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너머로 엿본 레이블의 진화,〈소프트 월〉전

아티스트 프루프의 〈소프트 월〉전은 레이블의 다음 챕터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벽 너머로 엿본 레이블의 진화,〈소프트 월〉전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치가 있다. 바로 차단 장치인 인제책이다.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양 기둥 사이에 낮게 가는 선을 매달아둔 형태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넘어설 수 있지만 (반달vandal이 아닌 이상)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 사회적 약속은 비가시적인 벽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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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프루프는 수직과 수평, 곡선의 형태감을 살리고자 핀턱 기법을 활용해 3cm 간격으로 봉제했다. 광목천은 한쪽 면만 코팅해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새로운 물성을 얻었다. 사진 최재원

지난 11월 15일부터 23일까지 안국동 TACT에서 열린 아티스트 프루프의 〈소프트 월〉전에선 벽에 관한 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인 최경주가 이끄는 아티스트 프루프는 디자인적 사고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프린트 레이블이다. 전시를 기획한 TACT의 정성규 디렉터와 아티스트 프루프는 여러 차례 만나 ‘벽’이라는 키워드를 도출했다. 단단하게 고정된 보편적인 벽이 아닌 부드럽고 유연한, 그래서 통과하거나 품을 수 있는 벽을 상상한 것이다.

이때 벽은 분리와 단절이 아닌 관계와 감각이 오가는 매개로 기능한다. 아티스트 프루프는 옷의 가제본을 만들 때 사용하는 광목천 한 면을 코팅한 뒤 핀턱pin-tuck 기법(옷의 장식 기법 중 하나. 원단을 접어 좁고 일정하게 박음질하는 기술이다)을 접목해 구조체를 완성했다. 이 부드러운 벽에는 걸개, 주머니 등 실용적 요소도 곁들여 확장성을 더했다. 주머니는 틈과 빛 그리고 유연함을 통해 벽의 개념을 변형하는 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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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재원

그동안 아티스트 프루프는 다층적인 내면의 구조를 색의 중첩과 정제된 기호로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색을 사용하지 않은 이번 전시는 아티스트 프루프가 또 다른 장에 접어들었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레이블의 진화가 이제 막 시작된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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