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머무는 집,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시간

디뮤지엄 개관 10주년 기획전, 《취향가옥 2: Art in Life, Life in Art 2》

성수동 디뮤지엄, 바깥의 시끌벅적한 거리와는 전혀 다른 기운이 뮤지엄 유리 벽 안쪽에서 번져 나오는 듯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색채와 빛, 그리고 낯선 가구가 주는 질감이 한꺼번에 감각을 자극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내가 살고 있었던 집인 듯 익숙하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소에 초대된 기분이 포개진다.

취향이 머무는 집,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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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 Life in Art 2,SPLIT HOUSE, 2025, courtesy of D MUSEUM

성수동 디뮤지엄, 바깥의 시끌벅적한 거리와는 전혀 다른 기운이 뮤지엄 유리 벽 안쪽에서 번져 나오는 듯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색채와 빛, 그리고 낯선 가구가 주는 질감이 한꺼번에 감각을 자극한다. 발걸음을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공기의 온도와 밀도가 달라지고, 벽과 바닥, 천장과 가구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이 느릿하게 흐른다. 마치 오래전부터 내가 살고 있었던 집인 듯 익숙하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소에 초대된 기분이 포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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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 Life in Art 2, TERRACE HOUSE, 2025, courtesy of D MUSEUM

집에서 시작된 기획

디뮤지엄에서 이번에 선보이는 전시 《취향가옥 2: Art in Life, Life in Art 2》는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두 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선사한다. 본 전시는 2024년 11월 15일부터 2025년 5월 18일까지 뜨거운 반응 속에 진행된 《취향가옥: Art in Life, Life in Art》전의 메시지를 이어받는다. 전시 제목에 쓰인 ‘가옥‘은 단순히 건물 형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의 뿌리이자 핵심을 드러낸다. 두 전시를 합치면 1년 이상의 시간을 집이라는 공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긴 호흡으로 집에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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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 Life in Art 2, DUPLEX HOUSE, 2025, courtesy of D MUSEUM

전시를 총괄한 이정열 큐레이터는 전시에서 바라보는 집에 관해 정의하며, 이번 연작이 디뮤지엄 개관 10주년과 시기를 같이하게 된 배경도 덧붙였다. “집은 가장 사적이면서도 한 사람의 취향과 정체성이 어떤 곳보다 짙게 응축된 원초적인 장소입니다. 우리가 일상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집이에요. 가족과 관계, 기억과 취향이 모두 집 안에 들어 있죠. 이런 본질적인 공간에 예술을 들여놓으면, 관람객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태도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개의 집, 세 가지 라이프스타일

​전시는 세계적인 거장부터 주목받는 신진 작가, 전통 공예에서 파인 아트,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허무는 다채로운 작품과 컬렉션 800여 점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층별 공간에서 선보인다. 이를 통해 예술 작품과 디자인 오브제가 사람과 공간을 특징짓는 매개가 되고, 개인의 삶의 방식과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음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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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 Life in Art 2, SPLIT HOUSE, 2025, courtesy of D MUSEUM

전시장은 세 개의 주요 층으로 구성된다. 첫 공간인 M2 스플릿 하우스는 베이지와 브라운 톤이 주는 포근함 속에 김창열, 이우환, 피카소 등 거장의 작품이 놓여 있다. 김창열의 물방울 회화는 빛을 머금은 채 표면 위에 맺혀 있고, 이우환의 추상은 고요하지만 강한 존재감으로 벽면을 채운다. 큐레이터는 이 공간을 바라보며 “편안함과 클래식한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 색감과 재료의 조화를 섬세하게 조율했습니다. 관람객이 작품 앞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시선의 쉼’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였죠.”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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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 Life in Art 2, TERRACE HOUSE, 2025, courtesy of D MUSEUM

