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외교, 디자인으로 상상하다

미래의 대사관, 살롱 데 누보 앙상블리에

1925년 탄생한 ‘앙상블리에’ 정신이 100년 뒤 살롱 데 누보 앙상블리에로 부활했다. 미래의 대사관을 주제로 지속가능한 공간미학을 제시한다.

새로운 시대의 외교, 디자인으로 상상하다

1925년 ‘국제 장식미술 박람회(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décoratifs)’에서 탄생한 ‘앙상블리에(ensemblier)’의 정신이 정확히 한 세기 후인 2025년 가을 ‘살롱 데 누보 앙상블리에(Salon des Nouveaux Ensembliers)’를 통해 되살아났다. 이 전시는 ‘미래의 대사관(L’Ambassade de demain)이라는 주제를 통해 실내건축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 및 트렌트를 선보이는 자리다. 그리고 이 주제 아래 모빌리에 내셔널(Mobilier National)은 열 명의 건축가 및 디자이너을 선정해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 재료, 장식, 권위, 그리고 인간적 접촉의 의미를 다시 써 내려가도록 의뢰했다. 그렇게 각 디자이너마다 대사관의 현관부터 집무실, 침실, 다이닝룸, 이동식 주방 등 열 개의 공간을 담당해 전시가 완성됐다. 1925년의 ‘국제 장식미술 박람회’가 근대 디자인의 문을 열었다면 2025년의 ‘살롱 데 누보 앙상블리에’는 지속가능한 미학과 인간 중심의 공간철학을 보여준다. 아르데코 운동의 추억을 회상하기 위함이 아닌 미래의 감각과 전통의 기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장식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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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elier Craft – 이동식 주방

아뜰리에 크라프트(Atelier Craft)의 제작 과정에는 언제나 만드는 사람의 손이 중심이 된다. 구식 차고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이들은 설계와 제작을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으로 엮으며 물질의 생애를 존중하는 순환적 디자인을 실천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이들이 상상한 ‘대사관의 주방’은 환대와 권력이 교차하는 장소가 아닌 재료의 기억과 노동의 존엄이 공존하는 곳으로 다시 정의되어 탄생됐다. 재활용 목재, 금속 프레임, 자연석, 그리고 산업 폐기물을 가공한 재료만을 사용해 완성한 이동식 주방은 재료의 잠재력과 순환적 사용이 기능성은 물론, 미적으로도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한 장치로서의 장식을 넘어 인간적 포용과 지속가능성을 상징하며 환경과 사회를 매개하는 새로운 외교적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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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ch & Zephir – 현관

2016년 플로리앙 다크(Florian Dach)와 디미트리 제피르(Dimitri Zephir)가 결성한 Dach & Zephir는 카리브해에 위치한 프랑스 대사관의 현관을 미래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였다. ‘Chayé kò’w’(크리올어로 ‘자신을 맡기다’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기다림의 장소는 전통적인 외교 공간 속 냉정함 대신 서정성에 집중했다. 지역 특유의 식물적 모티프, 부드러운 패브릭과 라탄, 조각작품같은 조명과 붉은 컬러의 조화는 따뜻한 환대의 분위기를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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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lieu Studio – 모듈형 대사관

기능성과 감수성을 결합하는 젊은 건축가 폴 에밀리외 마르셰소(Paul Emillieu Marchesseau)는 이동 가능한 대사관(Nomadic Embassy)을 제안한다. 현대 외교의 유동성과 지속가능성을 반영한 것인데 재활용된 섬유, 재도색된 목재, 인공 대리석 등의 분리 가능한 모듈로 구성된 설치물은 마치 외교관의 짐처럼 언제든 다른 장소로 옮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구현된 기술들은 전혀 가볍지 않다. 장인들의 기술과 예술가들의 창작정신 또한 이동식 플랫폼 안에서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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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údio Rain – 회관(hall)

프랑스 브라질 문화교류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 초대받은 브라질 출신의 디자이너 마리아나 하모스(Mariana Ramos)와 히카르도 이네코(Ricardo Innecco)가 이끄는 Estúdio Rain은 실험적 재료와 감성적 스토리텔링으로 주목받는 듀오다. “우리는 미래의 건축을 말할 때, 재료의 언어로 인간의 이야기를 쓴다.”라는 Estúdio Rain의 말처럼 그들은 다양한 국제적 행사가 열릴 수 있는 회관을 브라질의 자연 재료와 프랑스의 장인 기술이 결합해 명상적 산책의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물질이 두 나라의 문화적 다리를 연결하듯 목재, 점토, 천연 섬유, 유리 등이 대륙을 건너와 프랑스 장인의 아뜰리에에서 제작되고 전시됐다. 특히 파리의 샤넬 공방 19M에서 브라질에서 수집한 열매의 씨앗을 엮어 제작한 벽걸이가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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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on Mailaender – 식당

