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넘어 예술과 일상을 잇는 총체적 경험의 장

케이간 지니어스 살롱(KEIGAN Genius Salon in Paris)

18세기 파리에서 ‘살롱’은 단순한 사교의 장을 넘어 지성의 각성과 문화적 혁신을 촉발시키는 중요한 무대였다. 볼테르와 디드로 같은 사상가들이 모여 문학, 예술, 철학을 논하던 살롱이라 불리웠던 곳은 학문과 예술, 사회적 담론이 교차하는 지적 에너지가 가득했었다. 오늘날 중국 상하이 기반의 패션 브랜드 케이간(KEIGAN)은 바로 이 역사적 ‘살롱’ 정신에서 영감을 받아 패션을 하나의 문화적 매개체로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을 선보였다.

패션을 넘어 예술과 일상을 잇는 총체적 경험의 장

18세기 파리에서 ‘살롱’은 단순한 사교의 장을 넘어 지성의 각성과 문화적 혁신을 촉발시키는 중요한 무대였다. 볼테르와 디드로 같은 사상가들이 모여 문학, 예술, 철학을 논하던 살롱이라 불리웠던 곳은 학문과 예술, 사회적 담론이 교차하는 지적 에너지가 가득했었다. 오늘날 중국 상하이 기반의 패션 브랜드 케이간(KEIGAN)은 바로 이 역사적 ‘살롱’ 정신에서 영감을 받아 패션을 하나의 문화적 매개체로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을 선보였다. 그것이 바로 이번 파리 패션위크 기간 동안 리볼리 길(Rue de Rivoli)에 마련된 ‘케이간 지니어스 살롱(Keigan Genius Sal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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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드리에스 © Adrian Meško

바이어들에게 옷을 보여주는 목적을 가진 쇼룸을 넘어 건축, 예술, 가구, 음식, 음악 등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패션을 중심으로 서로의 영역을 교차시키고, 방문객이 직접 그 경험을 온몸으로 느끼도록 설계된 ‘케이간 지니어스 살롱’은 주로 파리와 밀라노를 무대로 활동하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소피 드리에스(Sophie Dries) 에 의해 큐레이션 되었다. 그녀는 네오클래식 양식의 아파트 공간을 역사적 깊이와 현대적 감각이 교차하는 무대로 재구성하면서, 패션과 예술,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을 연결하는 총체적 경험을 구현했다.

드리에스는 건축과 인테리어, 오브제 디자인을 넘나들며 공간에 리듬을 부여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디자이너다. 파리, 밀라노, 도쿄 등지에서 현대미술과 디자인을 접목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으며, 종종 거친 질감과 고급 소재를 대비시켜 미묘한 긴장감을 만드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이번 ‘지니어스 살롱’의 작업에서도 조명과 가구, 벽의 질감이 옷과 호흡하면서 의상이 오브제를 넘어 공간 속에 끼어든 인물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이를 통해 옷이 단독으로 존재할 때보다, 예술과 공간 안에서 맥락을 가질 때 더 풍부한 의미를 얻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케이간(KEIGAN)은 건축적 사고와 미니멀한 감성을 결합해 현대 도시 여성의 삶을 우아하게 해석한 브랜드로, 상하이 방언의 ‘Kai Jian(開間)’ – 건축에서 ‘베이(bay)’라 불리는 수평 공간 단위를 뜻하는 말 – 에서 유래했다. 이는 케이간이 건축의 원리를 의복 디자인에 적용한다는 철학을 상징한다. 브랜드의 공동 창립자인 두두(Dudu) 와 킹(King) 은 각각 패션과 건축의 언어로 옷을 해석한다. 두두는 여성의 감각적이고 실용적인 삶에 초점을 맞춰 일상의 품격을 높이는 의상을 제안하는 반면, 건축가 출신인 킹은 옷을 사회적 구조와 인간의 행동을 반영하는 공간적 매체로 바라본다. 이렇게 절제와 개방이 공존하는 현대적 미학을 기반으로 고급스러운 소재와 정제된 실루엣으로 이루어진 의상들은 ‘지적인 우아함(intellectual elegance)’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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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이자 아티스트인 마크 레슐리에 © Adrian Meško

