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이상의 공간, 교보문고 원그로브점
교보문고가 2019년 이후 6년 만에 새롭게 개장한 교보문고 원그로브점은 리테일 미디어이자 생활 문화 공간으로서 서점의 역할을 강조한다.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시민의 독서 생활과 출판 시장의 거점으로서 큰 축을 담당한다. 독서 인구가 감소하고 오프라인 시장 점유율이 낮아지는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서점은 다방면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교보문고가 2019년 이후 6년 만에 새롭게 개장한 교보문고 원그로브점은 리테일 미디어이자 생활 문화 공간으로서 서점의 역할을 강조한다. 교보문고 원그로브점이 들어선 곳은 지난 6월 마곡에 문을 연 복합 쇼핑몰 원그로브몰. 마곡 지역의 쇼핑과 여가, 문화 생활의 중심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1인 가구부터 가족 단위 소비자까지 잠재 고객이 풍부한 마곡에서 교보문고는 새로운 리테일 환경을 조성했다. 목표는 서점 이상의 가치를 제안하는 것.

공간 디자인을 맡은 유랩은 ‘북스케이프Bookscape’를 콘셉트로 책과 사람 간의 관계를 재해석하고 세대와 감각을 넘나드는 공간을 구현하는 데 주력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미디어는 오프라인 서점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를 좌대에 진열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콘텐츠를 영상화해 이목을 끈다. 진입부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장면은 책을 형상화해 블록처럼 쌓아 올린 모습이다. 교보문고에서 수거한 폐기 도서를 재활용해 만든 ‘종이 블록’으로 브랜드의 철학을 가시적으로 드러냈다.


내부로 들어서면 공간이 전하는 메시지가 보다 명료해진다. 서점과 문구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허문 동선과 공간 구성을 통해 복합 문화 공간을 표방한 것이다. 가령 캘리그래피 책을 펜과 함께 디스플레이하거나, 요리책에 등장하는 조리 도구를 함께 진열하는 방식으로 콘텐츠 경험을 다각화했다. 새로운 공간 경험을 위해 어둡고 클래식한 서점 분위기에서 벗어나 밝고 차분한 인상을 주는 공간으로 톤앤무드를 바꾸었다. 책장을 사선으로 배열해 시선의 흐름을 유도하고, 서가의 높이를 낮춰 개방감과 가시성을 확보했다. 중앙에 마련한 이벤트 존은 변화하는 서점의 성격을 반영한 공간이다. 작가 사인회, 강연,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는 이 공간은 무빙월 시스템을 적용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형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서가 사이를 가로지르며 70m에 이르는 문장이 천장을 따라 흐르도록 설치한 미디어 월 ‘플로우 텍스트’는 교보문고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계절마다 바뀌는 짧은 문장으로 시민에게 위로를 건네는 ‘광화문 글판’에 착안해 글과 사람,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목표 고객층을 겨냥한 특화 공간도 교보문고 원그로브점만의 차별화 요소다. 복층 구조의 키즈 공간 ‘올망졸망’이 대표적이다. 아이의 신체 비례에 맞춘 가구와 좌석을 배치해 아이와 양육자 모두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첫선을 보인 ‘플레이 아지트’도 원그로브점 타깃층에 맞게 만화, 음악, 피겨 등 다양한 콘텐츠를 큐레이션해 구성했다. 전체 매장의 차분한 톤과 달리 캐주얼한 무드로 연출한 이곳은 관심사를 중심으로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의도했다.



교보문고 원그로브점은 책이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세대, 콘텐츠, 브랜드가 다층적으로 교차하는 리테일의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책은 단지 상품이 아닌 사람과 공간, 경험을 연결하는 매개로 재정의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신용호 교보문고 창립자의 신념과 공명하는 대목이다. 단순한 서점을 넘어 지식과 인문의 장으로 발전하는 교보문고의 의미 있는 변화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