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반 두인 OMA 아시아 총괄 파트너

반세기에 걸친 진화

글로벌 건축사 사무소 OMA는 올해로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이들이 반세기 넘게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크리스 반 두인 OMA 아시아 총괄 파트너

헤이그의 주간지 〈하흐세 포스트(Haagse Post)〉 기자로 일하던 한 청년은 25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건축계에 입문한다. 그리고 1975년 동료들을 모아 건축사 사무소를 설립한다. 훗날 현대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사무소의 이름은 OMA. 청년의 이름은 렘 콜하스(Rem Koolhaas)다. 하지만 OMA는 결코 천재 건축가 한 명의 힘으로 좌우되는 집단이 아니었다. 이들은 지난 50년간 파트너 체제를 확립하며 민주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고 밖으로는 지속적인 실험과 변화를 꾀했다. OMA 아시아 총괄 파트너인 크리스 반 두인(Chris van Duijn)은 그 모험의 여정을 가까이서 목도한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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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프트 공과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6년 OMA에 합류했다. 로스앤젤레스 유니버설 스튜디오, 뉴욕 및 로스앤젤레스 프라다 매장(2001), 베이징 CCTV 본사(2012) 등 OMA의 대표 프로젝트 다수에 참여했다. 2009년 경희궁에 선보여 화제가 된 프라다 트랜스포머의 인테리어와 소규모 구조물을 디자인했으며 2014년 파트너가 되어 6명의 파트너와 함께 OMA를 이끌고 있다.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는 그는 갤러리아 광교(2020), 중국 샤먼의 조무 본사(2025)와 항저우 프리즘(2025) 등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oma.com

OMA의 국내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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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해변 테마거리 재정비 프로젝트. 2026년부터 2028년까지 진행하는 정비 사업이다. OMA는 ‘파도’와 ‘그릇’을 콘셉트로 한 만남의 광장 스탠드, ‘균형 잡기’와 ‘모래언덕’을 주제로 한 공중화장실 디자인을 제안했다.
지난여름에 공개한 광안리해변 테마거리 재정비 프로젝트 설계안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OMA는 그동안 공공 공간을 설계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프로젝트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도 있지만, 대형 건축사 사무소이다 보니 소규모 프로젝트에는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소규모 공공 프로젝트나 전시 등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수영구청으로부터 제안이 들어왔을 때 무척 기뻤습니다. 광안리해변가를 한층 더 활기차게 만들 프로젝트라고 생각했고요. 우리가 진행한 프로젝트는 공중화장실과 만남의 광장 야외 스탠드입니다. 공중화장실은 공공성이 가장 돋보이는 건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곳인 만큼 기준을 세우는 데 어려움도 많지만 말이죠. 우리는 모래언덕이라고 부르는 돔 구조의 화장실을 제안했습니다. 스탠드는 드론 쇼 같은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곳이라는 것을 감안해 원형극장 같은 디자인을 구상했습니다. 크게 두 면으로 구성되는데 한 면은 도시를, 다른 한 면은 해변을 향하고 있죠. 화장실과 스탠드 모두 낮에서 밤으로 변할 때 건축의 아이덴티티가 바뀐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완공되면 이곳이 광안리해수욕장의 새로운 문화 거점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갤러리아 광교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팬데믹 시기와 맞물리는 바람에 화제가 덜 된 것이 아쉬웠죠.

