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컬렉션으로 확장된 협업의 의미, 이브 살로몬 에디션 x 디모레 스튜디오
YVES SALOMON ÉDITIONS × DIMORESTUDIO 협업 컬렉션
이브 살로몬 에디션과 디모레스튜디오는 가구와 텍스타일을 매개로 패션과 인테리어, 장인정신과 현대 디자인의 경계를 확장했다. 파리 전시 ‘Un Souffle de Vent’는 가구를 기능적 오브제를 넘어 감상과 서사를 담은 존재로 제시하며, 역사적 레퍼런스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협업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패션과 인테리어, 장인정신과 현대 디자인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는 오늘날, 이브 살로몬 에디션(YVES SALOMON ÉDITIONS)과 이탈리아 디자인 스튜디오 디모레스튜디오(Dimorestudio)의 협업은 이러한 흐름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025년 10월, 파리에서 열린 디자인 마이애미/아트 바젤 파리(Design Miami/Art Basel Paris) 기간에 공개된 설치 프로젝트 ‘Un Souffle de Vent(바람 한 줄기)’는 두 브랜드가 공유하는 미학적 언어와 협업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번 프로젝트는 YVES SALOMON ÉDITIONS의 파리 쇼룸에서 선보였으며, 밀라노 살로네 델 모빌레에서 이미 공개된 일부 컬렉션 피스들과 함께 새로운 가구 및 텍스타일 작품들을 하나의 서사적 공간 안에 재구성했다. 디모레스튜디오가 연출한 전시 디자인은 가구 쇼케이스라는 형식을 넘어서 시간성과 기억, 사물의 존재 방식을 다루는 공간적 경험으로 기획되었다.



전시 제목 ‘바람 한 줄기’가 말하는 것
‘Un Souffle de Vent(바람 한 줄기)’는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의 저서 ‘사물들(Les Choses)’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되었다. 페렉의 색이 바랜 듯한 톤, 섬세하게 배치된 물성, 저녁에 비로소 완성되는 실내의 분위기라는 묘사는 디모레스튜디오 특유의 연출 언어를 통해 시각화되었다. 공간은 강한 제스처보다는 절제된 색감과 질감, 그리고 사물 간의 관계에 집중한다. 낮과 밤, 빛과 그림자, 기능과 감상의 경계를 오가며, 각 가구와 텍스타일은 사용을 전제로 하면서도 동시에 ‘관조의 대상’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접근은 디모레스튜디오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디자인 철학과 맞닿아 있으며, 이브 살로몬 에디션이 가구 컬렉션을 통해 지향하는 방향과도 일치한다.



이브 살로몬 에디션, 왜 가구인가
이브 살로몬은 모피와 의류를 중심으로 축적해온 장인적 노하우를 가구와 오브제 영역으로 확장하며 패션 하우스의 감각을 생활 공간으로 옮기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들이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가구 컬렉션을 전개하는 이유는 브랜드의 물리적 확장만의 목적이 아닌, 특수 소재 제작 노하우, 촉각적 경험에 대한 오랜 탐구를 다른 형태로 구현하기 위함에 가깝다. 특히 가죽, 텍스타일, 표면 처리에 대한 섬세한 이해는 가구라는 매체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브 살로몬 에디션는 단일한 디자인 언어를 반복하기보다, 각 협업 디자이너의 미학을 존중하며 컬렉션마다 서로 다른 세계관을 구축해왔다. 이 과정에서 가구는 브랜드 스타일을 담는 목적을 넘어 디자이너와의 대화를 기록하는 결과물로 기능한다. 이번 협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했다. 장식성과 절제, 역사적 참조와 현대적 해석을 동시에 다루는 이들의 작업 방식은 이브 살로몬 에디션이 추구하는 깊이 있는 물성 중심의 디자인 전략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디모레스튜디오, 서사를 설계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브리트 모란(Britt Moran)과 에밀리아노 살치(Emiliano Salci)가 이끄는 밀라노 기반의 디모레스튜디오는 인테리어, 가구, 전시 연출을 넘나들며 활동해왔다. 이들의 작업은 미니멀리즘이나 장식적 스타일로 환원되기 어렵고, 대신 공간을 하나의 이야기 구조로 설정하고, 가구와 오브제를 그 안의 등장인물처럼 배치하는 방식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종종 20세기 초, 중반의 역사적 레퍼런스, 아르데코, 아르누보, 이탈리아 모더니즘을 참조하지만 이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형식을 현대적 소재와 감각으로 재조정한다. 이번 협업에서도 가구의 실루엣, 표면의 질감, 장식적 요소는 분명한 역사적 뿌리를 지니면서도 동시대적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했다.




를로 부가티Carlo Bugatti, 이번 협업의 핵심 레퍼런스
이번 컬렉션에서 중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언급되는 인물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활동한 디자이너 카를로 부가티(Carlo Bugatti)다. 그는 가구 디자인 역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 아르누보의 흐름 속에 동양적 요소와 이국적 장식을 과감하게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가구는 전통적인 서구 가구 제작의 논리인 목재 구조, 기능적 안정성, 장식의 부차성을 따르지 않았다. 양피지(parchment), 가죽, 구리, 주석, 채색된 나무 등 이질적인 재료를 혼합하고, 의도적으로 평면성과 장식성을 강조한 형태는 가구를 하나의 실내 건축적 오브제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접근은 가구를 사용을 위한 도구로 한정하지 않고, 공간의 분위기와 상징성을 규정하는 장치로 확장시켰다. 종종 오리엔탈리즘과 연결되지만 이는 장식적 차용이라기보다 19세기 말 유럽 사회가 마주한 문화적 혼종성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된다. 일본, 중동, 북아프리카 장식에서 차용한 요소들은 서구 중심의 미학 질서에 균열을 내며 가구 디자인이 담을 수 있는 문화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글로벌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정착되기 이전에 이미 형식과 문화의 경계를 넘나들고자 했던 시도로 평가된다. 디모레스튜디오가 이번 협업에서 카를로 부가티를 주요한 레퍼런스로 삼은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부가티가 기능과 장식, 가구와 조형, 서구와 비서구의 구분을 흐렸듯, 이번 컬렉션 또한 명확한 범주화보다는 모호함과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가구는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면서도 시각적으로는 불완전해 보이며, 표면은 장식적이되 과시적이지 않다.



기능과 감상의 경계에서
‘Un Souffle de Vent(바람 한 줄기)’에 등장하는 가구와 텍스타일은 모두 실용적인 오브제이지만 표면을 따라 손이 머무는 시간, 빛에 따라 달라지는 질감처럼 기능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공간 속에서 오브제들이 만들어내는 침묵의 밀도는 이 컬렉션이 단순히 사용만을 위한 물건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브 살로몬 에디션과 디모레스튜디오의 협업은 패션 하우스가 가구를 통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그리고 디자인 스튜디오가 브랜드와의 협업 속에서 어떻게 서사를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역사적 레퍼런스를 존중하되 과거에 머물지 않고, 장식적 요소를 활용하되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 균형감각은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가구 컬렉션을 통해 하나의 기업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이브 살로몬 에디션의 방향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며, 디모레스튜디오가 동시대 디자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명확히 드러낸다. 패션과 인테리어, 예술과 디자인 사이의 경계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동시키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