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인을 위한 아지트, 쎄비 하우스

성수에서 만나는 뜨개 문화 플랫폼

쎄비 하우스는 뜨개를 하나의 문화로 제시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실을 엮는 행위에서 나아가 시간을 나누고 관계를 잇는 경험을 전한다. 오랜 수예의 감성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져 새로운 뜨개 풍경을 그려낸다.

뜨개인을 위한 아지트, 쎄비 하우스

지난 9월 초 ‘쎄비 하우스(SEVY HAUS)’가 성수동에 문을 열었다. 온라인몰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뜨개 문화를 확산시켜온 쎄비(SEVY)의 첫 오프라인 공간이다. 7층 규모 쎄비 하우스는 ‘Knit Together’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뜨개라는 행위를 체험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1, 2층은 다양한 뜨개 자재를 구매할 수 있는 스토어, 3층은 협업 작가들의 전시 공간, 4~7층은 음악과 책, 커피와 함께 뜨개에 몰입할 수 있는 프라이빗 라운지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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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비 하우스 1층 스토어. 도넛처럼 돌돌 말린 뜨개실이 층층이 쌓여 있다. ©SEVY

새로움이 모이는 성수동에서 ‘뜨개’를 문화로 확장한 쎄비 하우스. 실을 매개로 시간을 나누고 가치를 엮으려는 브랜드와 기획자의 고민이 담긴 이곳에서, 쎄비 강상원 대표와 플로스튜디오 김온유 대표에게 쎄비 하우스가 전하는 메시지와 그 너머의 이야기를 들었다.

Interview

강상원 쎄비 대표, 김온유 플로스튜디오 대표

서로의 가치를 나누는 ‘집’

‘쎄비 하우스’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강상원 ‘쎄비(SEVY)’는 Share Every Valuable of Yours의 약자로, ‘당신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가치를 공유하세요.’라는 브랜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실을 매개로 마음을 나누고 관계를 이어가는 행위에 주목해 붙인 이름이죠. ‘쎄비 하우스(SEVY HAUS)’는 그 철학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한 첫 시도입니다. 누구나 편하게 머물고 함께할 수 있는 집 같은 공간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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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SEVY 강상원 대표, 강권윤 이사 ©SEVY
쎄비는 온라인에서 이미 큰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는데요. 오프라인 공간으로 확장하게 된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강상원 이미 온라인에서 많은 뜨개인들과 연결됐지만 화면 너머의 교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실제로 머물고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뜨개실은 색감과 촉감을 직접 느끼고 싶어 하는 니즈도 컸고요. 온라인이 튜토리얼, DIY 키트, 커뮤니티 중심이었다면, 오프라인은 이를 확장해 협업 작가와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하고 브랜드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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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니팅 라운지는 함께 뜨개 하는 오픈 테이블과 일등석처럼 편안한 프라이빗 좌석을 갖추고 있다. ©SEVY
가장 역동적인 동네 중 하나인 성수동에 느긋한 뜨개 공간이 자리 잡았네요.

강상원 많은 사람들이 ‘뜨개’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습이 있어요. 벽장 가득 실이 진열된 동네 사랑방 같은 장면이죠. 그 익숙한 틀을 넘어 성수에서 ‘뜨개 하는 풍경’을 새롭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관심은 있지만 시작이 막막했던 이들과 숙련된 뜨개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관계 맺을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김온유 성수에는 빠르게 주목받는 팝업이나 카페는 많지만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은 드뭅니다. 그래서 임팩트 있는 콘셉트보다 차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더 신선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했어요. 뜨개를 꾸준히 해온 이들, 다시 시작을 고민하는 이들, 한 번쯤 배워보고 싶은 이들, 특별한 경험을 찾는 연인들까지 모두에게 편안한 쉼터가 되었으면 합니다. 실제로 오픈 후 다양한 세대가 매장을 찾고 라운지에 머무는 모습을 보며 이런 공간의 필요성을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뜨개 하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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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1층 스토어 캐셔 존 (오른쪽) 부자재를 고르고 담을 수 있는 트레이 ©SEVY
브랜드 슬로건 ‘뜨개 생활 (Knit Together)’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나요?