최악의 시기였죠. 사실 갤러리아 광교는 2020년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문을 열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홍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무척 중요한 프로젝트였어요. 유통업은 지속적인 혁신과 변화가 필요한 산업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쉽사리 도태되죠. 갤러리아 광교는 백화점 브랜드를 업그레이드하는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신도시라는 점도 매력적이었어요. 2015년 처음 현장을 방문했을 때 주변엔 건물이 거의 없었습니다. 새로운 주거지가 조성될 예정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시 확정된 것은 네 블록을 둘러싼 광장이 전부였습니다. 사람들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장소로 느껴질 만한 조건이 전무했던 셈이죠. 하지만 백화점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단순한 쇼핑 시설이 아닌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죠. 따라서 우리는 이 프로젝트로 광교의 앵커 포인트를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지역적 맥락에서 프로젝트의 본질을 추출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미래를 위한 맥락을 제공할 때도 있습니다. 갤러리아 광교는 후자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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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홍익대학교 캠퍼스는 제일 기대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우리가 진행하는 것 중 가장 흥미로운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건축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설계 요건을 읽고 현장에서 며칠을 지내며 내린 결론은 캠퍼스의 DNA가 건축과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건축이 홍익대학교를 홍익대학교답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건물과 야외 공간 사이의 하이브리드한 조건이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창의적인 환경을 발견했습니다. 동시에 홍익대학교가 인근 지역과 맺고 있던 강한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비록 인구 감소에 따라 학생 수가 줄더라도 학계와 도시 간의 통합은 더 강해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연결 고리를 다시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본질적으로 도시계획, 풍경, 공공 공간, 건축 이상의 요소를 포함합니다. 프로젝트가 완성됐을 때 가장 돋보이는 것은 아마 열린 공간일 거예요. 서울의 과밀화가 심해지고 열린 공간은 희소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역으로 이 부분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02 Hongik University Seoul Campus Image by Negativ Courtesy of OMA High
홍익대 혁신성장캠퍼스 개발 사업. 일명 ‘뉴 홍익’ 프로젝트로 불리는 대규모 마스터플랜이다. 기존 운동장과 체육관의 지상·지하를 재구축해 지하 5층~지상 7층, 연면적 14만 8000㎡ 규모의 복합 캠퍼스를 조성한다는 계획으로 마련한 국제설계공모전에서 OMA가 당선됐다. 2030년 준공을 목표로 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OMA는 정림건축과 협업할 예정이다. 이미지 제작 Negativ ⓒOMA
지난 몇 년간 해외 유명 건축사들의 프로젝트가 부쩍 늘어난 느낌입니다. OMA를 비롯해 자하 하디드, 장 누벨, 헤어초크 & 드 뫼롱…. 이런 현상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서울은 현재 동아시아의 문화 중심지라고 생각합니다. OMA 아시아가 거점을 둔 홍콩보다 더 활발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죠. 저는 지난 20여 년간 한국을 정기적으로 방문했습니다. 처음 마주한 한국의 인상은 내향적인 사회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느낀 솔직한 심정이었죠. 당시 한국은 전자 제품과 자동차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한국, 특히 서울은 훨씬 더 국제화되었어요. 가전 기기나 자동차뿐 아니라 K-팝, 영화 등 문화 콘텐츠도 수출하죠. 반대로 수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찾습니다. 한국과 교류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한국을 방문합니다. 건축계도 예외가 아니죠. 실제로 국경을 넘어 수많은 해외 건축가가 설계 공모 입찰에 참여합니다. 한국의 프로젝트를 매우 흥미로운 기회로 여기는 것이죠.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됩니다. 국내 건축가들이 대형 프로젝트를 경험할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것이 OMA의 탓은 아니지만요.(웃음)

저는 이것이 쌍방향으로 가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굵직한 프로젝트 중 다수가 해외 유명 건축사 사무소에 돌아가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네요.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여전히 99%의 기회는 한국 건축사 사무소에 돌아갑니다. OMA가 한국으로 눈을 돌리는 건 기회를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은 협력에 있습니다. 대형 건축사 사무소와 협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광안리 프로젝트처럼 아직 규모가 작은 일에 젊은 건축가들과도 연대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배운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좀 더 글로벌한 관점을 가질 수 있고, 우리는 반대로 한국의 방식을 터득하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이런 협업이 한국의 건축 생태계에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유럽을 비롯한 서구권 사회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배타적인 성격을 띠게 됐어요. 고립과 배척이 일상화되고 있죠. 건축, 디자인, 예술이 우리를 다시 연결해줄 것이라고 믿어요. 다른 문화에 관한 이해를 높이고 대화를 유도하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자아, 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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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강남(2017). AMO가 개발한 ‘제네시스 스페이스 아이덴티티’ 콘셉트로 자동차 매장의 기존 공식을 재해석했다. 많은 차량을 노출하는 대신 디자인과 장인 정신을 강조했다. 사진 Jay Jeon
화제를 전환해보죠. OMA의 운영 체제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텐데요.

