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샤트베라슈빌리의 네 개의 시선

증강된 솔로(solo augmenté)’ 시리즈 전시의 10번째 주인공 엘렌 샤트베라슈빌리(Elene Shatberashvili)

에르메스 재단 라 베리에흐(La Verrière)의 큐레이터 조엘 리프는 ‘증강된 솔로(solo augmenté)’ 시리즈 전시의 10번째 주인공으로 젊은 조지아 출신의 프랑스 작가 엘렌 샤트베라슈빌리(Elene Shatberashvili)를 선택했다.

엘렌 샤트베라슈빌리의 네 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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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e de l’exposition d’Elene Shatberashvili « Quatre », La Verrière 2026 © Adagp, Paris, 2026 © Isabelle 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에르메스 재단 라 베리에흐(La Verrière)의 큐레이터 조엘 리프는 ‘증강된 솔로(solo augmenté)’ 시리즈 전시의 10번째 주인공으로 젊은 조지아 출신의 프랑스 작가 엘렌 샤트베라슈빌리(Elene Shatberashvili)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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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ne Shatberashvili – 1 © Sopho Kobidze

이번 전시는 샤트베라슈빌리의 네 번째 개인전이다. 그래서 제목을 숫자 4를 말하는 불어 ‘캬트르(Quatre)’로 정했다. 조엘 리프는 오프닝에서 작가가 이전부터 개인전의 제목으로 숫자로 사용하고 싶어 했지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전시까지 그 시도가 너무 직접적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네 번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작가의 소망인었던 숫자 제목이 받아들여져 하나의 개념이자 구조로서 작동하게 됐다. 캬트르(Quatre)는 그래서 이제야 번호를 매길 수 있게 된 전시, 다시 말해 작업이 시간과 축적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순간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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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e de l’exposition d’Elene Shatberashvili « Quatre », La Verrière 2026 © Adagp, Paris, 2026 © Isabelle 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라 베리에흐의 전시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솔로 오그망테(solo augmenté)’, 즉 ‘확장된 개인전’이다. 이 형식은 하나의 작가를 중심에 두되, 그를 둘러싼 다른 예술가들, 오브제, 텍스트, 디자인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전시를 하나의 관계적 구조로 확장시키려는 구조다. ‘캬트르’ 역시 이 원칙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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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e de l’exposition d’Elene Shatberashvili « Quatre », La Verrière 2026 © Adagp, Paris, 2026 © Isabelle 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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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e de l’exposition d’Elene Shatberashvili « Quatre », La Verrière 2026 © Adagp, Paris, 2026 © Isabelle 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전시는 엘렌 샤트베라슈빌리의 회화 약 20여 점을 중심으로 다섯 명의 회화 작가 – 장 클라라크Jean Claracq, 나타나엘 에르블랭(Nathanaëlle Herbelin), 마틸다 마르크 부아레(Mathilda Marque Bouaret), 미란다 웹스터(Miranda Webster), 그리고 선배 세대의 화가 베라 파가바(Vera Pagava) – 의 작품이 함께 놓였다. 여기에 조지아 기반의 룸 스튜디오Rooms Studio와 요한 빌라드리히(Johan Viladrich)의 가구, 그리고 신학자 필리프 프랑수아(Philippe François)의 텍스트가 더해졌다. 이 구성은 그룹전으로 명명하기 보다, 하나의 테이블에 둘러앉은 장면을 연출한다고 설명하고 싶다. 큐레이터는 이를 환대의 공간이라 말하는데, 작품들이 서로를 압도하지 않으면서 시선을 나누며 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전시는 각각의 작업을 고립시키기보다 동시대적 친연성 속에서 함께 읽히도록 유도한다.

엘렌 샤트베라슈빌리의 회화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간다. 자화상, 정물, 일상의 장면, 풍경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그것들은 명확한 장르로 설명되지 않는다. 화면 속 사과, 달걀, 꽃, 테이블, 거울은 기하학적으로 절단되거나, 칼레이도스코프처럼 반복되는 면들 속에 배치된다. 이는 대상을 재현하기보다 보는 행위 자체를 시각화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작가는 오프닝 대화에서 자신의 작업을 ‘몸과 캔버스의 관계’로 설명했다. 붓질은 때로는 격렬하고, 때로는 고요하다. 물감의 질감, 두께, 화면 위에서의 저항은 모두 신체적인 경험으로 축적되기 때문에 회화는 이미지이기 이전에 몸의 흔적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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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ne Shatberashvili, Poppies #4, 2024, huile sur toile, 65 × 65 cm, courtesy de l’artiste et de la galerie © LC Queisser, Adagp, Paris, 2025

