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살린 마을, 옥은희 카리미즈안 대표
월간 〈디자인〉이 특별한 프로그램을 하나 마련했다. 디자인을 테마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 ‘어바웃디 인사이트 트립’을 개발한 것. 그 첫 행선지는 일본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오바마다. 면적 약 50Km², 인구 7400명 남짓한 이 작은 시골 마을이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터들이 집결한 커뮤니티가 됐는데, 그 중심에 옥은희 카리미즈안 대표가 있다. 2002년 건축가 겸 디자이너인 남편 시로타니 고세이와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이곳을 관광지이자 디자인 클러스터로 변모시켰다. 시로타니는 2020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옥은희 대표는 이곳에 남아 지역의 창작 생태계를 가꾸고 있다.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떠나는 여행에 앞서 옥은희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마을 이름이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다. 어떻게 이곳에 정착하게 됐나?
시로타니 고세이의 고향이 오바마 마을이었다. 일본은 농어촌의 고령화와 소멸화가 한국보다 훨씬 빨리 진행됐고,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로타니는 이탈리아 등에서 배운 디자인 철학으로 고향을 다시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나 역시 대도시 생활에 회의가 들었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역에도 패키지, 명함, 간판 등 디자인이 필요한 곳은 많았다. 이곳에서도 우리의 역할이 있을 거라 생각해 2002년 ‘스튜디오 시로타니’를 열었다.

일본 나가사키현 오바마초의 카리미즈안과 서울 서촌의 카리미즈 서울 대표이자 도예가다. 남편인 시로타니 고세이와 함께 오바마 마을로 이주해 이곳을 대표적인 지역 재생 사례로 성장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karimizuan
마을을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디자인의 힘으로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약 80년 된 카리미즈안 가옥을 리모델링해 셀렉트 숍, 일본식 카페 ‘깃사’, 갤러리, 디자인 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는 거점 공간을 만들었다. 2010년부터는 후쿠오카현과 나가사키현의 두 대학교 학생들, 건축가, 디자이너 등과 함께 집집마다 방문해 마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조사하며 정착의 발판을 마련했다. ‘카리미즈안 디자인 마켓’도 그때 시작했다. 이 행사는 단순히 지역 생산품을 만드는 장을 넘어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나 제품까지 판매하는 플랫폼이 되었다. 이후에는 마을 주민은 물론 나가사키현 전역의 사람들이 찾는 축제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또 가을마다 디자인 캠프를 열어 지역 재생과 마을 만들기 사례를 공유했다. 다른 지역의 실무자들이 모여 각지에서 일어난 변화를 이야기하고, 토론과 교류, 네트워킹이 이루어지는 장이 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양한 커뮤니티가 생겨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부부가 이 지역에서 ‘잘 사는 것’이었다. 지방에서도 즐겁게 생활하고, 비록 청빈하더라도 품격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일련의 노력이 오바마 마을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마을을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제는 빈집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주민이 많아졌다. 그중 상당수가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다. 마을의 낡은 집을 고치다 아예 디자인·건축사 사무소를 연 사람, 지역에서 난 식물로 염색 작업을 하다 이곳에 정착해 소금·차·후리카케 등으로 재가공해 큰 사업을 일군 여성 아티스트, 자연 그대로를 식단으로 삼는 마크로비오틱 전문가, 일본 전통 공예 브랜드 ‘나카가와 마사시치 쇼텐’에서 일하다 카레 전문점을 연 사람까지, 다채로운 삶이 이 작은 마을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자리 잡은 사람들의 모습이 또 다른 이주를 부르고, 이제는 마을을 넘어 하나의 ‘구역(area)’이 형성됐다. 디자인 마켓이나 캠프가 열릴 때는 직접 제작한 ‘인물 지도’를 나눠주는데, 방문객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흥미로운 사례도 있다. 시로타니 스튜디오에서 4년간 함께 일한 후루쇼 유다이란 친구가 있었다. 독립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더 큰 도시로 나가리라 생각하며 응원했지만, 그는 오바마 마을에 자신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 후루쇼 유이와 결혼해 이곳에서 터전을 일구고 있다. 지금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라, 마을의 디자인 환경을 함께 키워가는 동료로서 공생하고 있다.


월간 〈디자인〉과 함께 특별한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이곳에서 무엇을 경험할 수 있나?
지난해 도쿄 미드타운에서 선보인 〈프로제타지오네Progettazione〉전의 압축판을 투어 기간에 만날 수 있다. ‘프로제타지오네’는 이탈리아어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시로타니는 엔초 마리와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등 거장들이 성숙시킨 이 개념을 이탈리아에서 체득했고, 일본 오바마 마을에 적용해 지역을 재생시켰다. 그 전 과정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디자인이 마을과 전통 공예, 그리고 제품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었는지, 또 그 영향을 받은 이주자들이 어떻게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또 앞서 소개한 후루쇼 유다이·유이 부부를 비롯해 지역 브랜딩과 투어, 디자인·건축·인테리어 등을 아우르며 활동하는 메지로 스튜디오의 야마자키 키슈·카스미 부부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채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크리에이터들의 작업 공간도 방문할 예정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디자이너로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민해보길 바란다. 이런 삶의 방식이 자신과 맞는다면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볼 계기가, 반대로 맞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모색해볼 계기가 될 것이다. 여기에 온천과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향토 음식은 덤이다.
어바웃디 인사이트 트립

일정 10월 30일(목)~11월 2일(일), 3박 4일
지역 일본 하사미, 오바마, 나가사키
인원 12명
여행 비용 240만 원 *비용 불포함 내역 개인 경비, 항공권
문의 02-2262-7349, 카카오톡 친구 M플러스멤버십
신청 designhouse.co.kr/classtour
날짜별 주요 일정
1일 차
규슈 도자기 문화관, 학산 도자기 본사와 니시야마 본사 방문
2일 차
오픈 스튜디오: 카리미즈안, 메지로 크라프트,케 시키 디자인 스튜디오
3일 차
오픈 스튜디오: 옥은희 작가의 세라믹 스튜디오, 목공 쇼룸 KO-SHA
*자세한 내용은 신청 페이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