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디자이너가 만든 F&B 브랜드, 쏘스
광장시장에 문을 연 타코야키 스탠딩 바
광장시장 청계천 라인에 자리한 쏘스(sause). 다양한 소스와 토핑을 더한 타코야키에 캐주얼한 음주 문화를 접목한 스탠딩 바다. 공간 디자이너 한호는 왜 F&B로 확장했을까. 그 전환이 메뉴와 공간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물었다.

광장시장의 청계천 라인에 새로운 스탠딩 바가 등장했다.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Hoffice 한호 소장과 일식 셰프 전부강이 함께 연 타코야키 바 ‘쏘스(sause)’. 다양한 소스와 토핑을 더한 타코야키에 가벼운 음주 문화를 결합하며, 각자의 전문성을 넘나드는 방식의 새로운 F&B 브랜드를 기획했다. 쏘스는 타코야키에 대한 기존 인상을 벗어나 신선한 재료와 조리 방식으로 ‘요리로서의 타코야키’를 제안한다. 기획의 시작부터 공간 설계, 메뉴 개발, 협업 방식까지 브랜드의 출발점을 두 공동대표에게 들었다.

Interview
한호 Hoffice 대표·쏘스 공동대표
Hoffice 소장 한호는 상업 공간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디자이너다. 전부강은 일식 오마카세와 가이세키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셰프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진 인연으로 각자의 전문성을 결합해 타코야키 스탠딩 바 ‘쏘스’를 열었다.
전부강 쏘스 공동대표·메인 셰프

‘공간 디자이너가 만든 타코야키 바’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F&B를 직접 운영해 보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한호 공간은 완성되고 나면 결국 사용자의 몫이 되잖아요. 설계팀에는 포트폴리오만 남고, 실제 공간을 어떻게 쓰는지 간접적으로만 듣는 경우가 많죠. 반면 음식은 훨씬 격식 없고 즉각적인 피드백이 나와요. 좋고 나쁨이 바로 드러나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의식주’가 결국 비슷한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해요. 재료를 다루고, 레퍼런스를 변형하고, 타자의 해석으로 의미가 생기는 방식이죠. 그중에서도 음식은 한 입의 경험이 곧 피드백되고 그로 인해 메뉴와 서비스, 공간 전체를 즉시 바꾸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요.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시야를 주는 영역이라고 느꼈습니다.

왜 광장시장이었나요? 이 장소를 선택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한호 신사동, 성수동, 을지로 등 다양한 지역을 보며 고민했어요. 처음엔 홀을 갖춘 식당 형태도 생각했지만, 공간과 메뉴 폭이 커지면 브랜드 정체성이 흐려질 것 같았죠. 광장시장 청계천 라인은 관광객, 러닝과 산책 인구, 퇴근길 유동이 한자리에 만나는 곳이에요. 시장의 활기와 외부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자리라 쏘스의 방향성과 잘 맞았습니다. 특히 시장 중심의 혼잡함에서 살짝 벗어나 도시 하천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경계 지점’이라는 점이 쏘스의 실험과도 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협소한 면적과 복층 구조를 어떻게 풀어내셨나요? 스탠딩 바로 기획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한호 단층 평수만 보면 사실 영업이 어려운 규모였어요. 오히려 복층이라는 점이 장점이었죠. 2층에서 내려다보는 청계천 뷰가 워낙 좋아서 작은 바처럼 활용하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타코야키는 금방 만들고 금방 먹는 음식이라 오래 앉아 머무는 구조가 필요하지 않아요. 서서 먹고, 포장해 이동하는 흐름이 자연스러워 처음부터 스탠딩 바 포맷이 맞다고 봤습니다. 도쿄 골목의 작은 2층 바들에서도 영감을 받았고요.


주방–1층 테이크아웃 존–2층 홀 간의 유기적인 동선 계획도 중요했어요. 복층을 분리된 프로그램으로 보기보다 시장이라는 거대한 메가스트럭처의 일부처럼 하나의 연속적 구조로 보이길 바랐습니다. 1층에서 주문하고, 2층에서 술을 마시고, 계단에서 잠시 머무는 흐름이 하나의 장면처럼 이어지도록 구조와 가구를 통합적인 구조체로 계획했습니다.


