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신의 확장을 논하다, SHARE X INSIGHT OUT
급변하는 시대에 디자이너는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 또 어떤 관점과 소양을 갖추고 일해야 할까? 월간 〈디자인〉과 디자인 전문 교육 플랫폼 SHARE X가 함께하는 ‘SHARE X INSIGHT OUT’은 그 답을 찾는 여정이다. 디자인 필드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전문가들과 콘퍼런스를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현재 디자인 신에서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 첫 주제는‘그래픽 신의 확장’이다. 오는 9월 24일에 열리는 콘퍼런스에 앞서 이 주제를 활발히 실천해온 다섯 팀을 만났다.

참여자
채병록 그래픽이라는 시각 언어를 통해 고유한 조형 언어와 예술적 관점을 구축해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컨설팅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chae_byungrok
권준호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 공동대표. 순수 그래픽 디자인에서 출발해 현재는 시각을 기반으로 한 토털 디자인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hello_ep
석윤이 북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해, 현재는 디자인스튜디오 모스그래픽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모스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mohs.official
장기성 트라이앵글-스튜디오 대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뒤 그래픽 디자이너로 전향해, 현재는 제품·브랜드·패키지디자인 등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triangle_studio
조은주·함영훈 브랜드 디자인 컨설팅 스튜디오 ORKR을 운영하며, 패션 디자인과 그래픽 디자인을 융합해 독창적인 비주얼을 선보이고 있다. @orkr_official

확장의 이유
오늘날 그래픽 디자인 신이 확장을 거듭하는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한다. 시대적·사회적 맥락과 매체의 변화, 클라이언트와 디자인 생태계 자체의 전환도 확장을 촉진한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디자이너로서 한층 더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일 것이다.
채병록 그래픽 디자인 확장이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명징한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분명하다. 대학에서도 편집 디자인이라는 수업명 자체가 없어지는 추세다. 전통적인 편집 디자인의 개념이 UI나 UX, 때로는 브랜딩 안에 녹아들며 확장된 수업이 이뤄진다. 커리큘럼 자체가 확장성을 띠는 것이다. 이는 시대적 맥락과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북 디자인이 그래픽 신에서 매체의 주축이었다면 지금은 디지털 기반으로 넘어간 것이다.
석윤이 디자이너가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 자체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다. 내가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막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양질의 해외 디자인 서적을 얼마나 많이 접하고 탐구하느냐가 곧 작업의 퀄리티로 이어졌다. 그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래픽을 둘러싼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와 경계 없는 디자이너의 활동이었다. 어렴풋이 그래픽 디자인이 종착지가 아닌 일종의 발판이 될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례를 곧바로 접할 수 있게 됐다. 한국 디자인 신의 시야 자체가 넓어진 것이다.
권준호 디자인 신 자체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디자이너가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의뢰로 작업을 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 답을 표현하는 수단을 찾다 보니 결과물도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티셔츠나 굿즈, 팝업 등으로. 일련의 활동은 전통적인 그래픽 디자인 신에서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장기성 예전에는 디자이너의 활동분야 자체가 구분되어 있었다. 기업의 디자인 조직에 속한 디자이너와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로 활동하는 창작자가 이분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독립 스튜디오를 운영할 것 같은 성향의 친구들이 스타트업이나 기업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보이더라. 그러면서 시야 자체가 조금씩 확장되고 달라졌다.
ORKR 나(조은주) 역시 스튜디오 설립 전까지 주로 대기업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했다. 조직의 업무 프로세스도 충분히 익혔고 상업적 흐름도 파악했지만 막상 큰 조직 안에선 이걸 발현할 기회가 드물더라. 좀 더 패셔너블하고 전위적인 디자인을 구사하고 싶었고 수요가 있을 것이란 믿음도 어느 정도 있었다. 솔직히 ‘굶어 죽기야 하겠어’라는 마음으로 독립을 했는데 생각보다 소규모 패션 하우스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많이 연락을 해오더라. 확실히 ORKR은 인스타그램 덕을 많이 봤다. 개인 PR이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 비교적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

