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을 기약하는 퐁피두 센터
퐁피두 센터의 새로운 공간들
퐁피두 센터는 2026년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시작해 2030년 재개관할 예정이다. 모로 쿠스노키와 프리다 에스코베도 스튜디오가 설계를 맡아 주요 공간을 재구성, 예술과 도시가 연결되는 열린 문화 공간으로 거듭난다.

예술과 문화의 도시,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미술관을 꼽으라면? 루브르, 오르세, 그리고 퐁피두 센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퐁피두 센터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대담하고 실험적인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이는 거대한 파이프와 노출된 골조가 얽힌 외관에서도 느낄 수 있다. 마치 건물 내외부를 뒤집어놓은 듯한 분위기를 선사하는 이 건축물은 도시에 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하이테크 건축의 거장인 리처드 로저스와 렌초 피아노의 합작 설계로 이루어진 결과물은 그 자체로 건축계에 있어 한 획을 긋는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77년 개장한 이래 전 세계인이 찾는 현대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던 퐁피두 센터는 올해 초 대대적인 보수공사 계획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 문화부의 지원 아래 진행되는 이번 보수공사는 안전성 확보, 접근성 개선, 기술 설비 개편 등을 목적으로 진행된다. 외벽 전면의 석면 제거 및 보수, 화재 안전 강화, 이동이 불편한 방문객들의 접근성 향상, 건물 전체의 에너지 효율 최적화 등 건물 시스템 전반을 새로이 교체하는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기에, 센터는 전면 폐쇄를 결정했다. 올해 1월부터 단계적으로 시설이 문을 닫기 시작했으며, 9월에는 건물 전체가 폐쇄되면서 장기 휴관에 들어갔다. 본격적인 공사는 2026년 4월에 시작되며 재개관은 2030년으로 예정되어 있다.
휴관에 앞서, 퐁피두 센터는 미술관의 예술적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는 다채로운 전시를 선보여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인상적인 작별 인사를 선사했다. 올해 1월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특별전을 시작으로, 〈한스 홀라인: transFORMS〉, 〈파리 누아르〉, 〈엄청나게 이상한: 장 샤틀루 컬렉션, 앙투안 드 갈베르 재단 기증전〉이 차례로 이어졌다. 이어 독일 출신의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의 특별전이 긴 휴관 전 마지막을 장식했다.


미술관을 새롭게 단장하는 이 프로젝트의 설계는 프랑스와 호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글로벌 건축회사 모로 쿠스노키(Moreau Kusunoki)와 멕시코시티의 디자인 회사 프리다 에스코베도 스튜디오(Frida Escobedo Studio)가 공동으로 맡을 예정이다. 이들은 ‘물리적·시각적 다공성’, ‘경로의 명확성’, ‘공간 활성화 및 재편’, ‘기존 관계와의 소통’ 이렇게 네 가지 주요 축을 기반으로 한 개념적인 접근 방식을 구축했고, 모든 방문객과 직원들에게 풍부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퐁피두 센터의 새로운 공간들

이번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퐁피두 센터 광장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에부터 출발한다. 방문객을 맞이하고 도시와의 연결을 잇는 이 공간은 역동성이 넘치는 열린 장소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연구 및 자원 센터와 칸딘스키 도서관을 통합하기 위한 브랑쿠시 스튜디오 (Brancusi’s Studio)의 개보수가 함께 진행된다. 이 새로운 설계는 1층 구조를 다시 구성하여 수직적인 확장과 더불어 건물과 광장, 그리고 정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새롭게 재정비될 퐁피두 센터의 중심에는 ‘포럼(Forum)’이 있다. 이곳은 모든 방문이 시작되는 곳이자, 사람과 예술, 도시가 만나는 열린 광장이다. 새로운 설계는 포럼을 1층부터 지하 1층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해 공간의 흐름을 개선했다. 여기에 계단실이 확장되어 극장, 영화관 로비, 카페 등이 있는 다목적 공간인 아고라(Agora)와 이어지는 개방형 구조로 재편된다. 이 설계는 포럼, 메자닌(Mezzanine) 중간층, 아고라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동시에 건물 전면에 있는 상징적인 ‘셰닐 에스컬레이터(Chenille escalators)’와 조화를 이루게 한다.

공간의 중심축은 서쪽 파사드에서 건물 중앙으로 옮겨져 방문객의 이동이 훨씬 원활해진다. 안내 데스크, 매표소, 화장실, 물품보관소 등 주요 편의 시설은 입구 근처에 집중 배치되어 자연스럽게 전시실, 국립도서관 Bpi, 아고라, 뉴 제너레이션 허브(New Generation hub)로 이어지는 동선을 만든다. 또한 방화 커튼 대신 유리 파사드를 도입해 실내에 자연광이 깊숙이 들어오도록 했으며 엘리베이터와 안내 데스크를 재배치하여 시야를 넓히고 도시와의 개방감을 한층 강화했다.

