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그 초상화, 김대유 작가의 회화 세계
욕망과 상실 그리고 회화에 대하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 작품이 등장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은 김대유 작가. 지난 7월 11일부터 8월 14일까지 암스테르담의 갤러리 앤서울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 일상의 사물부터 역사적 유물, 풍경과 얼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배열하며, 소유와 기억, 욕망과 상실의 경계에 놓인 회화적 탐구를 이어갔다. 그의 예술적 시선과 회화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한다.

김대유의 캔버스에는 온갖 것들이 있다. 일상의 소품부터 역사적 유물, 다양한 식물과 풍경, 스크린 너머의 얼굴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다양한 이미지를 포착하며, 그것들을 반복적으로 배열해 시각적 목록을 만든다. 일종의 ‘욕망의 회화’다. 사물은 실제 소유나 경험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상과 욕망 속에서 형성된다. 무엇을 갖고자 하고, 또 무엇을 기억하려 하는가.


지난 2025년 7월 11일부터 8월 14일까지 암스테르담에 소재를 둔 갤러리 앤서울(Enseoul)에서 작가의 개인전 <Belonging among belongings>이 열렸다. 소유하려는 욕망과 그 불가능성 사이의 역설을 다룬다. 작품 속 사물들은 끊임없이 재맥락화되며, 결국 남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욕망한 흔적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가지려는 것’과 ‘존재하는 것’ 사이의 긴장을 탐구해온 작가는 전시를 통해 소유의 목록이 아닌,욕망과 상실, 투영의 열린 목록을 제시해왔다. 우리가 가장 간절히 붙잡고 싶어 하는 이미지와 기억, 시간이 손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동시에 왜 우리가 다시 붓을 들고 그것을 그려내려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작가에게 기억과 붙잡음, 소유와 욕망 그리고 회화에 대해 물었다.

Interview
김대유 작가

최근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전시 준비 과정과 출발점은 무엇이었나요?
작업을 해 나간다는 건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면서, 그 안에서 나를 알아가고 발견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는 제 수집욕에 관한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갖고 싶었던 것들을 그려 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점차 소유와 존재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탐구한 소유, 기억, 욕망의 경계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갖고 싶은 것을 그리면서 ‘소유욕’이라는 감정 자체가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회화를 통해 무언가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이유는 대체로 그 외형을 따라가면서,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을 볼 때 제 손으로 뭔가 만들어냈다는, 구체적이고 분명한 느낌을 받거든요. 그렇지만 때로는 그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제가 만들었고 눈 앞에 있지만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움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하고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니까요.

그림으로 그려낸 것과 실제로 소유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막상 어떤 대상을 가지게 되면, 갖고 싶던 마음과 갈망이 즉시 사라져버리기도 합니다. 이미 가진 것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 역시 한때는 무척 갖고 싶어 산 물건들이 정작 잊힌 채 보관만 되어 있는 걸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갖고 싶은 것과 이미 가진 것이 뒤섞여 그림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소유욕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현재의 마음에 국한되지 않고, 욕망이 어떻게 생기고 해소되는가, 혹은 정말로 해결될 수 있는가까지 이어집니다.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소유욕은 결국 물건 혹은 대상 자체라기보다 그 너머의 무언가와 연결되는 거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자꾸 마음이 쓰이고 갖고 싶어진다는 건, 어쩌면 물건 그 자체라기보다 그 물건에 깃든 이야기, 시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했듯 소유욕은 무언가를 당장 가질 수 없을 때 발생하는데, 물건이 가진 이야기는 애초에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제 소유욕에 끝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림을 그리면서 물건의 형상을 넘어 그것이 가진 이야기를 찾아보고 상상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대상, 그것을 들여다보는 저의 마음, 그리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이야기까지 복합적인 것들이 한데 섞여 그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업들은 소유와 욕망, 기억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작가님이 생각하는 ‘소유’의 의미는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소유’는 흔히 허영이나 사치와 연결되어 부정적으로 여겨지지만, 저는 욕망 자체가 인간이 무언가를 해나가는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외부에서 주입된 욕망이 자신의 힘을 넘어설 때 병이 된다는 점이지요. 그래서 욕망을 무조건 부정하기보다, 그것이 외부의 강요인지 스스로의 동력인지 구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소유’와 ‘존재’의 구분도 이와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다만 오늘날 사회가 끊임없이 소유와 소비를 부추기는 만큼, 균형을 맞추려면 의식적으로 ‘존재’에 가까운 태도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소유’란 감각 자체가 믿음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물건을 구입하거나 손에 쥐었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으로 내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가 오래전부터 다뤄온 주제가 바로 이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님에게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극적이지도, 새로운 장면도 아닌데 문득 눈에 들어오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평범하고 익숙한 장면인데 이상하게 시선이 머무는 거죠. 그 감각이 너무 휘발적이라 우선 급하게 사진을 찍어 둡니다. 전문적인 사진은 아니고, 그냥 지나가며 툭 찍은 어설픈 사진이에요. 하지만 그게 저에겐 기억을 더듬어갈 출발점이 됩니다. 이후 그림을 그리면서 무엇이 저를 사로잡았는지 찾아가는 거죠. 사진에 찍히지 않은, 그러나 분명히 보였던 것들을 다시 불러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실물을 본 적 없는 이미지에서 출발한 그림도 많아졌습니다. 쉽게 얻기 어려운 것일수록 갈망은 커지고,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수집한 이미지들, 이를 테면 제가 갖고 싶은 것들이 작업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어떻게 보시나요?
그림과 사진은 역사적으로도 밀접합니다. 저는 특히 ‘뇌의 인지’와 카메라가 재현하는 이미지의 차이에 관심이 있어요. 세잔은 눈이 투시 원근법대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림으로 보여줬고, 루시안 프로이드는 사실적이면서도 인간의 시선을 담아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실제 시각보다 카메라 이미지를 더 익숙하게 소비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저 역시 사진을 참고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면 그림만의 매력이 줄어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디까지가 사진의 역할이고, 어디서부터 그림만의 차이가 생기는지 늘 경계합니다.