강상원 뜨개는 오래전부터 일상과 가까이 있었던 수예입니다. 이제는 세대를 넘나드는 취미이자 문화가 되었죠. 홀로 몰입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와 경험을 나눌 때 훨씬 풍성해집니다. 그래서 키 메시지에 ‘Together’를 담았습니다. 뜨개를 통해 시간을 나누고 서로의 가치를 공유하며, 혼자서도 함께 있는 듯한 경험을 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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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층 스토어 공간에서는 쎄비의 뜨개실과 도안, DIY 키트, 부자재를 판매한다. 완성품과 스와치 샘플을 통해 실의 특성과 촉감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SEVY

여러 손길이 직조한 하나의 공간

쎄비 하우스의 탄생 뒤에는 다양한 전문팀의 협업이 있었다. 플로스튜디오는 공간 브랜딩과 콘텐츠 기획을 맡아 전체적인 방향을 잡았고, 스튜디오캔건축사사무소는 공간 디자인과 시공을 담당했다. 건축 대수선은 INSSAC, 호마건축사사무소, 일로종합건설이 진행했으며, 그래픽은 디클레이, 스타일링은 뷰로 드 끌로디아, 조경은 디자인스튜디오이레, 공간 음향은 머징랩, 뮤직룸은 JL 컴퍼니가 함께했다. 서로 다른 전문성이 모여 공예 작품처럼 정교하게 엮인 공간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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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방문객을 환영하는 웰컴 가든 (오른쪽) 뜨개 생활의 감성과 매력을 전하는 쇼윈도. 시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주된다. ©SEVY
다양한 팀들과 협업을 하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강상원 뜨개 산업은 그동안 다소 폐쇄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늘 같은 방식으로만 지속되어 온 느낌이었죠.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시선과 언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실은 결국 우리가 입는 옷을 이루는 재료이자 삶과 밀접한 매개니까요. 그래서 뜨개를 직접 하지 않는 분들도 여러 아이디어를 내주셨고, 그 덕분에 훨씬 풍성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여러 팀이 참여한 만큼 다양한 시선을 하나로 모았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김온유 참여한 모든 팀이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면서도 하나의 방향성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특정 요소가 과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절제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 있도록 조율했죠. 성수의 공업적 풍경 속에 작은 정원을 더한 조경, 뜨개 시간을 감각적으로 만들어주는 음향 시스템, 마크라메 실을 활용한 천장 구조물, 모든 요소가 하나의 큰 직물을 짜듯 어우러지며 새로운 풍경을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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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질 하이파이 오디오로 음악 감상하며 뜨개 하는 뮤직 룸 ©SEVY
이번 프로젝트에서 중점적으로 고려한 브랜딩과 콘텐츠 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김온유 뜨개를 취미로 즐기는 이들부터 전문 작가까지, 모든 뜨개인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세련된 무드와 뜨개 특유의 따뜻하고 포근한 감성을 공간에 담았습니다. 인테리어는 고급 주거를 많이 설계해온 팀이 맡아 차별화된 분위기를 연출했죠. 바닥 카펫과 천장을 가득 메운 마크라메 실 구조물처럼 촉각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간 자체가 거대한 뜨개 작품처럼 느껴지도록 했습니다. 좌석은 다양한 유형으로 배치해 혼자 와도, 함께 와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했어요. 라이브러리 존과 뮤직룸 같은 콘텐츠를 더해 책과 음악, 영상을 곁들일 수 있는 경험까지 확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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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인문학 등 교양 도서 놓인 6층 아트 라이브러리 존 ©SEVY

쎄비 하우스의 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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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상설판매존. 선반 대신 원형 구조로 구성해 동선이 편리하며, 스타일별 대표 뜨개실을 직접 보고 비교할 수 있다. ©SEVY
뜨개 문화를 공간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어떤 점을 고민하셨나요?

강상원 준비 단계에서 다른 국내외 뜨개 매장을 특별히 참고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존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뜨개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가치 있는 경험입니다. 옷 한 벌을 뜨는 데 한 달 이상 걸리기도 하죠. 이렇게 값진 시간을 보내는 만큼 그에 걸맞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카페형 매장이나 뜨개인들만 모여있는 뜨개방이 아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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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의 뜨개실이 층층이 쌓인 디스플레이. 사탕 같기도, 탕후루 같기도 한 풍경이 뜨개의 즐거움을 전한다 ©SEVY

특히 1~3층은 인테리어팀과 함께 디테일 하나하나에 공을 들였습니다. 매대 조명의 색온도까지 검토해 실의 색감이 가장 잘 보이도록 세심히 조율했어요. 2층은 선반 대신 원형 구조를 적용해 좁은 공간에서도 다양한 제품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습니다. 3층은 협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팝업 갤러리’입니다. 앞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수용할 수 있도록 현재는 일부 비워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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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팝업 갤러리. 쎄비와 협업하는 작가 및 브랜드를 소개한다.©SEVY
3층 팝업 갤러리 공간은 앞으로 어떻게 운영될 예정인가요?

