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들어온 조각 전문 갤러리, 스페이스 톤 ②

스페이스 톤(S.tone) 김현아 관장 인터뷰

합정과 당인리 발전소 사이, 직선적 건물들 틈에서 푸른 색채의 원형 건물이 들어섰다. 조각과 설치미술 중심의 전시를 선보이는 ‘스페이스 톤(S.TONE)’이다.

일상으로 들어온 조각 전문 갤러리, 스페이스 톤 ②

조각의 정신을 잇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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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동 주거지 사이에 자리한 스페이스 톤의 외관. 블랙 세라믹 타일로 마감된 곡면 파사드가 갤러리의 조형적 성격을 드러낸다.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합정과 당인리 발전소 사이, 직선적 건물들 틈에서 푸른 색채의 원형 건물이 시선을 붙잡는다. ‘스페이스 톤(S.TONE)’이 자리한 블루젤로(BlueGelo)다. 외관에 솟아 있는 세 개의 기둥은 바로 앞 발전소의 굴뚝에서 착안한 형태로, 지붕 위 조각 작품 같은 풍경을 만들며 건축에 특별한 인상을 더한다. 이곳은 조각과 설치미술 중심의 전시를 선보이는 갤러리다. 곡선 형태와 블랙 세라믹 타일이 어우러진 파사드, 콘크리트 질감의 벽면, 자연광과 인공광이 교차하는 중립적 실내가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무대로 기능한다. 개관전이 한창 진행 중인 스페이스 톤에서 김현아 관장과 이수진 문화기획팀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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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전면을 감싸는 통창 유리는 거리와 내부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도로변에 배치된 계단은 선큰 구조로 설계되어 지하 전시장까지 자연광이 스며든다.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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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콘크리트, 시멘트를 노출한 내부는 조각의 물성을 살리는 중립적 배경이 된다.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2022년 코로나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던 시기. 갤러리 설계를 맡은 건축사사무소 여현은 이탈리아 산탄젤로(Sant’Angelo)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치유와 회복의 상징으로 전해지는 산탄젤로의 서사는 건물의 콘셉트가 되는 영감으로 이어졌다. 주변 환경과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면서도 고유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외관에는 깊고 푸른 색채를 입혔다. ‘블루(Blue)’와 ‘산탄젤로’를 결합해 ‘블루젤로(BlueGelo)’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김 관장은 초기 기획 단계부터 공간 전체에 ‘치유’의 감각을 담고 싶었다. 빠르게 변하고 많은 것이 소모되는 시대일수록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 예술 환경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 합정동 일대 획일화된 주거지역과 대비를 위해 외관을 원형으로 설계했다. 원형과 사각형이 만나는 구조는 상반된 가치가 공존하는 관계를 드러낸다. ‘무겁고 차가운’ 재료 속에 ‘따뜻함’을 불어넣는 조각의 특징을 건축적으로 확장한 셈이다.

스페이스 톤의 출발점은 관장이 뉴욕 이사무 노구치 뮤지엄을 방문했던 경험에서 비롯했다. 조각과 빛, 건축이 하나의 환경으로 작동하는 공간을 직접 체감하며 “한국에서도 조각을 온전히 감각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같은 시기 한국 사회를 보며 느낀 ‘블랭크(blank)’ 역시 갤러리 설립의 동력이 되었다. “너무 빠르게 달려온 사회일수록 놓치고 온 것들이 있다”는 것. 그는 조각이 지닌 물성과 시간성이 이러한 빈틈을 회복시키는 힘이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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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톤 지하 1층 전경. 직선 천장에 이동식 트랙 조명을 설치해 작품 동선과 관람 시선에 맞춘 조정이 가능하다.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조각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김 관장은 ‘변하지 않는 물성’을 언급했다. 돌에는 오랜 시간이 축적한 이야기와 에너지가 깃들어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손으로 만지고 시간을 들여 만들어지는 조각이 더 오래 가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이수진 팀장 역시 “AI와 디지털 아트가 빠르게 확장되는 시대지만, 조각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하는 영역이 많다”며 “실수나 우연에서 생기는 결조차 작품의 일부가 된다. 돌의 균열을 읽고 마지막 질감을 완성하는 과정은 로봇이 대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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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톤 2층 전경. 세 개의 원형 천창과 발코니를 통해 자연광이 깊게 들어오는 공간으로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빛이 조각의 질감을 강조한다.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갤러리 내부는 조각의 조형 언어를 공간에 옮겨놓은 듯한 방식으로 구성됐다. 1층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곡면 계단, 콩자갈 바닥, 종석미장 벽면은 서로 다른 질감과 두께가 맞물리며 공간 전체의 밀도와 흐름을 만든다. 지하는 선큰 구조로 자연광이 깊숙이 들어오도록 설계했고, 2층은 세 개의 원형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만으로도 충분한 밝기를 확보한다. 김 관장은 “재료들의 입자와 색을 섬세하게 맞추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썼다”며, 여러 재료가 하나의 미감으로 이어지도록 비율을 여러 차례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스페이스 톤의 첫 전시는 한진섭 조각가 초대전이다. 김 관장은 그를 15년 넘게 지켜본 팬이자 수집가로서, 상업적 목적보다 ‘돌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가 이 공간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거의 하지 않는 방식으로, 돌가루와 분진 속에서 마스크를 쓰고 몇 시간을 작업하세요. 즐거운 듯 집중하는 모습이 정말 어린아이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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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법1 2025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전시는 작가의 작업 시기를 따라 층별로 구성됐다. 1층에는 어디에서도 선보이지 않았던 신작을, 지하에는 원초적 감각이 강한 초기작을 배치했다. 2층에는 자연광과 조화를 이루는 조각을 놓았다. 각 층의 조도, 질감, 동선에 따라 작품이 가진 밀도와 뉘앙스가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김 관장은 스페이스 톤이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곳을 넘어 조각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돌 표면을 쓰다듬으며 느껴지는 촉감, 조명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형상, 시간대에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 같은 요소들. 소형 조각과 오브제형 작품을 선보이며, 조각이 일상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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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놀이 2025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무게를 잡아주는 기성 작가와 날개를 달아주는 신진 작가를 함께 소개하고 싶다”고 말한다. 초기에는 조각협회와 협력해 원로 작가 중심으로 갤러리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이후 신진 조각가들을 사이에 배치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 계획이다. “아이디어가 많고 가능성이 큰 젊은 작가들이 설 곳이 없다”며, 스페이스 톤이 그들 작업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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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톤 외부 테라스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스페이스 톤이 자리한 당인리 일대는 앞으로 대규모 문화지구로 변모할 예정이다. 발전소 부지가 문화창작발전소로 전환되면 이 지역은 서울에서 몇 안 되는 큰 예술 인프라 축이 된다. 김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후 소격동 일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 생태계를 언급하며, “큰 기관이 하나 생기면 주변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스페이스 톤이 그 변화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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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ignplus

마지막으로 그는 “이 공간이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온 감각을 되찾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 속에서 느린 매체인 조각이 사람들을 잠시 멈추게 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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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ignplus

“돌을 쓰다듬으면 따뜻함이 느껴져요. 변하지 않는 물성처럼 이 공간도 변하지 않는 감각을 오래 담아둘 수 있었으면 합니다.”

스페이스 톤 김현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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