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의 <리그 디자인 상>, 올해의 주인공은?
호주의 신진 디자이너들을 조명하는 권위 있는 디자인 공모전
호주 디자인계의 대표적 무대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NGV)의 리그 디자인 상이 10회를 맞아 ‘Next in Design’을 주제로 신진 디자이너에 주목했다. 35세 미만 디자이너 30여 명의 실험적 작업을 통해 디자인의 미래 가능성을 조명했으며, 알프레드 로우가 공동체와 정체성을 탐구한 대형 도자 작품으로 수상했다.

호주의 디자이너들을 조명하는 가장 권위 있는 무대 중 하나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이하 NGV, National Gallery of Victoria)의 <리그 디자인 상(Rigg Design Prize)>이 올해로 의미 있는 10회를 맞이했다. 이번 전시의 부제는 ‘Next in Design’으로, 이름 그대로 미래의 디자인을 이끌어갈, 젊고 참신한 디자이너들에게 주목한다. 호주 현대 디자인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로 3년 주기로 개최되는 리그 디자인 상은 1994년 첫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후 가구, 오브제, 도자기, 텍스타일, 금속공예, 조명, 보석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왔다. 호주의 디자인 커뮤니티에 실질적인 플랫폼과 영감을 제공해 온 리그 디자인 상은 이번 시상식에서는 신진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한 변화가 시도되었고, 이는 호주 디자인계의 새로운 물결을 포착하고 육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리그 디자인 상, 그 시작은?
리그 디자인 상은 콜린 G. 리그(Colin G. Rigg, 1895–1982)가 NGV에 기부한 그의 유산으로 시작되었다. 리그는 NGV의 펠튼 유산 위원회(Felton Bequests’ Committee)에서 오랫동안 서기로 활동한 인물이다. 펠튼 유산 위원회는 NGV의 소장품 확장과 작품 구매를 위한 기금을 관리하는 중요한 기관으로, 미술관의 수집과 전시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위원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과 디자인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했으며 자신의 유산을 통해 디자인과 공예 실천을 장려하는 기부금을 남겼다. 그의 기부는 공공 예술기관이 디자인의 문화적 가치와 미래 세대를 지원하는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리그 디자인 상은 수십 년 동안 100명 이상의 디자이너에게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작품을 넓은 대중에게 보여 줄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공헌은 디자인 문화 전반에 큰 의미가 있다. 현재 리그 디자인 상의 최종 선정자는 상금으로 4만 호주달러를 받게 된다.


2025년은 리그 디자인 상이 10회를 맞이하는 중요한 해로, 그동안 중견 및 기성 디자이너 중심이었던 관행에서 벗어나 35세 미만의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디자인 생태계 전반에 신선한 시각과 도전 정신을 불어넣겠다는 NGV의 전략적 의지로 읽힌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도자기, 유리, 목공, 금속, 직물, 조명, 현대 보석 등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넘나드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선보인다. 이러한 다원적 스펙트럼은 기능성뿐 아니라 형태, 재료, 감정까지 폭넓게 탐구하는 오늘날 디자인의 추세를 반영한다. NGV 측은 신진 작가들이 전통적 관습에 도전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보여준다고 강조하며, 이 상이 단순히 상금을 주는 행사가 아니라 디자인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장(場)임을 부각했다.

2025년, 리그 디자인 상의 주인공은?
2025년 리그 디자인 상은 디자이너 알프레드 로우(Alfred Lowe)가 받았다. 그의 대형 도자기 작품 ‘You and Me, Us Never Part’가 심사 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다. 로우의 작품은 단단하고 거친 형태의 점토와 부드러운 라피아(raffia) 장식이 조화롭게 혼합되어 있다. 높이 1미터 이상의 두 거대한 인물형 도자기는 사랑과 증오, 고통과 기쁨 사이의 긴장감, 공동체와 소속, 정체성 등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를 시각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탐구한다.


