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호출해온 디자이너, 필립스탁의 궤적을 조망하다
숲의 정령 The Spirit of the Forest
파리 케타비 부르데 갤러리에서 필립 스탁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대하는 그의 독특한 작업 세계관을 조명한다.

2026년 1월 30일부터 2월 28일까지, 파리의 케타비 부르데Ketabi Bourdet 갤러리에서는 필립 스탁의 ‘숲의 정령 The Spirit of the Forest’ 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대하는 그의 독특한 방식을 설명하고, 어떻게 이를 오브제로 번역해왔는지 구체적인 작품과 프로젝트를 통해 조명한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핵심은 숲의 정신에 있다. 자연을 디자인의 모티브로 차용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와 생태적 인식을 환기하는 매개로 삼아온 그의 태도를 살펴보자.
필립 스탁은 누구인가?

1949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필립 스탁은 산업디자인, 건축, 가구, 오브제 디자인을 아우르며 활동해온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다. 1980년대 이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일상적 사물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과 대중을 향한 메시지 지향적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정 스타일에 고정되기보다 프로젝트마다 다른 재료와 개념을 실험해왔으며,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공공성과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작품에 반영해왔다. 그는 종종 ‘에코 마인드’를 지닌 디자이너로 언급된다. 실제로 진흙, 파도, 숲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생활해왔으며, 1990년대 파리 인근 숲속에 직접 설계하고 거주한 ‘메종 3 스위스Maison 3 Suisses’ 역시 이러한 맥락을 보여준다.
케타비 부르데 갤러리

2020년 샬롯 케타비-르바르Charlotte Ketabi-Lebard와 폴 부르데Paul Bourdet에 의해 설립된 파리를 기반으로 20세기 후반과 동시대 디자인 및 오브제를 중심으로 전시를 기획해온 갤러리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디자인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선보이며 아카이브 연구를 기반으로 한 전시 구성에 주력해왔다. 이번 전시 역시 필립 스탁의 특정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작품과 문헌 자료를 함께 제시하는 형식으로 마련되었다.


‘숲의 정령The Spirit of the Forest’ 전시에는 1989년과 1990년에 제작된 작업들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1990년의 W.W. 스툴은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어린 식물의 힘’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지닌다. 1989년의 에트랑제테Étrangeté 화병은 길게 늘어진 실루엣을 통해 물방울이나 정자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이 시기의 작업들은 1980년대 그가 선보였던 검은 금속 가구들보다 덜 급진적이고 덜 미니멀한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 이후 그가 본격적으로 전개한 사회적 메시지 지향적 디자인의 전조로 해석된다. 자연의 인용이 아직은 형식적 차원에 머물러 있지만, 이는 곧 보다 직접적인 생태적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1994년, 필립 스탁은 3 Suisses와의 협업을 통해 ‘메종 스탁Maison Starck’을 발표한다. 4,900프랑(당시의 평균 환율로 한화 약 65만 원 내외)에 판매된 이 박스 세트는 24시간 이내 배송을 표방했다. 구매자는 완성된 주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노트, 시공 바인더, 건축가 패트릭 부셍Patrick Bouchain이 서명한 도면, 스탁이 직접 집을 설명하는 VHS 테이프, 첫 못을 박기 위한 망치, 그리고 완공을 기념해 지붕에 게양할 깃발이 포함된 상자를 받게 된다.


이 박스를 통해 구매자는 프랑스 법상 건축가 없이 지을 수 있는 최대 면적인 140㎡ (42.35평) 규모의 주택을 지을 권리를 갖게 된다. 건축 비용은 옵션에 따라 달라졌으며, 약 100만 프랑(약 25만 유로) 수준으로 추산되었다. 총 500개의 박스 세트는 모두 판매되었고, 실제로 지어진 주택은 약 20채로 알려져 있다. 이 목조 주택은 캐나다식 오두막, 캅 페레Cap Ferret 해변 주택, 스위스 샬레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결합했다. 어린 시절에 간직했던 집의 이미지에 기반해 어디에서든 적용 가능한 건축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대량 생산 주택에 대한 대안적 제안으로 읽힌다. 현재 이 박스 세트는 파리 장식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 컬렉션에 소장되어 정기적으로 전시되고 있다.



이듬해인 1995년, 스탁은 다시 3 Suisses와 협업해 ‘보 불로Bo Boolo’ 컬렉션을 선보였다. 벤치, 테이블, 콘솔로 구성된 이 컬렉션은 상판과 다리만 배송되며, 조립 설명서, 넘버링된 명판, 무료 전화번호가 함께 제공되었다. 구매자는 해당 전화번호로 프랑스 국립산림청 소속 산림 관리인에게 연락해 반경 150km 이내에서 구해진 자작나무 몸통을 직접 절단해 설치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줄기는 구조적 간격재 역할을 하며 관리인은 명판을 삽입하고 인증서에 서명하면서 비로소 가구가 완성된다. 스탁은 보 불로 테이블을 자신의 개인 책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전시장에서 눈에 띄는 오브제 중 하나는 단연 1994년 Thomson/SABA를 위해 디자인된 ‘짐 네이처Jim Nature’ 텔레비전이다. 기존의 성형 플라스틱 대신 제재소에서 회수한 톱밥으로 만든 목재 파티클 보드를 외장재로 사용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재활용 개념을 선취한 시도로 평가받는다. 스크린에는 “Design by Starck” 문구가 인쇄되어 있으며, 리모컨과 브로슈어가 함께 구성되었다. 현재까지도 이 텔레비전은 여전히 작동 중이다.


스탁은 집단 기억과 원형적 이미지를 호출하는 방식으로도 자연을 다뤄왔다. 1989년 이탈리아 브랜드 드리아데Driade를 위해 전통적인 농가 의자를 변형한 여섯 가지 모델을 발표했고, 1995년에는 XO를 통해 1937년만 레이Man Ray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은 암체어 ‘이것은 손수레가 아닙니다.(Ceci n’est pas une brouette’를 선보였다. 이어 2003년에는 Kartell과 협업해 아틸라Attila, 나폴레옹Napoléon, 생테스프리Saint-Esprit를 발표하며 정원 난쟁이라는 통속적 이미지를 현대적 인테리어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 시리즈는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스탁이 대중적 오브제를 통해 집단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그리고 2008년에는 프랑스 리베르테 재단Fondation France Libertés를 위해 납작하고 재사용 가능한 투명 물병 ‘La Feuille d’eau’를 디자인했다. “인류 공동의 자산인 물은 가격이 없다”라는 문구가 인쇄된 이 물병은 19,000개가 제작되어 파리의 337개 초등학교에 배포되었으며, 수돗물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계획되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오브제는 단순한 제품을 넘어 공공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로 기능했다. 이처럼 스탁의 작업은 자연이라는 형식적 인용에서 출발해 점차 사회적 인식과 환경 문제를 환기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왔다. 자연과 환경 보호는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축이었음을 알려주는 디자인적 사고와 결과물이 어떻게 자연 자체의 이미지를 넘어 숲의 의식을 호출해왔는지 알려주는 자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