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의 거장, 카렐 마르텐스 회고전

경계 없는 디자인의 세계를 담은 전시, <언바운드>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뮤지엄에서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이너 카렐 마르텐스의 첫 회고전 ‘언바운드’를 개최한다. 지난 65년간의 실험적 작업과 철학을 책, 우표, 타이포그래피 등 다양한 매체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의 거장, 카렐 마르텐스 회고전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뮤지엄에서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카렐 마르텐스(Karel Martens)의 첫 회고전을 선보인다. 마르텐스는 독창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실험적인 접근 방식으로 유명하며,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젊은 세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준 디자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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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목은 제본되지 않은 책, 마르텐스의 자유롭고 무한한 작업 방식, 그리고 그가 최초의 진정한 자유 그래픽 디자이너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서 따온 ‘언바운드’다. 전시는 건물에 새긴 모험적인 타이포그래피부터 책, 우표, 전화 카드, 벽지에 이르기까지 65년에 걸친 작품세계를 통해, 우연은 중요하며 실수는 늘 새로운 발견을 위한 기회라고 했던 마르텐스의 디자인 철학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생각하고, 보고, 실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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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el Martens, photo: Diederik Martens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은 국제적인 명성을 누려 왔다. 피트 즈바르트(Piet Zwart), H. W. 베르크만(H.W. Werkman), 빌렘 샌드버그(Willem Sandberg) 같은 선대의 모더니스트 전통을 이어받은 마르텐스는 1960년대부터 빔 크라우벨(Wim Crouwel), 얀 판 투른(Jan van Toorn)과 함께 그래픽 디자인계의 빅3로 불렸다. 크라우벨이 콘텐츠를 강조하는 기능적인 그리드로 유명했고, 투른이 활동적이고 개인적인 면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실험적이고 호기심 많고 자유로운 제작자인 마르텐스는 그래픽 디자인, 북 디자인, 타이포그래피를 바라보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켰다.

저는 확실하지 않은 것을 시도해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카렐 마르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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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ephone cards for PTT Telecom, 1994

마르텐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생각하고, 보고, 실험하는 것이다. 마르텐스는 색상 체계, 숫자, 단어 체계, 알고리즘을 가지고 놀면서 한 요소가 다른 요소에서 비롯되는 방식을 고수한다. 밝은 색 영역을 서로 겹쳐서 표현하고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법을 모두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르텐스의 이러한 자유로운 작업은 네덜란드 국영 우체국(PTT)과 Van Loghum Slaterus, Manteau, SUN(Socialistische Uitgeverij Nijmegen) 같은 출판사와 같은 고객을 위해 만든 디자인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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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cover Op weg naar een vaderloze maatschappij, 1968, published by Van Loghum Slate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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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cover of Klasse-onderwijs, 1971, published by Van Loghum Slaterus

경제성을 갖춘 디자이너

마르텐스는 작업 수완이 뛰어나 적은 자본으로 많은 일을 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그의 경제성은 창의적인 작업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낭비를 피하기 위해 그는 신문지와 스테델릭의 오래된 아카이브 카드의 용도를 변경한다. 또한 디자인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표지에서 텍스트를 시작하거나 여백에서 텍스트를 찾을 수 있다. 건축 잡지 <OASE>는 그의 가장 야심찬 실험을 보여주는 예시이며, 두 호수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마르텐스는 자신이 공동 설립한 Werkplaats 타이포그라피의 학생들과 협업하여 <OASE>를 디자인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딸인 아그예 마르텐스와 함께 디자인하고 있다.