장기성 팬데믹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산업 영역 자체에 변화가 생기면서 문화와 사회도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그래픽 디자인 신은 문화나 산업에 어느 정도 기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산업군과 맞물리며 함께 변화한 것이다. 예전에는 그래픽에 다소 보수적이라고 여겼던K-팝이나 대기업의 K-뷰티, 패션 분야도 그래픽 디자인 신의 문법을 적극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래픽 신에서 소화할 법한 디자인 언어가 대중적인 결과물 안에 스며든 것이다.
채병록 동의한다. 선배 디자이너들은 보통 직원이 10명, 많게는 20~30명에 육박하는 기업형 에이전시를 운영했다. 맡은 프로젝트도 규모 있는 기업의 디자인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요즘은 개인화로 인한 니치 마켓 등의 소규모 타깃을 위한 맞춤형 디자인 수요가 증가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일이 생기는 것 같다. 경쟁입찰에 들어가 일을 따오는 전형적이고 체계적인 루트가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업무가 전개되는 것이다. 앞서 석윤이 대표가 이야기한 협업도 마찬가지다.
석윤이 루트가 다양하다 보니 의뢰의 범주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인쇄용 포스터 하나만 의뢰했다면 지금은 거기에 웹용 포스터나 굿즈까지 제안해달라고 한다.
권준호 세대의 변화도 한몫한 것 같다. 10여 년 전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만 해도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냐’고 묻는 이가 많았다. 디자인 회사는 용역 업체라는 인식이 강할 땐 자체 프로젝트는 그저 시간 낭비, 돈 낭비였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클라이언트도 디자인 스튜디오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 단지 잘나가는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어떤 성향이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가 디자이너를 선택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그 자체가 셀프 브랜딩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론 그래픽 디자인 신에 대한 통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왜 영문 서체는 꼭 헬베티카나 유니버스를 써야 하지?’,‘꼭 글자 장평은 이 원칙을 고수해야 하나?’ 등의 의문이 든 것이다. 그래서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부터 폰트나 색을 과감히 사용했다. 별색을 8~10도까지 써보기도 하고. 과거 GIF나 플래시를 적극 활용하거나 30초짜리 모션 그래픽으로 서사를 입히는 시도도 같은 맥락이다. 오늘날 웹사이트 제작에 이르기까지 확장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석윤이 커리어를 막 시작했을 때만 해도 북 디자이너라는 명함 자체가 어색했다. 편집 디자이너라는 직함이더 익숙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북 디자이너라는 말도 틀에 갇혀 보인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벌어진 엄청난 변화다. 대중과 디자이너 모두 더 이상 경계의 제약을 의식하지 않게 됐다.
채병록 디자이너의 끊임없는 표현에 대한 탐구와 호기심이 이러한 변화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확장의 동인은 ‘더 잘하고 싶은 욕심’ 아닐까?
권준호 맞다. 예전에 모 유명 디자이너가 참여한 행사 프로젝트가 생각난다. 당시 그가 키 비주얼과 포스터 등 메인 작업을 했는데 막상 버스 정류장의 광고나 지하철 광고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결과물은 너무 이상하더라. 클라이언트가 디자인 애플리케이션을 다른 외주대행 업체에 맡긴 탓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욕심이 생기더라. 구두 수선집에 붙은 광고 배너조차 우리의 손길이 닿았으면 하는 욕심 말이다.
확장의 실천과 성장통
확장은 추상적인 말이 아니다. 다분히 실천적이고 그만큼 현실적이다.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엔 늘 진통이 따른다. 이를 극복하게 만드는 건 훌륭한 조력자와 약간의 기개, 영리한 전략이다.
석윤이 모스그래픽을 설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식 구독 콘텐츠 서비스 ‘롱블랙’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왔다. 웹 디자인까지 포함된 일이었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롱블랙 측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달라’고 했고, 그래서 그림으로 구상한 뒤 내부 개발자와 맞춰가며 진행했다. 원래는 콘텐츠가 워낙 괜찮으니 디자인만 살짝 얹을 생각이었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권준호 대표 말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식으로 제안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재미있었던 것은 클라이언트가 뜻밖의 제안에도 긍정적으로 수용해주었던 것이다. 심지어 사용성 측면에선 조금 불편할 수 있는 디자인조차 포용했다. 그런 지원 사격이 좀 더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ORKR 우리도 그런 경우가 있다. 스튜디오 초기에는 주로 로고나 이에 따른 시스템 가이드, 웹사이트 등 부분적인 일만 들어왔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스스로 만족이 안 되더라. ‘이게 로고만 바꿔서 될 일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조금씩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서 A부터 Z까지 다 손을 대는 방향으로 제안을 했다. 사실 이 과정이 더 어렵다. 리소스도 많이 들고. 하지만 그게 아니면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만들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때부터 그래픽을 기반으로 화보 연출 등을 모두 디렉팅하기 시작했다. 당시 025S라는 브랜드의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희한할 정도로 우리를 믿어주었다. 덕분에 네이밍부터 향 개발, 금형 제작, 심지어 플래그십 스토어 디렉팅까지 경험할 수 있었다. 결국 확장에서 중요한 것은 클라이언트의 신뢰가 아닐까 싶다.

