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심의 자율적 축제,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5
10월 24일부터 11월 2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의 슬로건은 ‘공존: 내일을 위한 공공디자인’. 1인 가구 급증,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 기후변화, 디지털 전환 등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공공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공공디자인은 도시와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모든 실천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도출된다.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유연한 플랫폼이다. 일상 속 다양한 공공디자인 사례를 살펴보고 디자인의 역할과 비전을 제시하는 데 의의를 둔 이 행사는 올해로 4회를 맞았다. 지난 3년간 공공디자인의 개념과 가치를 폭넓게 알리는 데 집중했다면, 올해는 한층 구체적이고 시의적인 주제로 공공디자인을 탐구한다. 10월 24일부터 11월 2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의 슬로건은 ‘공존: 내일을 위한 공공디자인’. 1인 가구 급증,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 기후변화, 디지털 전환 등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공공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으로 재편되고 있는 오늘날,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로 ‘공존’에 주목했다. 기성세대와 미래 세대, 도시와 지역, 전통과 혁신, 인간과 자연, 개발과 보존, 효율성과 인간성 등 서로 다른 요소를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공공디자인의 역할이자 지향점이라고 봤다.

올해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역 중심의 자율적 축제’로의 전환이다. 지난 3년간 한 지역에 행사가 집중됐던 것과 달리 전국의 공공디자인 거점이 주체가 되어 직접 기획·운영하는 탈중앙화된 프로그램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단순히 거점을 소개하는 일방적 소통에서 나아가 지역의 특성과 현안을 반영해 거점 스스로 활동을 소개하는 참여형 실천 모델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대전에 이어 공모를 통해 선정한 올해의 협력 도시 광주는 공공디자인 토론회를 공동 기획해 지역의 공공디자인 인프라를 직접 소개한다.

여기에 광주폴리 프로젝트와 연계한 프로그램까지 함께 개최해 광주만의 공공디자인 실천과 철학을 명확하게 전달한다. 광주 외의 공공디자인 거점에서 열리는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대학과 협력한 공공디자인 실험실, 어린이 프로그램, 학술 행사, 기관·민간 협력 프로그램, 거점 지원 프로그램 등 다양한 주체가 여러 층위에서 공공디자인을 탐구하고 실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의 묘미는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프로그램을 저마다의 관점으로 즐길 수 있다는 데 있다. 공공디자인의 거점을 확대하고 자율성을 부여한 올해는 공공디자인의 가치를 지역 주민이 보다 가까이에서 느끼고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될 전망이다.
Interview
전민경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공공디자인기반팀
“지역협력도시가 스스로의 공공디자인 철학과 성과를 주도적으로 발신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의 슬로건과 주제를 도출한 배경이 궁금하다.
우리 사회는 이미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1인 가구의 급증으로 경제·사회 패턴이 바뀌고 기후변화로 환경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며, 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으로 일상의 환경이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다. 고령화, 도심 공동화, 다문화 사회 등 인구구조와 사회구조 또한 시시각각 변화하는 중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공공디자인도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맞춰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할 시점이라고 봤다. 전통적인 방식만으로는 사회 변화에 따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1인 가구 증가는 단순한 가구 수 변화가 아니라 연령, 성별에 따른 세분화된 정책과 공간 디자인을 요구한다. 심리적 고립까지 보듬어주는 1인 가구 지원 센터, 폭염·한파·미세먼지 등 기후 문제로 야외 활동이 어려워진 어린이들을 위한 실내형 공공 놀이터,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탄소 중립 공공 시설, 고령 인구를 위한 배리어프리 도시 환경,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키오스크 개선 등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공공디자인의 사례다. 사회 변화에 공감하고 화답하는 방법으로서 공존과 조화를 중심에 두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과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바로 내일을 위한 공공디자인이다. 올해 페스티벌은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마주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지역협력도시의 역할을 개선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지역협력도시는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이 서울 중심이 아닌, 각 지역의 공공디자인 현황을 조망하도록 하는 창 역할을 한다. 공공디자인은 지역의 고민을 해결하는 만큼 지역성이 매우 중요한데, 서울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첫 행사는 서울에서, 이듬해는 부산을 중심으로 진행했는데, 부산에서 모든 주제 행사를 개최하다 보니 단지 서울에서 지역으로 장소를 옮긴 것일 뿐 특정 지역에 집중하는 흐름은 여전했다. 이에 2024년부터 공모를 통해 지역협력도시를 선정하고, 해당 지역의 공공디자인 특성을 보다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하지만 페스티벌 개막식을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시상식과 함께 서울에서 개최하다 보니 지역협력도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다. 올해는 지역협력도시의 역할을 한층 명확히 하기 위해 공공디자인 토론회를 공동 개최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토론회에서 지역협력도시는 직접 기획을 담당해 해당 지역의 공공디자인 인프라를 소개하고, 지역의 맥락과 특성을 전국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지역협력도시가 스스로의 공공디자인 철학과 성과를 주도적으로 발신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했다.



