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과잉 시대에 멈춤을 택한 사진가, 김용호

여백과 균열이 만드는 긴장을 응시하다

누구나 찍고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떤 시선도 오래 붙잡지 못하는 ‘이미지 과잉’의 시대다. 사진가 김용호는 이 빠른 흐름에 제동을 걸기로 했다.

이미지 과잉 시대에 멈춤을 택한 사진가, 김용호

하루에도 수만 장의 이미지가 스마트폰 화면 위로 스쳐 지나간다. 누구나 찍고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떤 시선도 오래 붙잡지 못하는 ‘이미지 과잉’의 시대다. 사진가 김용호는 이 빠른 흐름에 제동을 걸기로 했다. 지난 11월 30일 막을 내린 〈난폭한 아름다움〉 전시에서 그가 제시한 것은 완결된 이미지가 아니라, 관객을 멈춰 세우는 여백과 흐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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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한 아름다움〉 전시 전경 사진 출처 김용호

김용호는 인물, 패션, 광고 등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해 온 사진가다. 캐논갤러리에서 열린 사진전 〈난폭한 아름다움〉에서는 사진, 영상, 메이킹 포토를 함께 제시하며 한 장의 이미지가 남기는 인상보다 이미지들이 어떻게 이어지고 축적되는지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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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한 아름다움〉 전시 전경 사진 출처 김용호

전시는 인물과 공간이 얽힌 연작 사진을 제시한 ‘Story in Frame’,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다룬 풍경 사진 시리즈 ‘Hidden Landscape’, 정지된 이미지가 영상으로 확장되는 비주얼 에세이 ‘Moving Image’ 등 세 개의 섹션으로 나뉘었다. 각 섹션은 서로 다른 대상을 다루지만, 개별 작품의 완결성보다는 이미지 간의 흐름과 연결에 초점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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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한 아름다움〉 전시 전경 사진 출처 김용호

〈난폭한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은 전시가 다루는 아름다움의 성격을 드러낸다. 김용호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안정된 조형이나 조화로운 이미지가 아니다. 빛과 어둠, 질서와 균열이 맞닿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긴장에 가깝다. 이번 전시는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 환경을 의식하며 출발했다. 작품의 크기와 프레임을 절제하고, 연속된 이미지의 배열을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별 장면을 즉각적으로 해석하기보다 머무르며 바라보는 시간을 전제한 구성이다. 전시는 설명적인 서사 대신 감정이 형성되는 과정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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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한 아름다움〉 전시 전경 사진 출처 김용호

김용호는 이번 작업에서 기존 작업 방식과는 다른 선택을 시도했다. 시각적 완성도를 위해 장면을 정교하게 통제해 온 태도에서 벗어나, 흔들림과 어긋남, 빈 공간을 이미지 안에 남겼다. 완결된 형태보다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아래는 이번 전시의 작업 방식과 사진가 김용호의 현재를 중심으로 나눈 이야기다.

Interview

김용호 사진가

사진가 김용호는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를 넘나들며 ‘포토랭귀지’를 형성해왔다. 사진에 대한 자신의 시각 언어를 정리한 저서 〈포토랭귀지〉를 통해 작업 세계를 설명해온 바 있다. 광고와 인물사진을 중심으로 폭넓은 작업을 이어왔으며, 민족사진가협회 회원이자 한국패션사진가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피안(연)’, ‘매화’, ‘몸(대림미술관)’, ‘신여성(모단 걸)’ 등 예술사진 연작으로도 주목받았다. 〈한국문화예술명인전(2003)〉은 백남준과 박서보를 시작으로 이어령까지 촬영과 전시를 이어온 프로젝트다. 2024년에는 구찌 ‘한국 문화의 달’ 캠페인 사진전 〈두 개의 이야기〉에서 김수자, 박찬욱, 안은미, 조성진을 조명했다. 현대카드 ‘우아한 인생’, 현대자동차 ‘절차탁마, 브릴리언트 마스터피스’, KT ‘아름다운 신세계’, LG전자 ‘MADE IN CHANGWON’ 등 기업 이미지 작업을 진행했으며, 최근에는 영화 〈de Vermis Seoulis〉의 감독으로 작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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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작가 사진 출처 김용호
인물, 패션, 광고 현장을 오가며 작업해오셨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스스로의 사진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제 사진의 중심에는 늘 ‘서사적 긴장’이 있습니다. 피사체가 누구인지 보다 그가 어떤 감정의 흐름 속에 있는지가 더 중요했어요. 사진을 단일 이미지로 끝내지 않고, 장면과 장면 사이의 침묵, 간극, 주저함 같은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포착하려 합니다. 〈포토랭귀지〉에서도 밝힌 것처럼 장면의 표면보다 ‘그 아래에서 움직이는 기운’을 찍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인물이든, 공간이든 도시는 항상 이야기의 일부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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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는 경복궁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1996 사진 출처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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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시퀀스 포토의 시작점. 사진 출처 김용호
작업 과정에서 꾸준히 유지해 온 방식이나 원칙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형식보다 태도를 먼저 세우는 편입니다. 대상이 무엇이든 “왜 지금 이 장면을 찍어야 하는가”를 먼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는 대신, 내러티브를 미리 구축해둡니다. 그 안에서 예기치 않은 변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요. 이 방식은 광고나 패션 작업에서도 유지해온 원칙입니다.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남기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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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intellect to spirituality, 2021 사진 출처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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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 석학 이어령은 하나의 거대한 서재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를 기리는 포토 몽타주. 사진 출처 김용호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정했던 방향이나 목표가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난폭한 아름다움〉에서 제가 가장 먼저 세운 목표는 ‘보는 방식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이미지가 과잉된 시대에 살고 있죠. 빠르게 스크롤 되는 시각 환경 속에서 관객이 한 장면 앞에 잠시 멈춰 서게 만드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작품을 작은 사이즈의 단정한 프레임으로 구성했습니다. 한 컷이 아닌 시퀀스 포토의 방식으로 감정의 리듬을 이어가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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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인생 LA Dolce Vita, 2012 사진 출처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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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광고가 한창 집행 중이던 시기, 동시에 진행된 상업 화랑의 전시로 화제를 모은 작품. 이 작품에서 카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 인간의 욕망을 대신한다. 사진 출처 김용호
전시는 인물과 공간, 풍경, 영상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구성이 나오게 된 배경이 무엇이었나요?