중심 계단을 따라 포럼과 맞닿아 있는 ‘뉴 제너레이션 허브’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포럼만큼이나 중요한 공간이다. 휴식과 놀이, 창작이 어우러지는 열린 플랫폼으로 모든 세대가 편안하게 머물고, 자유롭게 예술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투명한 구조를 통해 실내 활동과 퐁피두 센터의 건축적인 미학, 그리고 멀리 도시의 풍경까지 다층적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가 가능하다. 직원과 방문객이 함께 재구성할 수 있는 이 공간은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실험장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립도서관 역시 전면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예술 작품과 전시, 정보, 잡지, 신간 컬렉션 등 다양한 콘텐츠가 창의적으로 어우러지며, 공간 그 자체가 하나의 열린 전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3층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의 새로운 디자인은 모든 이용자들이 공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겁게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2층은 도시적 리듬과 사회적 교류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장으로,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과 만남이 펼쳐진다. 퐁피두 센터의 선형적 구조 속에서 도서관은 작은 섬들이 이어지도록 구성되어 함께 머물고 나누는 경험을 제안한다. 3층은 보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사유와 몰입이 중심이 되는 개인적인 탐색을 위한 공간이 될 예정이다.

4, 5층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무대 미술(Scenography) 공간으로 활용되며, 6층 전시 공간 또한 새롭게 탈바꿈될 계획이다. 7층의 북쪽 방향에는 옥상 데크가 설치되어 대중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할 이 옥상은 퐁피두 센터의 수직 순환로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한편 1층 포럼 메자닌에서 이어지는 남쪽 공간에는 레스토랑, 카페, 부티크, 서점 등이 자리 잡아 방문객들에게 예술과 일상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원활한 공사를 위해 퐁피두 센터 내 소장품과 시설들은 올해 12월까지 다른 장소로 이전될 예정이다. 휴관이 장기화되는 만큼, 퐁피두 센터의 소장품들은 그랑 팔레(Grand Palais)를 비롯한 파리 미술관들과 더불어 퐁피두 센터 메츠, 해외 퐁피두센터 분관 등 다양한 공간에 나누어 전시된다. 또한 퐁피두 센터가 그동안 진행해왔던 다양한 예술·문화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 역시 전 세계 주요 문화 기관과 협력하여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2026년 개관을 앞두고 있는 두 곳의 퐁피두 센터 분관 중 ‘퐁피두 센터 한화 서울’도 소장품 이전 및 전시 장소로 언급되어 큰 기대를 모았다.
2026년에 개관되는 퐁피두 센터 분관

2026년 가을에 일드프랑스 에손(Essonne) 주 마시(Massy) 시에 ‘퐁피두 센터 프랑실리앙(Centre Pompidou Francilien – Fabrique de l’Art)’이 개관할 예정이다. 이곳은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은 물론이고, 퐁피두 센터와 피카소 국립 박물관의 소장품의 보존과 복원 작업을 진행하는 연구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대중 참여형 교육 활동이 운영되며 파리 및 일드프랑스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예술 공간으로 사랑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한화그룹과 협업을 통해 2026년 63빌딩에 ‘퐁피두 센터 한화 서울(Centre Pompidou Hanwha)’이 개관될 예정이다. 한-프 수교 140주년이 되는 해에 개관될 이 센터 분관에서는 4년 동안 퐁피두 센터가 소장하고 있는 대표 작품을 기반으로 한 전시가 진행 예정이며, 미디어 아트, 설치미술, 회화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기획전과 교육 프로그램이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올해 2월에 진행된 ‘2025 상반기 국내 프랑스 문화행사 소개’에서 요한 르 탈렉 주한프랑스대사관 문정관이 이곳에서 칸딘스키를 비롯한 8개의 전시를 열 예정으로 밝혀 화제를 모았다. 그와 더불어 부산시와 2030년 부산 분원 개관을 논의 중에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행보의 명암
퐁피두 센터의 대대적인 보수공사와 세계 각지에서 이어지는 센터 분관 개관 소식은 예술계가 반길만한 희소식이다. 개관 50주년을 앞두고 변화를 선택한 현대미술의 상징의 행보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예술이 머무는 공간을 넘어 시대를 담는 그릇으로 거듭나려 노력하는 시도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찬사만큼이나 부정적인 여론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 프랑스 몽펠리에에 본사를 둔 온라인 아트 갤러리 아르마죄르(ArtMajeur)는 이 미술관의 보수공사가 재정적인 어려움과 일정 지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감사원의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에 따르면 퐁피두 센터의 보수 공사는 계획 초기 2억 6,200만 유로(약 4,327억 원)의 비용이 추산되었지만, 현재는 3억 5,800만 유로(약 5,913억 원)로 늘어났다. 보고서는 글로벌 전략의 부재, 운영 관리의 허점, 공공 보조금에 대한 과도한 의존 등을 주요 문제로 꼽았다. 여기에 인건비 상승과 잦은 파업, 방문객 수 감소가 겹치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퐁피두 센터의 로랑 르 봉(Laurent Le Bon) 회장은 해외 분관 설립을 통해 새로운 수익 구조를 마련하는 동시에, 개인 기부자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국가 단위의 후원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예술 기관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이지만, 이를 통해 퐁피두 센터가 프랑스를 넘어 세계로 확장하는 글로벌 문화 허브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여러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퐁피두 센터가 진행하는 보수 공사는 예술계의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투자라는 점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변화에는 언제나 어려움이 따른다. 반세기 가까이 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선사했던 문화공간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의 감각을 앞서 온 공간이었고, 이번 재정비 또한 연속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예술가와 관람객의 기억이 깃든 이 미술관이 다시금 세계 예술의 심장이 될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기대감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며 이에 대한 노력 또한 수반될 것이다. 여기에 안정적인 재원 확보와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함께 한다면 그 여정의 끝에는 예술의 미래를 밝히는 또 하나의 빛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