어린이에 초점을 맞춘 공공디자인 사례를 확대한 점도 흥미롭다.
미래 세대가 공공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공공디자인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에 밀접한 공공디자인은 실제 이용자의 시각이 중요하므로 어린이들이 공공장소(대중교통, 마켓)에서 경험한 불편이나 문제점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전 워크숍 ‘어린이가 그리는 내일의 공공디자인’을 진행했다. 또한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역대 수상작 전시에서는 어린이가 참여한 환경 개선 사례와 안전 관련 수상작을 소개한다. 어린이를 위한 참여형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준비했다. 국내 첫 어린이 전용 도서관 기적의도서관과 협업해 전국 12곳을 페스티벌 기간 중 거점으로 운영하며, 그중 10곳에서는 어린이와 지역민을 위한 전시, 워크숍, 공연 등이 열린다. 어린이 셀러가 참여하는 어린이 마켓 ‘새싹장터’도 마련해 어린이가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나눔, 공공, 지속 가능함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양육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해 건강한 보육환경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공공디자인 거점 지원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
거점의 자율성이다. 전국에서 참여하는 거점은 페스티벌의 주인공으로, 각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공공디자인 사례를 직접 보여주고 경험하게 한다. 특정 지역에서 큰 행사를 열면 주제와 사례를 집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행사장 방문이 어렵거나 지역과 거리가 먼 경우 페스티벌 참여가 제한적이다. 거점은 지역민에게 ‘공공디자인은 공공기관만의 영역이 아니라 모두가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내 일상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공공디자인은 멀리 있는 큰 행사보다 더 의미가 크며 지역민 대상 프로그램을 통해 주최 측이 닿기 어려운 곳까지 공공디자인 가치를 확산할 수 있다. 참여 거점은 농촌, 도심, 학교 도서관, 박물관, 생태원 등 매우 다양하다. 위치와 설립 목적, 방문자의 연령과 관심사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다양성이 거점 프로그램의 가장 큰 강점이 된다. 프로그램 기획 시 거점이 스스로 기획하고 제안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공공디자인 실험실은 지자체 중심에서 대학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확대됐다. 어떤 효과를 기대했나?
공공디자인 실험실은 실제 공공디자인 사업이나 정책으로 구현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테스트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동안은 정책 실행 전 단계인 만큼 현실성을 고려해 아이디어가 다소 경직되는 경향이 있었다. 올해는 실효성보다 사회 문제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문제를 풀어가는 아이디어에 집중하고자 대학·대학원과 협력해 보다 실험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참여 학생들은 앞으로 디자인과 관련된 진로로 나아가게 되는 만큼 반드시 공공디자인 분야가 아니더라도 디자인의 공공성이나 디자인을 통한 사회 문제 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실험실이 주민 참여형으로 발전해 주민 요구가 실제 지역 정책에 반영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좋은 공공디자인의 선행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올해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이 어떤 행사가 되길 바라나?
‘함께 만드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 과거에는 전국 공공디자인 거점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올해는 거점의 자율성을 높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로 나아가고자 한다. 프로그램을 통해 거점을 발견하고, 거점을 통해 공공디자인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은 특정 지역에 모인 사람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축제다. 각 지역 거점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풀어내고, 참여자들은 멀리 있는 행사장이 아니라 일상 가까이에서 공공디자인을 체감할 수 있다. 공공디자인은 거창한 정책이나 프로젝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동네 놀이터, 버스 정류장, 골목길 등 일상 속 공간이 모두 공공디자인으로, 페스티벌이 이러한 경험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장기적으로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공공디자인의 주체를 다양화하는 것이다. 공공디자인이 정책 기관이나 전문가만의 영역이라는 인식을 넘어, 모두가 함께 만들고 이용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페스티벌의 핵심 역할이다.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을 통해 기대하는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전국의 우수한 공공디자인 사례를 모은 ‘아카이브’가 된다. 둘째, 다른 지역의 사례를 통해 ‘우리 지역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거울이자 돋보기가 된다. 셋째, 각 지역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하는 생태계를 만든다. 공공디자인 페스티벌의 궁극적 목표는 공공디자인이 추상적이거나 특정 주체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실질적 도구임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다. 시민들이 “이것도 바꿀 수 있구나”, “우리 동네에도 필요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하면 좋겠다”라는 목소리를 내고, 이를 정책으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