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 크리스 앤드류 스몰

색과 언어로 퀴어를 말하는 타이포그래피 아티스트

나는 스크린에 갇힌 예술이 아닌, 사람들이 직접 마주하고 체험할 수 있는 예술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호주 시드니 출신 아티스트 크리스 앤드류 스몰(Kris Andrew Small). 강렬한 네온 컬러와 검은 바탕의 대비로 저돌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는 그의 작업에는 퀴어로서의 정체성과 맥시멀리즘적 미학이 듬뿍 담겨있다.

예술적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 크리스 앤드류 스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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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크린에 갇힌 예술이 아닌, 사람들이 직접 마주하고 체험할 수 있는 예술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호주 시드니 출신 아티스트 크리스 앤드류 스몰(Kris Andrew Small). 강렬한 네온 컬러와 검은 바탕의 대비로 저돌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는 그의 작업에는 퀴어로서의 정체성과 맥시멀리즘적 미학이 듬뿍 담겨있다.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 액티비즘, 대담한 색채, 역동적인 타이포그래피, 겹겹으로 쌓인 층위를 적극적이고 자유자재로 혼합하는 그의 손에서 탄생하는 작업물은 호주를 넘어 세계를 놀라게 하는 중이다. 그는 최근 런던 프라이드 축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참여하여 선보인 설치 작업 ‘Like Nature, We Persist’로 관객을 압도했고, 첫 회화 인물화로 아치볼드(Archibald)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회화로의 확장 가능성도 입증했다. 그는 아디다스(Adidas), 애플(Apple), 구찌(Gucci), 혼다(Honda)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를 포함해 영국 출신의 뮤지션 샘 스미스(Sam Smith)의 공연 포스터 작업과 엠아이에이(M.I.A)의 앨범 비주얼 작업을 함께 진행하며 작업의 경계를 허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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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크리스 앤드류 스몰 타이포그래피 아티스

— 당신의 작업은 타이포그래피와 추상적인 콜라주를 결합합니다. 이러한 독특한 스타일을 처음 발견하게 된 계기와, 그것이 당신을 강하게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특유의 스타일은 학창 시절에서부터 시작했어요. 놀랍게도 지금의 작업과 결이 유사하죠. 예술가들은 살아오면서 접하고 경험한 모든 것을 바탕으로 작업합니다. 결국 작업물은 인생의 기록인 셈이고, 그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겠죠. 세상에 어떤 예술을 선보이고 싶은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늘 명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누구나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그만 관찰하고 자신에게 몰두해야 본인의 작업을 꺼낼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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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본인을 ‘모든 방면에서 맥시멀리스트’라고 표현했죠. 에너제틱하고 콜라주스러운 창작 방식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디지털 아트워크를 배웠던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문화를 접하는 방식이 주로 인터넷이었기 때문에 ‘구글’ 검색창은 저에게 있어 세상과 연결되는 창과 같았죠. 이미지를 잔뜩 모아서 콜라주로 만들고, 전시하기 위한 블로그를 만들고, 이어서 재작업을 하는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져 저만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여러 요소를 붙이고 섞어서 하나의 작업을 완성하는 식으로 지금까지 작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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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호주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기억은 현재 당신 작업의 색채 팔레트와 시각적 미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어린 시절의 기억은 제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어요. 뜨겁고 강렬한 햇볕 아래서 자라면, 모든 것의 대비가 아주 강렬하게 느껴지거든요. 특히, 호주의 색은 다르답니다. 하하. 태양이 너무 강해서, 눈에 띄려면 색을 더 강렬하게 써야 해요.

— 당신의 작업은 퀴어와 사회적 주제를 다룹니다. 예술이 사회 변화와 공동체 대화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요?

퀴어 커뮤니티 출신으로서 언제나 긍정적인 영향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정체성과 관련한 무수히 많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쳐 왔고, 그 시간을 정리하기 위해 작업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진심이 담긴 작업을 알아본 건지, 대중들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반응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계속 이 주제를 다뤄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결국 제가 처한 현실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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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reo × PFLAG 협업에서, 당신은 부모의 인용문과 자녀의 바람을 함께 담았습니다.

PFLAG (커밍아웃한 LGBTI 자녀 혹은 지인을 둔 부모와 가족 그리고 친구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 뉴욕에서 1970년대 초반에 세워진 비영리 단체) 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죠. 퀴어 자녀를 둔다는 것은 여전히 여러 도전과 마주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는 안되지만, 현실이 그러하죠. 커밍아웃한 자녀를 둔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를 더욱 깊게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단체가 존재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고, 그들을 위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 혼다, 아디다스, 샘 스미스를 비롯한 다양한 브랜드와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오셨죠.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협업은 무엇이었나요?

