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 하이엔드가 될 때

통영메이드 공예 하이엔드 상품개발 사업

요즘 집 안을 채우는 물건을 고르는 기준은 조금 달라졌다. 새로움보다 오래 쓸 수 있는지, 화려함보다 시간이 지나도 자연스러운지에 마음이 간다. 매일 손이 닿고, 시선이 머무는 물건일수록 그 기준은 더 분명해진다. 통영메이드 공예 하이엔드 상품은 이런 변화된 생활 감각에 대한 응답이다. 전통 공예를 박제된 유산이 아닌, 오늘의 삶에 놓이는 물건으로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다.

전통이 하이엔드가 될 때

전통 공예는 종종 ‘지켜야 할 것’으로만 이야기된다. 박물관의 진열장 안에서, 혹은 기록과 복원의 대상으로서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공예가 다시 주목받는 지점은 보존의 영역이 아니라 동시대의 삶 속에서 공존하는가에 있다. ‘2025 통영메이드 공예 하이엔드 상품개발 사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통영이라는 지역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공예 감각과 기술을 단순히 재현하거나 상품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이엔드’라는 언어로 다시 번역해 오늘의 예술로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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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메이드 나전 공예 상품

통영은 오래전부터 공예의 이름값이 분명한 도시였다. 나전, 옻칠, 소목, 누비 등 한국 공예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통영은 바다를 끼고 형성된 지리적 환경,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이라는 역사적 배경은 통영 공예를 특별하게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규중 여인들이 통영 자개를 소망했고, 선비들이 계를 모아 통영 소목 가구를 마련하던 시절이 있었다. 통영에서 만들어진 물건은 곧 품질과 격조를 의미했다. 오늘날로 치면 지역 이름 자체가 하나의 하이엔드 브랜드였던 셈이다. 통영메이드는 이 오래된 신뢰를 오늘의 생활 방식에 맞게 다시 꺼내 든다. 과거의 명성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명성이 만들어졌던 조건-시간, 손, 쓰임-을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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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메이드 누비 공예 상품

이번 프로젝트에는 통영에서 활발히 작업 중인 나전·누비 장인 8인과, 제품 개발과 유통 경험을 갖춘 디자이너 3인이 참여했다. 나전 분야에는 국가무형유산 나전장 보유자 박재성·장철영 선생을 비롯한 김규수·김성안 장인이, 누비 분야에는 박진숙·박희진·이유영·조성연 장인이 참여해 각자가 펼쳐온 시간의 기술을 아낌없이 꺼내놓았고, 디자이너들은 그 기술이 오늘의 생활 속에서 어떤 형태로 놓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장인은 기술의 깊이를 제공하고, 디자이너는 동시대의 생활 방식과 시각 언어를 제안한 것. 결과물은 총 26종. 서로의 언어가 조율되는 과정을 통해 통영 나전과 누비는 새로운 결을 더할 수 있었다.

“나전 작업은 패 한 조각의 빛깔이 작품의 전체 인상을 좌우합니다. 푸른빛이 가장 고운 나전을 쓰고 싶어 오래 찾았습니다. 한 점을 만들더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나전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만들었습니다.”

참여 장인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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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 디자이너 협업 상품 (왼쪽부터 시계방향) 김규수, 국화문 사각함 / 김성안, 삼각도형 팔각함 / 장철영, 윤슬 필함 / 박재성, 매화문 사각함과 명함함

김주일 디자이너(디자인주 아트디렉터)와 협업한 통영 나전은 고유한 문양과 상징을 유지하면서 구조와 비례, 색의 리듬에 집중했다. 김규수, 김성안, 박재성, 장철영 장인과 협업해 국화문, 매화문, 거북문 등 전통 문양을 현대적 구성 안에 재배치했고, 사각함, 명함함, 필함 등 일상 오브제로 확장되었다. 옻칠의 색은 즉각적인 시각 효과보다 시간이 지나며 깊어지는 특성에 맞춰 설계되었고, 자개의 빛은 밀도 있는 표현으로 차분한 아름다움을 새겼다. 자개를 고르고, 자르고, 붙이고, 옻칠을 올린 뒤 다시 말리고 연마하는 반복되는 과정은 단축할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고 진정한 하이엔드의 기준이다.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잇던 선조들의 누비. 선조들의 질서와 절제를 다시 해석해서 오늘날의 감각과 흐름 속에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이번 프로젝트는 벅찬 경험이었습니다.”

참여 장인 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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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우경 디자이너 협업 상품 – 조성연, 해 방석 / 박희진, 조선왕실 도배지 패턴 베갯모 목베개

“통영 누비는 일자 누비가 대표적인데 이번에는 파도무늬처럼 흐르는 선을 시도했습니다. 폭신폭신한 촉감과 누빔의 자연스러운 결을 살려 부드러운 셰이커박스를 완성했습니다.”

참여 장인 박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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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디자이너 협업 상품 – 박진숙, 바다숨 누비 셰이커박스 / 이유영, 모래결 허리주머니

통영 누비 또한 예전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한 노고가 한 땀 한 땀 누벼졌다. 통영 누비는 재봉틀과 손바느질이 결합된 독특한 기술로 내구성과 통기성, 감각적인 색채 배치와 패턴이 특징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누비는 이불이나 의상의 영역을 넘어, 쿠션, 방석, 셰이커박스, 패션 액세서리 등으로 확장되었다. 누비 협업 디자이너로 참여한 길우경 디자이너(TWL 공동대표)는 전통 보료와 베갯모의 구조를 출발점으로 삼되, 통영의 산과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담아 재구성해 조형적 오브제로 전환시켰다. 김현지 디자이너(원모어퍼포먼스 대표)는 색과 선, 바느질의 방향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통영 바다의 풍경을 연상시키며 지역의 서사를 공예의 시각으로 치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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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통영메이드 공예 하이엔드 상품 전시(2025 공예트렌드페어, 서울 코엑스)

2025년 통영은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 ‘예술의 가치를 더하다, 크리에이티브 통영’이라는 비전 아래, 통영메이드는 장인의 손과 디자이너의 시선을 잇는 하나의 실험으로 자리한다. 나전과 누비라는 오래된 기술은 여기서 여전히 현재형이다. 과거를 지키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삶 속으로 더 깊이 들어오며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한다. 나전과 누비는 통영 공예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분야로, 장인의 손끝에서 수백 번 반복된 과정과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러한 시간의 밀도를 오늘의 디자인 언어로 전환해 통영 나전과 누비가 품은 고아한 결을 일상에서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람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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