사건을 수용하는 최소한의 구조
쏘스는 시장 가판대처럼 내외부 경계가 흐릿하다. 비닐 커튼을 열어두면 시장의 동선이 그대로 이어지고, 2층 창을 열 청계천을 바라보며 걸터앉아 먹을 수 있다. 1층 노상 스탠딩 테이블에서 한잔하고 갈 수도 있고, 포장해 냇가에서 시간을 보내도 자연스럽다. 추운 날이나 더운 날에는 바깥공기에서 잠시 벗어나는 작은 쉼터가 되기도 한다.

공간 설계에서 가장 먼저 잡은 콘셉트는 무엇이었나요?
한호 ‘사건(이벤트)을 수용하는 최소한의 구조’였어요. 디자이너가 의미를 과도하게 주입하기보다 사람들이 대화하고 먹고 쉬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장면이 만들어지는 공간을 상상했습니다. 불필요한 장식이나 연출은 배제하고 필요한 기능만 남겼어요. 사용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채우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장의 흐름을 실내로 끌어오고 싶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했나요?
한호 시장에서는 줄 서서 붕어빵을 먹거나, 가판대에 걸터앉아 칼국수를 먹는 일이 자연스럽잖아요. 그런 흐름이 쏘스에서도 이어지길 바랐어요. 그래서 출입문 대신 개폐형 방풍 비닐 커튼을 사용했고, 실내외를 나누는 장치는 140㎜ 바닥 단 한 줄뿐입니다. 문턱을 거의 없애니 시장의 흐름이 내부로 그대로로 유입됐어요. 앞 볼라드에서 스탠딩으로 즐기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죠. 쏘스를 ‘실내 점포’가 아닌 ‘시장 가판대’처럼 작동하게 하는 핵심 장치였죠.

재료 선택에도 광장시장이라는 장소성을 반영했나요?
한호 청계천 라인 상가를 보면 적벽돌, 날것의 철판, 흰 모자이크 타일 같은 재료가 패치워크처럼 섞여 있어요. 그 질감을 실내에서도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바닥에는 환원 적벽돌을 사용했고, 카운터–계단–2층 바닥–스탠딩 테이블까지 이어지는 구조는 별도의 마감 없이 갈바판(EGI)과 체크철판으로 하나의 구조체처럼 만들었어요. 시장 상가의 좁은 철제 계단에서 영감받았습니다. 새로운 재료를 들여오기보다 이 동네에 실제 존재하는 오래된 질감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장소성을 구축했어요.


— 애착이 가는 공간 디테일이 있다면요?
한호 1, 2층에 단 나팔형 ‘혼(horn) 스피커’예요. 시골 마을회관 스피커와 비슷한 형태라 한국적 일상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요. 음향 세팅은 쉽지 않았지만 공간 분위기를 가장 잘 만들어주는 요소가 됐습니다. 또 하나는 횡방향으로 폴딩되는 개폐형 스크린이에요. 국내 제작 업체를 찾기 어려워 오래 찾아 헤맸지만, 실내와 외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개방감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F&B 운영 경험이 Hoffice의 프로젝트 방향에도 영향을 주었나요?
한호 운영자이자 클라이언트의 입장을 직접 경험해 본 것이 큰 배움이었어요. 그동안은 B2B 중심으로 작업하다 보니 실제 B2C 비즈니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체감할 기회가 거의 없었거든요. 사업자 등록부터 포스기 설치, 마케팅과 운영 시스템까지 하나하나 스스로 선택해 보니 자영업자분들이 제한된 예산과 인력 안에서 얼마나 많은 결정을 감당하는지 실감하게 됐습니다. 이 경험 덕분에 프로젝트를 훨씬 넓은 시야에서 보게 되었어요. 단순한 ‘공간 디자인’이 아니라 비즈니스 전체를 이해하고 제안해야 한다는 확신도 생겼고요. 전부강 셰프와 서로의 전문 영역을 넘나들며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던 방식 역시, 앞으로 Hoffice가 지향해야 할 협업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식에서 요리로, 타코야키의 확장

두 분이 오랜 친구 사이라고요. 함께 쏘스를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호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서로의 전문성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었어요. 다른 셰프를 고용하는 것보다 신뢰하는 친구와 함께 하는 게 더 안정적이라고 판단했죠. 다만 동업을 설득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죠. 처음엔 “굳이 타코야키를 내가 해야 하나?”라는 반응이었거든요.
전부강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어요. 타코야키를 만들어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호가 보여준 레퍼런스 이미지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제가 알고 있던 타코야키와 완전히 달랐거든요.‘이건 요리처럼 접근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때부터 일본에 가서 맛을 보고 반죽 레시피를 연구하며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타코야키라는 메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호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먹을 정도로 타코야키를 좋아해요(웃음). 주로 배달 먹었는데 퀄리티가 늘 아쉬웠죠. 그럼에도 밤마다 검색 상위권에 오르는 걸 보면서 수요가 확실하다고 느꼈어요. 일본에는 이미 ‘타코야키 바’ 문화가 있어요.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에 부강이가 일식 셰프라는 점도 큰 힘이 됐고요.