M3 테라스 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기면 차분하고 절제된 모노톤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 층의 테마는 ‘셀프 리추얼(Self Ritual)’. “이곳은 하루 중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 반복된 습관을 통해 마음을 정돈하는 순간을 표현한 공간입니다. 작품과 공간 사이에 여백과 반복을 두었어요. 관람객이 자신의 속도로 걸으며, 생각을 비우고 감각을 회복하는 경험을 하길 바랐습니다.”라는 큐레이터의 말처럼 하종현의 단색화와 김웅의 추상, 코엔 테이스의 중첩 이미지, 주명덕과 요아킴 슈미트의 사진이 여백과 반복 속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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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destrian vibes study, 2004_neugerriemschneider, Berlin, 2007 – 2004_Photo: Jens Ziehe

특히 이정열 큐레이터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보행자 움직임 연구(Pedestrian Vibes Study)〉(2005)에 주목한다. “엘리아슨이 10대 시절 브레이크댄서를 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만든 작품인데, 몸의 움직임과 시간, 빛이 어우러진 일종의 시각적 의식이에요. 단순히 멋진 이미지가 아니라, 일상의 리듬과 움직임을 성찰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작가는 LED 조명을 몸에 부착하고 어둠 속에서 나선형으로 움직이며 생긴 빛의 궤적을 사진 속에 추상적으로 그려낸다. 이는 일상의 반복을 성찰하는 M3 테라스 하우스의 테마인 ‘셀프 리추얼’과 연결되기도 하며, 자기 내면의 움직임을 시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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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 Life in Art 2, DUPLEX HOUSE, 2025, courtesy of D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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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 Life in Art 2, DUPLEX HOUSE, 2025, courtesy of D MUSEUM

M4 듀플렉스 하우스에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진다. “이곳은 복고와 미래가 공존하는 ‘레트로 퓨처’입니다. 다양한 감각이 뒤섞여도 산만해 보이지 않도록 리듬감 있는 배치를 고민했어요. 시선을 빼앗는 작품이 많지만, 각각의 존재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하나의 장면으로 묶이도록 했습니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증명하듯 백남준의 대형 설치작품 <사과나무>와 <즐거운 인디언>이 강렬한 색과 빛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 사라 모리스와 박미나의 패턴 회화, 홍승혜의 조형 실험, 이미혜와 파스칼 몽테이의 화려한 색채가 한 공간에 뒤섞이며 강렬한 시각적 잔상을 남긴다.

개인 컬렉터들의 프라이빗 컬렉션,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여정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매력은 ‘개인 컬렉터들의 프라이빗 컬렉션’이다. 각 하우스 내부에 마련된 ‘키치 유니버스’에서 컬렉터들의 소장품을 조명한다. 서프보드를 수집하는 레트로 서핑 컬렉터 이종호, 빈티지 넥타이와 미니카를 모으는 컬렉터 K 등 진짜 수집의 세계가 온전히 펼쳐진다. 그런데 왜 ‘키치’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기자의 물음에 큐레이터는 강조했다. “가상의 연출이 아니라 실제 수집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키치는 종종 과장되거나 저평가되는 스타일로 여겨지곤 해요.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키치를 순수한 애정과 열정이 깃든 세계로 새롭게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을 어른아이의 감성을 돌아보기를 제안하고, 그들을 통해 키치를 귀엽고도 진지한 취향의 색다른 표현으로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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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 Life in Art 2, COLLECTORS SOPT, 2025, courtesy of D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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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 Life in Art 2, COLLECTORS SOPT, 2025, courtesy of D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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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 Life in Art 2, COLLECTORS SOPT, 2025, courtesy of D MUSEUM

그는 이번 전시를 “관람객이 전시 공간 곳곳에서 가상의 삶을 투영하고 자신의 취향을 마주하는 경험”으로 정의하며 다음과 같이 기획의 소회를 전했다. “집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예술과 삶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고, 나아가 자신의 감각과 취향을 찾아보는 특별한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곳을 나서며 ‘아, 나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 있다면, 그게 바로 전시의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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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 Life in Art 2, DUPLEX HOUSE, 2025, courtesy of D MUSEUM

성수동의 한 건물 속, 각기 다른 표정을 지닌 세 개의 집과 그 사이의 작은 방들은 관람객에게 예술이 스며든 생활의 풍요로움을 체험하게 한다. 그리고 그 여정 끝에 남는 것은 내 삶 속 어디쯤엔가 이미 자리하고 있었을 나만의 취향일지도 모른다. 전시는 2026년 2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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