M.I.A와 함께 작업했던 앨범 비주얼 작업이 기억에 남아요. 개인적으로 그의 팬이었기에 꿈같은 협업의 기회였고, 결과물도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아디다스 컬렉션도 특별했어요.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제품을 제작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그 과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 하나 더! 최근 영국 런던의 아우터넷(Outernet)에서 전시를 했는데, 비주얼적으로 제 인생 최고의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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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런던의 아우터넷에서 선보인 설치 작업 ‘Like Nature, We Persist’는 매우 몰입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된 경험과 그 감정적 흐름을 설명해 주세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프로젝트였습니다. 작업 당시 일본에서 머물며 받은 영감도 살짝 작품에 포함했어요. 이 작업은 런던 프라이드 축제에 맞춰 의뢰받았지만, 저는 단순히 ‘프라이드용’으로만 보이지 않도록 깊은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퀴어 정체성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맺는 관계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죠. 모두가 자주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해서 전시를 보는 동안만큼은 관객들이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길 바랐어요. 네 개의 파트는 메시지를 따라 여정을 구성했어요. 첫 번째 파트는 명상, 즉 태풍 전야처럼 삶의 혼돈에 내던져지기 전의 고요한 시간이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파트는 혼돈 속에서 구조를 쌓아가는 여정이에요. 마지막 파트에서는 관람객들이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성찰하고 강력한 실천으로 옮겨보자는 메시지를 던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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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아치볼드상 출품작으로 윌 맥도널드(Will McDonald)를 그리셨죠. 그의 개성과 낙천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포착했나요?

윌은 멋진 배우이고 놀라운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에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통했어요. 주변의 에너지를 이미지나 애니메이션으로 담는 것이 제 작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윌과는 단 2분만 함께 있어도 그의 에너지를 포착할 수 있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시도한 초상 회화 작업이었는데, 아치볼드에서 그게 인정받았다는 건 큰 영광입니다. 더 많은 인물화를 그려야겠어요, 정말 좋아하는 작업이거든요!

— 런던에서 열린 BE HUMAN 팝업 전시에서는 당신의 타이포그래피가 공간 전체를 감쌌죠. 몰입형 환경은 관객과의 상호작용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킨다고 생각하나요?

요즘 사람들은 모두 디지털 화면 속 세상에 지치고 있습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늘 함께하니까요. 현실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죠. 그래서 저는 점점 더 ‘현실에 존재하는 작업’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에요. 해당 전시는 일종의 미니 페스티벌이었어요. 토크 패널, 파티, 워크숍 등 다양한 행사를 한 공간에서 진행했죠. 그런 경험은 인스타그램 게시물로는 절대 불가능하잖아요. 지금 제 작업의 핵심은 사람들이 직접 가서 함께 경험할 수 있는 ‘현실 속의 작업’을 만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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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실에서의 창작 과정은 어떠한가요? 처음부터 의도를 갖고 시작하나요, 아니면 실험을 통해 점차 구성이 발전하나요?

저는 집중해서 몰아치는 스타일입니다. 보통은 3시간씩 몇 번의 작업을 집중해서 하루에 나눠서 해요. 아침엔 행정 업무를 하고, 오전엔 좀 쉬었다가 점심을 먹고, 스튜디오에 가요. 저녁에는 휴식 후 종종 밤까지 일해요. 거의 매일 작업실에 가고, 안 가는 날에도 꼭 무언가는 하게 돼요. 여행 중에도 작업하는 걸 좋아해요. 시야가 달라지고, 시간도 제한되다 보니 다양한 공간에서 작업하게 되거든요. 그게 꽤 즐거워요.

— 프린트부터 벽화, 설치 작업까지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고 계시죠. 특정 메시지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기준으로 매체를 선택하나요?

대부분 프로젝트 자체가 매체를 결정해요. 하지만 저는 어떤 매체에도 자신을 제한하고 싶지 않아요. 자동차든, 스니커즈든, 콘돔 포장지이든, 어디서든 존재할 수 있는 작업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저에게는 성장할 기회이자, 새로운 도전이거든요.

​— ‘35mm Portraits’ 프로젝트는 커뮤니티의 참여를 초대하죠. 당신의 예술에서 협업과 참여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이 프로젝트는 제 커리어 초반에 시작했어요. 주로 다른 크리에이티브들과 만나고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였죠. 누군가를 그리는 과정에서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게 정말 멋져요. 더 많이 하고 싶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자주 하진 못해요.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게 있다면, 커리어에는 흐름이 있다는 거예요. 시간이 흐르면서 일이 점점 바뀌고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결국 그것들이 연결되어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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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더 면밀하게 다루고 싶은 새로운 주제나 시각적 영역이 있나요?

런던에서 했던 아우터넷 전시 작업에서 제 작업의 미래를 엿볼 수 있죠. 더 많은 설치, 영상, 그리고 사람들이 실제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작업에 관심이 있어요. 곧 인도와 페루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전시할 기회가 있어요. 여행하다 보면 두루뭉술하던 어떤 주제가 명확해지거나,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죠.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게 좋은 작업을 만드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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