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세계 최대 규모 이집트 대박물관, 그 모습은?

20년 만에 공개된 이집트 대박물관

11월 1일 카이로 인근 기자에 ‘이집트 대박물관’이 공식 개관했다. 세계 최대의 단일 문명 박물관으로 이집트 문명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새로운 문화 허브다. 20년에 걸친 대장정 끝에 완성된 이집트 대박물관을 소개한다.

베일 벗은 세계 최대 규모 이집트 대박물관, 그 모습은?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꼽히는 이집트 문명은 고유의 독창적인 문화로 오랫동안 인류사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6천여 년의 역사 속에서 이집트는 피라미드, 상형문자, 장례문화 및 부장품, 신전 건축물 등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유산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현재, 이집트의 대표적인 유물들은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등 세계 각국의 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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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집트 대박물관 페이스북

지난 11월 1일, ‘이집트 대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 GEM)’이 공식 개관했다. 카이로 외곽 기자 지역의 거대한 피라미드 옆에 자리 잡은 이 박물관은 단일 문명에 헌정된 세계 최대의 박물관이다. 이집트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있어 의미 있는 역사적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개관식에는 압델 파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비롯해 독일 대통령, 네덜란드 총리 등 주요국 정상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행사에는 화려한 공연과 불꽃놀이, 대규모 드론 쇼 등이 펼쳐져 화제를 모았다. 특히 드론 쇼는 이집트를 대표하는 유물의 모습들을 차례로 재현하며 박물관의 개관을 성대하게 축하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엑스(X) 계정을 통해 “이 박물관은 고대 이집트인의 천재성과 현재 이집트인의 창의력을 하나로 모은 새로운 랜드마크”라고 소개했다. 무스타파 마드불리 이집트 총리 역시 “이집트가 세계에 드리는 선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집트 국영 매체 알 아흐람 위클리는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같은 박물관은 제국주의 산물이지만, 이 박물관은 진정성에서 태어났다”라고 평하며 이집트 대박물관의 상징적인 의미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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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집트 대박물관 홈페이지

2005년 착공 이후 20년에 걸친 대장정 끝에 완성된 이집트 대박물관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정수를 보여주는 10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 중 약 5만 7천 점이 대중에게 공개된다. 루브르 박물관이 약 3만 5천 점의 전시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박물관의 규모는 단연 압도적이다. 모든 유물을 관람하려면 잠도 자지 않고 24시간 내내 볼 경우로 계산했을 때 꼬박 70일이 걸린다고 한다. 이처럼 방대한 소장품을 담기 위해 박물관의 규모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전체 면적은 50만 제곱미터로 축구장 70개를 합친 크기와 맞먹으며, 바티칸 시국의 면적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박물관의 설계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본사를 둔 건축사무소인 헤네한 펭(Heneghan Peng Architects)이 맡았다. 2002년 진행된 국제 설계공모에서 82개국 1,557개 출품작 가운데 이들의 작품이 최종 선정된 결과다. 구조 엔지니어링은 뷰로 해폴드(Buro Happold)와 아럽(Arup)이 협력하였으며, 마스터플랜과 전시 디자인 등은 독일의 아틀리에 브뤼크너(Atelier Brückner)가 담당했다. 건축가들은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에서 영감을 받아 삼각형의 유리 외관을 설계했으며 피라미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저층형 건물을 배치했다. 박물관 내에서 피라미드를 마치 전시된 유물처럼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섬세한 설계 덕분에, 관람객은 고대와 현대가 맞닿은 듯한 공간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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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집트 대박물관 페이스북

박물관의 설계는 방문객으로 하여금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층적인 경험을 하도록 유도한다. 박물관 정문 앞에 세워진 ‘매달린 오벨리스크(Hanging Obelisk)’는 세계 유일의 구조물이며 앞으로 펼쳐질 경이로운 여정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입구로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그랜드 홀(Grand Hall)’에서는 66년간 이집트를 통치하며 나라를 황금기로 이끈 람세스 2세의 석상이 서 있다. 카이로 도심 광장에서 이전된 이 석상은 높이 11미터, 무게 83톤에 달하는 거대한 조각상이다. 화강암으로 조각된 위용 속에 고대 장인들의 정교한 기술과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위엄이 깃들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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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집트 대박물관 페이스북

