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한 장면에 담은 건축과 예술, ‘DDP 디자인 & 아트’

DDP에 정체 모를 핑크 풍선과 형형색색의 기이한 생명체가 내려앉았다. 공중에 매달린 둥근 풍선은 빙글빙글 돌며 빛을 흩뿌리고, 옥상에 걸터앉은 거대한 캐릭터는 도시를 내려다본다. 루프톱 프로그램으로 시민에게 지붕을 열고 서울라이트로 도시 전체를 캔버스로 삼아온 DDP가 이번에는 건물 자체를 전시장으로 바꾸었다. 지난 8월 28일부터 9월 14일까지 진행된 ‘DDP 디자인 & 아트’ 이야기다.

도시 한 장면에 담은 건축과 예술, ‘DDP 디자인 & 아트’

2023년에 시작된 이 연례 기획은 도시 한복판에서 디자인과 예술, 기술을 교차시키며 새로운 문화 경험을 실험한다. DDP 특유의 땅과 건축이 유기적으로 얽혀 만들어낸 독특한 지형과 다층적 공간성이 작품과 맞물리며, 시각적으로도 해석적으로도 입체적인 장면을 형성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특징이다. 여기에 국내 디자이너 36명의 기획전 〈창작의 정원〉과 디자인 마이애미 인 시추라는 뒷심이 더해지며, DDP는 서울 도심에서 디자인 중심지라는 존재감을 한층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움직임이 담아내는 풍경

올해 전시의 중심에는 두 작품이 있다. 프랑스 키네틱 아티스트 빈센트 르로이의 ‘멀레큘러 클라우드Molecular Cloud’와 호주 인터랙티브 아트 스튜디오 이너스ENESS의 ‘풀 티처Pool Teacher’다. 두 작품 모두 움직임을 매개로 관객을 끌어들인다는 전략을 취한다. 풍선, 조명, 물, 움직임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각각의 작품은 융합적 디자인 아트의 한 모델을 제시한다. DDP 팔거리에 자리한 빈센트 르로이의 ‘멀레큘러 클라우드’는 지름 1.5m의 핑크 구체 56개로 이루어진 대형 키네틱 설치다. 미러 코팅된 구체는 하늘과 건물, 관객의 모습을 비추며 끊임없이 표정을 바꾼다. 빈센트 르로이는 이에 대해 “떠다니는 구름처럼 생명력 있게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다가온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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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르로이의 ‘멀레큘러 클라우드’ 설치 장면. 사진 WeCAP

나아가 일상에 파묻힌 개인의 순간들을 핑크 풍선에 반사해 시적이고 몽환적인 풍경으로 다시 보게 하려는 의도를 담았다. ‘멀레큘러 클라우드’는 2023년 미국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에서 처음 선보였다. 당시 드넓은 잔디 광장에서 군중을 비추던 작품이 이번에는 DDP의 곡선형 건축과 불규칙한 도시인의 움직임을 담아내며 새로운 풍경으로 변주된다.

또 프랑스에서 구상해 캘리포니아에서 실현한 프로젝트를 서울에서 또 다른 형태로 선보이는 여정도 인상 깊다. 게다가 제작은 광저우에 있는 팀이, 총괄은 홍콩 에이전시가 맡았다. 작가는 “국경을 넘는 다국적 협업이야말로 미래의 창작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공간과 호흡하는 유쾌한 조형들

‘멀레큘러 클라우드’가 추상적이고 사유적인 풍경을 보여준다면, ‘풀 티처’는 보다 구체적인 놀이의 경험을 불러낸다. 10m에 달하는 네 캐릭터는 ‘도전’, ‘표현’, ‘사유’, ‘쉼’을 각각 상징한다. 어떤 캐릭터는 다리를 뻗고 턱을 괴고 앉아 사색에 잠겨 있고, 어떤 캐릭터는 난간에 느긋하게 기대어 있다. 살짝 과장된 듯하나 모두 인간의 몸짓을 닮았다. 그래서 광장을 점령한 거대한 생명체라 불리기도 한다.

이너스의 이번 작품은 건축과 조형의 규모를 의도적으로 충돌시킨다. 그 결과 의외성과 유희성이 나타나며, 디지털 스크린이나 가상현실이 아니어도 물리적 규모 자체의 힘으로 관객의 몸과 감각을 자극한다. 이너스는 이번 작업의 핵심 메시지를 ‘창의성과 긍정의 표현으로 기쁨을 채우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관객의 참여와 반응을 전제로 한다. 관객이 움직이면 그에 따라 LED 조명, 사운드, 분수 등이 반응한다. 사람들이 다가서면 몸통에서 빛이 나오고 눈이 반짝이며, 입에서 물줄기가 솟구치기도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작품과 관객이 함께 놀며 살아 움직이는 풍경을 자아낸다.

글로벌 디자인 플랫폼으로서의 DDP

한편 디자인 둘레길에서는 〈창작의 정원〉이 열렸다. 국내 디자이너 36명의 아트 퍼니처와 조명, 오브제가 보태닉 아트 연출과 어우러져 구간마다 색다른 테마를 경험하게 한다. 이로써 ‘DDP 디자인 & 아트’는 오랫동안 공허하게 들리던 ‘도시 전체가 전시장’이라는 말을 구체적 경험으로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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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디자이너 36명의 작품이 어우러진 〈창작의 정원〉. 10월 31일까지 DDP 디자인 둘레길에서 만날 수 있다.

야외 설치와 실내 전시가 같은 주제로 맞물리면서 전시의 무대는 건물 밖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팔거리와 옥상 같은 DDP의 야외 공간 역시 이 순간만큼은 건축의 잉여 공간이 아니라 작품과 관객이 만나는 장으로 변모한다. 이때 디자인과 아트는 건축과 도시와 시민을 이어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언어가 된다. 이처럼 스스로 활동 반경을 넓힌 DDP는 서울의 대표적인 디자인 문화 거점으로서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다. ‘DDP 디자인 & 아트’를 통해 대형 설치 작품과 일상의 디자인 오브제, 해외 작가와 국내 신진 디자이너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풍경은 DDP가 지향하는 스펙트럼을 선명히 드러내는 신호 중 하나다.

동시에 국제 전시와의 연계 속에서 세계적 네트워크로 뻗어나가려는 움직임도 읽힌다. 더불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야외 설치로 공공성을 넓혔고, 다국적 관람객의 자발적 기록과 공유로 서울을 ‘체험할 수 있는 디자인 도시’로 각인시켰다. DDP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디자인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도시가 되는 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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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르로이(Vincent Leroy)
아티스트

“DDP에 설치한 ‘멀레큘러 클라우드’가 도시의 리듬을 잠시 멈추게 하길 바라며 준비했다. 일상 속에 작은 틈을 내어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감각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님로드 와이스(Nimrod Weis)
이너스 창립자, 아티스트

“‘풀 티처’는 다양한 미디어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보는 이를 따라가는 눈, 함께 즐길 수 있는 물 같은 재미있는 인터랙티브 요소가 더해졌다. 작품의 질감과 패턴은 한국 전통 의복의 숨결을 품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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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8호(2025.10)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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