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에 개관한 파리 샹젤리제 극장의 리뉴얼
콩스탕스 기세가 재구성한 극장의 공공 공간
1913년 개관한 파리 샹젤리제 극장이 2025–2026 시즌을 앞두고 공공 공간 중심의 리뉴얼을 진행했다. 프랑스 디자이너 콩스탕스 기세는 역사적 건축을 보존한 채 로비와 동선, 대기 공간의 쓰임을 재정의해 공연 전후까지 확장되는 극장 경험을 완성했다.

1913년 개관한 파리 샹젤리제 극장(Théâtre des Champs-Elysées)은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가 설계한 20세기 초 근대 건축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전면에 드러낸 이 극장은 아르데코 양식의 태동을 알린 역사적 장소로, 단순히 공연을 위한 공간을 넘어 건축과 예술, 장식 미술이 결합된 총체적 작품으로 평가받아 왔다.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극장의 공연장과 건축적 정체성은 여러 차례 보존과 복원을 거쳐 유지되어 왔지만, 관객을 맞이하는 로비, 아트리움, 대기 공간과 같은 공공 영역은 현대적 사용 방식과 관객 경험의 변화에 비해 점차 기능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2025-2026 시즌을 앞두고 진행된 이번 리뉴얼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극장의 새로운 디렉터십은 샹젤리제 극장이 공연 전후의 시간까지 포괄하는 ‘경험의 장소’로 다시 기능하길 원했고, 그 해답으로 프랑스 디자이너 콩스탕스 기세(Constance Guisset)를 선택했다.

* 콩스탕스 기세는 누구?
2009년부터 콩스탕스 기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제품 디자인, 인테리어, 무대미술을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 ENSCI–Les Ateliers 출신으로 작업에서 인체의 움직임과 감각적 경험을 중시하는 접근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작품은 퐁피두 센터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기금(FNAC)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으며, 문화 공간과 공공 장소를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활동 중이다.


프랑스 근대 건축의 대표작이자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예술적 언어로 승화시킨 샹젤리제 극장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초연과 클래식 음악,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파리 문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리뉴얼의 핵심은 장식적 변화가 아닌, 공간 구조와 사용 방식에 대한 재정의를 위해서였다. 매표소, 바, 대기 공간, 순환 동선 등 관객이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일련의 흐름을 현대적 쓰임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 그래서 콩스탕스 기세는 기존 공간의 해체보다, 기능적 배치를 재조정하고 동선을 명확히 하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적용했다. 관객의 이동 경로를 보다 직관적으로 정리했고, 상대적으로 활용도가 낮았던 공간들을 관객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계단 하부에는 새로운 알코브를 만들고, 분절되어 보였던 대기 공간은 공연을 보기위해 단순히 통과하는 장소가 아니라 잠시지만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전환시켰다. 공연 전의 대기 시간, 인터미션 동안의 짧은 휴식, 공연 후의 여운을 공유하는 순간까지, 공공 공간을 극장 경험의 일부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한 것이다.




콩스탕스 기세의 디자인은 오귀스트 페레의 건축 언어와의 긴밀한 대화를 기반으로 한다. 새롭게 추가된 가구와 구조물은 기존 건축의 선형적 질서를 존중하며, 이를 연장하거나 변주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 직선과 곡선의 균형, 반복되는 리듬, 구조적 명확성은 페레 건축의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된다. 특히 쇼드로룩스(Chaudrolux)에서 맞춤 제작된 테이블과 가구는 난간의 볼류트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으며, 공간 속에서 이질적인 오브제로 튀어나오기보다 건축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쇼드로룩스는 프랑스의 맞춤 가구 제작 전문 업체로 문화 시설과 공공 공간을 위한 가구 및 구조물 제작에서 풍부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극장 리뉴얼에서는 콩스탕스 기세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로비와 대기 공간의 맞춤 가구 제작을 담당했다. 색채의 선택 또한 흥미롭다. 기존 건축과 충돌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선택된 소재들은 질감과 톤을 통해 은근한 현대성을 부여한다. 프랑스 전통 패브릭 브랜드 피에르 프레이(Pierre Frey)의 고급 패브릭의 사용으로 이미 극장에 존재하는 핑크빛 색채에 깊이감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가구들은 유연한 곡선으로만 표현되어 시선이 부드럽게 흐른다.


이번 리뉴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공 공간의 재구성과 더불어, 극장 내부에서 진행된 조명 프로젝트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대공연장 상부를 덮고 있는 역사적 돔과, 오귀스트 페레가 ‘빛의 방패(Bouclier lumineux)’라 명명했던 상부 구조는 이번 현대화 작업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1913년 극장 개관 당시 설치된 이 구조는 131개의 유리 패널로 구성된 대형 채광 장치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조명 개념이었다. 전통적인 샹들리에를 천장에 매다는 방식 대신, 천장 전체를 하나의 발광 구조로 설계한 이 ‘빛의 방패’는 건축과 조명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했는데, 전기 조명 기술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던 시기였던 만큼 이후 수차례의 기술적 보완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건축가 폴 라보(Paul Ravaux)와 조명 디자이너 얀 주르당(Yann Jourdan)이 협업해, 이 상징적 구조를 현대적 LED 기술로 재해석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핵심은 과거의 형태를 복원하는 데 있지 않고, 돔이 지닌 장식적 구성과 공간적 의미를 다시 읽어내는 데 있었다. 유리 패널을 둘러싼 장식적 모티프, 아르누보에서 아르데코로 이행하던 시기의 그래픽한 패턴, 그리고 주변을 감싸는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의 회화가 다시 강조되도록 말이다. 그렇게 완성된 새로운 조명 시스템은 색의 충실한 재현과 함께, 장면에 따라 조도를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을 자랑한다. 이는 공연 전, 공연 중, 인터미션 등 서로 다른 시간대의 분위기를 조명만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해 예술적이며 독특한 예술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시에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LED 기술의 도입은 문화유산 보존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오늘날의 요구에도 부합했다.




콩스탕스 기세의 공공 공간 디자인은 이러한 극장 내부와 충돌하지 않도록 조율되어 건축, 가구, 조명이 하나의 경험으로 결합된 듯 보인다. 이번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환대’다. 이는 단순히 편안한 가구를 배치하는 차원을 넘어, 관객을 맞이하는 공간의 태도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콩스탕스 기세는 좌석의 배치, 공간의 리듬, 시선의 흐름, 머무는 시간의 감각까지, 모든 것을 관객 경험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리뉴얼은 극장의 역사적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의 관객에게 보다 개방적이고 친근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히 달라진 공간,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험은 이번 프로젝트가 지닌 가장 큰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