제가 바라보는 세계는 늘 세 가지 축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사람, 도시, 자연. 인물은 내면의 언어를, 공간은 시대의 분위기를, 풍경은 감정의 바닥을 보여주죠. 〈난폭한 아름다움〉에서 이 세 축은 서로를 밀어내기도 하고 끌어당기면서 감정의 지형도를 완성합니다. 결국 이 전시는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 여러 감정의 파편을 배치해 관객이 스스로 읽어가도록 만든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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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2024
윤동주가 유학했던 교토 도시샤 대학에는 그의 추모비가 있다. 그를 기리며 시 〈참회록〉을 읊는다. 사진 출처 김용호
이번 전시에서 기존 인물 중심 작업과 달라진 지점, 혹은 새롭게 시도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큰 변화는 ‘통제’를 내려놓았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시각적 완성도를 위해 장면을 비교적 정교하게 연출해왔다면 이번에는 이미지가 스스로 흘러가도록 여백을 남겼어요. 흔들림이나 어긋남, 빈 공간들이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그것이 제가 말하는 ‘난폭한 아름다움’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움은 완벽한 형태가 아닌, 균열과 충돌이 만들어내는 긴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는 그 지점을 사진적으로 실험한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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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Mom 자웅동체, 2007 (아래) Mom 채집된 몸, 2007
신대륙의 자연과 생물. 대림미술관, 2007.11.17 – 2008.01.27 사진 출처 김용호
작가님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게 남은 작업이나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특별한 전환점이 된 작업은 오래전부터 이어 온 ‘몸(Body)’ 시리즈입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상상을 했어요. “지구상의 지배자가 인간이 아니라면, 인간의 몸은 어쩌면 채집되고 분류되는 표본에 불과할 수도 있겠구나.” 그 상상에서 출발한 작업들은 인간의 몸을 단순한 초상이나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수집된 존재’, 혹은 미지의 시선 아래 놓인 오브제로 다루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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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 채집된 몸, 2007 사진 출처 김용호

그 이후로 몸이 가진 미세한 곡선과 결, 흔적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다시 묻게 됐죠. 자연스럽게 제 작업 전반에는 ‘누가 누구를 바라보는가’, ‘이미지는 무엇을 표본화하는가’ 같은 질문들이 자리하게 됐습니다. 〈난폭한 아름다움〉 전시의 감정적 뼈대 역시 그 과정에서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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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을 보는 반가사유상, 2023-2023
천년 전의 반가사유상은 미래의 백남준을 보았다. 사진 출처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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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女性 조선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2006
한국 최초의 여류 화가 나혜석. 교육받은 신여성으로서의 자부와 희망, 식민지 현실 속 불안과 모순이 교차하는 내면의 초상을 담았다. 사진 출처 김용호
조명, 색, 후반 작업 등에서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인가요?

빛을 단순한 조명의 기술로 보지 않습니다. 빛은 장면을 설명하는 언어이자, 감정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인물 작업에서는 감정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흔적처럼 남는 빛을 선호하고, 공간이나 풍경에서는 빛이 가진 물질성과 흐름을 더 강조하는 편입니다. 후반 작업 역시 ‘정리’하기보다는 ‘살려두는’ 쪽에 가깝습니다. 장면의 떨림이나 불완전함이 오히려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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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서울, 내가 모르는 서울, 2023
거대한 빌딩을 배경으로 창덕궁에 선 두 존재. 낯설고도 미스터리한 서울의 풍경. 사진 출처 김용호
앞으로 이어가고 싶은 작업 방향이나 요즘 관심 두고 계신 주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최근에는 ‘시간이 풍경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제주의 돌과 식물, 서울의 새벽 공기, 인물의 표정 변화처럼 시간이 남긴 흔적들이 요즘 제 작업의 중요한 출발점이에요. 또 시퀀스 포토와 영상 사이의 경계를 조금 더 실험해 보고 싶습니다. 사진이 정지된 이미지라면, 저는 그 정지된 이미지 사이의 간극에서 태어나는 감정의 리듬을 시각화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현실과 초현실, 기록과 서사, 정체성과 공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계속 확장해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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