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이 미야케의 삶과 작품 세계를 담은 화보집 〈Issey Miyake〉
그리고 이세이 미야케가 남긴 말 5
2024년 4월, 예술 전문 출판사 타셴(TASCHEN)에서 이세이 미야케의 화보집이 출간됐다. 이세이 미야케 재단 회장이자 큐레이터인 기타무라 미도리와 함께 만든 〈Issey Miyake〉를, 이세이 미야케가 남긴 말들과 함께 소개한다.
1. “나는 디자인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기쁨을 준다.”
지금 패션계에서 가장 존재감 있는 이름 중 하나인 이세이 미야케가 지난 2022년 8월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말이다. 그의 유산이자, 현재는 그의 동료들이 꾸려가고 있는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는 그가 사망하고 한 달 뒤 열린 파리패션위크 쇼 무대에서 미야케를 추모하며 그가 남긴 이 말을 띄웠다.
1년 8개월 후인 2024년 4월, 미야케의 삶과 작품 세계를 정리한 화보집이 출간됐다. 예술 전문 출판사 타셴(TASCHEN)이 이세이 미야케 재단 회장이자 큐레이터인 기타무라 미도리와 함께 만든 〈Issey Miyake〉다. 책은 미야케가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을 가지고 기술 개발을 시작한 1960년대부터 은퇴 이후의 행보까지 모든 기간을 다뤘다. 예술가들과 대중의 사랑을 모두 받는 그가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진화시켜왔는지, 사진과 함께 연대기순으로 볼 수 있다. 타셴에 의하면 이 책은 ‘이 시대의 가장 혁신적인 크리에이터 중 하나에게 바치는, 시대를 초월한 헌사’다. 책은 A-POC, 바디 시리즈(Body Series),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등 미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그의 대표작들을 탐구한다.
2. “나는 파괴되는 것들이 아닌, 창조되는 것들, 아름다움과 기쁨을 만들어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그가 패션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선택하게 된 데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1938년 히로시마 출생인 이세이 미야케는 7살이던 1945년 8월에 미국이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에 피폭됐다. 그의 몸에 피폭 후유증이 남았고, 그의 어머니는 피폭 3년 만에 사망했다. 1970년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된 컬렉션을 내놓으며 활동해 온 미야케는 거의 40년 동안 이 사실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원자폭탄 피해자 생존자라는 딱지가 붙여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야케의 삶과 예술 세계에서 그것은 아주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고, 그는 마침내 2009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면, 그 누구도 결코 겪어서는 안 될 일들이 아직도 떠오른다. 밝고 빨간빛과, 곧 뒤이어 나타난 검은 구름과, 사방으로 뛰며 절박하게 도망치던 사람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한다”고 당시를 돌이킨 그는 이어 “나는 파괴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닌, 창조될 수 있는 것들, 아름다움과 기쁨을 주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의류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끌리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현대적이고 긍정적인 창조 형식이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도쿄에 있는 다마미술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65년 파리 쿠튀르 조합 학교(É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옷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공부하며 기 라로쉬(Guy Laroche),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 등 고급 의류 디자이너들의 어시스턴트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1968년 파리 대학생들의 시위를 보고 ‘소수의 부자가 아닌 다수를 위한 옷’이라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구체화했다고 한다. 이듬해인 1969년 뉴욕으로 가 이번에는 ‘쿠튀르’가 아닌 대중적인 옷을 만드는 제프리 빈(Geoffrey Beene)의 어시스턴트로 일했고, 1970년 도쿄로 돌아와 미야케 디자인 스튜디오(Miyake Design Studio)를 설립했다. 그리고 일본 전통 공예를 서양식 복식에 적용한 옷들을 포함하여 드디어 자신의 옷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3. “나는 틀을 깨기를 열망했다.”
책은 이세이 미야케의 옷들을 시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옷이라는 뜻의 ‘Lyrical Life-Wear’라 칭한다. 아방가르드함과 일상성, 전통적 수공예와 현대적 기술을 한 데 스며들게 해 ‘옷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책은 미야케가 1983년 뉴요커(The New Yorker)에 “나는 앞으로 나아가며 틀을 깨기를 열망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그가 ‘단지 틀을 깨기만 했을 뿐 아니라, 옷을 전적으로 재정의했다’고 말한다.
그는 커리어 초기에 일본 전통 사시코 자수 기법을 적용한 옷을 만들기도 하고, 사람의 체형과 소재의 다양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플라스틱·종이·철사·유리 등 패브릭이 아닌 소재로 옷을 만드는 바디웍스(Bodyworks)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다. 1981년에는 편하고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 옷을 기치로 한 (몇 년 후에는 이세이 미야케 페르마넨테(Issey Miyake Permanente)로 이름을 바꾼) 플랜테이션(Plantation) 라인을 선보였다. 다양한 체형의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연령대와 젠더의 경계가 흐릿한 옷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약 10년 후 미야케의 상징이 된 플리츠 플리즈로 이어지게 되었다.
