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윈 올라프의 첫 미술관 회고전 〈Erwin Olaf – Freedom〉

우리를 옭아매는 모든 것으로부터

스테델릭뮤지엄은 〈Erwin Olaf – Freedom〉 전시를 열며 어윈 올라프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처음으로 미술관 회고전을 마련했다. 전시는 다층적인 작업 세계를 지닌 작가에게 헌사를 바치는 동시에, 그의 전반적인 창작 과정을 조망한다.

어윈 올라프의 첫 미술관 회고전 〈Erwin Olaf – Freedom〉

‘자유’란 시대의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위협받고, 방어되고, 다시 정의돼야 한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사진 작가 어윈 올라프(Erwin Olaf)는 평생 자유를 향한 질문을 이미지로 번역해왔다.

2023년, 그가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폐 이식 수술을 받은 지 일주일 후였다. 그리고, 작년 10월 11일에 스테델릭뮤지엄은 〈Erwin Olaf – Freedom〉 전시를 열며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처음으로 미술관 회고전을 마련했다. 전시는 다층적인 작업 세계를 지닌 작가에게 헌사를 바치는 동시에, 그의 전반적인 창작 과정을 조망한다. 대표작만을 모아 업적을 봉인하는 방식이 아닌, 영상과 조각, 상업 사진, 개인 아카이브까지 한데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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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win Olaf – Freedom, Stedelijk Museum Amsterdam. 사진 Peter Tijhuis

전시는 자유 사상가, 행동주의, 논란, 파격 등 그를 둘러싼 수식어들이 어떤 맥락 속에서 형성됐고, 그것이 어떠한 조형적 언어를 통해 연작으로 전개됐는지를 추적한다. 이는 올라프의 작업이 미술사적 맥락 속에서 읽힐 때 비로소 더 명확해진다는 미술관의 관점을 반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시가 그를 사회적 메시지를 지닌 작가로만 호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적 긴장을 다루는 방식이 곧 그의 미학이며, 미학은 다시 정치적 현실을 읽어내는 언어로 기능한다는 사실이 전시 전반의 구성 속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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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win Olaf – Freedom, Stedelijk Museum Amsterdam. 사진 Peter Tijhuis

1980년대 초반의 흑백 포토저널리즘에서 전시는 출발한다. 게이 인권 시위와 암스테르담 나이트라이프를 기록한 이 작업들은 특정한 역사적 순간을 포착한다. 이는 에이즈 위기가 본격화되기 이전, 퀴어 공동체가 자신을 숨기기보다 드러내고 확장하는 데 무게를 뒀던 해방의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당시 나이트라이프는 단순한 유흥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존재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자신을 실험하고,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에이즈 위기의 도래는 이러한 흐름을 급격히 재편했다. 퀴어 공동체의 정치와 문화는 해방 가능성을 넓히던 국면에서 생존과 권리를 둘러싼 투쟁의 국면으로 이동하게 된다. 올라프가 초기에 포착한 장면들은 바로 그 전환 직전의 상태를 담고 있으며, 자유가 시대의 조건 속에서 잠시 가능해지고 다시 위협받는 것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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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win Olaf, uit de serie Palm Springs, ‘American Dream, Self-Portrait with Alex I’ en ‘Still Life’, (2018). © Erwin Olaf, courtesy Gallery Ron Mandos Amsterdam

이러한 문제의식은 곧 ‘연출’의 언어로 이동한다. 올라프의 연출은 현실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조형적 선택이었다. 이후 다양한 연작들은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면서도 공통적으로 개인의 정체성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을 가시화한다. 올라프는 연출된 미장센을 통해 ‘보이는 것’이 어떻게 규범을 구성하는지, 시선이 어떻게 몸을 분류하고 위계화하는지,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자유가 어떻게 제한되는지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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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win Olaf – Freedom, Stedelijk Museum Amsterdam. 사진 Peter Tijhuis

특히 ‘Ladies Hats’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장기간에 걸쳐 탐구한 핵심 작업이다. 1985년에 시작해 2022년까지 이어진 이 연작은 서구 미술사에서 남성 초상에 머리 장식이 빈번히 등장했던 전통이 근대 이후 사라졌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렘브란트와 프란스 할스 같은 17세기 화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가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강조하는 키아로스쿠로 조명 효과를 활용해 남성 모델들을 초상화 형식으로 촬영했다. 그러나 이들이 착용한 것은 남성의 상징적 장식이 아닌 시대를 달리하는 여성용 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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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ies Hats, Hennie’ (1985). For all images: © Erwin Olaf, courtesy Ron Mandos Amsterdam

초기에는 암스테르담 나이트라이프에서 만난 인물들을 모델로 삼아 흑백으로 제작했고, 이후 컬러 작업으로 확장하며 연작은 반복적으로 갱신됐다. 얼굴과 상반신 중심으로 구성된 이미지 속에서 인물들은 관객을 응시하며 유혹적이면서도 모호한 존재로 나타난다. 이들은 남성으로 인식되지만 여성용 모자를 착용한 채 등장함으로써 전통적인 성별의 시각적 코드에 부합하지 않는 상태에 놓인다. 이러한 표현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드러내며, 성별의 경계를 흐리는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 모호한 정체성은 지배적인 이성애 중심적 시선을 교란하며, ‘다르게 존재할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30여 년에 걸쳐 지속된 이 연작은 자유가 시대와 시선의 조건 속에서 계속 갱신돼야 하는 질문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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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win Olaf – Freedom, Stedelijk Museum Amsterdam. 사진 Peter Tijhuis

