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의 영역을 어루만지는 AI와 로봇들

일상에 밀접하게 스며든 기술

꿈을 인공지능으로 재구성해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기부터 사람과 친구가 되는 기기까지. 인공지능은 이제 사람의 감성의 영역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감성의 영역을 어루만지는 AI와 로봇들

최근 네덜란드 디자인 스튜디오 모뎀(Modem)이 ‘드림 레코더(Dream Recorder)’를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이는 이름 그대로 꿈을 인공지능(AI)으로 재구성해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기다. 꿈이라는 인간의 잠재의식을 포착하고 이를 영상으로 재구성한 이 시도는 그동안 미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분야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라 더욱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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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모뎀 X 계정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개발자, 제품 디자이너, 일러스트 작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이 기기는 의외로 단순하고 직관적인 모습이라 눈길을 끈다. 기기의 형태만큼이나 사용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사용자가 잠에서 깨어난 후 기기에 꿈의 내용을 소리 내어 말하면, 기기의 AI가 이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해 영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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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모뎀 X 계정

​이 기기의 핵심은 이처럼 ‘텍스트 분석’과 ‘영상 생성’에 있다. 음성으로 입력된 사용자의 꿈 이야기는 텍스트로 변환되고, 이어 챗GPT가 이를 구조적으로 다듬는다. 영상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영상을 제작하는 루마 AI (Luma AI)가 생성한다. 영상 특유의 흐릿하고 아날로그적인 미학은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에 AI 및 영상 후처리를 돕는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일부러 초저해상도로 제작된 영상은 감성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듯한 영상은 마치 꿈을 다시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이를 통해 AI를 활용한 기기가 정보 처리를 위한 도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성과 무의식을 탐구할 수 있는 도구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뎀은 사람들이 더 간섭적인 기기들에게 하루를 내어주기 전에 잠재의식적인 생각을 숙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드림 레코더는 일주일 분량의 꿈 영상을 저장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반복되는 상징이나 감정을 추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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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모뎀 홈페이지

결국 AI는 수학과 알고리즘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면에 있는 의도입니다.

AI는 또 다른 방해 요소가 될 수도 있고, 마음, 몸, 영혼에 걸쳐

우리의 인식을 부드럽게 전환시키는 다른 종류의 상호작용을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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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테라 홈페이지

모뎀이 AI를 활용하여 만들어낸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드림 레코더에만 그치지 않는다. 앞서, 모뎀은 사용자를 ‘일부러 길거리에서 방황하게 만드는’ 기기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었다. 디자인 스튜디오 파앙터 앤 투롱(Panter & Tourron)과 협업하여 제작한 ‘테라(Terra)’는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현대인의 문제에 해답을 선사하는 실험적인 시도였다. 이들은 스마트폰 제조 기업들이 만들어놓은 폐쇄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사용자와 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의 연결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철학적인 의도를 담아 기기를 제작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로 만들어진 이 기기의 앞면에는 나침반 바늘이, 뒷면에는 영화 쥬만지(Jumanji)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동물 또는 식물 기호가 그려져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이 기기는 명확히 ‘AI로 작동하는 스마트 나침반’이다. 테라는 사용자의 일정과 위치 정보, 구글 플레이스 API, 그리고 챗GPT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기기는 사용자의 위치, 의도 및 사용 가능한 시간을 GPS 좌표의 흔적으로 변환한다. 이어 ‘제과점 방문을 포함한 두 시간 길거리 산책’, ‘오후 4시까지 교토 건축 투어하기’와 같이 자연스럽게 일정을 포함한 맞춤형 탐험 경로를 제시한다. 진동과 같은 촉각 피드백으로 길을 안내하기에, 사용자는 스마트폰을 꺼낼 필요 없이 길을 따라가며 주변 환경에 집중할 수 있다. 첨단 기술을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고 효율적인 이동보다는 느리게 걷고 사유하며 탐험하는 방식을 제안하며 정서적인 연결을 추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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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프렌드 유튜브 채널

프로그래머 아비 쉬프만(Avi Schiffmann)은 목에 걸 수 있는 기기 ‘프렌드(Friend)’를 선보이며 AI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사용자의 외로움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기기는 흥미롭게도 쉬프만이 출장 여행에서 겪은 일에 기반해서 탄생했다. 그는 당시 프로토타입 단계의 AI 기기를 가지고 있었다. 기기와 대화를 나누던 그는 문득 기기가 업무를 보조하는 도구가 아니라,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친구처럼 느껴지길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의 대화 기기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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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프렌드 유튜브 채널

