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저드의 가구에 담긴 미니멀리즘

현대카드 스토리지 〈Donald Judd: Furniture〉

20세기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도널드 저드의 가구를 조명하는 전시가 국내 최초로 열리고 있다.

도널드 저드의 가구에 담긴 미니멀리즘

개인의 생활 방식과 공간에 따라 조정되는 가구.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와 감각적 스타일이 등장하지만 ‘좋은 가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장식을 배제한 단순함, 과시하지 않는 소박함, 일상의 요구에 맞닿아 있는 실용성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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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ld Judd with untitled (1961) in his architecture studio in Marfa, Texas, in 1993. Photo by Laura Wilson

20세기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도널드 저드(Donald Judd)는 이 기준을 작업 전반에서 일관되게 실천했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는 새로운 매체 개념을 제시하며 단순한 형태와 반복적 모듈, 재료의 물성 자체를 드러내는 방식은 이후 미니멀리즘을 정의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의 단순하고 소박하며 실용적인 가구를 실제로 마주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도널드 저드의 가구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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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Donald Judd: Furniture, November 27, 2025 – April 26, 2026, Hyundai Card Storage, Seoul, Korea. Donald Judd Furniture © Judd Foundation.

현대카드 스토리지는 도널드 저드의 가구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 〈Donald Judd: Furniture〉를 개최한다. 작가가 1970년대부터 1990년대에 제작한 가구 38점을 비롯해 저드 재단(Judd Foundation)의 판화와 드로잉 등 총 100여 점을 소개하는 국내 첫 가구 전시다. 2020년 MoMA 회고전 〈Judd〉 이후 이어져온 현대카드와 저드 재단의 파트너십의 연장선에서 기획됐다. 저드의 장남이자 재단 아트 디렉터 플래빈 저드(Flavin Judd)가 직접 내한해 전시 구성 전반을 감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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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Donald Judd: Furniture, November 27, 2025 – April 26, 2026, Hyundai Card Storage, Seoul, Korea. Donald Judd Art © Judd Foundation/ SACK, Korea. Donal Judd Furniture © Judd Foundation.

“가구는 반드시 사용성과 유용성을 지녀야 한다”는 철학 아래 실용적인 디자인을 선보인 도널드 저드. 전시는 그가 가구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생전에 “가구는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구는 사용과 마모를 전제로 하며, 존재 방식이 예술 작품과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 구분은 기능적 차원이다. 플래빈 저드는 “예술과 가구는 윤리적이고 구조적 기반에서는 동일하다”고 설명한다. 기본 조건을 설정하고 그 조건에서부터 형태를 만들어가는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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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Donald Judd: Furniture, November 27, 2025 – April 26, 2026, Hyundai Card Storage, Seoul, Korea. Donald Judd Art © Judd Foundation/ SACK, Korea. Donal Judd Furniture © Judd Foundation.

단순하고 정직한 가구

가구 제작의 계기는 철저히 실용적이었다. 저드는 1970년대 텍사스 마파로 정착한 뒤 집에 둘 만한 가구를 거의 구할 수 없었다. 남아 있던 것은 야외용 금속 가구와 빅토리아 시대 가구를 모방한 제품뿐이었다. 결국 생활에 필요한 가구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마파에서 처음 제작한 것은 단순한 형태의 작은 침대 하나와 두 자녀를 위한 책상 두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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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Donald Judd: Furniture, November 27, 2025 – April 26, 2026, Hyundai Card Storage, Seoul, Korea. Donald Judd Art © Judd Foundation/ SACK, Korea. Donal Judd Furniture © Judd Foundation.

생활의 결핍에서 출발한 제작은 집 안의 가구를 하나씩 채워가는 과정으로 확장되었다. 전시장에서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저드가 나무, 금속, 합판으로 제작한 가구 38점을 볼 수 있다. 뉴욕 101 스프링 스트리트와 텍사스 마파의 거주 공간을 위해 처음 디자인한 침대, 책상, 벤치, 의자, 선반 등. 이 중 30여 점은 원작을 바탕으로 새롭게 제작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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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Donald Judd: Furniture, November 27, 2025 – April 26, 2026, Hyundai Card Storage, Seoul, Korea. Donald Judd Furniture © Judd Foundation.

저드 가구를 관통하는 핵심은 ‘정직한 재료’다. 그는 하나의 소재가 다른 소재인 척하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했다. 목재는 속과 겉이 동일해야 하며, 금속은 색을 입히더라도 금속성 자체가 드러나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태도는 저드가 전공한 철학과 농부의 손자로 성장한 배경에서 비롯됐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그의 원칙은 재료 선택과 더불어 마감 방식 전반에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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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Donald Judd: Furniture, November 27, 2025 – April 26, 2026, Hyundai Card Storage, Seoul, Korea. Donald Judd Furniture © Judd Foundation.

저드는 이음새를 과도하게 드러내거나 장식적으로 보이는 구조를 경계했다. 동시에 지나치게 거친 마감도 원하지 않았다. 그 미묘한 균형점을 찾으려 했다. 비례의 정확성, 판재 두께의 일관성, 나사가 눈에 띄지 않는 마감 방식은 모두 ‘필요한 것만 남기는’ 그의 원칙이 구체화된 설계 방식이기도 하다.


실용적 도구로서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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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Donald Judd: Furniture, November 27, 2025 – April 26, 2026, Hyundai Card Storage, Seoul, Korea. Donald Judd Art © Judd Foundation/ SACK, Korea.

전시장에서는 저드의 판화와 드로잉도 함께 소개된다. 그에게 드로잉은 사고를 정리하고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자, 구조를 구상하거나 설계 지시를 전달하는 실용적 도구였다. 저드는 직업 목수들과 협업하며 모든 사항을 구체적으로 지정했다. 숙련된 장인의 수작업으로 품질을 유지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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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Donald Judd: Furniture, November 27, 2025 – April 26, 2026, Hyundai Card Storage, Seoul, Korea. Donald Judd Art © Judd Foundation/ SACK, Korea.

전시된 드로잉은 화려한 스케치가 아닌 명확한 치수와 지시가 적힌 도면에 가깝다. 단순하게 보이는 이유는 요구 사항 자체가 명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네 개의 공간으로 구성된 전시 안에서 그의 생활과 작업 과정이 어떻게 연결돼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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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Donald Judd: Furniture, November 27, 2025 – April 26, 2026, Hyundai Card Storage, Seoul, Korea. Donald Judd Art © Judd Foundation/ SACK, Korea.

​1970~1990년대 제작된 실크스크린과 목판화는 그가 회화와 입체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형태와 색채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드로잉 작품에는 작가가 가구를 제작할 때 사용한 다양한 재료와 구조적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중앙 계단부에는 그의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8권의 아카이브 서적이 함께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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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Donald Judd: Furniture, November 27, 2025 April 26, 2026, Hyundai Card Storage, Seoul, Korea. Donald Judd Art © Judd Foundation/ SACK, Korea.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확장하며 ‘3차원 오브제’라는 조형 언어를 정립한 도널드 저드. 플래빈 저드는 아버지가 예술에서조차 꾸미거나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경계했다고 말한다. 저드의 작업을 관통한 원칙은 단순했다. 기본 조건을 설정하고 환경에 따라 형태를 변주하는 실용적 사고. 회화에서 조각, 가구, 저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은 동일한 철학 위에서 전개됐다. 명료할 것, 정직할 것, 기본으로 돌아갈 것. 그의 일관된 태도는 지금까지도 유효한 시사점을 남긴다. 전시는 내년 4월 26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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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전시와 작품에 대해 설명 중인 플래빈 저드 © Design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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