홀을 지나면 양옆으로 고대 조각상이 늘어선 ‘대계단(Grand Staircase)’이 이어진다. 이름 그대로 6,000제곱미터 규모에 6층 높이로 펼쳐지는 이 거대하고 장엄한 계단은 마치 파라오의 신전으로 향하는 길처럼 느껴진다. 방문객들은 계단을 오르며 왕실 조각상과 다양한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계단의 끝에는 박물관의 하이라이트, ‘투탕카멘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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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집트 대박물관 인스타그램

이집트 대박물관의 중심이 되는 이 공간에서는 그 유명한 황금 가면을 비롯하여 장례용 침대, 의례용 전차, 장신구와 의복 등, ‘소년왕’이라고 불렸던 제12대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1922년에 발굴되었던 유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 장례 문화의 예술성과 정교함을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는 곳이기에, 가장 많은 관람객들이 모여드는 곳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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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키피디아

또한 4,500년 전 쿠푸왕의 부장품으로 알려진 목조선, ‘태양의 배’가 전시되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태양신이 낮과 밤을 항해하는 배를 상징하는 이 유물은 쿠푸왕이 사후 세계를 여행하기 위해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면서도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목조선으로, 당시의 종교적 세계관뿐 아니라 고대 선박 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미라, 신전 벽화 등 고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유물들이 한곳에 모여 관람객의 호기심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이집트 문명 전반을 다룬 이집트 대박물관은 역사적 유물 관람 외에도 문화 복합 단지, 커뮤니티 허브, 지식 센터로서 역할도 톡톡히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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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집트 대박물관 페이스북

이집트 정부는 박물관 개관을 통해 관광객 유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2024년부터 진행된 부분 개관 기간에도 하루 5천-6천 명이 박물관을 찾으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정식 개관 이후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집트 관광·유물부에 따르면, 개관 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하루 평균 방문객 수가 1만 9천 명에 달했다.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연간 관람객은 69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관광 산업 전반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관광 지표에 따르면 카이로와 기자 지역 호텔들은 11월과 12월 내내 만실을 기록했으며, 박물관 개관 이후 다수의 호텔의 객실 점유율이 10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기자 일대는 피라미드 관광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왔지만, 이번 대박물관 개관을 계기로 이집트 문화 관광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정부는 대박물관을 통해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과 더불어 관광 산업을 국가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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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이집트 대박물관 홈페이지

이처럼 국가 브랜드의 재건을 이끌 상징으로 평가받는 이집트 대박물관이 개관까지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데에는 이집트의 복잡한 정치·사회적 상황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 박물관 건설은 2005년에 시작됐지만 2011년 아랍권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이 발발하면서 공사가 3년간 중단됐다. 이후 2013년 군사 쿠데타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잇따라 발생하며 공사는 계속 지연됐다. 건물이 완공되었지만 개관이 연기된 이유 또한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 등과 같은 중동 지역의 불안한 정세 때문이었다.

이처럼 잦은 중단으로 공사비가 부족해지자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가 자금을 지원했다. 또한 일본 보존 전문가들은 투탕카멘의 황금 장례용 침대와 의례용 전차 복원 작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전시 준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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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헤네한 펭 인스타그램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정부는 마침내 대박물관의 개관을 이끌었다. 이는 문화시설 완공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오랜 시간 동안 이집트 외부에서 진행되고 있던 이집트 유물에 대한 연구의 주도권을 되찾는 전환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이집트 고고학 연구는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국가가 주도해왔으며 주요 유물 상당수는 해외 박물관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번 대박물관 개관으로 이집트는 자국 문화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고, 문명의 발상지로서 연구의 중심이 되어야 할 명분과 정당성 또한 확보하게 되었다. 실제로 개관식에서 네덜란드 총리는 3천5백 년 된 파라오 흉상 반환을 선언하며 그 시작을 알렸다. 이를 계기로 다른 이집트 유물 보유국에서도 반환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상징하던 고대 문명의 찬란함을 현대적인 공간 속에서 되살려낸 이집트 대박물관은 제국주의 시대가 만들어낸 문화 자산의 불균형과 문명 담론의 중심이 서구에 집중되어 있던 현재의 상황을 타파하는 상징적인 공간이자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이집트 대박물관은 잃어버린 유산을 되찾고, 스스로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확인하며, 새로운 문화 외교의 거점으로 기능할 것이다. 세계의 시선이 이곳에 쏠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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