권준호 그래서 디자이너가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무척 중요한 것 같다. 확장을 위해선 외부와의 협업이 필수다. 비단 클라이언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쇄소, 시공사, 폰트 디자이너, 3D 개발자…. 일이 성사되려면 이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종종 클라이언트의 태도에 상처받을 때가 있는데 이걸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마디로 갑질하지 말자는 것이다.(웃음)
채병록 오랫동안 혼자 작업을 해왔고 그것이 편해 혼자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의뢰받는 경우가 많다. 사실 조직 생활보다는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한다. 권준호 대표가 말한 것처럼 어느 정도 선에 있는 디자이너는 내버려두면 어련히 알아서 잘한다. 무엇보다 세심한 부분까지 건드려 작업하고 싶지만 조직 내 다양한 컨펌 라인과 담당자의 선호에 맞춰 진행하다보면 그게 쉽지 않더라. 그래서인지 예산이나 기간에 쫓기는 것보단 좀 더 주체적으로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촉박한 일정 속에 완성한 프로젝트를 일주일 만에 내리는 모습을 보며 지나치게 소모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쓰는 시각 언어가 더 많은 세계에서 어떻게 작동할까?’를 궁금해했고 특히 일본 유학 시절, 시각 문화가 생활 전반과 얼마나 깊이 결합되는지를 보면서 ‘그래픽은 특정 분야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런 시스템을 배우고 돌아와 한국에 적용해보고 싶기도 했다. 결국 디자이너의 조금 다른 역할을 상상했던 것이 확장의 초석이 됐던 것 같다. 내 경우 사업 차원이 아니라 창작하는 대지의 확장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또 디자이너로서 오래 지속하려면 한 장르에만 머무르기보다 다른 분야와 맞물리며 확장하는 게 필수라고 생각한다.
석윤이 하지만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나는 디자인 스튜디오 모스그래픽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모스를 함께 운영하는데 두 사업의 속도 자체가 서로 다르다. 전자는 데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늘 빠르게 돌아가는 반면 브랜드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굉장히 긴 호흡을 요구한다. 잘 만든 제품 하나가 1년을 먹여 살리기도 하니까. 대신 제품이 시중에 풀리는 순간부턴 속도가 엄청나게 붙는다. 그 둘 사이를 균형 있게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몰랐던 유통이나 수수료 문제로 씨름할 때도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나는 디자이너인가, 사업가인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도 겪는다.(웃음) 요즘엔 굿즈 제작을 넘어 어떻게 해야 더 판매가 잘될지도 함께 고민해달라는 의뢰가 온다. 세일즈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채병록 나 역시 확장 과정에 진통이 컸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모 박물관으로부터 의뢰가 왔는데 결과물이 일본색이 짙다며 계속 수정 요청을 하더라. 솔직히 이해가 안 갔다. 내 배경을 보고 생긴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권준호 그럴 것 같다. 예전에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김어진 대표의 작업을 갖고 클라이언트 미팅을 한 적이 있는데 영국 스타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웃음)
채병록 결국 프로젝트가 무산됐다. 그 후로 그래픽 디자이너이지만 무엇보다도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에 몰입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세상에 너무 많은 표현법이 있어 굳이 균형과 일반성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지금 돌이켜보면 작업의 색을 맞추기보다 의뢰자가 나의 색을 원하고 이해해서 찾아오도록 준비한 듯하다. 긍적적인 의미를 담은 한국적이고 장식적인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판매하기도 하고 ‘Layers’, ‘IFIO’ 등의 가먼트를 이용한 자주적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직접 판매하기 위해 소비자가 좋아하는 부분을 찾아내는 눈치를 길러야 했고, 의류에 대한 이해와 제작 등을 익히기 위해 시장 원단 상인과 샘플실 등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겪지 못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면 그래픽이 옷감 위에서 질감과 주름, 빛을 만나 전혀 다른 생명력을 갖는 과정을 보니 마냥 신기하고 좋았다.
장기성 확실히 확장에는 부단한 노력이 따르는 것 같다. 나는 워낙 다양한 방면에 관심이 있다. 패션, 스포츠, 가구, 건축과 공간, 미술, 만화…. 이러한 호기심이 자연스레 일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심지어 생리대나 콘돔 프로젝트를 맡은 적도 있다.(웃음) 한 가지 방식을 고수하는 것에 금방 질리는 타입이라 의도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두루 진행하려고 하는 편이다. 브랜드가 다 다른데 솔루션이 같을 순 없지 않나? 프로젝트를 맡을 때마다 낯선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결국 시간이 흐른 뒤에 보니 그것들이 나의 경험치가 되어 있더라. 늘 성장한다는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임했던 것 같다.