이번 ‘지니어스 살롱’은 패션쇼와 전시, 체험을 결합한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파리의 건축가 마크 레슐리에(Marc Leschelier)는 공사 현장에서 쓰이는 재료와 케이간의 고급 원단을 결합해 조각적 작품을 완성했다. 이는 건축적 구조미와 패션의 감각이 교차하는 오브제로, 브랜드의 섬세한 직물 실험과 연결되며 공간에 강렬한 시각적 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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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티아에 의해 연출된 케이터링 모습 © Adrian Meško

하나의 중요한 협업은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식 스튜디오 투티아(TOUTIA)가 연출한 케이터링 테이블이라고 할 수 있겠다. 투티아는 음식을 시각, 촉각, 심지어 청각까지 아우르는 ‘종합 예술’로 바라보는 창의적 요리 집단이다. 그들은 이번 케이간의 시그니처 원단과 색채를 직접적인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메뉴를 구성했다. 손으로 만져보면 직물처럼 느껴지는 푸드 오브제는 관객에게 ‘만져도 되는 예술 작품’으로 다가왔다. 맛을 보는 순간에는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이 열렸다. 질감과 맛, 색채가 동시에 교차하는 순간, 케이간의 직물이 지닌 감각적 풍요로움이 음식이라는 전혀 다른 매체로 전이되었다. 또한 방문객들이 테이블에 다가와 음식을 손으로 찢고, 이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며, 대화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는데 마치 18세기 살롱에서 사람들이 와인과 음식을 나누며 담론을 이어가던 전통이 현대적으로 변주된 듯 느껴졌다. 음식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매개하고 예술적 감각을 공유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케이간의 패션이 여성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옷이었다면, 투티아의 음식은 일상적 행위를 예술로 끌어올리는 경험이 된 것이었다. 옷과 음식이라는 두 매체는 이렇게 지니어스 살롱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입고, 보고, 만지고, 맛보는’ 총체적 경험을 완성했다.

여기에 파리의 플로리스트 루이 제로 카스토(Louis Geraud Castor) 는 상하이와 파리의 꽃 문화 요소를 결합해 브랜드의 색채 팔레트와 직물의 질감을 꽃으로 재현했으며, 음악가 리 시이(Siyi Li) 는 하루를 아침, 정오, 밤 세 구간으로 나누어 파리와 상하이의 감성을 연결하는 음악적 풍경을 설계했다.

이렇듯 ‘케이간 지니어스 살롱’은 패션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 장르가 유기적으로 얽혀 하나의 실험적 공간을 완성했다. 방문객들은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공간을 거닐며 작품을 보고, 만지고, 듣고, 맛보며 적극적인 참여자가 된다. 공동창립자 두두(Dudu)와 킹(King)은 이번 파리 살롱을 통해 “패션은 삶을 해석하는 문화적 언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건축적 사고를 바탕으로 디자인된 일상적 필요와 감각을 충족시키는 의상이라는 브랜드의 DNA가 담긴 이번 컬렉션은 건축, 예술, 음식,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며 하나의 종합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단순히 런웨이나 쇼룸 진열을 넘어, 패션 브랜드가 새로운 형태의 문화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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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rian Meško

튈르리 정원을 마주하고 있는 파리의 중심, 리볼리 길(Rue de Rivoli)의 역사적 건축물 안에서 펼쳐진 이번 실험적 전시는 동서양의 문화, 전통과 현대, 기능과 예술이 교차하는 장이었다. 궁극적으로 ‘케이간 지니어스 살롱’은 패션을 통해 다시금 ‘살롱’의 본질을 환기시켰다. 그것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서로 다른 분야가 대화하고, 예술과 삶이 맞닿는 것. 이번 파리에서의 경험은 케이간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서사를 이어갈지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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