쏘스(sause)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메뉴 개발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도 궁금합니다.
전부강 쏘스의 여섯 가지 소스를 개발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어요. 타코야키가 밀가루 베이스라 파스타나 피자처럼 ‘소스 중심’으로 접근했죠. 토마토, 트러플 버터, 커리 등 양식과 일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스를 접목해 다양한 조합을 테스트했습니다. 머릿속으론 잘 맞을 것 같았는데 막상 만들어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도 많았고, 반대로 예상치 못한 조합도 있었어요. 그런 과정을 계속 피드백하며 다듬었습니다.
일식은 전통적으로 소스 종류가 많지 않아 어려움도 있었지만, 제가 일하던 가이세키 레스토랑에서 배운 현대적 접근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타코야키를 간식이 아니라 하나의 요리로 만들자’는 의도가 소스 개발 과정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 같습니다. 재료에서도 타협하지 않았고요. 보통은 가문어나 작은 다이스 문어를 쓰지만, 저희는 국내산 돌문어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활전복도 함께 사용합니다.



한호 타코야키 위에 다양한 토핑과 소스를 올리는 방식 자체는 새롭지 않아요. 하지만 쏘스는 ‘건강한 음식과 음주 문화’를 지향하는 만큼 국내산 원물과 다이닝 레벨의 소스와 토핑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가격 경쟁보다 ‘이 가격을 지불할 이유’를 맛과 구성으로 설득하는 방식을 선택한 셈이죠. 그래서 일반 Ø38mm보다 20% 큰 Ø45mm 사이즈로 만들어 한 입에 넣었을 때 풍미와 식감을 더 크게 전달하고자 했어요.



타코야키와 함께 제공하는 누룽지 뻥튀기는 어떻게 탄생한 아이디어인가요?
한호 가오픈 시식회 때 4피스 구성이다 보니 소스가 남는다는 피드백이 있었어요. 꼬챙이로 긁어먹기 어렵다고요. 4피스를 유지하면서 남은 소스를 맛있게 즐길 방법을 고민했죠. 시장을 둘러보다 누룽지 뻥튀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식이기도 하고 타코야키의 물렁한 식감과 대비되는 바삭함이 잘 어울렸어요. 타코야키 4피스 구성에 누룽지 뻥튀기 2피스를 추가하게 됐습니다.

쏘스가 제안하고 싶은 ‘캐주얼한 음주 문화’는 무엇인가요?
한호 과음하는 분위기보다 혼자서라도 부담 없이 한 잔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먹고 싶은 만큼만 먹고, 오래 머물 필요도 없고, 누가 강요하지도 않는 곳이죠. 쏘스는 보틀이 아니라 잔 단위로 판매하고 있어요. 요즘 혼술 하시는 분들도 많잖아요. 캔맥주만 사서 바로 집에 가기보다 맛있는 타코야키에 가볍게 한 잔 하고 갈 수 있는 장소가 되면 좋겠습니다.


디자이너와 셰프의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요?
한호 서로의 영역에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되, 최종 결정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맡는 방식이었어요. 예를 들면 “간을 더 세게 해볼까?”, “식감이 더 살아났으면 좋겠다” 같은 피드백은 제가 줄 수 있지만 해결은 셰프의 영역이죠. 반대로 공간 동선이나 조명 문제는 제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고요. 아이디어는 계속 교환하면서도 전문성은 지키는 구조라 충돌 없이 자연스럽게 조율할 수 있었습니다.
전부강 오래 본 친구라 사소한 충돌도 조심스럽게 맞춰가며 해결했어요. 혼자였다면 기성품으로 채우고 공간을 깊게 고민하지 못했을 거예요.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메뉴와 공간을 동시에 조율하다 보니 훨씬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고 느껴요.

앞으로 쏘스가 어떤 장소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나요?
한호 사람들이 신나게 웃고 떠들고, 가볍게 취하기도 하고, 배부르게 돌아갈 수 있는 동네의 작은 바였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한 목적 없이도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 말이에요.
전부강 저희의 큰 목표는 타코야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거예요.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음식과 음주 문화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손님들이 그 의도를 자연스럽게 느끼고 맛있게 드셨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