권준호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에서 ‘성실함이 무기’라는 가사를 참 좋아한다. 결국 묵묵히 해나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듯하다.
채병록 집요함과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 필요하다. 이는 검열이 없는 환경에서 고증과 왜곡을 피해 형태를 생성해야 하는 디테일이 요구되며, 그래픽 디자인의 흐름, 양상, 동향을 의식하며 시대와 매체에 맞게 그리고 독창적으로 생각해내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즉 남이 하지 않고, 못하는 것을 해야 하는 의무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장기성 원론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래전에 소녀시대의 콘서트 아트 디렉팅을 맡은 적이 있는데 아직 혼자 일하던 때였다. 착장부터 공연 포스터까지 오롯이 맡아야 했는데 쉽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홀로 현장에 가는 게 민망해서 지금의 아내가 된 여자 친구를 스태프인 양 데리고 가기도 했다.(웃음) 사실 일을 하면서 클라이언트로부터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팀이 몇 명 정도 되느냐?’였다. 솔직히 ‘내 작업을 보고 연락했는데 왜 규모가 문제가 되지?’ 싶었지만 한편으로 조직적 체계를 만드는 것을 신경 쓰게 되더라.

설득은 나의 힘
일을 확장한다는 것은 규모가 커진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고 마냥 직원을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결국 마음을 모아 하나의 디자인을 완성한다는 것은 도반 같은 동료를 찾는 것이 아닐까? 결국 지향점은 성장 자체가 아니라, 스튜디오의 고유한 색을 지키면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데 있었다.
석윤이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니 우리도 결국 규모를 늘리게 되더라. 처음에는 직원과 단둘이 운영했는데 배송이나 CS만 일주일 내내 붙들고 있게 됐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인턴을 기용했지만 브랜드 운영에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어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하물며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피드 하나도 다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권준호 다양한 영역에서 작업을 이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팀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여지도 있었지만, 일상의실천은 일부러 소규모 체제를 유지하며 실력 있는 외부 협업자들과 함께하는 방식을 택했다.

장기성 우리도 채용을 할 때 다양성을 고려한다. 그래픽 기반에서 출발했지만 브랜드 작업도 하는 곳이라, 양극단을 이해하고 그 사이에서 ‘제약의 미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1년에 한 명 정도만 뽑는다. 그렇게 들어온 직원에게는 ‘1년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흐름과 프로세스를 경험하는 데 집중하라’고 말한다. 네이밍, 슬로건, 3D 패키징, 아트 디렉션, 제품 디자인 등 워낙 범위가 넓으니까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갖게 하는 것이다.
ORKR 우리는 애초에 기준이 달랐다. 스튜디오의 색이 뚜렷하다 보니, 그래픽 실력만큼이나 어떤 브랜드를 많이 알고 있느냐가 중요했다.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분위기도 자유로웠다. 일하는 시간만큼 노는 시간을 두고 공감대를 나누는 식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회사 밖에도 퍼져서 홍보를 하지 않아도 클라이언트들이 궁금해하며 찾아오는 효과가 있었다.
채병록 요즈음 앞서 말한 책임감에 대해 많은 스트레스와 고민이 있다. 일정이 촉박하거나 생각을 구현하기 어려운 매체와 작업할 때, 레터링과 모션 등은 몇몇 동료와 함께 작업하려한다. 작가라기보다는 그래픽디자이너로서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홀로 일하다 보니 작업에 대한 고증과 검열도 스스로 해야 한다. 여러 이유로 스튜디오 운영을 멈추고 혼자만의 확장을 고민하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나 스스로의 확장이라 할 수 있겠다.

