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속 오브제, 디자인이 되다

브뤼셀 디자인 뮤지엄 전시 <디자인과 만화 : 상자 속에서 살아가기>

2025년 10월 18일부터 2026년 3월 1일까지, 브뤼셀 디자인 뮤지엄은 디자인과 만화의 긴밀한 관계를 탐구하는 독창적인 전시 <디자인과 만화 : 상자 속에서 살아가기(Design and Comics: Living in a Box)>를 선보인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기획한 이 순회 전시는 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상 사물과 만화가 함께 구축해온 시각적 역사를 따라간다.

만화 속 오브제, 디자인이 되다

2025년 10월 18일부터 2026년 3월 1일까지, 브뤼셀 디자인 뮤지엄은 디자인과 만화의 긴밀한 관계를 탐구하는 독창적인 전시 <디자인과 만화 : 상자 속에서 살아가기(Design and Comics: Living in a Box)>를 선보인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기획한 이 순회 전시는 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상 사물과 만화가 함께 구축해온 시각적 역사를 따라간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소장품 가운데 엄선된 작품들을 통해 <Design and Comics: Living in a Box>는 만화 작가들이 자신의 이야기 속에 디자인을 어떻게 통합해 왔는지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즉각적으로 인식 가능한 시각적 내러티브를 구성하기 위해, 이들은 가구와 액세서리, 일상용품이 그 자체로 서사를 형성하는 보편적 그래픽 어휘를 발전시켜 왔다. 1900년대 이후 만화는 미국 언론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은 뒤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벨기에에서는 에르제와 프랑캥과 같은 주요 작가들이 산업 디자인과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만화 속에 가정 환경이나 동시대의 사물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에르제의 작업을 엄밀한 의미에서 ‘모던 디자인’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작품에는 당대의 미학적 코드와 대화를 나누는 형태적 정밀성과 형식에 대한 세심한 관심이 분명히 드러난다. 1930년대에는 새로운 형식인 코믹북이 등장하며, 이러한 시각 언어는 한층 더 대중화되었다.

Denruyter Ovidi BE CULTURE Design et Comics 2025 8
©Denruyter_Ovidi

이 전시는 수십 년에 걸쳐 만화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주요 미학적 흐름에서 어떤 영감을 받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슈퍼히어로, 과학소설, 호러, 로맨스와 같은 대중적 장르들은 만화의 그래픽 언어 형성에 영향을 미쳐 왔으며, 한편 디자이너들 또한 만화가 지닌 시각적 상상력에서 영감을 얻어왔다. 만화 속에 그려진 사물들은 점차 현대성의 상징이자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에는 팝아트와 만화의 세계가 서로 결합하며, 모리스 칼카(Maurice Calka)의 ‘부메랑 데스크(Boomerang Desk)'(1969)나 에로 아르니오(Eero Aarnio)의 ‘토마토 체어(Tomato Chair)'(1971)와 같은 대담한 오브제의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Denruyter Ovidi BE CULTURE Design et Comics 2025 5
©Denruyter_Ovidi

1970~1980년대에는 요스트 스바르테(Joost Swarte)와 하비에르 마리스칼(Javier Mariscal)처럼 디자이너이자 만화가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지닌 창작자들이 등장해, 허구와 기능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허물었다. 오늘날 만화가 그래픽 노블과 디지털 만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되는 가운데, 넨도(Nendo)와 같은 디자인 스튜디오들은 이러한 흐름에서 영감을 받아 ‘망가 체어(Manga Chairs)'(2015) 시리즈와 같은 상징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브뤼셀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특히 아톰 스타일과 벨기에 특유의 유희적 모더니즘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는 앙드레 프랑캰의 작업을 통해 구현되며, 유머와 모더니즘적 유토피아 감각이 스며든 그의 드로잉은 명확한 선과 현대 가구의 소실선이 교차하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슈퍼히어로와 이중성의 디자인

슈퍼맨은 1938년 첫 등장 이후, 일상적 존재와 비범한 영웅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통해 현대 도시의 신화를 구축해왔다. 메트로폴리스라는 가상의 도시는 뉴욕과 토론토의 스카이라인을 반영하며, 슈퍼맨이 수호하는 정의와 근대적 이상을 시각화한다. 전시에 소개된 의자는 평범한 사무용 의자와 미래적인 알루미늄 구조라는 두 얼굴을 통해 슈퍼맨의 이중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가에타노 페세의 도시 풍경은 그의 세계관을 공간적으로 확장한다.