OMA를 설명하는 첫 단어는 ‘컬렉티브’입니다. 전통적으로 건축사 사무소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지만, 우리는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설립했고, 발전해왔습니다. 4개 대륙에 걸쳐 7명의 파트너를 비롯해 50개국 이상의 국적을 지닌 350명의 건축가가 함께 일합니다. OMA는 중앙 본사 개념이 없습니다. 특정 인물이 모든 결정을 좌우하지도 않죠. 컬렉티브는 회사를 조직하는 유기적인 방식입니다. 7명의 파트너는 특정 지역을, 예컨대 저는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지만, 이와 함께 사무소 전체에 대한 책임도 집니다. 피라미드 구조로 조직된 전통적인 조직에선 낯선 풍경이죠. 우리는 중앙집권적 시스템이나 그 결과로 나온 디자인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로테르담의 건축가 한 명이 전 세계의 모든 건축물을 디자인할 수 있겠어요?

다른 대륙 사무소의 파트너와도 협업하나요?

그것은 매우 유기적으로 이뤄집니다. 기본적으로 프로젝트는 개별 사무실에서 단독으로 진행하지만, 경우에 따라 협업이 이뤄지기도 하죠. 고객 관계 관리에 특화된 전문성이 필요할 때 주로 협업을 합니다. 한 지역에 있는 다른 파트너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협업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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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프라다 파운데이션(2018). 과거 대규모 산업 단지를 복합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프로젝트이다. 크리스 반 두인은 렘 콜하스와 협업해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사진 Bas Princen
OMA 못지않게 AMO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OMA와 AMO를 별개의 조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건축, 도시, 조경, 인테리어를 구분 지어 생각하지 않아요. 일관된 태도와 원칙으로 접근하죠. 이런 자세 덕분에 자연스럽게 프로젝트의 범주가 확장됐습니다. 전시, 출판, 브랜딩 등 전통적인 건축 영역에서 벗어난 활동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AMO라는 별도의 라벨을 붙인 것입니다. OMA의 스펠링을 미러링한 것도 우리가 하나의 조직이라는 것을 시사하죠. 물론 구성원에 따라 OMA의 활동에 집중하기도, AMO에 초점을 맞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상 두 활동은 교차점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정체성을 명확히 구별 짓지 않아요.

하지만 OMA와 AMO의 프로젝트에는 본질적인 차이도 있죠. 예컨대 찰나의 순간을 연출하는 전시 프로젝트와 불멸을 꿈꾸는 건축 설계를 단순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확실히 50년, 100년을 염두에 둔 건물을 설계할 때와 비교할 순 없습니다. 예를 들어 건축은 지리적 맥락을 탐구하고 반영해야 하지만 패션쇼는 맥락이 없습니다. 백지 상태라고 할 수 있죠. 아직 컬렉션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패션쇼는 패션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시대적 선언입니다. 사실 일련의 프로젝트는 건축이 짊어져야 할 책임감으로부터 우리를 어느 정도 해방시킵니다. 더 자유롭고 직관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죠. 건축이 마라톤이라면 AMO 활동은 스프린트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다양한 근육을 단련할 수 있습니다.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놓인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더 다재다능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습니다.

건축사 사무소의 반 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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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샤먼 지역에 오픈한 조무 헤드쿼터. 조무는 중국 욕실 가구 브랜드의 선두 주자이다. OMA는 오피스 주변의 지역적 맥락과 중국의 전통 창살 양식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을 설계했다. 사진 Chen Hao
OMA가 글로벌 건축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배경에는 탄탄한 리서치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리서치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지식 습득입니다. 주어진 주제를 이해하려면 폭넓은 지식이 선행되어야 하죠.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시애틀 중앙 도서관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방대하고 철저한 연구가 수반되어야 했습니다. 이전에 우리가 파리에서 진행한 TGB 도서관보다 한층 더 확장된 접근이 필요했죠. 핵심 질문은 ‘디지털 시대에 도서관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였습니다. 다른 건축가들이 디자인에 집중할 때 우리는 도서관의 현상, 달라진 사회와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런 태도는 디자인에도 녹아들었습니다. 사실 리서치에 정해진 원칙은 없습니다. 우리는 오랜 기간 구축한 방법론 중 어떤 것이 더 유용하고 흥미로운지 판단합니다. 리서치란 결국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을 뜻합니다. 연구와 좋은 디자인 사이에 선형적인 관계 따윈 없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직관력을 더 요하는 경우도 더러 있고요.

