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메이커와 디자인을 잇는 허브, 크라프트 + 디자인 캔버라
지역성과 디자인 감각이 교차하는 곳
호주의 수도 캔버라는 정치 도시를 넘어 예술·디자인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장인·디자이너·예술가가 협업하는 ‘크라프트+디자인 캔버라(CDC)’가 있다. 손으로 만든 가치와 현대적 디자인이 공존하는 이 공간은 지역성과 창조성이 교차하는 캔버라의 새로운 예술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호주의 수도 캔버라(Canberra)는 정치의 도시로 널리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예술과 디자인의 도시로도 떠오르고 있다. 이는 장인과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크라프트 + 디자인 캔버라(Craft + Design Canberra, 이하 CDC)’에서 잘 드러난다. 산업화된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손으로 만든 것의 가치를 신념처럼 지켜가는 이 공간은 예술 기관이면서 동시에 도시의 창조적 생태계를 이끌어가는 살아 있는 플랫폼이다. 흙과 금속, 유리와 섬유가 장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가 하면 전통 공예는 오늘의 디자인 언어로 재해석된다. 도심 속에서 창작자와 관람자가 직접 마주하는 CDC는 지역성과 디자인 감각이 교차한다는 점에서 캔버라의 새로운 예술적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CDC는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예술 단체로, ‘We Love Craft and Design’이라는 슬로건 아래 공예와 디자인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한다. CDC에서 ‘공예’는 더 이상 낡은 전통이 아닌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살아 있는 실천의 언어로 평가된다. CDC는 갤러리 전시와 리테일 스토어, 커뮤니티 프로그램, 그리고 지역 축제 등을 통해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실험하고, 시장과 소통하며, 예술적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간다. 동시에 지역 사회가 디자인과 공예를 일상의 감각으로 체험하도록 돕고 있다.
CDC의 철학은 ‘연결(Connectivity)’과 ‘지역 정체성(Local Identity)’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확장된다. 지역 기반의 예술가와 메이커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서로의 작업을 지지하고, 새로운 협업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장을 마련한다. 더불어 CDC는 캔버라의 원주민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두고 그들의 문화적이고 영적인 유산에 대한 존중을 모든 활동의 기반으로 삼는다. 이는 공예와 디자인이 창작 행위를 넘어 공동체의 기억과 정신을 잇는 매개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CDC의 주요 활동은 크게 전시 갤러리 운영, 리테일 스토어, 그리고 프로그램 및 커뮤니티 지원으로 나뉜다. 갤러리에서는 국내외 작가들의 단독전과 그룹전이 열리며, 전통적 공예와 현대 디자인의 경계에서 실험적인 시도를 담은 기획전도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도자, 유리, 금속, 목재, 텍스타일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작품들은 ‘손의 미학’과 ‘지속 가능한 디자인’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리테일 스토어는 소비자가 작가의 작품을 직접 보고 만지며 그 제작 과정과 철학을 들을 수 있는 경험의 장(場)이다. 하나의 오브제를 구매하는 행위가 곧 하나의 이야기를 소유하는 경험이 되는 것이다.
또한 CDC는 예술가와 커뮤니티를 잇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Meet the Maker’에서는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고, ‘Artist-in-Residence’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과 세계의 예술가들이 교류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Daily Creative Challenge’, ‘Member Opportunities’ 같은 프로젝트는 지역 창작자들의 성장과 참여를 독려하며 CDC의 커뮤니티적 성격을 더 강화한다.

CDC의 흥미로운 점은 캔버라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국제적인 감각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시드니나 멜버른의 대규모 디자인 페스티벌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CDC가 선보이는 전시와 프로그램은 오히려 밀도와 깊이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작품 리스트를 보면, 전통적 재료를 다루는 장인에서부터 디지털 제작과 지속가능성을 탐색하는 젊은 작가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이룬다.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예와 기술, 재료와 아이디어를 융합하며 현대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크라프트 + 디자인 캔버라 페스티벌(Craft + Design Canberra Festival, 이하 CDCF)’이다. CDC의 정체성을 가장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이 축제는, 한 해 동안의 창작 활동을 집약해 선보이는 도시 전체의 예술 이벤트다. 페스티벌 기간 캔버라 곳곳의 갤러리, 스튜디오, 공공 공간이 모두 하나의 무대로 변모한다. 전시, 워크숍, 오픈 스튜디오, 디자인 마켓, 거리 설치작품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이어지며, 도시 전체가 창작의 에너지로 물든다.

CDCF의 가장 큰 특징은 참여형 구조에 있다. 단순히 전시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과 방문객이 직접 제작과 토론, 협업의 과정에 참여한다. 이 축제는 메이커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세상에 공개할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와 디자인 산업이 만나는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 더불어 환경 재생, 사회적 연결망 구축, 도시의 미래 디자인 등 공공적 의제를 다루며, 공예와 디자인이 사회 문제 해결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점에서 CDCF은 도시가 예술로 살아나는 과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CDCF은 캔버라의 경제와 문화 전반에도 긍정적인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지역 예술가들의 수익 창출 기회가 확대되고 방문객 유입을 통해 관광 산업이 활력을 얻는다. 나아가 CDCF은 캔버라를 ‘디자인의 도시’, ‘창작자의 수도’로 자리매김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매년 늘어나는 참여자와 방문객 수는 공예와 디자인이 예술의 영역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축임을 보여준다.

오늘날 공예와 디자인의 경계는 점점 더 흐려지고 있다. 디지털 제작 기술의 발전은 손작업의 영역을 확장하고, 동시에 ‘핸드메이드’의 진정성을 다시금 부각한다. CDC는 이러한 흐름의 최전선에서,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디자인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 메이커를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도시의 공공 맥락 속에 자리매김하는 CDC는 예술 기관을 넘어 하나의 ‘창의적 커뮤니티 허브’로 기능한다.
CDC를 방문하는 이는 단순히 전시를 감상하는 관람객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누가 만들었는가,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가, 어떤 생각이 담겼는가’를 묻는 관찰자이자 참여자다. 도심 속 한가운데서 작가와 관람자가 만나고, 지역성과 인간의 감각이 교차하는 CDC는 오늘날 캔버라가 품고 있는 가장 진보적이고 인간적인 풍경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