캐릭터가 된 오브제
Denruyter Ovidi BE CULTURE Design et Comics 2025 13
©Denruyter_Ovidi

아킬레와 피에르 자코모 카스틸리오니 형제(Achille & Pier Giacomo Castiglion)가 디자인한 탁시아와 스누피(Taccia and Snoopy)조명은 기능적 오브제를 조형적 캐릭터로 전환시킨 대표적 사례다. 탁시아는 전복된 형태를 통해 빛의 개념을 재해석하며, 만화 속에서 지위와 취향의 상징으로 반복 등장한다. 스누피 조명은 만화 캐릭터의 형상을 직접 차용해, 디자인이 대중문화 속 감정과 기억을 매개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만화와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들다
Denruyter Ovidi BE CULTURE Design et Comics 2025 2
©Denruyter_Ovidi

하비에르 마리스칼(Javier Mariscal)은 1970년대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영향을 받아, 만화·그래픽·산업 디자인을 넘나드는 작업을 전개했다. 그의 캐릭터 ‘가리리스’는 디자인 오브제로 확장되며, 서사가 곧 제품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같은 유희적 태도는 멤피스 그룹과의 협업으로 이어지며, 디자인 오브제가 하나의 ‘등장인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아톰 스타일과 벨기에 모더니즘
Denruyter Ovidi BE CULTURE Design et Comics 2025 3
©Denruyter_Ovidi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아톰 스타일은 과학과 기술, 미래에 대한 낙관을 반영한 미학이다. 강렬한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 새로운 소재는 진보에 대한 신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앙드레 프랑캥은 이러한 아톰 스타일을 만화 속 공간과 가구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도, 진보에 대한 경이와 회의를 동시에 포착했다. 그의 작품에서 만화와 디자인은 변화하는 사회를 비추는 상보적 언어로 작동한다.

형식 자체가 서사가 되는 그래픽 노블
Denruyter Ovidi BE CULTURE Design et Comics 2025 4
©Denruyter_Ovidi

데이비드 마주첼리(David Mazzucchelli)의 『아스테리오스 폴립(Asterios Polyp)』은 그래픽 노블의 형식을 통해 미학과 존재론을 탐구한다. 건축가인 주인공은 기하학적 형태로, 감성적 인물은 곡선으로 표현되며, 인물의 관계는 시각적 형식의 변화로 드러난다. 이 작품은 만화가 서사뿐 아니라 디자인적 사고를 전달하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읽고 머무르는 전시의 중심

전시의 리딩 코너는 관람객이 만화와 디자인을 직접 경험하며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책과 이미지, 이야기를 통해 두 매체가 공유하는 언어를 체감하도록 구성되었으며, 전시를 감상의 대상에서 참여의 장으로 확장한다.

프랑캥과 젊은 모더니티
Denruyter Ovidi BE CULTURE Design et Comics 2025 6
©Denruyter_Ovidi
Denruyter Ovidi BE CULTURE Design et Comics 2025 12
©Denruyter_Ovidi

프랑캥(FRANQUIN)은 전후 유럽의 젊은 감수성과 모더니즘 디자인을 만화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이전 세대의 어두운 실내를 벗어나, 자유로운 곡선과 실험적 가구로 채워진 공간은 새로운 세대의 낙관과 전진성을 상징한다.

에르제와 라인 클레르

에르제(Hergé)의 『땡땡의 모험(The Adventures of Tintin)』은 명확한 선과 절제된 색채로 대표되는 ‘라인 클레르(ligne claire)(meaning clear line)’ 양식을 확립했다. 간결한 가구와 모던 디자인은 그의 시각 언어와 자연스럽게 결합하며, 만화의 국제적 확산에 기여했다. 동시에 이 작품은 식민주의적 시선에 대한 비판도 함께 안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보편 언어

쉬빙(Xu Bing)의 『Book from the Ground』는 아이콘과 로고만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며, 보편적 시각 언어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디르크 판 데르 코이의 체어는 첨단 제작 기술과 전통적 형태를 결합해, 오늘날 디자인이 처한 기술적 전환점을 질문한다.

망가, 움직임을 디자인하다
Denruyter Ovidi BE CULTURE Design et Comics 2025 7

일본의 디자인 스튜디오 넨도(Nendo)의 ‘망가 체어(Manga Chairs)’(2015)는 일본 만화의 속도감과 움직임을 의자라는 정지된 오브제로 번역한다. 시각적 효과를 형태로 구현한 이 시리즈는 만화와 디자인이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관람객을 새로운 서사의 일부로 초대한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