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추수
추수는 캐릭터와 게임, 크리처 등 하위문화 요소, 테크놀로지, 디자인 등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며 자신의 관심사를 발현한다. 나와 닮은 듯 다른, 나의 일부이면서도 아닌 존재를 만들며 그 영역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2026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추수 1 20251229 044038](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9_044038-832x1248.jpg)
본디 예술은 아티스트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추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방식이 조금 특별하다. 캐릭터와 게임, 크리처 등 하위문화 요소, 테크놀로지, 디자인 등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며 자신의 관심사를 발현한다. 시작부터 남달랐다. 게임 속 서사와 캐릭터 디자인에 매료돼 ‘오버워치의 미학적 로직’을 주제로 졸업 논문을 쓴 추수는 남녀 간 일대일 관계에 대한 의구심에서 출발해 오픈 릴레이션십을 탐구하는 VR 미연시 게임 ‘슈투트가르트의 조신한 청년들’, 미술관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린 VR 작품 ‘누가 미술관을 지키는가’ 등을 선보였다.
![[2026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추수 2 20251229 044647](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9_044647-832x416.jpg)
![[2026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추수 3 2222](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222-832x1054.jpg)
관심사가 곧 개인을 설명하는 시대에 그는 이것을 나와 닮은 듯 다른 존재, 나의 일부이면서도 아닌 존재를 만드는 방향으로 확장해나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에이미’와 ‘아가몬’이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라는 개념이 막 등장하던 2022년에 선구적으로 제작한 에이미의 출발점은 사실 클라이언트 프로젝트였다. 이상적으로 규격화된 여성 아바타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그다지 탐탁지 않았지만, 추수는 자신의 세계와 관심사를 드러낸다는 조건 아래 이를 수락한다. 그렇게 탄생한 에이미는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외형과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이면서도 집으로 돌아오면 누구보다 자유롭고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이중적인, 그러나 누구보다 인간적인 캐릭터다.
에이미 프로젝트를 가장 활발히 전개하던 2022~2024년은 이미지 생성 AI ‘달리’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던 시기였다. 추수는 본인이 디자인한 원본 에이미를 설명할 수 있는 프롬프트를 입력했고, 그 과정에서 인간 디자이너의 편견을 비껴가는 낯선 이미지들을 실험했다. 그러나 그는 “AI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미지를 학습하기 시작하면서 흥미를 잃었다”고 고백했다. 지나치게 매끈하고 예측 가능한 이미지로 수렴하는 순간, 더 이상 질문을 던질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2026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추수 4 20251229 044817](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9_044817-832x1221.jpg)
![[2026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추수 5 20251229 044816](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9_044816-832x1221.jpg)
에이미가 현실을 디지털로 옮긴 존재라면, 아가몬은 반대로 디지털 세계 속 크리처를 현실로 끌어온 작품이다. 추수의 갈증 중 하나는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에 오래 머물러온 자신에게 그 욕망은 한편으로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이 디지털 속 ‘아가몬’을 실제 세계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아가몬을 디자인하기 위해 추수는 ‘독립정원’ 스튜디오와 협업했다. 우뭇가사리와 이끼 같은 유기적 재료를 사용해 돌봄과 관리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존재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완성한 아가몬은 총 5개. 그중 하나는 이미 죽음을 맞이했다. 적절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끼와 우뭇가사리가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2026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추수 6 20251229 044906](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9_044906-832x832.jpg)
![[2026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추수 7 20251229 044906 1](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9_044906-1-832x832.jpg)
문득 아가몬이 죽으면 슬프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추수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슬프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죽은 아가몬을 뒷산에 묻어주었고, 그 무덤을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는 이 작업이 단순한 조형을 넘어 하나의 존재로 다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추수의 태도는 관객에게도 자연스럽게 전이된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전을 통해 한국 관객에게도 아가몬을 선보였는데, 관객과 큐레이터 역시 이를 하나의 작품이 아닌 ‘존재’처럼 대했다. 아가몬의 상태와 변화 과정을 기록해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고, 다시 찾아와 그 변화를 확인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추수는 이를 보며 자신의 작업이 타인의 감각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말한다.
![[2026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추수 8 20251229 044854](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9_044854-832x1109.jpg)
이렇듯 자신의 관심사와 감정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작업은 정신적으로 큰 소진을 동반한다. 이때 추수에게 숨을 고를 수 있는 또 다른 통로가 있다. 3D 뮤직비디오 스튜디오 ‘프린세스 컴퓨터’다. 시작은 추수의 작업 연장선이었지만, 상업 프로젝트 역시 하나의 창작이라면 역할을 분리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해 이름을 달리했다. 심리적으로 깊게 파고드는 개인 작업과 달리 프린세스 컴퓨터에선 보다 팝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주로 다룬다. 스스로 균형과 정신 건강을 지키는 하나의 방식이다.
![[2026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추수 9 20251229 044924](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9_044924-832x468.jpg)
![[2026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추수 10 20251229 044941](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9_044941-832x415.jpg)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추수는 모든 작업에서 ‘기운생동’, 말 그대로 기운이 살아 움직이는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 AI 시대에 진부하지 않은, 오직 자신만이 줄 수 있는 디자인적·비주얼적 충격과 가치는 무엇인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2026년에는 지금의 작업을 이어가는 한편, 드로잉과 심사위원, 교육자로서의 역할까지 아우르며 더욱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자아에서 출발한 세계를 재료 삼아 또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갈 추수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