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만화책이 된 폐발전소, 〈다이얼로그 04: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아〉
건축과 만화의 만남, 푸하하하 프렌즈×쿠로다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기획 전시 〈다이얼로그 04: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아〉는 건축과 만화라는 서로 다른 매체가 공간 안에서 만나는 방식을 실험했다.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가 한동안 거대한 만화책으로 변모했다. 지난 11월 7일부터 21일까지 열린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기획 전시 〈다이얼로그 04: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아〉는 건축과 만화라는 서로 다른 매체가 공간 안에서 만나는 방식을 실험했다.



이번 전시는 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 프렌즈’와 만화 동인 ‘쿠로다(黒田)’의 협업으로 구성됐다. 쿠로다는 숲을 배경으로 한 소녀와 소년의 비밀스러운 서사를 만화로 풀어내고, 푸하하하 프렌즈는 이를 ‘읽기 위한 공간’을 건축적으로 구현했다.


전시의 무대가 된 파워플랜트는 2020년까지 서울대학교에 전기를 공급하던 폐발전소다. 지금은 실험적인 문화 공간으로 쓰이는 이곳에 48개의 가설 벽체가 세워졌다. 각 벽면 중앙에는 만화의 한 페이지가 배치됐다. 관람객은 유선형으로 이어진 벽체 사이를 유영하듯 이동하며, 마치 거대한 벽화를 감상하듯 만화를 읽어 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설 벽체는 단순한 건축 자재를 넘어 하나의 ‘페이지’가 되고 폐발전소 공간 전체는 거대한 서사 구조로 변모한다.


이번 협업이 겨냥한 핵심은 ‘서사를 감각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평면 매체로만 인식되던 만화는 건축에 만들어낸 스케일과 신체적 몰입감을 통해 공간적인 경험으로 확장됐다. 동시에 건축은 기능적 구조물에 머물지 않고 서사를 전달하는 적극적 매개체로 작동한다. 두 분야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람자에게 공간적 서사를 읽는 생경한 감각을 선사한 것.

〈다이얼로그〉시리즈는 서로 다른 영역의 주체를 연결해 대화와 협업의 결과물을 도출하는 기획 전시다. 네 번째를 맞이한 이번 전시는 건축과 만화의 만남을 통해 공간을 ‘보는’ 전시에서 ‘읽는’ 전시로 전환했다. 그리하여 기존 전시 형식과 관람 방식에 유의미한 질문을 던졌다. 전시는 종료됐지만 산업 시설의 흔적 위에 서사를 덧입힌 시도는 매체 간 협업이 어떻게 새로운 감각적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는다.
푸하하하 프렌즈 FHHH Friends

한승재, 윤한진, 한양규 세 명의 소장과 여섯 명의 동료들이 함께하는 건축가 그룹이다. 정해진 문법에 구애받지 않는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일상의 고정관념을 뒤트는 자유로운 건축적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쿠로다(黒田)

2023년 결성된 만화 동인으로 림파, 유나, 유난 세 명의 작가로 구성되어 있다. 만화를 매개로 소통하고 즐기며, 정기적인 모임과 독립 출판을 통해 만화 서사가 가진 본연의 힘을 탐구하는 창작 집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