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의 세계를 총망라한 전시

웨스 앤더슨: 아카이브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은 영화감독 중 한 명인 웨스 앤더슨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전시가 영국 디자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감독이 소중하게 보관해 온 소품과 의상, 모형은 웨스 앤더슨 미학이 어디서 유래했고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웨스 앤더슨의 세계를 총망라한 전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이 개봉한 지 벌써 11년이 지났다. 파스텔 톤의 색감, 장식적인 세트와 소품 등 웨스 앤더슨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 이 영화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지금까지도 일러스트레이션, 사진, 디자인 등 여러 시각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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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빈티지 감성, 파스텔 색조의 컬러 팔레트, 정교한 소품과 미니어처 세트, 표현적인 의상, 좌우 대칭의 화면 구도 등 웨스 앤더슨은 데뷔 이래 자기만의 예술적 비전을 일관되게 보여줬다. 이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이 되도록 했고, 하나의 문화 현상을 형성했다. 영국 런던의 디자인뮤지엄(the Design Museum)은 앤더슨 감독이 동시대 예술에 미친 업적을 인정하고, 작품 세계의 시작과 발전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단독 회고전 <웨스 앤더슨: 아카이브(Wes Anderson: The Archives)>를 개최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세계를 창조하는데 탁월한 감각을 가졌습니다. 그의 독보적인 비전과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디자인과 장인정신에 대한 예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에 디자인뮤지엄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디자인뮤지엄 관장, 팀 말로우(Tim Mar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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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Design Museum_Photo by Matt Alexander

전시에서는 웨스 앤더슨의 첫 장편 영화 <바틀 로켓(1996)>부터 최근작 <페니키안 스킴(2025)>까지 영화에 등장한 소품, 미니어처 모형, 의상, 스톱모션 인형과 영화 제작에 바탕이 된 스토리보드, 스케치, 작업 노트, 현장 사진 등이 공개된다. 700여 점에 가까운 전시품은 웨스 앤더슨 감독이 지난 30년간 보관한 것이다. 앤더슨 감독은 <바틀 로켓>의 소품과 의상들이 제작사 소유가 되어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은 것을 경험한 후부터 자신이 연출한 영화의 모든 소품과 의상을 직접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독의 아카이브가 큰 규모로 공개되는 경우는 처음으로, 디자인뮤지엄은 올해 상반기, 프랑스의 ‘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La Cinémathèque Française)’에서 열린 전시를 이어받았다.

소품, 영화 속 세계를 설계하는 장치

<웨스 앤더슨: 아카이브>의 공동 큐레이터 루시아 사비(Lucia Savi)는 “웨스 앤더슨은 화려하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트와 소품, 의상을 통해 관객들을 영화 속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앤더슨 감독에게 소품은 자신의 창의적인 세계를 생생하게 구현하는 예술 작품이자 디자인입니다.”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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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등장하는 회화 ‘사과 든 소년’은 영화를 위해 웨스 앤더슨 감독이 현대예술가 마이클 테일러에게 특별히 의뢰해서 제작한 것이다. 이미지 제공 the Design Museum

이처럼 웨스 앤더슨 영화에선 소품과 세트는 중요한 위치를 지닌다. 때문에 앤더슨 감독은 아무리 작은 소품이라도 기획 단계에서부터 담당 디자이너와 함께 논의하고 제작에 관여한다. 이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정교하고 세밀한 소품과 세트는 웨스 앤더슨의 기이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어준다. 전시품들은 앤더슨 감독의 완벽주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데, 창문의 작은 장식까지 구현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모형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실제 존재하는 물건처럼 디자인하고 제작한 소품들에서는 완벽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감독의 노력을 보여준다.

캐릭터를 설명하는 의상

웨스 앤더슨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평범하지 않다. 상처를 가졌음에도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과감히 몸을 던진다. 의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캐릭터들을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과장된 복고풍 스타일, 화려한 패턴, 독특한 색감을 지닌 옷이 주를 이루지만, 때로는 유니폼처럼 인물의 배경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의상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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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베레모는 <러쉬모어> 주인공의 괴짜 같은 성격을 나타내는 소품이다. © the Desig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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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즈 킹덤>에 등장한 보이스카우트 옷과 소품들 © the Design Museum

의상은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빨간색 베레모가 기억에 남는 <러쉬모어(1998)>의 교복, <문라이즈 킹덤(2013)>의 보이스카우트 대원복,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랄프 파인즈가 입었던 보라색의 호텔리어 유니폼 등. 전시된 옷들은 영화 의상이라고 하기엔 패셔너블해서 따라서 입고 싶을 정도다. 가디언 지는 “웨스 앤더슨 영화는 패션 친화적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웨스 앤더슨은 많은 패션 브랜드에게 영감을 줬다. 구찌, 라코스테가 2017~2018년에 보여준 테니스복과 헤어 밴드, 모피 코트, 상·하의 색을 맞춘 운동복은 <로얄 테넌바움(2002)>을 떠오르게 한다.

장인정신으로 완성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웨스 앤더슨을 설명하는 또 다른 장르다. <판타스틱 Mr. 폭스(2009)>를 시작으로 앤더슨 감독은 두 편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연출했는데, 이 영화들에 사용한 인형과 미니어처 모형들도 관람객을 맞이한다.

실사 영화에서도 CG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며 전통적 영화 제작 방식을 고수하는 웨스 앤더슨 감독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도 CG의 개입을 줄이고, 사람의 손이 만든 세상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보여주고자 했다(최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위해 컴퓨터 후반작업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단한 일이다). 인형 제작을 담당한 앤디 젠트(Andy Gent)는 앤더슨 감독과 작업하는 것이 큰 도전이라고 밝혔다. “웨스 앤더슨은 <판타스틱 Mr. 폭스>에 등장하는 인형에 실제 동물의 털을 사용하기를 원했어요. 그 도전은 스톱모션 영화를 완전히 바꿔 놓았죠.” 동물의 털을 사용하면 사실적인 질감은 살지만, 제멋대로 흩날리는 털을 통제하기 어려워 컷과 컷 사이가 매끄럽지 않다. 하지만 앤더슨 감독은 거칠더라도 제작 과정이 눈에 보이길 원했다. 이 뒷이야기를 알면 전시장에 서 있는 인형들이 다르게 보인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소품, 의상, 세트가 완벽하게 완성된 예술 작품이자 디자인이어야 한다고 믿어요. 그것들이 아무리 작은 요소라도 화면 속 세상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죠.

디자인뮤지엄 큐레이터, 요한나 아거만 로스(Johanna Agerman 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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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뮤지엄은 영화와 전시를 또 다르게 경험할 방법을 다양하게 준비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물론, 영화에 출연한 배우와의 인터뷰를 실은 도록을 통해 웨스 앤더슨 세계를 심도있게 다루고자 했다. 또, 영화에 등장한 소품을 모티프로 한 굿즈들도 판매하여 전시를 본 관람객들이 특별한 선물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제일 기대되고 반응이 좋은 이벤트는 디자인뮤지엄 내 디자인 키친에서 판매하는 에프터눈 티 세트다. 예약해야 먹을 수 있는 이 특별한 디저트는 파티시에와 협업하여 만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코르티잔 오 쇼콜라’가 제공된다. 상상만 했던 영화 속 디저트를 실제로 맛 볼 기회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세계를 영화 미술로 탐구할 수 있는 <웨스 앤더슨: 아카이브>는 첫날부터 화제가 되었다. 만약 전시를 본다면 디자인뮤지엄 홈페이지를 통한 예약이 필수다. 내년 여름까지 열리기 때문에 그사이 영국 런던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한 번 방문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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