그런데 프로젝트를 위한 리서치 수행은 사실상 모든 건축가가 진행하지 않나요?

그렇죠. 그런데 OMA는 프로젝트와 직접 관련이 없는 연구도 진행합니다. 우리는 모든 대륙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각 사회의 트렌드를 면밀히 관찰하고 비교합니다. 이러한 연구는 특정 현상을 더 깊이 기록하고 이해하려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카타르에서 지난 10월에 개막한 〈Countryside: The Future〉전이 그 예입니다. 건축가와 계획가들의 관심이 도시에 쏠려 있는 사이 농촌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경제 체계나 기후변화 같은 것이죠. 병원도 주된 관심사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이에 따라 의료 시설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죠. 병원 설계의 패러다임이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도시와 마찬가지로 병원을 처음부터 재고해보고자 합니다. 개인 맞춤형 돌봄과 고도화된 기술 혁신, 지역 문화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고민 중입니다. 어쩌면 미래에는 이러한 통찰력을 활용해 병원을 설계할 기회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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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 헤드쿼터 설계를 위한 스터디 과정 ⓒOMA
OMA는 올해 5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월간 〈디자인〉도 내년 50주년을 앞두고 있어 그 여정이 낯설지 않네요. OMA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볼 수 있을까요?

2014년경 홍콩 사무소에 합류했을 땐 이미 CCTV 시대가 끝이 났습니다. 수년간 진행하던 대규모 랜드마크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고 아시아, 특히 중국에서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였죠. 저는 아시아 전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고, 각 프로젝트를 개별적으로 살펴보며 흥미로운 점을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특히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어요. 젊은 클라이언트는 이전 세대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항저우에 문을 여는 프리즘도 그중 하나입니다. 클라이언트는 전형적인 주거 개발 업체에서 탈피해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모하고 싶어 했죠. 이런 식으로 샤먼, 항저우, 선전, 칭다오 등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양한 현지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특정 지역에 더 깊이 관여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러 지역을 오가며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는 관심을 가진 특정 지역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꾸준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죠. 이렇듯 우리의 작업 방식은 세월이 흐르며 변화해왔습니다.

OMA가 설계한 중국 CCTV 본사(2008)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오피스 빌딩이었다. 중국은 2000년대에 대형 건축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다.

숱한 스타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뜨고 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건축사 사무소가 반세기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요?

한 산업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꾸준히 변화에 대응하고 이를 수용해야 합니다. OMA의 경우 안정성과 불안정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근속연한이 긴 구성원도 있지만 반대로 짧은 기간 일하고 떠나는 이들도 있습니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도 있고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문화와 아이디어를 접한다고 생각합니다. 파트너십도 마찬가지입니다. 7명의 파트너가 진행하는 미팅에서 우리는 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또 한 가지 비결이라고 한다면 단일한 스타일 혹은 건축 언어를 유지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입니다. OMA의 포트폴리오에서 이런 점이 잘 드러나죠.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다양한 아이디어가 모여 다양한 장소에서 소개됩니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아요. 늘 현재에 집중하죠. 무언가를 유지하는 게 우리에겐 큰 의미가 없습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결정할 수 있기에 변화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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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Iwan Baan
그렇다면 OMA의 미래를 위해 한국에서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는지 궁금하네요.(웃음)

최근 부산의 경사 지형에 대한 건축적 대안을 제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타워형 건축이라는 명백한 해결책이 아닌 새로운 대안을 강구하는 자리였죠.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에 인구 구조의 변화가 임박했으며, 이것이 향후 한국의 도시들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 9월에 열린 부산국제건축제 기간에 일부 마스터플랜을 발표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는데, 우리가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 중 하나는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된 마스터플랜이 대부분 확장, 다시 말해 더 많은 인구, 더 많은 인프라, 더 큰 도시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적음’이 ‘더 많음’보다 중요한 상황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청년 인구, 학교, 가족의 감소 등이 그 예입니다. ‘축소되는 도시’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재정의하는 기회로 봐야 합니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죠. 인구 구조의 변화에 대한 연구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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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건축제에서 선보인 OMA 특별전. 부산의 경사 지형에 조응하는 건축 제안(사진 위)으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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