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리는 패션쇼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전시 〈Catwalk: The Art of the Fashion Show〉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전시 〈캣워크 – 패션쇼의 예술〉을 통해 1900년대 초부터 오늘까지 패션쇼의 역사와 상징성을 조명한다. 오리지널 피스와 아카이브 자료로 100여 년의 런웨이를 한자리에 펼친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리는 패션쇼

패션쇼, 그 지속 시간은 고작 15분 남짓이지만, 그 순간의 이미지는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패션쇼는 하나의 미디어적 스펙터클이자, 사회적 의식, 그리고 스타일의 향방을 결정짓는 선언이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오는 10월 18일부터 열리는 대형 전시 Catwalk: The Art of the Fashion Show를 통해, 이 ‘패션쇼’라는 독특한 현상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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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tra Design Museum, graphic design: Haller Brun based on © Bureau Betak, photo Marie Laure Dutel, Yves Saint Laurent, Autumn/Winter 2020

이번 전시는 1900년대 초의 초기 형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패션쇼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조명하며, 세계적인 하우스들의 사례를 한자리에 모은다. 오리지널 컬렉션 피스, 영상과 사진 자료, 무대 오브제, 초대장 등 다양한 아카이브를 통해 100여 년에 걸친 패션쇼의 역사가 런웨이 위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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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tra Design Museum Archiv Foto: Bernhard Strauss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패션쇼를 하나의 총체적 예술작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놓여 있다. 한때 파리의 살롱에서 이루어지던 소규모의 친밀한 프레젠테이션은 이제 전 세계를 무대로 한 거대한 이벤트로 진화했다. 그 안에서는 건축, 무대미술, 안무, 조명, 사운드, 소품이 유기적으로 얽히며 다층적인 ‘서사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전시는 각 시대의 미학을 반영한 네 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쿠튀르 살롱에서 출발해, 실험적 프레타포르테 형식, 전통적인 캣워크, 그리고 오늘날의 디지털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패션쇼가 걸어온 여정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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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tra Design Museum Archiv Foto: Bernhard Strauss

이를 통해 패션쇼가 단순한 의상 발표회가 아니라, 몸의 이미지와 사회적 변화가 반영되는 문화적 거울임이 드러난다. 또한 전시는 패션쇼가 다루는 신화와 가치, 그리고 꿈은 무엇인가? 그 무대는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어떤 권력 구조를 재현하는가? 하나의 쇼는 그것이 보여주는 컬렉션에 대해 무엇을 말하며, 동시에 그 시대 자체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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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Poiret’s mannequin parade in his garden in Paris, 1910 © Jean Sébastien Baschet L’Illustration, Foto: Henri Manuel

패션쇼의 기원(1관)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패션은 선택된 고객층을 대상으로, 주로 아틀리에 하우스에서 비공개로 선보이는 형식을 취했다. 이 시기의 초창기 필름 자료와 인쇄물을 통해 당시의 주요 인물들이 소개된다. 그중에서도 찰스 프레데릭 워스는 패션을 더 이상 마네킹에 입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여성이 직접 입고 걷는 형태로 선보인 선구자였다. 루실과 폴 푸아레는 패션쇼를 서사와 결합시켜 ‘이야기 있는 의상’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고, 가브리엘 샤넬은 모델들이 거울 계단을 따라 살롱으로 내려오는 장면을 연출하며 시각적 극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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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rrored staircase at CHANEL’s Paris atelier, c. 1930. From: Käthe von Porada, Mode in Paris, Frankfurt a. M., 1932 © Vitra Design Museum Archive

역사적 영상 자료는 미국의 백화점, 경마장, 대형 여객선 등에서 열린 초기 패션쇼의 풍경을 생생히 보여준다. 또한 발렌시아가 아카이브의 오리지널 인형 여러 점이 공개되어, 전후 패션의 전설적인 재출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여기에 사진가 톰 쿠블린이 1960년대 초기에 촬영한 초기 발렌시아가 쇼의 영상 자료가 더해져, 그 시대의 공기와 감각을 더욱 생생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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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show by Paco Rabanne in his boutique in Paris, 1968 © Getty, Foto: Alain Loison

전시의 두 번째 장(2관)은 프레타포르테(의 부상과 함께 패션쇼가 살롱을 떠나 도시로 스며들던 시기를 조명한다. 이때부터 패션은 거리와 문화, 그리고 서브컬처와의 접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1958년, 끌로에는 파리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의 아지트 카페 드 플로르로 관객을 초대했고, 앙드레 쿠레주와 파코 라반은 공간과 움직임의 실험을 통해 런웨이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 한편, 겐조는 자신의 쇼를 아예 파티로 바꾸어버리며 패션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 시기의 상징적인 사건은 1973년의 〈Battle of Versailles〉, 즉 프랑스와 미국 디자이너 간의 전설적인 ‘패션 대결’이었다. 이 대결에서 미국 디자이너들이 전통적으로 패션계를 지배하던 프랑스 오트쿠튀르에 도전하며, 미국 패션의 세계적 도약을 알리는 결정적 순간이 펼쳐졌다. 당시 팻 클리블랜드와 같은 흑인 모델들이 무대에 오르며, 런웨이의 이미지와 미적 감수성이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패션쇼는 이제 단순한 의상 발표가 아닌 퍼포먼스의 장, 그리고 사회적 변화의 징후로 기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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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models Linda Evangelista, Cindy Crawford, Naomi Campbell, and Christy Turlington at the Versace Ready-to-Wear show, A/W 1991/92, Milan © Shutterstock, Foto: Paul Massey

