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오래 기억될 영화제 아이덴티티 디자인

영화제의 얼굴은 배우도, 작품도 아니다. 영화보다 오래 기억될 영화제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모아 소개한다.

영화보다 오래 기억될 영화제 아이덴티티 디자인

영화제의 얼굴은 배우도, 작품도 아니다. 거리에 나붙은 포스터와 현수막은 때로 영화보다 흥미로운 비주얼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곤 한다. 도시마다 영화제가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행사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화보다 오래 기억될 영화제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모아 소개한다.


시네프라이드영화제(Cinépride Film Festival)

프랑스 문화부는 LGBT에 대한 차별을 예방하고 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퀴어 영화제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프랑스 낭트에서 열리는 시네프라이드영화제도 그 일환이다. 도시 내에 자리한 LGBTQI+ 센터가 설립한 이 영화제는 젠더와 성 정체성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와 장·단편 영화를 주로 소개하는데, 영화인뿐 아니라 LGBT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지역 단체와 교류가 이루어지는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시네프라이드영화제는 매해 다채로운 컬러와 조밀한 그래픽 요소를 통해 유쾌하고 발랄한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굳이 영화를 모티프로 한 시각 요소를 고집하지는 않는 편인데, 2024년에는 촛불을 켠 케이크를 전면에 내세운 아이덴티티를 선보이며 영화제 20주년을 자축하기도 했다.

클라이언트 시네프라이드영화제
디자인 아틀리에 초크 르 고프(대표 Donald Choque, Yoann Le Goff)

브루클린영화제(Brooklyn Film Festival)

심장, 뇌, 눈을 형상화한 3D 오브제 이미지. 뇌를 자극하고 심장을 뛰게 하는 영화 관람 경험을 시각화한 것이다.

브루클린영화제는 뉴욕을 기반으로 한 독립 영화제다. 지역 문화에 뿌리를 두면서도 국제적인 영화 담론에 긴밀히 호응한다.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제를 맡은 아더웨이Otherway는 현대사회의 다변화된 관람 경험을 시각 언어로 풀어냈다. 캠페인의 핵심 시각 요소는 심장, 뇌, 눈을 형상화한 3D 오브제 이미지로, 큰 스크린을 통해 가능한 몰입도 높은 관람 경험을 은유한다. 반면 무빙 이미지에는 스마트폰의 스크롤 동작을 적용했다. 스크린과 스마트폰의 상반된 관람 방식을 통해 ‘동시대의 스크린 경험은 동일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했다.

클라이언트 브루클린영화제
디자인 아더웨이
협업 Klong

베를린국제영화제(Berli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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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마스코트인 곰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아이덴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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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현장. 무대 디자인은 다카사키 고세이가 맡았다.

베를린과 곰에 얽힌 전설은 수 세기에 걸쳐 전해 내려온다. 난무하는 가설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날까지도 도시 곳곳에서 곰을 마주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만큼 독보적인 상징성을 갖는다는 건 분명하다. 베를린국제영화제는 1951년 개막 당시부터 곰을 마스코트로 삼았다. 아이덴티티를 정립하기 훨씬 이전부터 번번이 곰을 등장시켰으니 50주년을 맞아 공개한 로고를 곰 형상으로 디자인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21년부터는 독일의 그래픽 디자이너 클라우디아 슈람케Claudia Schramke가 포스터 디자인을 전담하고 있는데 두 해를 제외하고 곰을 전면에 배치했다. 로고나 트로피의 곰 형상에 비해 친근한 이미지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지향하는 연대와 포용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클라이언트 베를린국제영화제
디자인 클라우디아 슈람케

전주국제영화제(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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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현장.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자인 전통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1회 행사 포스터에서 전주의 도시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알파벳 J를 전면에 배치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알파벳 J를 변주한 그래픽 디자인은 전주국제영화제의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그간 신덕호, 장우석, MHTL을 비롯한 한국 디자인 스튜디오뿐 아니라 각국의 창작자들과 협업하며 매해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2025년에는 디자이너 손아용과 함께 ‘프레임’과 ‘연결’이라는 영화의 핵심 요소를 시각화한 아이덴티티를 설계했다. 26개의 원을 여러 형태로 배열해 프레임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를 통해 영화제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드러냈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디아스포라영화제(Diaspora Film Festival)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사회의 구조적 차별에 의해 소외된 이들의 삶을 포괄적으로 조명하는 영화제다. 디자이너 이경민은 영화제의 취지와 방향성에 공감해 2018년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간 선보여온 모든 아이덴티티에는 사회 변두리의 이야기를 가시화할 수 있는 소재와 표현 기법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구체적인 상징 기호보다 추상화된 도형과 패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여기에는 특정 집단이나 정체성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각계각층을 향해 영화제의 메시지를 발신하고자 하는 디자이너의 의도가 투영되어 있다.

클라이언트 인천광역시 영상위원회
디자인 복도(대표 이경민)

선댄스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

아틀리에 초크 르 고프가 디자인한 올해 영화제 아이덴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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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선댄스영화제 현장.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독립 영화제다. 해마다 다른 디자이너들의 손을 빌려 아이덴티티를 바꾸는데, 매년 수십 편의 작품을 새롭게 선보이는 영화제의 성격을 고려해 행사의 성격을 규정짓지 않으려는 의도다. 2023년 처음으로 개별 연도를 초월하는 전체 아이덴티티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최소한의 규칙 외에 모든 시각 요소를 쇄신하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올해는 프랑스의 디자인 스튜디오 아틀리에 초크 르 고프Atelier Choque Le Goff가 디자인을 맡았다. 그래픽 시스템의 기틀로 삼은 사각 필름 프레임 안에서 원색 컬러 팔레트를 변주하며 영화제의 생동감을 나타냈다.

클라이언트 선댄스영화제
디자인 아틀리에 초크 르 고프(대표 Donald Choque, Yoann Le Goff)
협업 Nevil Bernard, Quentin Delaunay

겐트국제영화제(Film Fest Gent)

페나키스토스코프의 원형 구조에서 착안한 워드마크.
영화제 아이덴티티를 적용한 무빙 포스터.

1974년부터 이어져온 베를린의 유서 깊은 영화제.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리뉴얼을 단행했다. 새로운 워드마크는 벨기에의 물리학자 조제프 플라토가 발명한 초기 애니메이션 장치 ‘페나키스토스코프’에서 착안했다. 정지된 로고와 무빙 이미지 모두에서 느껴지는 역동적인 리듬감이 영화제에 활기를 더한다. 겐트국제영화제는 매년 경쟁 부문 작품을 선보이기 전 세 가지 컬러 팔레트를 공개한다. 출품작을 발표한 뒤에는 각 영화 포스터에서 색을 추출해 팔레트를 확장한다. 개막일이 가까워질수록 다채로운 색으로 물드는 아이덴티티가 영화제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클라이언트 겐트국제영화제
디자인 Mutant
참여 디자이너 Frank Schouwaerts, Davy Dooms, Ben Boliau, Joris Hechtermans, Tjen Colman, Bob Van den Audenaerde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2호(2026.02)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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