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와 일상이 만나는 곳, 갤러리 모순 광화문

브루탈리즘과 한옥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

경복궁역 7번 출구로 나와 일직선으로 걷다 보면 사직로10길 골목에 다다른다. 건너편 서촌 거리와는 또 다른 호젓함이 감도는 거리. 갤러리 모순의 새 공간은 그곳에 자리한다.

공예와 일상이 만나는 곳, 갤러리 모순 광화문

경복궁역 7번 출구로 나와 일직선으로 걷다 보면 사직로10길 골목에 다다른다. 건너편 서촌 거리와는 또 다른 호젓함이 감도는 거리. 갤러리 모순의 새 공간은 그곳에 3층 규모로 자리한다. 1층 ‘숍 모순’, 2, 3층 전시 공간으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 노출 콘크리트 구조에서 느껴지는 브루탈리즘과 창 너머로 스며드는 한국적 정취가 미묘하게 공존한다. 연일 강추위가 이어지는 1월의 오후, ‘모순’이라는 이름처럼 이질적인 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이 공간에서 김예빈 대표를 만나 새로운 여정의 이야기를 들었다.

Interview

김예빈 갤러리 모순 대표 겸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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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모순의 대표이자 큐레이터 김예빈 © MOSOON
얼마 전 정동에서의 마지막 전시 때 뵙고 광화문에서 다시 뵙게 되었네요. 모순이 이곳 광화문으로 터전을 옮기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시작은 ‘숍’에 대한 갈증이었어요. 정동은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개인전 위주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전시가 끝나면 작가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죠. 상설로 작품을 선보일 편집숍 형태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1년 동안 서촌과 인사동 일대를 둘러보다가 지금의 자리를 만났습니다. 원래 양고기 집이었던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제 눈에는 잠재력이 보였어요. 작은 공간이 3개 층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경복궁역과 가깝지만 너무 붐비지 않는 이 골목길의 정취가 좋았습니다.

브루탈리즘과 한옥의 결합이라는 콘셉트가 ‘모순’이라는 이름과도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저는 모순이라는 단어에서 충돌이 아닌 조화의 가능성을 떠올려요. 공예와 미술,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처럼 서로 다른 것들이 한 공간 안에서 충분히 어우러질 수 있다고 믿거든요. 실제로 제가 좋아하는 공간이나 물건들도 이질적인 요소들이 만나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아요. 광화문 공간은 1층이 상설 숍, 2층은 전시 공간, 3층은 평소 사무실로 쓰다 전시 기간에는 개방하고 있어요. 특히 정동에는 없던 키친 시설을 갖추면서 다과회 같은 이벤트를 할 수 있게 된 점이 큰 변화입니다.

정동 공간에서는 향, 음악, 고가구까지 직접 연출해 ‘생활 공간’ 같은 분위기를 만드셨잖아요. 광화문 공간은 어떻게 기획하셨나

철거 과정에서 드러난 H빔이 영감이 됐어요. 건물 맞은편 한옥 카페의 낮은 천장고와 묘한 한국적 정취를 보며, 한옥의 대들보를 모티브 삼아 H빔을 그대로 살리기로 했죠. 붙어 있던 본드 자국은 최대한 긁어내고 코팅만 한 번 더 했고요. 내부 계단도 H빔 구조에 맞춰 금속으로 다시 제작했습니다. 1층 가구는 스튜디오 노이치가 디자인하고 어반웍스에서 화이트 오크에 화이트 오일 마감으로 제작했고요. 콘크리트 알맹이부터 화장실 타일까지 제가 직접 정했죠. 정동 때와 마찬가지로 ‘비어있지만 따뜻한 캔버스’가 필요했어요. 뭘 놓아도 작품이 따뜻하게 돋보일 수 있는 게 갤러리로서 중요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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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숍 모순은 ‘Cup to Table’이라는 모토로 테이블 위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기물들을 소개한다. © MOSOON

— 이전에 “공예가 진열장에 머무르지 않고 함께 경험하는 순간을 통해 살아난다”는 철학을 강조하셨는데요. 이 공간에선 어떻게 구현하고 있나요?

키친이 생기면서 이 철학을 더 가깝게 구현할 수 있게 됐어요. 전시 오픈 날에는 작가의 잔을 활용해 와인이나 차를 마시기도 하고요. 입체 작업들은 관람객에게 직접 만져보시라고 적극 권하고 있습니다. 1층 숍에서도 컵에 물을 따라보며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을 실제로 경험해 보시길 바라죠. 공예는 쓸수록 손길이 느껴지고 좋아지는 법이니까요.