회화는 어디까지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회화는 본질적으로 제한적인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평면 안에서 변주가 이루어지지만, 저는 오히려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조율하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낍니다. 회화는 기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단순히 형태와 색을 재현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진과 달리 직접 실물을 마주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점에서, 디지털 화면에 익숙한 오늘날에는 불리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것이 회화를 더 인간적인 매체로 만드는 강점이 된다고 봅니다.
무엇이든 그림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주제는 회화를 통해 말할 때 더욱 설득력을 가집니다. 이는 모든 매체에 적용되는 말이지만, 각 매체가 지닌 한계와 특성 속에는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회화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런 것들을 그리고자 합니다.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회화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는지도 들려주세요.
라스코 동굴벽화는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그림 중 하나로, 사냥의 성공과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 유력한 해석입니다. 이를 보면 회화는 기원부터 소유욕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작가마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다르지만, 그 근원에는 언제나 결핍과 욕망이 자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반드시 소유욕일 필요는 없더라도 말입니다.

작가님의 작업이 대중문화와 만나는 지점도 흥미로운데요.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등장한 회화가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드라마 협업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드라마 작업은 <작은 아씨들>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미술팀이 작가를 찾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연락을 받았고, 제 인스타그램에 올려둔 인물화를 보고 극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졸업 이후 인물을 거의 그리지 않았던 터라, 그 만남이 저에게 뜻밖이면서 흥미로웠습니다. 이후 같은 미술팀의 제안으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도 참여하게 되었지요.
드라마 커미션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드라마는 제작 과정이 길고, 촬영 단계에서는 원하는 이미지가 이미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작업 과정에서는 제작팀의 구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작은 차이로도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세심한 대화가 필요했지요.
작가님의 시각은 어떻게 반영됐는지 궁금해요.
<폭싹 속았수다>의 초상화 작업에서는 배우의 여러 표정을 보여주며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면 어떤 표정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진이 흔치 않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었기에, 사랑하는 이를 기억 속에서 떠올린다면 은은하게 미소 짓는 얼굴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의견이 받아들여져 지금의 초상화가 완성되었습니다. 혼자 작업하는 작가에게 이런 협업은 드문 경험이기에, 앞으로도 기회가 있다면 다시 참여하고 싶습니다.

열릴 예정 중인 전시가 있거나 작업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현재는 김소영, 오카지키리, 최형준 작가와 함께하는 그룹전을 준비 중입니다. 풍경을 다루는 네 명의 작가가 모여 ‘집’을 주제로 각자의 시선을 담은 신작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작가로서 앞으로의 포부나 목표가 있다면요?
작가로서 저는 계속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아직은 하나의 스타일을 정립하기보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가능성을 넓히고 싶습니다. 단순히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과정 속에서 저만의 개성을 발견하게 된다면 가장 기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