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라는 호수에 돌 던지기, 김광철 × 최승용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흐름에 대항해 다른 실천을 이어가는 두 사람을 소개한다. 중심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지역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 살펴보자.

지역이라는 호수에 돌 던지기, 김광철 × 최승용

서울은 거대한 소비 도시다. 도시 전체가 시각적 스펙터클 속에 존재한다. 디자인과 문화는 그 안에서 빠르게 생성되고 소비된다. 여기 그 흐름에 대항해 다른 실천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서울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다 군산으로 근거지를 옮긴 김광철과 지역에서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남해에 정착한 문화 기획자 최승용이다. 도시를 떠난 계기도, 정주한 도시도 각각 다르지만 이들은 익숙한 논리와 태도를 거슬러 서울 밖에서 유의미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이라는 기성, 그리고 지역 안의 또 다른 중심과 맞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지역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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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철(왼쪽) 프로파간다 출판사 에디터 겸 대표. 2007년 이래 시각 문화 저널 〈그래픽GRAPHIC〉과 대중문화 단행본을 발행한다. 2021년 근거지를 군산으로 옮겨 ‘그래픽숍’이란 서점 겸 프로젝트 공간을 오픈하고, 이곳을 기반으로 로컬 출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군산 소재 13개 서점의 연합체인 군산책문화발전소 대표를 맡아 군산북페어 조직·운영에 힘쓰고 있다. graphicmag.co.kr

최승용(오른쪽) 주식회사 돌창고 대표이자 총괄 디렉터. 전남대학교와 건국대학교에서 역사교육과 문화 콘텐츠 기획을 전공했다. 2016년 남해에서 돌창고를 문화 공간으로 재생한 이후 남해의 유휴 공간을 활용하여 지역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지역 혁신가상(2019), 중소벤처기업부 선정 올해의 로컬 크리에이터(2020), 로컬 브랜드(2024)로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사소한 이름〉 〈재생여행〉 〈경남 건축여행〉 〈어부의 밥상에는 게미가 있다〉 등이 있다. dolchanggo.com

최승용 남해로 내려온 지 올해로 꼬박 10년이 됐어요. 제 고향이 남해 인근 하동인데 학업을 위해 잠시 서울에 머물렀죠. 지역에 살고 싶은 마음이 줄곧 있었기에 돌아올 궁리를 하다가 남해 지역의 돌창고라는 공간을 지인에게 소개받았어요. 그렇게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에 돌창고를 구입하면서 남해에 정착하게 됐죠. 그 당시만 해도 남해에는 젊은이들이 향유할 만한 문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어요.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직업군도 제한적이었고요. 돌창고를 문화 공간으로 조성해 전시를 열고 카페를 운영하게 된 이유예요. 무엇보다 제가 지역을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움직임을 스스로 만들어야 했죠.

김광철 제가 군산에 내려온 배경은 조금 달라요. 서울에서 오랫동안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여러 활동을 했는데 그 루틴이 점점 더 따분하게 느껴졌습니다. 기반이 전혀 없는 곳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엄습하더군요. 그 장소가 꼭 군산일 필요는 없었지만, 우연이 겹쳐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프로파간다나 〈그래픽〉의 기저에 흐르는 비주류 정서, 우리를 관념적으로 지탱해온 변방 의식의 소산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렇게 군산에 정착해 우여곡절로 가득 찬 2년여간의 준비를 거친 후 프로젝트 공간이자 예술 서점인 그래픽숍을 열었습니다.

최승용 지역에 정착할 때는 누구나 일종의 ‘공간 투쟁’ 과정을 겪는 것 같아요. 남해에 내려올 때 어떡해서든 이 공간, 돌창고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했어요. 임대를 하면 공간의 주도권이 없을뿐더러 지역에서의 실천 행위를 쌓아가는 곳인 만큼 탄탄한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지역은 이런 점이 있습니다. 서울에 비해 경쟁자가 적고 문화 이벤트의 빈도가 낮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 되든 문화적 행위가 의미 부여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규모는 작을지라도 매년 조금씩 쌓아가면서 어떤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지역 문화 활동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김광철 군산 인구는 26만 명 정도예요. 전북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문화적 인프라는 갖춰져 있어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도 꽤 있는 편이고요. 달리 말하면 이 지역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할 때는 (이런 표현이 죄송하긴 한데) 낡은 습속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관 주도 문화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일종의 수직 계열화인 셈인데, 보고 있으면 우울해져요. 가령 공간을 재생하고,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데에서 고색창연한 것들을 별다른 고민 없이 마구 수용하곤 해요. 예를 들어 근대 건물을 채운 철 지난 홀로그램 설치물 같은 것. 이런 것들이 쉽게 바뀐다고 보지 않는데, 거개 지차체가 유사한 상황인 듯합니다.