과감한 유머와 직관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마리옹 마이랑데르(Marion Mailaender)는 ‘미래의 식탁’을 상상했다. 그녀가 고안한 식당 공간은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장소가 아니라 대화와 문화 교류의 무대다. 여기에서는 식기, 조명, 식탁보, 그리고 장식물 하나하나가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전부 세심하게 제작되고 큐레이션된 공간 속 디테일은 한참동안 공간을 벗어날 수 없을 정도다. ‘프랑스의 식탁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야말로 진정한 외교’라는 디자이너의 설명처럼, 그녀의 공간은 감각적이고, 유머러스하며, 동시에 매우 프랑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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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hilde Bretillot – 리셉션

디자이너 마틸드 브레틸로(Mathilde Bretillot)가 제안하는 리셉션은 외교의 형식보다 디자이너 특유의 실험성을 강조했다. 방문객이 이름을 남기는 제의적 제스처를 상징하는 ‘황금책’ 램프, 교적 행위가 먼 미래까지 파문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은유한 ‘효과의 나비’ 조명 등 언어와 상징의 본질을 탐구한 여섯 개의 오브제는 환대와 대화, 기억과 서명의 제스처를 시각화했다. 브레틸로는 이 오브제들을 통해 인간 간의 관계가 어떻게 외교의 본질로 작용하는지 보여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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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d Architecture – 대사의 집무실

마리-사라 뷔르켈(Marie-Sarah Burckel)과 조슬랭 베르틀루(Josselin Berteloot)가 이끄는 OUD Architecture는 ‘시간의 향’을 담는 건축을 추구한다. 그들이 상상한 공간은 이집트에 위치한 프랑스 대사관 내 집무실이다. 외교의 순환적 대화와 하늘의 지도를 상징하는 중앙의 원탁, 나일강의 생명력과 신화를 상징하는 악어를 닮은 소파 등 이집트 전통에서 착안한 고대 장식 언어와 현대적 디테일이 정교하게 결합됐다. 권력과 신화의 상징이 현대적 장식으로 번역된 신비로우면서 시적인 인테리어의 집무실은 열 개의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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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Bonlarron – 연회용 테이블

디자이너 폴 본라롱(Paul Bonlarron)은 음식물 찌꺼기와 색소, 껍질을 재료로 사용해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집중한 테이블을 조형화했다. 달걀껍질로 만든 에나멜 접시, 빵으로 구운 조명, 채소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 스테인드글라스, 양파 껍질 염색으로 주름잡은 식탁보, 그리고 가지껍질로 만든 벽걸이 태피스트리까지. 전부 음식과 그 부산물로 만들어진 본라롱의 작업은 먹고, 버리고, 다시 창조하는 인간의 본능적 리듬을 예술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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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Marie Studio – 대통령의 침실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현대 장식예술가 중 한 명인 피에르 마리(Pierre Marie)는 국가의 대표자가 외국 대사관을 방문했을 때 머무는 공간, 즉 공식성과 사적 공간이 교차하는 장소인 대통령의 침실을 맡았다. 국가의 상징이자 문화적 기호로 사용된 세밀한 패턴과 권력의 온도를 상징한 풍부한 색채, 그리고 피에르 마리의 모든 프로젝트가 그렇듯, 프랑스 최고의 장인들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완성된 수공 직조 태피스트리, 에나멜 세부 장식 등은 권력의 무게를 부드럽게 녹인다. 그리고 이 곳은 마치 꿈속의 궁전처럼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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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e Dries – 바(bar)

건축가 소피 드리에스(Sophie Dries)는 사교의 무대인 바를 선택했다. 1920년대의 살롱 문화를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불러왔는데, 부두아르(여성의 사적 응접실) 컨셉의 여성적 감수성을 강조해 지적 사교의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 흥미롭다. 은은한 조명 아래 거친 재료와 고급 소재를 병치시켜 이끌어낸 감각적이면서 명상적인 분위기, 공간 전체의 리듬을 잡는 팔각형구조의 바 구조체, 에일린 그레이(Eileen Gray)를 오마주한 간결한 라인의 금속과 부드러운 유리의 투명성이 어우러진 샹들리에 등 이 곳에서 느껴지는 조형적 균형은 건축적 질서와 감성적 장식을 절묘하게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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