4. “내가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사람들, 그리고 인간의 형태다. 옷은 모든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다.”
미야케가 ‘발명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배경에는 그가 특허를 낸 플리츠 플리즈의 탄력 있는 주름 제작 기술이 있다. 이세이 미야케는 최종 결과물의 두세 배에 해당하는 원단을 재단해 오버사이즈의 옷을 만든 후, 거기에 열과 압력을 가해 지속력 있는 주름을 만드는 방식으로 옷을 만들었다. 이 방식은 주름을 먼저 만든 다음 재단하고 옷을 만드는 기존의 방식에 비해 옷의 질과 디테일 면에서 디자이너와 제작자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었다. 미야케는 이 기술을 이용해 편안하고, 편리하며, 구김에 강해 관리하기 편한 옷들을 만들어냈다. 플리츠 플리즈의 옷들은 체형은 물론이고 연령대와 젠더, 심지어 계절감을 초월한다. 여성복으로 출시되었으나 남성 고객들이 꾸준히 옷을 구매하자 곧 남성복 제품군인 옴므 플리세(Homme Plissé)도 만들었다.
그는 2014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사람들, 그리고 인간의 형태”라며 “옷은 모든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밝힌 바 있다. 미야케가 자신의 브랜드 밖에서 했던 프로젝트들도 모두 몸을 움직이기 편한 옷을 만드는 것이었다. 1992년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첫 출전했던 리투아니아팀의 공식 유니폼을 디자인했고, 1996년에는 특허 플리팅 기술로 만든 원단으로 프랑크푸르트 발레단의 무용수들의 무대 의상을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에게 ‘개인용 유니폼’의 영감을 준 소니 공장 직원들의 실용적인 유니폼도 그의 잘 알려진 프로젝트들 중 하나다.
5. “계속 쓰레기를 버릴 수는 없다.”
실험적인 프로젝트들을 공개하는 동안에도 미야케는 언제나 실용성을 자신의 작업 중심에 두었다. 자신의 옷이 ‘패션(fashion)’이 아닌 ‘의류(clothing)’라 불리고, 그 자신은 ‘패션 디자이너’라기보다는 ‘디자이너’로 불리기를 원했다. 1998년 A-POC(A Piece of Cloth) 프로젝트는 그의 실험 정신과 실용성을 모두 반영한 프로젝트였다. 원단 한 장을 활용해 옷 한 벌을 만드는 콘셉트로, 원단에서 낭비되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입는 사람에게 디자인의 권력을 나눠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1999년 브랜드에서 은퇴한 후에도 그는 디자이너로서 ‘사람과 가까운 옷’에 대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0년 그는 재활용 소재로 만든 의류로 런던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이 옷들은 모두 세탁기로 세탁가능한 옷들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한 철이 아니라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계속 쓰레기를 버릴 수는 없다”며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밖에도 2007년 도쿄에 미래의 디자인의 기반이 될 디자인 전문 박물관 21_21 DESIGN SIGHT를 열었고, 지속가능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리얼리티 랩(Reality Lab)이라는 이름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팀을 만들어 운영했다.
책 〈Issey Miyake〉는 미야케 디자인 스튜디오 초기부터 미야케와 40여 년 동안 함께 일한 기타무라 미도리가 구상하고 기획했다. 기타무라는 미야케 이세이 재단과 미야케 디자인 스튜디오의 회장으로, 피팅 모델로 미야케와 처음 만나 옷에 대한 의견을 주다가 정식으로 그의 스튜디오에 합류해 지금까지 브랜드와 함께하고 있다. 쇼 및 전시 기획 등을 담당한 미야케의 중요한 커리어 파트너 중 하나로, 〈Pleats Please Issey Miyake〉 등의 패션 서적을 집필하고 편집했으며 무인양품(MUJI)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기타무라는 “이세이 미야케는 시각적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이 책은 그의 삶과 작품에 관한 가장 완전하고, 가장 최신의 내용을 담아 그려 보인다”고 책을 소개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미야케와 가장 많이 협업한 미국 패션 사진작가 어빙 펜(Irving Penn)의 작업물들이다. 1986년부터 13년 동안, 기타무라가 스타일링하고 펜이 기록으로 남긴 미야케의 주요 작품들이 448페이지의 하드커버 책에 담겼다. 영어와 일본어판으로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