프렌드와 대화는 음성과 스마트폰 문자로 나눌 수 있다. 치료나 업무 지원을 위한 기기가 아니라, 그저 사람의 기분을 위로하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기존의 AI 기기들과는 확연한 차별성을 지닌다. 이를 통해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편의성을 높이는 데에도 있지만 보다 인간다운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데에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프렌드의 기능은 영화 ‘그녀(Her)’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실체는 없지만 항상 대화를 나누며 정신적인 교감을 누릴 수 있는 기능이 영화를 넘어서 일상에서 현실화되려 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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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프렌드 유튜브 채널

이처럼, 첨단 기술을 사람들의 감성과 정서에 연결하려는 시도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내면과 감정, 삶의 깊이를 포착하고 이를 보듬으려는 방향으로 기술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변화가 생각보다 더 자연스럽고 조용하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AI를 활용해 정신건강을 돌보는 일은 더 이상 낯설거나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챗GPT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심리적인 위안을 얻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생성형 AI는 사용자와 대화를 통해 사용자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을 분석하여 맞춤형 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속도와 접근성 측면에서도 기존의 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챗GPT에게 자신을 분석하거나 평가해달라고 요청하는 프롬프트가 유행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일이 늘어난 것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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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Stockcake

이러한 가능성은 공공 영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일부 공공기관에서 AI 기반 정신 상담 서비스를 도입하며 보다 많은 사람에게 심리적 돌봄을 제공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상담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나 사람과의 직접적인 대면 상담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다. 사람들의 이런 반응과 행동들은 다양한 정서 기반 AI 기술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AI를 기반으로 한 로봇 개발의 방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술이 인간적인 감각과 감정에 연결되는 시도가 늘어나면서, 우리는 감정과 기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시대에 서서히 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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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삼성전자 홈페이지

​올해 CES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분야는 단연코 ‘AI’와 ‘로봇’이었다. 크게 변화가 느껴졌던 점은 그동안 기술 중심적이었던 분위기와 달리 이번에는 감성과 연결을 시도한 기술이 다수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면은 가정용 로봇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몇 년 전부터 반려로봇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삼성전자는 올해도 업그레이드된 모델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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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TCL 홈페이지

여기에 중국 기업 TCL 또한 ‘에이미(Ai Me)’라는 반려로봇을 선보여 큰 관심을 얻었다. 이 로봇들이 주목받은 이유는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외형에 집 안의 일정 관리, 스마트 기기 제어 등 실용적인 기능은 물론이고 사용자의 감정에 반응하고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기능들을 현실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흐름을 보면, ‘1가구 1반려로봇’ 시대는 그리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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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로미 라카탄 온라인 스토어

물방울 형태의 외관과 커다란 눈망울이 절로 귀여움을 자아내는 인공지능 로봇 ‘로미 라카탄(Romi Lacatan)’ 또한 CES에서 큰 화제가 된 로봇 중 하나였다. 실시간 대화를 통해 정서적 지원을 돕기 위해 탄생한 이 로봇은 2020년부터 꾸준한 개발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상황과 정서에 맞는 대답을 꺼내 놓을 수 있어야 하기에 로봇은 사용자를 보고 듣는 것은 물론이고, 대화 내역을 기반으로 하여 사용자 맞춤형 답변을 제공한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억양은 물론이고 기존 기술보다 한층 더 인간적인 대화 방식을 구현해낸 것이 특징이다.​

​조만간 출시 예정인 로미 라카탄은 사용자의 감정에 반응하고 교감하며 현대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을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로봇과 함께 일상 속 감정을 나누고 추억을 쌓는 일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삶 속으로 스며드는 속도를 보면 이러한 변화 역시 머지않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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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유카이공학 주식회사 온라인 스토어

이처럼 인간 중심의 따뜻한 기술로 진화하는 AI와 로봇 개발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는 기업은 일본의 유카이공학 주식회사(ユカイ工学株式会社)다. 이 회사는 다양한 매체와 행사를 통해 감성적인 로봇들을 선보이며 꾸준히 주목을 받아왔다. 올해 선보인 로봇은 뜨거운 음식을 먹기 좋을 정도로 식혀주기 위해 ‘입김을 불어주는’ 기능을 가진 제품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장난감 같지만, 일상생활에서 겪는 소소한 불편함을 기술로 배려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유카이공학은 사람을 인식해 부끄러움을 타는 로봇, 아기처럼 손가락을 빠는 로봇, 살아있는 고양이처럼 꼬리를 흔드는 로봇 등, 인간의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다양한 로봇을 개발해왔다. 인간의 정서와 교감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여 로봇이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온 것이다. 이런 시도는 ‘로봇은 힘든 일을 대신해 주는 존재’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있기에, 로봇 기술 분야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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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유카이공학 주식회사 온라인 스토어

첨단 기술이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무조건 낯선 일만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책과 영화, 예술 콘텐츠 속에서 이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마주쳐왔다. 또한 기술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인간의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인간을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기술적인 전환점은 오래전부터 상상해온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AI와 로봇의 발전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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