최승용 돌창고에서 처음 전시를 연 게 2016년 무렵이었어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에야 남해군청과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자체는 상대방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주고, 가능성이 보일 때 용역을 의뢰해요. 막연한 계획에는 절대로 예산을 쓰지 않죠. 지역 문화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돌창고를 근거지로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지자체와 연결돼 공공 공간 기획 같은 일을 하게 된 것이죠. 남해에는 큰 기업체가 없고, 문화 관련 프로젝트를 줄 수 있는 기관은 남해군청이 유일합니다. 제가 남해에서 하는 일이 완전히 새로운 일은 아니에요. 지역의 빈 공간을 어떻게 다시 쓸 것인지는 다른 누군가도 고민했겠죠. 다만 소재가 아닌 방법론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옛 방식과의 싸움이라는 게 결국 다른 방법론을 제시하는 기획자가 이렇게 해보자고 설득하는 일인 것 같아요. 현재 저희는 기획과 디자인 용역을 모두 수행하는 스튜디오 형태로 일하는데, 용역 자체가 기획과 디자인을 함께 수행하도록 계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두 일을 분리할 만큼의 인식도 인적 자원도 부족한 탓이죠. 그런 연유로 처음에는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있었는데 지금은 서울이나 도쿄에 거주하는 외주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뼈아픈 말이지만 이곳은 내부 디자이너가 충분히 역량을 쌓아 실력을 발휘할 환경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광철 디자이너를 비롯한 협업자들이 같은 지역에서 동고동락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때때로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의 코뮌’ 같은 것을 상상하곤 하지만, 아직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여겨집니다. 저의 경우 이곳에서의 협업 방식은 서울에서 일할 때와 거의 달라진 게 없어요. 말하자면 수평적 연결 고리를 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지요. 1인 출판사이자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저는 재능 있는 협업자, 그러니까 기획자, 에디터, 디자이너, 사진가, 교열가로 이뤄진 가상의 조직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씁니다. 그런 것이 결국은 효율성과 품질을 좌우하니까요.

최승용 지역에서 활동하는 직업군 중에는 디렉터가 많지요. 제 입장은 그렇습니다. 지역에는 현장에서 발로 뛸 플레이어가 부족하지 디렉터가 부족하지는 않다고. 그러니까 감독이 아니라 선수층이 두꺼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을 모으는 디렉터는 몇 명이면 족하고요. 가령 지역에서 어떤 공간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 그곳을 뚝심 있게 운영하는 주체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 자리가 비어 있으니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죠.

김광철 저도 디렉터 역할을 하지만 실무를 겸하고 있어 공감이 됩니다. 과제를 수행하려면 반드시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임무를 맡아줄 지역 인력이 태부족인 것도 지역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인 것 같아요. 군산에서도 일당백인 형편입니다. 군산에서 제가 하는 일 중 가장 막중한 것은 서점을 멋있게 운영하는 일이에요. 건축 중심의 예술 서점이고 전북에서는 유일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을 떠날 때, 한강 이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 서점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한 바 있는데···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웃음) 잘 팔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고고히 빛나는 진공 상태의 서점을 여전히 꿈꾸고 있어요. 예술 서적이라는 것은 꼭 사지 않더라도 제목만으로도, 혹은 몇 장 넘기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받곤 하잖아요. 저는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그런 순간과 조우하길 바랍니다. 제가 이 동네에 기여하는 게 있다면 이 서점뿐이란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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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 자리한 예술 서점, 그래픽숍.

최승용 남해는 디자인이나 운영 인력이 여전히 부족하지만 돌창고를 시작한 이후로 보람된 일이 있다면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는 거예요. 10년 전만 해도 숍을 오픈할 때 로고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지금은 전부 로고 만들고 디자인 비용도 지불합니다. 지자체에서는 공간이나 장소 브랜드 디자인 용역도 의뢰해요. 그간 남해에 저희 말고도 젊은 친구들이 운영하는 디자인, 건축 스튜디오가 생기기도 했고요. 멀리서 보면 큰 변화가 아닐지라도 지역 안에서 조금씩 자생적인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명문화하긴 어렵지만 남해 안에서 어떤 ‘점’을 찍었다는 평가는 받아요. 남해에도 문화 공간이 있고 모종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 10여 년간 부단히 노력한 결과라고 봅니다.

김광철 제가 처음 군산에 올 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서점 오픈을 준비하면서 동네 서점 주인들과 연결 고리가 생겼고, 그것이 요즘 장안의 화제인 (웃음) 군산북페어로 이어진 것을 생각하면 대운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북 페어를 열자고 처음 제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군산북페어는 명백히 군산 서점들로 이뤄진 커뮤니티가 조직한 이벤트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 북 페어 제도를 바라보며 거듭 느꼈던 구멍들을 획기적으로 메우고, 더 나아가 북 페어 문화를 더 유연하고 자유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은 간절했지요. 이런 북 페어가 지역에서 열린다는 점도 의미 있다고 봐요. 개념적으로 살짝 급진적인 이 문화 이벤트가 전례 없던 장소에서 열리는 것 자체가 도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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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섬의 양곡 창고였던 돌창고를 리노베이션해 전시장, 카페, 스튜디오로 운영하고 있다.

최승용 커뮤니티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저는 커뮤니티를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관점에서 보고 싶습니다. 가령 돌창고와 교류하는 젊은이들은 10년만 있으면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활동을 할 사람들이에요. 지역의 수준은 결국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눈높이예요. 지역 사업을 주도하는 지자체장도 결국 지역민이 선출해요. 타성에 젖은 지역의 문화 행사나 디자인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 있죠.

김광철 군산북페어를 조직하고 운영하면서 지향점이 비슷한 동류 집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습니다. 광의의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들이 흩어지지 않는 한 군산북페어는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개인적으론 올해 북 페어가 끝나고 박수 소리가 잦아들 무렵, 군산에선 할 만큼 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지난 4년간 지나치게 열심히 한 탓인지, 큰 행사를 할 때마다 빈정 상하는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지는 불분명합니다.(웃음) 군산 이후를 상상하면, 인구 10만 미만의 소도시,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프로그램, 조용한 생활 같은 것이에요. 움직인다면 남쪽일 겁니다.

최승용 지금까지 남해에서 문화 공간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최근에는 세대 간 복합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여기서 할 일이 많네요.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9호(2025.1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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