한편, 그에게 ‘파티’라는 모티프 역시 단순한 해방의 상징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Paradise’는 암스테르담의 클럽 ‘파라디소’에서 촬영된 시리즈로, 축제의 화려함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개별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함으로써 환희의 환상을 균열 낸다. 과장된 웃음, 땀과 눈물, 때로는 당혹감에 가까운 표정은 즐거움과 불안이 한 몸처럼 공존하는 상태를 노출시킨다. 올라프는 밤의 신화가 만들어내는 도취를 재현하는 동시에, 그 도취가 붕괴한 직후의 얼굴을 통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연출된 환상인지 되묻게 한다. 해방의 장소는 언제나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라, 또 다른 시선과 위계, 불균형한 위험이 개입하는 공간임을 그는 파티의 장면으로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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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win Olaf, ‘April Fool 2020, 11.15am’, (2020). © Erwin Olaf, courtesy Gallery Ron Mandos Amsterdam

그리고 후기 작업에 이르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자유’는 더 이상 정체성의 가시화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팬데믹과 기후 위기, 이동과 불안정의 감각 속에서 자유는 개인의 몸을 넘어 환경과 시간의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문제로 이동한다. 이 전환의 정점에 ‘April Fool’과 ‘Im Wald’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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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win Olaf, ‘April Fool 2020, 11.15am’, (2020). © Erwin Olaf, courtesy Gallery Ron Mandos Amsterdam

‘April Fool’은 팬데믹의 공기를 시간의 연출로 변환한 작업이다. 2020년 봄에 제작된 11장의 연속 사진은 15분 간격의 시간표시로 명명되며, 한 장면이 다음 장면을 호출하는 방식으로 읽힌다. 사진은 영화의 정지 화면처럼 기능하고, 관객은 시퀀스를 따라가며 고립이 지속되는 상태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한다. 올라프는 자신 스스로를 피에로로 캐스팅해 익숙한 일상 공간을 낯설게 만들었다. 여기서 그의 우스꽝스러움은 공포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희극적 외피를 통해 불안은 오히려 더 또렷하게 침투한다. 결정적인 것은 작가가 스스로를 장면 속에 투입한다는 사실이다. 그 선택은 통제 불가능한 현실을 다시 조형 가능한 것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연출을 통해 간신히 확보되는 최소한의 주도권이 위기 속에서 작가가 자유에 닿는 방법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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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win Olaf, Im Wald, Auf dem See, 2020 © Estate Erwin Olaf, courtesy Gallery Ron Mandos Amsterdam

‘Im Wald’는 이 질문을 문명 바깥의 풍경으로 이동시킨 결과물이다. 올라프의 작업 중 처음으로 스튜디오를 벗어나 실제 자연 환경 속에서 촬영된 이 시리즈는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다. 그는 자연을 낭만적 배경으로 소비하는 시선을 거부하고, 인간이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 자체를 문제 삼았다. 특히 관광 산업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는 오만함을 겨냥하며, 사진 안에서 인간의 개입과 건축적 흔적을 의도적으로 지우려 했다. 작업 속 광활한 풍경에 고립된 채 배치된 인물은 작고 취약하다. 거대한 계곡 앞에 멈춰 선 소년의 이미지는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 ‘방랑자’를 연상시키지만, 올라프는 과거를 현재에 이식하는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인물 곁에 놓인 플라스틱 병, 헤드폰, 셀카봉, 마스크를 통해 장면을 ‘지금 여기’로 끌어당겼다. 숭고한 자연 속으로 기후 위기와 팬데믹의 잔향, 이동과 이주의 감각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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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win Olaf – Freedom, Stedelijk Museum Amsterdam. 사진 Peter Tijhuis

전시는 미완성 영상 ‘For Life’로 끝난다. 꽃병은 작가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로, 꽃이 피고 시드는 과정은 삶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그가 말년에 어머니를 위해 이 연작을 제작했고, 폐 이식 이후에는 자신을 위한 후속 작업으로 이를 시작했으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완성하지 못했다. 중단된 과정으로 남겨진 이 작업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자유’가 도달할 수 있는 최종 상태가 아니라 계속 갱신되고 방어되어야 하는 조건임을 시사한다. 전시의 끝을 미완으로 남겨두는 선택은 그가 자유를 한 번의 선언이 아닌 평생의 실천으로 다뤘다는 점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결말이기도 하다.

전시 〈Erwin Olaf – Freedom〉은 자유를 선언하는 대신 자유가 몸과 시선, 제도와 환경, 역사적 조건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위협받는지를 보여준다. 올라프는 자신으로 존재할 자유를 이미지 언어로 번역해왔고, 그 번역은 마지막 장면에서조차 완결 대신 질문으로 남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진 작가의 이 회고전은 작가의 업적 목록이 아닌, 자유가 요구하는 지속성과 참여의 윤리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윤리는 미완성 영상 앞에 선 관객에게로 조용히 넘어온다. 전시는 4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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