또한 2019년 자녀인 클라르트예, 디데릭과 함께 ‘마르텐스 앤 마르텐스’라는 이름으로 협업을 시작한 이후 르아브르의 해변 오두막을 위해 자신의 컬러 시스템을 기반으로 수건을 제작하는 ‘Suite702’와 같은 텍스타일 협업을 진행하는 등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마르텐스의 디자인은 리버티 런던, 마하람, 에르메스, 덤, 팝 트레이딩 컴퍼니, 펜타그램 등의 텍스타일 디자인에도 적용되었다. 1998년 베르크플라츠 타이포그라피를 위해 그가 디자인한 테이블도 이제 기능성 컬렉션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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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leurs sur la plage by Karel Martens from 2017, translated to towels by Suite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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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el Martens, Couleurs sur la plage in Le Havre, 2017

마르테슨의 실천을 통한 학습

마르텐스는 2020년까지 고령의 나이까지 가르치며 네덜란드와 전 세계에서 후배 디자이너 세대를 양성하고 영감을 불어넣었다. ‘실천을 통한 학습’을 모토로 삼았던 그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연구하고 무엇이 효과가 있고 무엇이 효과가 없는지 스스로 알아내도록 독려했다.

마르텐스는 마스트리흐트의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 교수,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22년간 객원 교수로 재직했으며, 아른헴의 ArtEz에서 수년간 학생들을 가르쳤고, 재능 있는 디자이너 집단을 배출하고 계속 배출하고 있는 Werkplaats Typografie를 공동 설립했다.

마르텐스의 작품은 뉴욕 타임즈, 미국의 저명한 시각 커뮤니케이션 및 디자인 비평 전문 잡지 에미그레 등 여러 매체에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등의 미술관은 그의 작품을 콜렉션에 포함시켰다.

수상 경력도 화려한데, 선구적인 작업으로 BNO 피에트 즈바르트 상(2023), H.N. 베르크만 상(1993), A.H. 하이네켄 박사 예술상(1996), 게리트 노르트지 상(2012)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하이네켄상 수상 후 직접 디자인한 그의 대표작 ‘인쇄물’은 1998년 라이프치히 도서전에서 그 해 최고의 디자인 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는 제 자신을 예술가라기보다는 실험가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라는 단어가 좀 낡은 것 같다고 느껴져요.

카렐 마르텐스

카렐 마르텐스의 아카이브

30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 전시는 마르텐스의 풍부한 작품을 통해 발견의 여정을 떠나는 시간이다. 헤이그의 네덜란드 국립극장의 레터링과 같은 그의 모험적인 건물 레터링은 물론 <OASE>의 모든 호와 그가 디자인한 책, 타이포그래피, 우표, 전화 카드, 벽지 등을 포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또 다른 하이라이트로는 1517년 르아브르의 설립 법령을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디자인한 독창적인 색채 시스템으로 생동감 있게 재현된 르아브르의 해변 오두막 중 하나인 ‘Couleurs sur la plage’(2017)의 복제본이다. 그가 개발한 아이콘 뷰어는 라이브 이미지를 마르텐스의 아이콘 픽셀로 변환한다. 해당 갤러리에서는 2024년 암스테르담의 30km 제한 속도를 시각적일 뿐만 아니라 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도로 표면 디자인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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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텐스의 영감의 원천이 어디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콜렉션과 사진으로 이루어진 벽면은 관람객에게 독특한 미감의 전시 레이아웃을 경험하게 한다. 다양한 디자인이 담긴 디스플레이 유닛들은 마르텐스의 스튜디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마르텐스의 아카이브에 있는 수많은 스케치를 통해 그의 연구와 디자인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마르텐스가 디자인한 독서 테이블에서는 그의 디자인을 마음껏 훑어볼 수 있으며, 단편 영화가 상영되는 영상 갤러리에서는 마르텐스가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제자들이 그에게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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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el Martens, Monoprint, 2015

한편, 이번 전시에는 카렐 마르텐스, 이수정, 조르디 드 베텐이 디자인하고 로마 출판사에서 출판한 아티스트 북이 함께 제공된다. 암스테르담 스텔델릭 뮤지엄의 관장 라인 볼프스와 스텔델릭 뮤지엄그래픽 디자이너 겸 큐레이터이자 이번 전시 큐레이터인 토마스 카스트로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이 출판물은 뮤지엄에서 39.80유로에 판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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