이번 전시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붉은색. 작가는 최근 붉은색에 강한 집착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붉은색은 회화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색 중 하나지만, 이번엔 공격적이기보다는 응축된 에너지로 작동한다. 꽃, 배경, 화면의 면으로 등장하는 붉은색은 내부에서 발광하는 듯하다. 이와 맞닿아 있는 개념이 ‘빛’이다. 샤트베라슈빌리에게 빛은 단순한 조명 효과가 아니며 화면 내부에서 발생하는 사건, 그리고 색과 형태를 관통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창문, 거울, 스크린 같은 모티프가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요소들은 빛을 들이거나 반사하는 장치이자, 시선을 분열시키는 구조물이다. 관람자는 하나의 고정된 시점이 아니라, 여러 겹의 시선 속에서 회화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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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e de l’exposition d’Elene Shatberashvili « Quatre », La Verrière 2026 © Adagp, Paris, 2026 © Isabelle 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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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e de l’exposition d’Elene Shatberashvili « Quatre », La Verrière 2026 © Adagp, Paris, 2026 © Isabelle 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전시에 함께 참여한 네 명의 동시대 화가는 모두 샤트베라슈빌리와 같은 교육적 배경을 공유하거나,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이다. 나타나엘 에르블랭의 회화는 친밀한 대상과 인물을 담담하게 응시하며, 부드러운 색조 속에서 감정의 밀도를 축적한다. 장 클라라크는 극도로 세밀한 묘사를 통해 현대적 욕망과 이미지의 과잉을 미니어처처럼 응축한다. 마틸다 마르크 부아레는 형태를 분절하며 회화의 물질성을 강조하고, 미란다 웹스터는 극사실적인 디테일을 통해 시각적 긴장을 만들어낸다. 이 네 작가는 서로 다른 회화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표면에 대한 집요한 탐구라는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베라 파가바의 작품이 더해지면서 전시는 시간의 축을 확장시켰다. 1907년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태어난 파가바는 20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색면 추상 회화를 발전시킨 작가다. 그녀의 작품은 장식적이지 않고, 색의 관계를 통해 내적인 리듬을 만들어낸다. 파가바와 샤트베라슈빌리를 나란히 놓는 것은 단순한 출신 국가의 공통점 때문이 아니라 여성 화가이자 색과 빛을 통해 세계를 사유해온 두 세대의 조용한 대화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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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e de l’exposition d’Elene Shatberashvili « Quatre », La Verrière 2026 © Adagp, Paris, 2026 © Isabelle 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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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e de l’exposition d’Elene Shatberashvili « Quatre », La Verrière 2026 © Adagp, Paris, 2026 © Isabelle 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전시 ‘캬트르’의 확장은 전시 출판물로도 이어진다. 도록 제작에 참여한 필리프 프랑수아는 “예술가나 전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전시 도록’을 만들어 달라는 특별한 주문을 받았다며 웃음을 유발시켰다. 필리프 프랑수아는 전시의 경험을 타이포그래피와 레이아웃을 통해 번역했는데, 페이지를 넘길 때, 현재 읽고 있는 텍스트 주변에 이전 혹은 다음 페이지의 이미지와 흔적이 주변부처럼 스며드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전시장에서 하나의 작품에 집중할 때도, 주변 작품들이 흐릿하게 시야에 남아 있는 ‘주변 시(peripheral vision)’의 경험을 반영한 것. 그렇게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나와서도 도록을 챙겨와 읽음으로서 전시를 또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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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e de l’exposition d’Elene Shatberashvili « Quatre », La Verrière 2026 © Adagp, Paris, 2026 © Isabelle 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전시는 숫자 ‘4’처럼 안정된 구조를 연상시킨다. 네 개의 다리가 있어야 테이블이 서듯, 회화, 공동체, 디자인, 텍스트라는 네 개의 축이 전체적인 구성에서도 안정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안정감은 고정된 결론이 아니라, 다음을 향한 기반에 가까운 것 같다. 엘렌 샤트베라슈빌리에게 이번 전시는 도착점이 아니라, 비로소 번호를 붙일 수 있게 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녀에게 회화는 여전히 자유의 공간이며, 실험의 장이다. 그리고 라 베리에르에서의 개인전은 동시대 회화가 여전히 유효한 질문의 형식임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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