1990년대, 슈퍼모델의 등장과 함께 패션쇼는 마침내 전 지구적 가시성을 획득한다. 그 상징적인 장면은 1991/92년 가을·겨울 베르사체쇼의 신디 크로퍼드, 나오미 캠벨, 린다 에반젤리스타, 크리스티 털링턴 네 명의 슈퍼모델이 조지 마이클의 히트곡 〈Freedom〉에 맞춰 함께 등장한 순간이다. 이 장면은 곧 한 시대의 아이콘이자, 패션쇼의 전설적 이미지로 남았다. 전시 속 영상 클립들은 이 네 모델이 만들어낸 새로운 ‘몸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한편, 〈Models Never Talk〉 퍼포먼스에서는 모델들이 자신들의 워킹과 포즈, 그리고 침묵 뒤에 감춰진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며, ‘보여지는 존재’에서 ‘말하는 주체’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세 번째 전시 구역은 밀레니엄 전후, 패션쇼가 점점 막대한 예산과 대기업의 영향력 속에서 초대형 미디어 이벤트로 진화하던 시기를 다룬다. 이 시기, LVMH와 케어링과 같은 패션 그룹의 부상은 쇼의 스케일과 형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그 중심에는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있었다. 그는 파리 그랑 팔레를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변모시켰다. 정교하게 재현된 슈퍼마켓 세트, 로켓 발사 장면, 그리고 패션 시위를 연상시키는 시가행진까지 라거펠트는 패션쇼를 단순한 런웨이 프레젠테이션이 아닌, 완벽히 연출된 서사적 체험으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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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McQueen, Ready-to-Wear S/S 1999, »No. 13« © Robert Fairer

동시에 일부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거대 스펙터클에 맞서 급진적인 해체의 미학을 펼쳤다. 알렉산더 맥퀸은 1999년 S/S 컬렉션 〈No.13〉에서 두 대의 산업용 로봇이 모델의 드레스를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페인팅하게 함으로써, 기술과 인간, 즉 창조의 주체를 뒤흔드는 장면을 연출했다. 빅터 & 롤프는 1999/2000 F/W 컬렉션 〈Russian Doll〉에서 한 모델에게 아홉 겹의 옷을 차례로 입히는 미니멀하면서도 상징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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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EWE, Ready-to-Wear, S/S 2023 © Stefan Aït Ouarab

전시의 마지막 공간(4관)은 최근 수년간 패션쇼가 걸어온 새로운 진화의 방향을 탐색한다. 이미 2020년 이전부터 많은 브랜드들이 디지털 공간에서의 시각적 파급력을 염두에 두고 쇼를 기획하기 시작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하이브리드 혹은 순수 디지털 형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디올은 2020 F/W 시즌, 단편 영화 〈The Dior Myth〉에서 인형의 집 속 미니어처 컬렉션을 선보였고, 로에베는 2021 S/S 시즌 〈Show in a Box〉라는 독창적 형식으로 쇼를 ‘상자 안’에 담아 전달했다. 발렌시아가는 2022 S/S 시즌에 〈심슨가족〉의 창작자 맷 그로닝과 협업해,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들이 런웨이를 걷는 장면을 선보이며 디지털 시대의 아이코닉한 순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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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cci, Ready-to-Wear F/W 2018/19, »Cyborgs« Courtesy of Gucci / Photo: Kevin Tachmann

오늘날의 패션쇼는 예술가와 안무가의 협업을 통해 무대 예술로 확장되고 있다. 이세이 미야케는 에르빈 부름의 퍼포먼스를, 디올은 샤론 에얄의 무용을 통해 ‘움직임 속에서 완성되는 패션’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디올 캣수트가 공개된다. 또한 동시대 디자이너들은 또한 ‘몸’을 사회적 담론의 무대로 다룬다. 릭 오웬스는 여성의 연대와 힘을,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사이보그 선언을 통해 성과 정체성의 경계를 탐구했다. 발렌시아가는 안면 보철을 활용해 미의 기준과 자기 재현을 비판적으로 되묻는다. 마지막으로 전시는 패션과 건축의 긴밀한 관계도 조명한다. 건축가 렘 콜하스의 OMA와 프라다의 오랜 협업, 그리고 버질 아블로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스카이라인 재킷’이 그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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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 Vuitton, Ready-to-Wear S/S 2023, Cour Carré du Louvre, Paris © Raimond Wou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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