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깃든 깊이와 여백, WGNB 백종환 개인전
〈사물의 농담 Lightness of Things〉
공간 디자이너 백종환 개인전 〈사물의 농담〉이 웅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10여 년간 그가 공간을 대하며 축적해 온 사유를 한데 모은 자리다.

오늘날 공간 디자인은 종종 채움의 미학에 몰두한다. 더 화려한 자재, 더 압도적인 구조, 더 선명한 브랜드 정체성을 가득 채운다. 이 흐름 속에서 WGNB 백종환 소장이 걸어온 길은 사뭇 달랐다. 공간을 설계할 때 그 안에 형성될 공기의 흐름과 빛의 작용을 중심에 두었다.

무거움의 세계에서 건져 올린 가벼움
웅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백종환 개인전 〈사물의 농담〉은 지난 10여 년간 그가 공간을 대하며 축적해 온 사유를 한데 모은 자리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의 프로젝트를 나열하는 포트폴리오 형식의 회고전과는 거리가 멀다. 공간이라는 구조적 단위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아온 ‘사물’에 시선을 돌리며, 기능과 역할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은 사물 그 자체의 존재 방식을 조명한다.
전시 타이틀 ‘Lightness of Things’는 직역하면 ‘사물의 가벼움’이지만, 이는 단순한 물리적 경량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말한 가벼움과 무거움의 역설을 떠올리게 한다. 디자이너에게 현실은 언제나 무겁다. 클라이언트의 요구, 예산과 일정, 건축적 법규, 재료가 지닌 물리적 조건까지. 공간 디자인은 수많은 제약과 책임 위에서 성립된다. 백종환 역시 이러한 ‘무거운 세계’ 속에서 공간을 만들어온 인물이다.

〈사물의 농담〉은 그 무게 사이에 남겨진 틈에 주목한다. 거대한 구조물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공기의 흐름, 표면 위에 얹히는 빛의 결, 사물이 놓인 위치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낯섦에 시선을 둔다. 이는 사물을 기능 중심으로 바라보던 관성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의자는 앉는 도구를 넘어 빛을 받아내는 하나의 면이 되고, 벽은 경계를 넘어 그림자를 머금는 그릇이 된다. 이때 사물은 기능의 무게에서 벗어나 가벼워진다. 전시는 이러한 태도를 ‘농담’이라는 개념으로 제안한다. 가볍게 비켜 가는 듯하지만, 명암처럼 깊이를 만들어내는 여지를 남기는 방식. 유머처럼 스치되 그 여운은 오래 남는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람객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사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사물은 과장되게 연출되거나 특정한 해석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대신 사물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바라볼 것을 권한다. WGNB의 공간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감각들은 이곳에서 사물의 형태로 번역된다. 완벽한 대칭보다는 미세하게 어긋난 균형, 매끈한 표면 사이로 드러나는 거친 물성,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 이러한 요소들은 공간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관람객이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긴다.

전시는 사물의 물성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에서 출발해, 사물이 공간과 맺는 관계로 확장되며, 그 과정을 관통하는 가벼운 질문들로 이어진다. 낯섦, 유머, 모호함과 같은 키워드들은 디자인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불필요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감각을 깨우는 데에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된다. 백종환의 작업은 이러한 비효율적인 지점을 통해 공간을 사용자에게 열어두는 방식을 택해 왔다.
회고이자 다음을 향한 첫 문장
〈사물의 농담〉은 WGNB의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회고전인 동시에 백종환이라는 디자이너가 앞으로 써 내려갈 새로운 언어의 서문이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이 단단한 구조와 물성으로 ‘무거움’을 다루며 축적해 온 시간이었다면, 이제 그는 그 견고한 토대 위에서 더 느슨하고 정교한 가벼움을 탐색하고자 한다. 가벼움은 결코 얕지 않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끝에 남은 핵심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밀도에 가깝다. 전시가 말하는 ‘사물의 농담’이다.

전시는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사물을 바라볼 때 무엇을 보고 있는가. 가격표나 브랜드, 혹은 쓸모만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 이 전시는 사물이 침묵의 형태로 건네는 감각에 귀 기울이게 한다. 빛에 닿아 부서지는 입자들, 바닥에 닿은 가구의 가느다란 다리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그리고 그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고요한 풍경들. 전시를 보고 나면 일상의 사물들이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전시는 2026년 1월 17일까지 이어진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점, 무겁게 쌓인 감각을 잠시 내려놓고 사물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조용한 여백을 마주해 보길 권한다. 그 여백 속에서 가벼움은 결코 얕지 않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