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김대건 신부 성상 조각가, 한진섭 개인전 ①

<한진섭: 무게에 깃든 가장 섬세한 이야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세워진 성 김대건 신부 성상을 조각한 한진섭 작가. 반세기 넘게 돌 하나만 탐구해온 그의 작업 세계를 되돌아보는 전시가 서울 합정동 스페이스 톤에서 열리고 있다.

바티칸 김대건 신부 성상 조각가, 한진섭 개인전 ①

2023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상이 세워졌다. 베드로 대성전에 아시아 성인의 조각상이 설치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높이 3.7m, 폭 1.83m 크기의 전신상은 갓과 도포를 입고 두 팔을 벌린 채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보이 그룹 ‘사자 보이즈’의 비주얼 모티프로 거론되며 다시 한번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 성상을 조각한 한진섭 작가의 초대전 〈무게에 깃든 가장 섬세한 이야기〉가 서울 합정동 스페이스 톤(S.tone)에서 열리고 있다. 반세기 넘게 돌이라는 하나의 재료를 다뤄온 작가의 작업을 다시 살펴보는 자리다. 전시는 돌의 표면과 인체의 미세한 움직임에 천착해온 그의 조각을 세 개 층에 나눠 보여준다. 층마다 다른 빛과 구조 속에서 조각의 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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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합정동 스페이스 톤(S.tone) 갤러리 외관 전경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돌에서 발견한 가장 섬세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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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전시 공간. 검정 화강석으로 만든 ‘기쁨의 추억’과 백색 화강석으로 만든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고, 그렇게 흘러가는 삶’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전시가 시작되는 1층 ‘일상의 무게’에는 여덟 개의 대리석 의자가 원형으로 놓여 있다. 흰 대리석 여섯 개와 검은 대리석 두 개로 구성된 이 작품은 관람객의 동선을 따라 ‘앉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며, 감상 방식에 작은 변화를 만든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스페이스 톤의 방향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지점. 회전하는 윗판과 젠더를 반영한 디테일에는 한진섭 특유의 위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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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법 2025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지하 1층 ‘뿌리와 마음’은 이번 전시의 기저를 이루는 공간이다. 한국의 민속 형상물인 장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과 황토색 화강석으로 조각한 심장 등이 놓여 있다. 이 층의 조각들은 몸의 중심을 약간 비튼 자세가 많아, 완전히 고정된 인체라기보다 움직임이 잠시 머문 순간을 포착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곳은 스페이스 톤에서 조명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층이기도 하다. 작품 표면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는 돌의 표면을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종석미장으로 마감된 벽면은 빛의 각도에 따라 질감이 미세하게 달라진다. 여기에 선큰 구조를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더해지며 작품 디테일이 한층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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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 전경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2층 ‘기억의 정원’은 세 개의 원형 개구부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공간을 은은하게 퍼진다. 이곳에 놓인 조각들은 인공 조명과는 다른 부드러운 음영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무구한 표정의 아이들을 형상화한 작품들은 간결한 형태로 각기 다른 방향에 놓여 있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품은 듯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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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미소천사 2025, 숨바꼭질 2025, 라포르(Rapport)2 2025, 달콤한 꿈 2025, 우아한 놀이 2025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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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법2 2025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전시장 한편에서는 작은 규모의 소형 조각들도 만나볼 수 있다. 손바닥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작은 작업부터 테이블 오브제로 둘 수 있는 크기까지 다양하다. 스케일이 작아지면서 시선은 무게보다 자세와 표면 디테일로 이동하고, 관객과 작품의 거리는 한층 가까워진다. 이러한 구성은 스페이스 톤이 지향하는 ‘실내로 들어오는 조각’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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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법1 2025 사진 출처 스페이스 톤

전시는 한진섭이 돌을 다뤄온 방식을 공간의 변화 속에서 다시 바라보게 한다. 거창한 해석을 더하기보다, 오랜 시간 한 재료와 마주해온 과정을 담담하게 펼쳐놓는다. 한진섭의 작업은 스페이스 톤의 구조적 장점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낸다. 멀리서 보이는 단단한 덩어리감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표정과 자세의 미세한 차이로 이어지고, 층마다 다른 빛과 공간 속에서 조금씩 다른 형태로 변화한다. 이번 전시는 12월 29일까지 이어진다.

About 한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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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성당 베드로 대성전의 김대건 신부 성상을 조각하는 한진섭 작가 사진 출처 가나아트센터

한진섭은 1957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조각가다. 그는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돌’이라는 단단한 재료와 마주하며 작업해왔다. 그의 조각은 형태의 완결성보다 재료가 품은 물성과 시간, 그리고 인간의 기억을 긴 호흡으로 끌어올리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한진섭에게 돌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기억과 자연의 흔적, 인간의 기원이 깃든 재료다. 그래서 돌을 조각하는 일은 형태를 만드는 것보다 그 속의 시간과 감정을 꺼내는 일에 가깝다. 2023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상을 조각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동양인 성인의 조각이 바티칸에 세워진 첫 사례였다. 최근 그의 작업은 종교적 상징과 개인적 신념이 결합된 조형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 바티칸 김대건 신부 성상 조각가, 한진섭 개인전 ①
일상으로 들어온 조각 전문 갤러리, 스페이스 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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