강상원 현재는 쎄비와 협업하는 작가들이 제작한 작품을 도안과 실, 부자재까지 묶어 DIY 키트 형태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전업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작가들에게는 판매와 홍보, 유통을 지원하는 상생 구조예요. 고객은 새로운 창작물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이 되죠. 향후에는 한 작가의 개인전이나 기획 전시로도 확장하고, 온라인 크리에이터들이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자리로 발전시키려 합니다. 최근에 뜨개를 즐기는 리코더 연주자가 공연과 체험을 결합한 협업을 제안하기도 했어요. 이렇듯 뜨개를 매개로 장르를 넘나드는 확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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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이상부터 유료로 운영되는 니팅 라운지는 부티크 호텔에서 착안해, 체크인 후 원하는 좌석을 선택하고 자유롭게 머물 수 있도록 구성했다. ©SEVY
4층 공간부터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데요.

강상원 4층부터 유료로 운영되는 ‘니팅 라운지’입니다. 일반 카페에서는 실 먼지를 불편해하는 손님도 있고, 오래 머무르면 눈치를 받아야 하죠. 이곳에서는 그런 제약 없이 뜨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뜨개인들의 아지트가 되는 거죠.


머무는 취미, 확장하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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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팅 라운지에서는 입장 체크인 시 받은 키로 자리 인증과 결제를 하고, 라운지 내 셀프 바와 스낵바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SEVY
시간제 니팅 라운지 방식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데요. 운영 방식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김온유 호텔 라운지처럼 체크인 후 자유롭게 뜨개를 하면서 음료와 간식을 즐길 수 있습니다. 라운지 내 셀프 바에서는 커피나 차, 가벼운 간식을 제공해요. 별도 스낵바에서 베이글이나 주류를 구매해 ‘음주 뜨개’ 같은 경험도 할 수 있고요. 초보자는 튜토리얼로 쉽게 시작하고 숙련자는 깊이 몰입할 수 있는 “따로 또 같이” 경험이 핵심입니다. 특정 대상을 위해 섬세하게 직조된 공간과 서비스를 누리는 체류형 모델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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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팅 라운지 스낵바에서 유료로 판매되는 베이글과 주류 ©SEVY
라운지 운영에서 어떤 점을 특별히 신경 쓰셨나요?

강상원 쎄비가 추구한 건 단순한 럭셔리 서비스가 아니었습니다. 이용자가 실제로 ‘환대 받고 있다’는 감각을 주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바늘이 부러져 본드가 필요하거나 도구를 깜빡한 경우 바로 대여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일반 카페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서비스죠. 쎄비 하우스에서는 가능합니다. 마치 호텔 컨시어지처럼요. 또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 모두 뜨개 경험자라 이용자의 필요를 섬세하게 이해하고 즉각 대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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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다목적 커뮤니티룸. 기획전, 클래스, 이벤트가 진행되는 공간이다. ©SEVY
한국의 뜨개 문화 속에서 쎄비가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시나요?

강상원 쎄비의 가장 큰 강점은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점입니다. 현재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 60여 명과 협업하며 창작물을 선보이고 있어요. 세대와 취향을 아우르며 뜨개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와 제품을 만들어온 것도 차별점입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협업 작가들의 콘텐츠를 패키지화해 해외에 수출하는 것도 구상 중입니다. 앞으로도 뜨개 생활을 전파하는 플랫폼이자 전도사 같은 역할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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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 니팅 가든. 성수동 전경과 루프톱 정원을 바라보며 뜨개와 휴식을 즐길 수 있다. ©SEVY
앞으로 쎄비 하우스가 어떤 공간으로 자리 잡길 원하시나요?

강상원 모든 뜨개인을 아우르는 그릇이 되고 싶어요. 자사 제품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창작자와 판매자가 함께 뜨개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는 본거지가 되길 바랍니다. 장기적으로는 뜨개를 넘어 수공예 전반을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예요. 공예 전반을 하나씩 다루며 더 큰 문화적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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