1층 숍 모순의 큐레이션 방향성이 궁금합니다.

올해부터 ‘Cup to Table’이라는 모토를 세웠어요. 컵으로 시작하지만 테이블 위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기물들, 즉 접시, 플레이트, 다관, 트레이 등을 편집숍 개념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동에서 전시했던 작가님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개인전을 하지 않더라도 젊은 작가의 작품을 소량이라도 소개하는 창구가 되고자 합니다.

작품과 작가를 선정할 때 여전히 ‘내 눈에 아름다운가’를 기준으로 삼나요?

네(웃음). 제가 직접 사고 싶은 게 아니면 전시도 못하겠더라고요. 제가 첫 번째 컬렉터이자 관객이라는 마음으로, 제 사무실이나 집에 놓을 수 있는 작품들을 큐레이팅 합니다. 작가를 선정할 때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오리지널리티와 작가만의 철학, 테크닉이 분명한지를 가장 먼저 봅니다. 학벌이나 경력보다는 작품 자체가 주는 힘을 믿는 편입니다.

전시를 한 달 주기로 운영하시는데, 공간 곳곳에 이전 작품들이 섞여 있는 연출도 눈에 띕니다.

전시 기간이 2주 반보다 짧으면 관객의 깊이감이 떨어지더라고요. 또 전시 계획 시 계절감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어요. 창밖의 풍경과 어울리는 1년의 플랜을 미리 세워두는 편입니다. 공간 곳곳에 이전 작품들을 두는 이유는 그것들이 박제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예요. 현재 전시 중인 작가의 호흡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흐름을 잡아주는 쉼표 역할을 하도록 연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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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빈 대표의 개인 사무실이자 전시 기간에 한해 개방되는 3층 공간 © MOSOON
작가의 철학과 제작 과정을 꾸준히 콘텐츠화하고 계시죠. 인스타그램 외에 다른 채널로 콘텐츠를 확장할 계획도 있으신가요?

작품 너머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직접 작업실을 방문해 인터뷰하고 촬영하는 과정을 꼭 거치는데요. 현재 준비 중인 온라인 몰에 저널 형식을 빌려 이 방문기나 인터뷰를 편집해 공유할 계획입니다. 전시 서문이라는 객관적인 포맷에서 벗어나 제 개인적인 관점을 더 유연하게 담아내는 에디토리얼 콘텐츠를 쌓아가고 싶어요. 작가님들의 제작 과정이나 테크닉, 그 너머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더 깊이 있게 전하다 보면 관객분들에게도 전시를 보러 오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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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로10길 골목 초입에 자리한 갤러리 모순 © MOSOON
광화문은 유동인구도 많고 접근성도 좋은 편이죠. 정동점과 비교했을 때 광화문점의 관객층 변화도 체감하시나요?

확실히 워크인 고객과 외국인 방문객이 늘었습니다. 정동은 정말 찾아가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면, 지나가다 “찻집인가요?” 하고 들어오시는 분들도 많고요(웃음). 특히 외국인 방문객이 많아졌는데 서촌을 들렀다 오신 분들이 컵이나 기물을 많이 구매하세요. 앞으로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공예 숍으로 자리 잡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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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숍 모순의 쇼핑백 © MOSOON
갤러리 모순이 나아갈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요?

올해는 해외 진출에 집중하려 합니다. 하반기 뉴욕 팝업 쇼잉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 중동 등 다양한 지역에 한국 공예를 선보이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미국 법인을 설립해 뉴욕이나 LA에 편집숍을 여는 것이 목표입니다. 취미의 형태를 넘어 시스템을 갖춘 지속 가능한 공예 비즈니스로 확장해 나갈 계획입니다.

2월에 열리는 전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무유 기법으로 작업하는 우시형 작가의 개인전입니다. 별도의 유약 없이 장작 가마의 불길로 완성된 도자들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특히 저희가 2023년 2월 14일 정동에서 처음 개관한 이후 맞이하는 3주년 전시라 의미가 깊어요. 일상의 기물부터 항아리, 새로 만드신 화병, 그리고 벽에 걸 수 있는 평면 작업까지 우시형 작가의 깊은 세계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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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우시형 작가의 도자 전시 <Raw Being>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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