의 숲’에서는 그의 주요 프로젝트와 관련된 300여 개의 스터디 모형과 오브제가 후지모토 소우 사무소가 고안한 특별한 좌대에 놓여 있다. 천장에 모빌처럼 달리기도 한 모형들은 바닥 면적 200㎡의 첫 번째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이후 모형은 실물 스케일에 가깝게 증폭한다. 그중 ‘열린 원’이라는 건축가의 사고 과정을 보여주는 오사카 엑스포 ‘그랜드 링’ 1:5 모형은 압도적이다. 눈으로 감상하는 모형에서 관객의 진입이 가능한 풀 스케일 모형으로 경험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봉제 인형처럼 만든 말하는 건축 모형과 사람의 움직임을 모형에 투사한 애니메이션 모형까지 모형을 통한 건축 전시의 실험적 시도가 돋보인다. 실제 건물을 전시할 수 없는 건축 전시의 한계와 소통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한 전시기획팀과 건축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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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원’ 개념을 구현한 센다이 국제센터역 북부 지역 복합 단지 모형. ‘많은 울림, 하나의 울림’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모리 미술관은 그간 〈메타볼리즘: 도시의 미래(Metabolism: The City of the Future)〉(2011), 〈건축 속의 일본: 그 변천의 계보(Japan in Architecture: Genealogies of Its Transformation)〉(2018) 등 일본 현대건축물과 건축가의 역사를 쓰는 전시를 꾸준히 개최했다. 미술관에서 건축을 어떻게 구성할지, 나아가 일본의 현대건축을 어떻게 전시할지 오랜 기간 탐색해온 모리 미술관의 올해 작가로 후지모토 소우가 선정된 것은 그의 건축 언어가 지닌 명확성과 직관력 때문일 것이다. 모형은 대중에게 그의 직관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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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마지막 섹션인 ‘미래의 숲’. 후지모토 소우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자연과 건축의 관계, 그리고 그가 상상하는 미래 도시의 풍경을 대형 영상과 함께 몰입감 있게 체험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건축사가, 북 큐레이터, 데이터 과학자와 협업한 전시 내용은 후지모토 소우 건축의 의미를 다학제적 관점과 매체로 살필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쓰타야 서점의 북 디렉터이자 바흐BACH 대표이기도 한 하바 요시타카가 구성한 북 라운지 코너는 잠시 숨을 고르는 공간이다. 이곳은 후지모토 소우의 세계관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했다. 하바 요시타카는 도쿄 롯폰기 일대의 도시 풍경이 바라다보이는 이 공간에 40권의 책을 전시했다. 책들은 ‘숲과 자연 그리고 도시’, ‘혼돈과 질서’, ‘지구의 기억’, ‘겹쳐지는 목소리들’, ‘미풍경’ 등 다섯 가지 키워드를 반영한다. 이 책들은 후지모토 소우 건축의 참고 자료이자 더 읽을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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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타야 서점의 북 디렉터 하바 요시타카가 구성한 ‘북 라운지’. 후지모토 소우의 세계관에서 영감을 받아 선정한 책을 전시했다.

건축 개념과 전시 개념이 ‘숲’이라는 언어로 합일한 전시의 메시지는 복잡하지 않다. 그렇기에 관객은 이 전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전시에 담긴 낙관주의는 건축이 미래를 위해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제시할 수 있다는 건축가의 믿음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기후 위기와 전쟁, 계급 격차 등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불안과 비관이 도처에 흐르고 있는 지금, 후지모토 소우가 말하는 건축의 낙관주의는 누군가에게는 도달하지 못할 미래일지도 모른다. 건축물을 만드는 일보다 사라지는 것을 더 자주 목도하는 한국 사회에서 볼 때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폐허를 재건하는 실천인 건축이 가진 역사와 본질적 힘을 생각할 때 좀 더 밝은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그 미래를 떠올리며 올해 대규모 중간 점검을 마친 후지모토 소우의 건축가로서의 향후 여정을 기대해본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6호(2025.08)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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