권준호 팀으로 작업을 한다는 건 또 다른 고민의 지점을 마주하게 한다. 우리는 작업을 공개할 때 ‘일상의실천’이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다. 작업자 개인의 기여는 내부적으로 충분히 존중하되, 외부에 작업을 소개할 때는 스튜디오의 정체성 아래 공유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물론 일상의실천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등 공식 채널에서는 작업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의 크레디트를 표기한다. 이를 통해 작업에 대한 소속감과 책임감을 함께 지니도록 한다. 개인 크레디트를 존중하면서도 팀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모두에게 균형 있는 방식에 대해 팀원들과 함께 다양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ORKR 마음 맞는 동료를 찾은 것은 행운이다. 스튜디오의 성격상 최대한 다방면에 관심이 있고 소화할 역량이 있는 인재를 기용하긴 하지만 막상 실무에 투입되면 다들 어려워한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나중에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사람을 뽑기 때문에 어떻게든 헤쳐나가는 편이다. 하지만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도움이 될 것 같은 프로젝트만 하려는 팀원은 함께하기가 정말 어렵다. ‘이런 프로젝트는 안 하고 싶다’고 의사 표현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럴 땐 참 난감했다.
석윤이 디자인이라는 게 감각의 결이 통하면 단숨에 나오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게 어긋나면 무한정 늘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합을 맞추는 동료가 중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장기성 대표의 말에 동의한다. 나와 오랫동안 함께 일한 직원이 있다. 처음 그의 포트폴리오를 봤을 때 아무런 색깔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인하우스 시절 팀장으로서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봐주고 피드백해준 경험을 살려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처음엔 특별한 개성이 드러나는 작업이 아니었지만, 스스로 아이덴티티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니 일취월장하더라. 지금은 회사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직원이 됐다.

각자의 숙제, 각자의 확장
‘SHARE X INSIGHT OUT’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이들의 확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이 처한 상황과 각자가 꿈꾸는 확장에 대해 물었다.
장기성 트라이앵글-스튜디오가 뷰티 브랜드들과 협업한 데에는 ‘힌스’의 성공이 주효했다. 당시만 해도 기존 뷰티 브랜드의 그래픽과 다른 문법을 차용했는데 브랜드가 성공하며 동종 업계의 프로젝트가 많이 들어왔다. 스튜디오 운영 차원에선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하지만 고민도 있다. 외부에서 트라이앵글-스튜디오를 너무 ‘뷰티 프로젝트 잘하는 디자인 회사’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시선이 때로 양날의 검처럼 느껴진다.
ORKR 사실 우리는 요새 스튜디오의 다음 챕터를 고민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전위적이고 패셔너블한 나(조은주)의 성향이 작업에 짙게 반영됐다. 결과물도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와 결이 비슷한 스튜디오가 늘어났다. 이것만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것 같다. 결국 함영훈 공동대표의 색깔이 우리의 다음 스텝을 이끌어갈 것으로 본다. 나보다 체계적이고 안정된 디자인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나의 색깔에 그의 색깔을 덧입히는 방식을 고민 중이다.
채병록 앞서 강의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뗐는데 실제로 대학교 커리큘럼에서도 확장에 관해 많이 가르친다. 문제는 그것이 과목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툴 중심의 교육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툴은 시간이 흐르면 무용해진다. 디자인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확장할 수 있는 지구력과 근육을 길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권준호 우리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확장을 이어왔다. 첫째는 표현과 기술의 확장이다. 영국 유학 시절 오픈소스 웹코딩이 막 등장했는데 귀국 후 공동 창업자인 김경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의 공예주간 프로젝트를 맡게 됐는데 제안을 받은 것은 포스터였지만 웹사이트도 손을 대야 할 것 같았다. 앞서 말했듯 통합적인 브랜딩을 위해서 말이다. 사실 당시만 해도 스튜디오가 웹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이었지만 김경철 대표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어 이 일을 꼭해야 한다고 설득했다.(웃음) 그게 기술 확장의 출발점이었다. 둘째는 운동으로서의 디자인 확장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광화문에서 이를 주제로 한 설치 작업을 선보인 적이 있는데 당시 유족들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로고와 웹사이트, 책 작업까지 10년 넘게 이어왔다. 최근 진행한 ‘시대정신’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디자인의 역할 역시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은 글 쓰는 디자이너로의 확장이다. 보통 디자이너들은 작업을 공개할 때 이미지와 함께 ‘누구를 위한 작업’ 같은 한 줄 설명만 붙인다. 하지만 나는 의문이 있었다. 왜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과업지시서로만 자기 작업을 설명할까? 디자이너가 자기 언어로 자기 작업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업마다 기록을 남겼고, 이를 모아 책으로 엮기도 했다.
채병록 결국 확장이란 개인의 브랜딩이자 선구자적 모험이자 사업의 기획이기도 하다. 결코 쉽지 않으며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디자이너들이 전략적으로 확장 범위를 설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외롭고 두렵고 스트레스도 받겠지만 반대로 많은 희열과 삶과 동일시되는 작업이라는 동반자를 얻게 되는 즐거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