로우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 공동체와 정체성 사이의 복합적인 긴장과 조화를 시각적 언어로 풀어냈고 이는 전통 기법에 기반을 두면서도 담대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디자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도자기 기법에 뿌리를 두면서도 동시에 현대적 담론과 정체성, 문화적 연결을 아우르는 깊이와 포부를 보여준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번 전시에는 호주 전역에서 선정된 30여 명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활용하여 매우 다채로운 작업을 선보이며, 각자의 배경과 이야기, 기술을 바탕으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탐구를 이어간다. 엘라 바두(Ella Badu)의 작품 ‘Ase Ama’는 황동, 유리, 생선 뼈, 시어버터 등을 매체로 사용하여 현대적인 부적을 만든 것으로 서아프리카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장신구에서 영감받은 것이라 한다. 그녀의 디자인은 퀴어 정체성과 영성, 지속 가능성의 교차점을 탐구하며, 틈새 공간에 숨겨진 수반 구조나 상징적 패턴을 통해 정체성의 연속성과 회복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

Walter Brooks, Wangatunga jirtaka jilamara (A collection of ten folded bark baskets with sawfish design), 2025 stringybark, earth pigments, bush vine, 사진 Jilamara Arts & Crafts Association

월터 브룩스(Walter Brooks)는 티위(Tiwi)의 전통적인 회화 기법인 ‘Jilamara’를 활용한 바크 바구니를 선보인다. 그의 ‘Wangatunga Jirtaka Jilamar’는 나무껍질과 현지에서 구한 색소로 만든 접이식 바구니로 식인 상어 무늬를 통해 전통과 현대 사이의 조화를 보여준다. 사만다 데니스(Samantha Dennis)의 보석 조형물 ‘Anatomy Lessons I–III’는 비둘기, 쥐, 두꺼비 등 주로 혐오감을 주는 동물을 해부 표본처럼 표현한 후 그 내부를 금속과 도자기, 유리로 이루어진 보석 형태로 제시한 것이다. 이 작업은 귀중함과 가치, 친밀감에 대한 인식과 분류 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앤드류 카볼드(Andrew Carvolth)는 목재와 재활용 금속, 자동차 패널을 사용해 ‘Canteen and Chairs’라는 가구 세트를 만들었다. 그의 디자인은 공유된 식사 공간, 기억, 자원 재사용이라는 주제를 결합하며 일상적이지만 풍부한 서사가 담겨있다. 니콜라 찰스워스 & 킴 스테네크(Nicola Charlesworth & Kim Stanek)는 버려진 자원과 환경의 지속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들의 작품 ‘Salt’는 해안선의 침식 패턴을 유리와 알루미늄 등의 재료로 구현하여 생태적이면서도 문화적 경계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리그 디자인 상, 신진 디자이너들의 등용문이 되다
리그 디자인 상의 2009년 수상자이자 NGV의 현대 디자인 및 건축 부서 큐레이터인 시모네 리에이몬(Simone LeAmon)은 이 새로운 세대 디자이너들의 상상력과 추진력은 호주 디자인의 장래를 밝게 한다고 전했다. 그녀가 리그 디자인 상이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경력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듯이 2025년 리그 디자인 상은 호주의 미래 세대를 위한 창조적 디자인 공모전으로 기능한다. 특히 이번 ‘Next in Design’은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중요한 데뷔 무대를 제공하며 다양한 재료와 문화적 맥락을 아우르는 작품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디자인 담론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NGV의 이러한 접근은 단지 한 명의 디자이너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것보다 새로운 세대 전체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전시에 소개된 다양한 디자이너와 작품은 각기 다른 문화, 재료, 이야기를 통해 현대 디자인의 다층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디자인을 시각적 아름다움 이상의 의미 있는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또한 이 전시는 디자인이 어떻게 사회적 정체성, 지속 가능성, 공동체에 대한 성찰을 담는 매개체가 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말하자면, 2025년 리그 디자인 상은 현재의 디자이너뿐 아니라 미래의 디자인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의 선언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NGV의 이 같은 시도는 호주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디자인 허브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